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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미니즘 2021.04.19 01:39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begray님

    페미니즘관련해서 여기서 많은것을 배워가고는 있는데 페미니즘에 대해서 제대로된 책을 아직 읽어보지를 않아서
    안티페미니즘쪽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직접하기에는 한계가 많이느껴집니다

    이 상태를 극복하려면 지금까지의 페미니즘이론들에 대해서 잘 정리된 단권화된 책을 보고싶은데 추천해주실수있는게 있나요?

    • BeGray 2021.04.29 02:36 신고 Modify/Delete

      답변이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말씀하신 목표에 부합하는 단권화된 책은, 특히 한국어로 된 것은 저도 아직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저도 이 주제에 관해서는 보통 논쟁이 되는 이슈 자체를 바로 따라가는 편이지 관련 연구서나 논문을 뒤지는 일은 잘 없어서요). 더불어 지금 한국사회에서 전개되는 논쟁들은 큰 주제나 구도 자체는 과거의 것들을 반복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세부에 들어가면 과거의 구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예가 많아서 보통 이전의 사례 혹은 해외의 사례를 다룬 책들을 참고해서 현재의 논쟁을 이해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참고삼아 떠오르는 책을 몇 권 적자면,

      크리스틴 J. 앤더슨, <여성혐오의 시대: 페미니즘은 끝났다는 모함에 관하여> (2019; 원저는 201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0555389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2018)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1343809

      교양인에서 나오고 있는 도란스총서
      https://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119745

      등이 있는데, 당연하지만 이 책들에 나오는 주장/설명이 100% 맞는 것도 아니고 + 제가 모르고 있는 책들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는 10년 전과 비교할 때 이전의 연구자들/분석틀로는 다 따라갈 수 없을만큼 한국 내 젠더 관련 논의가 폭발하고 있는 현실이 기존의 책으로 논의를 소화하기 힘들어진 이유라고 보고 있습니다.

  2. 2021.03.29 02:38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21.04.03 02:04 신고 Modify/Delete

      우선 복학 및 공부 무탈히 이어나가고 계신 것 축하드립니다 :) 아직 2년 여가 남은 시점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문의하신 내용에 최대한 간결하게 답을 드리면,

      1-1. 어떤 분야/주제로 연구하고 싶으신지, 또 어떤 직업적 경로를 염두에 두고 계신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꼭 하나가 아니라도 좋으니--말씀해주시면 그에 따라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1-2. 정확히 어떤 분야를 염두에 두시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일반론적으로 말씀드린자면,

      1) 문헌을 적절한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이, 또 정확하게 읽고 소화하는 독서능력
      2) 읽은 내용의 요점을 명확하게 요약정리하는 능력
      3) 자신의 요점을 가급적 읽기 수월한 문장으로, 또 적절한 형식과 설득력있는 구조를 갖춘 글로 구현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
      4) 영어를 포함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1-2차 문헌을 읽고 정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외국어능력(물론 여러 외국어가 필요한 경우 일부는 대학원에 가서라도 습득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가급적 영어는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 익혀서 학술논문이나 연구서를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가야합니다; 특히 지성사 연구는 영어 접근성에 따라 참고할 수 있는 문헌의 범위가 매우 달라집니다)

      정도가 요구되고요(물론 꼭 저걸 지금 다 갖춰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ㅎㅎ 저도 석사논문-박사 코스웍 기간 동안에야 어느 정도 준비가 되더군요),

      그 외에 공부 외적으로는

      -심신의 건강(정말 중요합니다)
      -학교의 장학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혹시라도 장학금이 넉넉치 않은 곳에 가게 될 경우를 위한 경제적 계획
      -여러 연구자/대학원생들과 동료가 될 수 있는 사회성

      정도가 있겠습니다.

      2.

      제가 19세기 및 사회과학의 역사에 관해 잘 모른다는 전제 위에서 말씀드리면,

      1) '국가-시민사회(시장)'의 도식은, 물론 자연법적 헌정론 및 그 영향을 받은 문헌 등에서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구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반드시 일반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만 직접적으로 정치경제적/상업적 논의를 다루는 문헌이 아니라면 시민사회를 설명하면서 시장을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는 예도 흔하고요.

