찰스 테일러. <현대 종교의 다양성>

Reading 2015. 8. 4. 03:41

찰스 테일러. <현대 종교의 다양성>. 송재룡 역. 문예출판사, 2015. Trans. of _Varieties of Religion Today: William James Revisited_ by Charles Taylor, 2002.



 최근에 번역출간된 테일러의 저술을 읽었다. 서문에서 밝히듯 2000년 오스트리아 빈의 인문과학연구소Institute for Human Sciences의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을 토대로 하는 매우 짧은 책인데, 테일러의 저술이 그렇듯 짧다고 해서 단숨에 읽고 치울 수는 없으며 곳곳에 잠시 멈추고 생각해봐야 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테일러의 저술경력에서 이 강연집은 89년 근대적 자아의 계보 연구(_Sources of the Self_)와 2007년의 세속화(_A Secular Age_) 사이의 어딘가에 있고, 실제로 SoS 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별다른 인용표시 없이 자유롭게 참고하면서 세속화라는 주제로 접근한다. 즉 강연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세속화 시대의 종교가 될 것이다. 책 만듦새는 솔직히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줄간격과 여백을 '정상'으로 맞추었다면 이 책은 지금의 160쪽에서 100쪽 안팎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번역도 문장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다. 군데군데 뜻이 불분명한 표현들, 주술호응이 애매한 대목들이 있다. <근대의 사회적 상상>이나 <불안한 현대사회>에 비할 때 문장 때문에 독서가 끊기는 대목이 너무 잦다.


 총 4강으로 구성된 <현대 종교의 다양성>의 핵심은 물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아니다. 테일러는 근대적 개인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세속화 과정을 강조하면서 종교의 이해가 공동체적 의례에서 개인적인 경험의 층위로 변모해왔는지, 그리고 그와 함께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원리로서 종교의 기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한다. 제임스는 이떄 종교적 경험이 개인의 내적 층위로 축소되는 정황을, 그리고 그러면서도 (무종교에 대항해) 종교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지속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테일러는 제임스를 통해 종교가 근대 사회에서 어떻게 세속화되는지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풀어가며, 마지막 4강에서 제임스가 예견하지 못했던 현상들의 출현을 언급하며 강연을 마친다.


 1강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이 어떤 속성을 갖는가를 분석한다. "종교가 행해지는 진정한 장소는 집단적 생활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 있다. [...] 또 다른 면은 그 진정한 장소가 경험에, 이를테면 감정에 있다는 점이다. 그 감정은 사람들이 감정을 정의하고, 정당화해서 합리화하는 언어적 공식화와 대립된다(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공식화를 빈번하게 조작하는 곳은 교회다)"(18, 인용자 강조). 테일러는 중세 이후 서구 기독교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점차 "종교의 내면화"(21)가 진행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주제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SoS의 2부 및 3부 초반을 참고하라. "[제임스에게] 자신의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은 종교를 개인적으로, 경건하게, 내면적으로, 더 헌신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23). 내면화 과정 혹은 종교적 경험의 개인화는 서구 세속화 과정의 중요한 특징이었으며 동시에 세속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으며, "제임스의 입장은 최근 몇 세기에 걸친 기독교 제국의 주류 흐름에서 출현한 것이다"(26). 테일러는 제임스의 입장이 경건적 휴머니즘(그리고 이에 영향받은 후기 낭만주의)에 가깝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내적 헌신을 강조하는 흐름과 전통, 계시, 율법에의 복종을 강조하는 흐름 사이에서 전자에 속한다. 따라서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은 "종교적 연결이라고 칭할 만한 것, 즉 신자와 신성한 것의 연결이 본질적으로 집단적이고 교회적인 삶에 의해 매개됨"(35-36)을 포착하지 못한다.