      몽테스키외처럼 매우 정교화된 모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처럼 법 제도, 시민의 덕성, 세 신분(왕, 귀족, 평민) 사이의 균형, 재산의 분배, 습속의 문명화 수준, 종교 등 시장 혹은 정치경제학적 요소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고서도 시민사회의 작동을 설명하는 방식은 흔하게 존재하는 듯 합니다. 로스는 그것들을 거칠게 한데 묶어서 사회학적 저술로 명명하고 있는 듯 하네요.

      아도르노를 참고하기 보다는 예전에 만들어드렸던 리스트를 참고하셔서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스미스(<법학강의), 기번의 로마사 등을 직접 읽어보시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겁니다. 하다못해 콩도르세의 팸플릿처럼 매우 짧은 것도 있고요.

      2)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1차 문헌을 번역으로라도 일정 이상 소화하지 않은 채 2, 3차 문헌으로 이해를 대신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지 않을 뿐더러 아마추어 독학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엉뚱한 오독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1차 문헌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은 남들이 해놓은 사상사 연구를 재밌게 읽는 독자가 될 순 있어도 스스로가 지성사 연구를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아니 애초에 연구자가 되는 게 불가능하죠. 지금부터 주요한 고전급 1차문헌을 최대한 많이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섭취한 2, 3차 문헌의 '잘못된' 내러티브들을 하나씩 깨트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3) 18세기 전후에 '정치경제학'이라 불리는 학문이 구축되기 때문에 일반화된 답변을 하기 힘든데요, 스미스의 <국부론>은 매우 중요한 저작이지만 아무래도 논쟁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화하기는 무리가 있겠죠. Istvan Hont의 Jealousy of Trade의 2장과 3장을 읽으면서 보시면 정치경제학 형성기의 논쟁 맥락이 좀 더 잡힐 겁니다.

    • 2021.04.03 05:17 Modify/Delete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21.04.05 01:03 신고 Modify/Delete

      1-1.

      네, 일단 석사까지 해보고--물론 너무 오래 끌면 안 되겠지요^^--진로를 결정하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전문연구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고 해도 인생에서 특정한 분야를 향유하는 방법은 여럿이 있고, 그중에는 학자로서의 삶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 없는 길도 많으니까요.

      1-2.

      말씀하신 분야는 제가 아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주변에 좀 문의해봤는데요,

      경희대학교 사학과 구만옥 선생님 / 철학과 문석윤 선생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문중양 선생님
      (만약 여대에 지원하실 수 있다면)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김선희 선생님

      등의 연구를 살펴보고 관심사를 찾아 문의해보면 좋을 거라는 추천을 받았습니다. 어차피 대학원을 선택하는 건 진로와 경제적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가지만, 일단 이분들의 작업을 본 뒤 배우고 싶은 선생님께 대학원에서 해당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문의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

      1-3.

      제가 말씀하신 바와 같은 문제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보니, 또 그러한 문제를 겪기 전에 어느 정도의 양을 어떤 속도로 읽으셨는지 모르는만큼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네요. 다만 논문이나 학술서, 혹은 특정한 분야의 1차 문헌의 경우, 일정 이상 독서량이 쌓이고 장르의 이해가 생기게 되면 좀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요점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듯 합니다(외국어 문헌도 많이 보다보면 속도가 붙는 것처럼요). 다만 이를 위해서 메타-독서를 위한 훈련, 즉 자신이 텍스트를 어떤 식으로 읽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읽을 때 텍스트를 보다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는지, 논지의 구조는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하는지 등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해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1

      어차피 연구자로 산다면 아무런 맥락도 주어지지 않은 1차 문헌을 계속 파면서 자신의 맥락을 구축해가는 작업을 수시로 하게 됩니다. 맨 처음 막막한 영역에 들어가서 자료독서의 축적을 통해 미로의 구조를 파악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어야 연구자로서도 계속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안 그러면 남들이 이미 짜놓은 틀에 업혀 들어가 남들이 해놓은 이야기를 변주하는 삶을 반복하게 됩니다).

      완성된 맥락이나 배경지식을 갖춘 뒤에 고전으로 들어가는 대신, 일단 접근하기 쉬운 문헌부터 출발해 과거의 텍스트를 계속, 많이, 충분한 양을 읽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 뒤에 2, 3차 문헌을 보면, 특히 고전적인 연구서를 보면 그 연구서를 읽는 방식 자체가 다시 바뀔 겁니다. 어차피 제가 만든 리스트 중에서 진짜 어려운 문헌은 거의 없으니 그냥 붙잡고 하나씩 정리하면서 독파하세요. 그것들 사이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는 리듬이 보이고, 비슷하지만 달라지는 문제의식이 붙잡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런 과정을 즐기면서 자신의 일부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2-2. 말씀하신 리스트가 제가 이해하는 리스트와 같다는 전제 하에 답변드린다면, 16년도의 리스트는 기본적으로 연구동향을 파악하기 좋은 2차 문헌목록이고, 최근의 독서목록은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일차문헌 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당연히 (최근의) 후자가 훨씬 더 교양독서목록에 가깝고요(서구사상사를 한국어 번역서만 갖고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건 현재의 번역상황에서는 철저히 불가능한 과제입니다). 충분한 1차문헌의 이해 없이는 연구문헌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 반대로 연구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1차문헌을 읽어도 통속적인 (틀린) 해석이나 반대로 자기만의 오독을 만들어내기 쉽죠. 결국엔 비전문가로서라도 틀린 이야기를 안 하려면 둘 다 읽어야 합니다 :)

    • lecanix 2021.04.05 12:06 Modify/Delete

      그사이에 직접 알아봐주시다니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조언들은 정말로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여러모로 크고 많은 도움들을 받아갑니다^^ 건승하시길!

  3. Lexupseo 2021.03.06 14:42 Modify/Delete Reply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동의가 가는 부분도 있지만 때론 동의가 안가고 반박하고 싶은 주장도 있어서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글 더 자주 올려주세요 ㅎㅎ 화이팅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용

    • BeGray 2021.03.22 12:47 신고 Modify/Delete

      오랜만에 블로그에 돌아왔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아마 연말 정도까지는 저도 마쳐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그렇게 활발하게 포스팅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만, 포스팅에 의견 남겨주시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해도 대부분 답변을 드리니만큼 편하게 의견주셔도 됩니다 :)

  4. chois29 2020.12.29 15:56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begray님. 올려 주신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비록 전공 분야가 같지는 않지만, 대학원에 있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방명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학원에 오고 연구자의 길을 가게 되면 영어로 쓰인 글이나 논문을 읽어야 되는 게 당연해지고 또 필수적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부 때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면. 그래도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게 되겠지만, 영어로 된 텍스트를 거의 읽지 않다가 대학원에 와서야 읽게 되면서 큰 벽에 부딪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 번 강조해 주셨던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상황에, 앞으로는 분야를 막론하고 영어로 글을 쓰고, 외국 학술대회에 참여하여 영어로 발표해야 하는 경우도 대비해야 하는 것 같고요.

    그래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적어도 영어 텍스트를 잘 읽을 수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혹시 영어 공부를 할 때의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여쭙게 되었습니다. 사전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펴고, 읽으세요, 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먼 발치에서 뵙기에는, 외국 유학을 가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영어로 된 고전 텍스트를 읽으시는데 거의 어려움이 없으신 것 같아서요. 그래도 그 단계에 가시는 과정 중에 어려운 점도 있으셨을 것 같고 또 후학들에게 조언을 주실 수 있는 점도 있으실 것 같아서,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 BeGray 2020.12.30 01:19 신고 Modify/Delete

      저도 읽기에만 몰빵한 한국식 영어교육(...)의 수혜자다보니 다른 분께 영어교육 관련 조언을 드릴 자격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경험에서 생각한 경로를 말씀드리면,

      1) 어쨌든 영어문헌을 읽는 절대적인 시간과 양이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저도 학석박을 영문과에 속해있긴 하지만 순수 국내파(...)로서 영어문헌을 읽는 게 편해진 건 석사논문 쓸 때 강제로 많은 양을 정리하면서 읽어야 했던 시기를 거치면서였던 듯 합니다^^;; 몇 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많이, 꾸준히 보시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어자료는 학술문헌이나 고급저널리즘이나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양을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2) 시간이 될 때 세미나를 통해서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책' 단위의 저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경험을 일정 이상 해두면 좋은 것 같습니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인문사회분과면 어차피 평생 책 단위 연구서들 접하며 살아가셔야 할 가능성이 높으니 중요한 저작몇 권이라도 붙잡고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정리하면서 죽 읽어보시죠. 일단 한두 권을 해치우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붙습니다^^.