 2강은 "병든 영혼"이 맞이하는 세 가지 심연의 나열로 시작한다: 우울, 악, 개인적 죄의식. 병든 영혼은 이러한 심연을 통과해 "거듭나"Twice-born 진실한 종교적 경험, 구원의 경험에 도달한다. 테일러는 이 세 가지 심연에 대해 설명한 뒤 제임스가 "불가지론적 거부" 또는 개인의 신념에 의해 종교를 거부하는 태도에 대해 가한 비판을 소개한다(57). 제임스에 따르면, 종교적 진술의 객관성을 확인할 수 없으니 종교를 믿을 수 없다는 태도는 우리가 종교적 경험을 통과함으로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차폐하는 결과를 낳기에 우리는 신앙을 선택하고 특정한 선에 도달해야만 한다(이런 점에서 제임스는 파스칼과 비교된다). "제임스가 실제로 주장한 것은 '믿음의 권리'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타당치 않은 논증에 기초한 위협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권리다"(75). 테일러는 신앙 대 불가지론에 대한 제임스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직관 [...] 우리 외부에 더 뛰어나고 큰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인간에게서 소거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현대 종교의 다양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부는 세속화 과정 또는 (베버를 빌려) 탈주술화되는 사회에서 종교의 기능에 대해 다룬다. 세속화 과정에서 인간은 "우주(세계)를 반영하고 그 우주와 연결된 사회에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 탈 배태된 개인으로서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결합하는 존재다"(86). 필연적으로 종교는 자발적 선택의 문제가 된다. 테일러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종교와 국가/정치적인 영역의 관계를 세 가지로 유형화한다. 구(old) 뒤르켐적 양식이 "국가가 신과 고차원적 시대에 실체적으로 의존한다는 느낌이 여전히 작용"(95)하는 체제라면, 신(new) 뒤르켐적 양식에서 개인들의 "신앙고백적 충성은 어느 민족이나 국민, 계급 혹은 지역 집단에 대한 자기 동일시 감각으로 바뀌었다(97)--곧 국가가 종교적 집단과 뒤얽히면서 "집단의 역사에서 생겨나는 도덕적 주제가 종교적 범주로 코드화"(98)한다는 것이다. 후기post 뒤르켐주의는 영성과 국가 정치와의 분리를 당연시한다. 종교의 역할은 1960년대 이후 "새로운 개인주의", 그러니까 표현주의적 자아(SoS를 참고할 것)의 대두와 함께 크게 변모한다. 소비사회의 대두로 인해 공동체가 아닌 자기 자신의 표현이 핵심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정신(영성)은 이제 본질적으로 사회와 연결되지 못한다"(124). "나[테일러]의 주장은 우리 역사가 세 체계를 거치며 변용되었으며, 그중 후기 뒤르켐적 체제가 "점점 더 우리 시대를 채색한다"(119)고 주장한다. 자발성-다원주의의 강조, 소비문화-표현주의 운동의 준동이 그러한 흐름을 대변한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완전히 후기 뒤르켐적 체제로 진입한 것도 아니며, 비기독교 종교를 포함해 종교를 갖는 사람들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4강에서는 앞서 말했듯 제임스가 포착하지 못한 지점들을 거론한다. 첫째, 개인주의적 색채가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집단적 연결"의 요구는 계속해서 남는다.둘째, 신뒤르켐적 정체성, 그러니까 사람들을 국가/민족에 결속시키는 종교적 헌신의 존재를 이야기한다--그런 점에서 신 뒤르켐적 정체성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셋째, 개인적 경험을 통한 영적 직관은 정신적 수양 및 형식을 통해 고차적인 종교적 삶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높은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경향 역시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짧고 결국 다른 주저를 예비하는 텍스트이기 떄문에, 나는 <현대 종교의 다양성>이 반드시 꼭 읽혀야 할 텍스트인 이유는 특별히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세속의 시대>가 번역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책에서 설명/주장하는 세속화 테제를 미리 맛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종교가 무시할 수 없는 층위로서 우리들의 정체성 형성 및 내적 실천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진지한 변수로 고려하도록 한 것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일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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