      3) 전공분야 혹은 관심분야의 경우 해당 분야의 문헌을 일정 수 이상 읽다보면 익숙해지는만큼 속도도 이해도도 올라가는 듯 합니다(물론 그렇다고 너무 한 가지 분야만 보면 곤란하니 다른 분야 글도 틈틈이 봐줘야겠지요). 특히 전문연구분야는 글이나 문장패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만큼 용어와 논증방식만 익숙해지면 생각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4) 이건 꼭 영어문헌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만, 자료를 읽을 때 "지금 이 부분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 대목인가" "글 전체에서 볼 때 현재 대목은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가" 등을 메타적으로 인식하며 읽으면 집중력 유지도 되고 이해하기도 좀 더 쉬운 듯 합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는데, 전부 당연한 거라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런 식으로 시간과 노력을 일정량 이상 투입하면 꼭 영어만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보실 때 좀 더 편해지실 거라 생각합니다 :) 혹시 다른 사항이 있으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말씀 주세요!

  5. lecanix 2020.12.25 16:45 Modify/Delete Reply

    반갑습니다 begray님 거진 반년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때 저의 공부에 대하여 여러가지 세심한 조언들과 도움이 될 만한 훌륭한 문헌들의 추천을 아낌없이 해주신 덕분에 그 이후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것저것 많은 부분들을 배우고 또 좀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의 질적인 도약과 진전적인 성과를 와닿게 겪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 동안 읽고 생각한 것들을 잠시 정리해본 뒤 나름대로 저만의 준-체계적인 지식관이나 중점적인 문제의식들의 연결망을 어느 정도라도 구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저 홀로서만 이렇게 자의적인 만족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폐쇄적일 수밖에 없겠다싶은 마음으로 인해서, 이참에 한 번 begray님에게 지적과 검토를 요청해보는 식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다시 제대로 곱씹어보고 숙고해 봄에 따라 저의 얕은 지성을 더욱 자극할 수 있도록 하고자 이렇게 긴 글을 남겨 봅니다. 그 때문에 이번에는 전처럼의 단적인 질문보다는 어떻게든 구체적인 논의를 요하게 되는 사항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도 begray님께선 이미 관련된 요점들을 충분히 제대로 숙지하고 계실꺼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역시나 착실히 경청하는 태도로 답변에 응하겠습니다ㅎㅎ

    1) 첫번째 질문은 언어맥락주의 방법론에 대한 것으로서, 이전에 제가 한참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던 시점까지만 해도 포콕과 스키너 간의 방법론적 차이에 있어서는 단순히 스키너는 미시적 차원의 언어행위와 의도를 해명하는 것에, 포콕은 거시적 차원 언어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어 넓게 다룬다는 그런 간단편리한 정도의 상이함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참 뒤에 제임스 탈리의 <의미와 콘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읽고나서는, 특히 끝에 가서 4부의 '답변'과 옮긴이의 말 부분을 읽게 되면서는 그러한 구분은 대체로 부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조금은 혼동을 겪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끝까지 나름 제가 이해한대로 대략적으로나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먼저 스키너는 언어라는 영역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현실의 능동성 또한 강조하면서 포칵의 언어중심적 사고를 조금은 가볍게 지나가듯이 지적하고 있지만 끝부분에서 옮긴이분이 지적하고 있듯이, 궁극적으로는 정치행위와 사상의 관계에 대한 둘 사이의 입장은 큰 차이가 대체로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차이가 나는 지점은 이데올로기 및 언어의 콘텍스트에 대한 서술적 입장에서인데(물론 아직 그들이 정의하는 '관습' '이데올로기' '정치언어' 등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지도 못하였으며 나아가 그 둘이 이러한 용어들의 합치되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면, 스키너는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의 다양한 관습들의 형태, 변형, 고착화 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이들을 유개념적 차원에서의 이데올로기로서 종합하고자는 식인데, 그러나 일찍이 비판받았듯이 이러한 서술은 약간은 비유적으로 말해 '전체-부분'의 변증법적 관계를 다소 신중하지 못하고 성급한 방식으로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에 반해 포콕은 사전에 제대로 주어져 있는(?) 개별적인 언어관습들의 구체적인 역사에 좀더 시각을 '좁힌' 채로 밀착하여 그 맥락에 얽혀있는 여러 구체적인 정치사상과 행위들을 조명하면서 이를 착실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으로서, 즉 전자보다 언어적 맥락을 훨씬 더 철저하게 실증적이고 명징하게 구축해내는 성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걸핏 보아서는 그냥 단순히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어딘가 가치중립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어보이나, 그럼에도 저로서는 포콕의 방법이(비록 저는 이에 관한 제대로된 그 어떤 저술들도 본적이 없지만은) 어떠 면에서는 비교적 확증적이면서도 동시에 넓은 시각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적인 지성사가로서는 당장은 이쪽에 좀더 큰 메리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ㅋㅋ 특히나 이는 가끔씩 begray님이 종종 글에서 언어맥락주의 방법론을 언급하실 때마다 보면 유달리 스키너보다는 포콕에 비중이 가있는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매우 강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방법론은 그냥 어디까지나 몇몇가지 (중요한)관점들 중 하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비록 그들이 어떤 훌륭한 모범을 보였을지라도, 현재의 언어맥락주의 연구자들 네트워크 내에서는 그것이 대체로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2) 비록 제가 어쩔 수 없이 서구 정치사상사라는 낯선 분야(라고 하지만은 실상은 거의 모든 영역이 저에게 있어서 공평하게 낯설다는 극도록 현실적인 사실은 그냥 묻어두겠습니다ㅋ;;)를 통해서 지성사에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어왔던 저만의 그 어떤 역사학적인 관심사는 그 지성사 학술전통 상의 정치철학적 성향을 논외로 하게끔 유도함으로 인해서 저에게 있어 결국에는 순전히 '역사학으로서의 지성사'라는 측면에서만 어떻게라도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큽니다. 그로 인해서 지금까지 공부의 대부분은 지성사의 몇몇 중요한 저술들을 직접 읽는 것보다는 지성사 영역 자체에 대한 형식적 관심으로서 그것이 어떤 역사학적 혹은 역사서술적 전제들을 그것 나름대로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핵심삼아 크게 할애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특히 정당하게끔 해주었던 계기는 다름 아니라 <의미와 콘텍스트>에서 스키너 자신이 종종 지성사가를 '역사가'와 등치시키는 표현들을 자주 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인데, 제가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닌 한, 이는 어딘가 지성사가 다양한 역사학 영역들 중에서도 가장 역사학적 작업에 걸맞는 방법론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자신감을 은연 중에 내보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만약 제가 그러한 추정적 확신에 동참을 표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이는 특히나 20세기 중후반에 성행했던 포스트모던의 역사학적 조류들(이를테면 신문화사, 미시사, 사회문화사 등과 같은 영역들)과의 대조를 통해서 그 차별점의 상대적인 명료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지성사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리처드가 초반에서 로버트 단턴의 그 4중식의 구분에 대해 반대적인 입장을 표했던 것이 떠오르는데요 비록 제가 이에 대해서 뭐라고 합당하게 지적할 수있는 위치는 당연히 아니긴 하지만은, 그럼에도 그 둘 사이에는 물론은 상당히 밀접한 유사성들을 공유하고 있으나(또 그 문화사 조류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저에게는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들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더욱이 그러한 차이가 지성사의 역사학적 충실함을 입증해주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양자 사이의 구별이 매우 모호하다는 특성을 완벽하게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기도 하면서도, 또 왓모어의 저작 중에서 그 양자간의 관계와 비교를 보여주는 부분을 보면 그 이면에는 꽤나 복잡한 측면들이 있음을 느꼈기에 어떻게보면 그에 대한 두리뭉실한 저 자신의 궁금증이 반영된 사항이라고도 여겨집니다. 그렇지만은 앞서의 화두를 다시 계속 밀고나가고자 하며, 이의 그 주요 차별점을 서로 깊게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3가지로서 제 나름대로 제시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여담으로 여기에서는 최근에 읽은 <역사학과 사회이론>에서 많은 힌트들을 얻었음을 밝힙니다ㅎㅎ)

    ㄱ. 해당 (사회)문화사적 조류에서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회이론적 관심사와 문제의식들에 머물러 있는 역사서술의 태도가 지성사적인 경향에서는 어느정도는 크게 면역(?)되어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전자의 조류들은 얼핏보면 이전의 엄격한 사회과학적 성향의 사회경제사 분야와는 달리 해석학적 성향을 제대로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심리학적 혹은 인류학적 차원에서의 사회과학적 관심사를 근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는 <조각난 역사>에서 도스가 비관적으로 지적했듯이 이러한 흐름이 오히려 더욱더 '전체사'로서의 역사학적 성격을 해체하고 공통의 사회과학으로서 그 정체성이 희석되는 성향을 가중시켰던 사실에서 파악이 되는데, 결국 이러한 직관은 연구 대상에 있어 이론적 틀을 매개적으로 투영시키는 것에 그치는 경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에 반해 지성사적 부류들은 좀처럼 문화, 원인, 변화 등의 설명적 용어들로써 확립되는 어딘가 물상적인 성격의 서술이 아니라 철저하게 탐구 대상 그 자체에 어떻게든 파고들어 이해하며 설명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역사적 이해에 있어서 주로 사회과학적 성향의 중심적인 문제의식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반영되거나 혹은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구조나 특성들을 외연적으로 전제하지 않은 채로 오로지 그 대상만을 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그런 객관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바로 이러한 점이 아무래도 벤느의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에 담긴 중심테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ㄴ. 포스트모던 조류들이 아무리 어떤 방식으로든 연속성이나 구조성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들이 여전하게 유물론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서술이 '사건'이나 '이야기체' '행위자' 등과 같은 것에 강조점을 부여하더라도 결국에는 다시금 구조, 상징, 심성 등과 같은 비교적 거시적인 성격의 형성물로서 환원적으로 설명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급진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이는 곧 '구조-사건'이라는 어딘가 사물화된 이분법적 도식에 갇혀들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케임브리지학파는 진작에 그러한 선택지로부터 벗어나 어떻게든 구조로서 환원되는 행위가 아닌, 그 나름의 특수한 구체적 목적을 두고 실현하는 것으로서의 (언어)행위라는 차원을 제시함으로써, 기호학적이나 인류학적으로 탐구되는 심성, 이데올로기, 집단적 무의식에 의해 주로 설명되는 수동적인 인간상의 관념에 따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들을 자칫 과도하게 추상해버림으로써 어딘가 폐쇄적인 해석으로 치닫을 위험을 일찍부터 미리 방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 대신에 맥락 및 이데올로기를 '결정'의 측면에서가 아닌 '자원'의 측면에서 강조함으로써 어떻게든 개개행위자들의 능동성 혹은 정치성을 제대로 구사해낼 수 있게 되었고요.

    ㄷ. 따라서 이렇게 본다면 최종적으로 지성사는 사회 및 문명의 근본 구조나 변형 과정의 '존재론'적인, 그러나 다소 거창하거나 피상적인 경향의 설명이 아닌, 비교적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언어 및 관념들의)맥락들을 제대로 주조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참된 역사학적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특히 일상생활사나 미시사 같은 분야들이 종종 사소하고 단순한 사실들 확인에 그치게 되어 정말로 '골동품 수집'에 다를 바가 없을 그런 한계에 쉽게 부딪칠 수 있는 점, 그리고 또한 그러한 지식들은 탈근대나 혹은 진보 관념에 있어 일정한 이데올로기-수사적 동기만을 적실하게 제공해줄 뿐 정작 현실 정치에 있어서의 심도 깊은 사유를 제대로 자극시키지 못한다는 점들이 곧 실질적으로 지성사를 돋보이게 끔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세계는 결코 사유와 무관하지 않으며 되려 인간의 정신적 노동과 매우 긴밀하게 엮이며 움직인다는 사안을 상기할 수 있다면 그 점은 더더욱 명백해지는 것 같고요.

    + 추가로, <의미와 콘텍스트>에서 옮긴이의 말 부분을 보면 80년대 이후 '정치' 개념의 변전에 대해서 짧게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만약 그 개념이 단순한 권력 다툼이나 국가 규모의 투쟁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외에 어떤 함의들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혹여 쉽게 단순히 요약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면, 그 당시의 정치 개념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키면서 상대적으로 개괄적인 수준이나마 다루고 있는 저술들을 소개라도 받을 수 있을련지요.


    3) 제가 이전에 기존 철학사 및 사상사에 관하여 기본적인 수준의 지식들을 얻고자 하여 그에 관한 몇몇 문헌들을 추천해주실 것을 부탁드렸었습니다만, 답변을 받은 이후로 한참지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대략 19세기 말 및 20세기 초 이후의 학문 및 비평의 개괄적인 역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니까 본래는 전근대로부터 현대로까지의 일관된 지적 계승이 어느 정도라도 이어져왔었다고 잠정적으로 믿고 있었으나 하지만 좀더 이것저것 공부를 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19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하여금 서구의 지식장에서 매우 커다란 변혁과 단절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달까요... 비록 확실하진 않으나 제가 일단 생각하기엔 특히 그 혁명적인 지점에는 과학주의 혹은 실증주의적인 조류들의 유행이 크게 한몫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 흔히 알고 있는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이라는 큰 대립적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비록은 추정적으로)생각합니다. 물론 헤겔로까지 소급될 수 있는 독일 관념론 전통의 영향이 매우 짙기도 하지만 말이구요(얼마전부터 헤겔을 잠깐 맛보기 식으로 읽어보았었는데 어떻게라도 우리의 사유는 관념론과 엮이지 않는 부분들이 상당히 적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습니다).

    여하튼 만약에 그런 지적 단절로 인하여 발생한 여러 주요한 흐름들 위에서 우리가 줄곧 공부를 해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제가 느끼는 그 빈곤함이란 그런 맥락들에 대한 몰이해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후설이나 하이데거를 대표로 하는 현상학-해석학적 조류들이나, 프로이트를 위시한 정신분석학, 여타 사회과학/철학 분파들, 문예비평의 전통(특히 아직까지 저는 이 영역이 가장 낯섭니다),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등과 같은 현대 사상에서의 큰 줄기들에 대해서 개괄적으로나마 그것들을 습득하고 싶은, 뭐 물론 제가 그냥 여전히 쓸데없이 안절부절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은, 그럼에도 그러한 욕심이 아무튼 있습니다. 특히 근현대 역사학이 이러한 흐름들과 매우 밀접하게 접촉해왔던 사실을 상기하자면 저로서는 크게 요긴해지는 바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것들을 매우 종합적으로 엮고 있는 훌륭한 저서들이, 특히나 한국에서 비교적 제대로된 책들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은, 그럼에도 혹시나 이에 관해서 추천해주실 단행본들이 있을까 여쭤봅니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감상적인 여담을 덧붙이자면, 추천해주신대로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과 <사회학 강의>를 최근 읽어보았는데요. 읽으면서 부분부분 놀랐던 점이, 생각 외로 아도르노와 지성사적 사조 간의 입장에 있어 겹치는 부분들이 상당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해 대상이나 접근 구도들은 근본적으로 상이하지만은, 개별 사물 및 사태들에 외적으로 전체를 끌어들이지 말고 그 내부에 침잠할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라던가, 이른바 '속류 유물론'을 비판하는 계기에서도 꽤나 유사한 의식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몇몇 '개념'을 본질적인 것이나 불변항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입장도, 특히나 <변증법 입문> 10장인가 11장 쯤에서 베버의 이상형과 함께 '모델 개념'을 언급하는 부분들은 거의 뭐 벤느의 저술이 어떻게든 안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과장일지도 모르겠으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를 좀더 깊이있게 읽기위하여 함께 같이 보면 좋을 저술들 중에 아도르노의 이 강의록들을 첨부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가벼운 생각마저 들기까지도 합니다. 어쩌면 begray님이 예전에 아도르노를 유달리 좋아했었던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ㅎㅎ

    제 글은 여기까지이구요, 헌데 중요한 논문 작성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으실 와중에 뭔가 거하게 글을 싸질러 놓지 않았나 하는 편찮은 염려가 조금은 드는 군요... 그러니 일단 저는 언제라도 좋으니 여유있으실 때마다 천천히 코멘트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또한 급작스럽게 대대적으로 재유행하는 감염병으로 인해서 현사태가 많이 뒤숭숭합니다만, 부디 몸조리 잘하시면서 즐거운 논문 작업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리고, 마지막 인사는 메리 크리스마스! 로 ㅎㅎ

    • BeGray 2020.12.28 05:53 신고 Modify/Delete

      그동안 이것저것 재밌게 공부하신 것 같아 기쁩니다 :) 문의주신 내용에 대해 최대한 간략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1) 스키너와 포콕의 차이는 그렇게 정리하기는--즉 스키너가 성급하게 일반화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고 싶어하고 포콕은 좀 더 역사적이라는 식의 구별은--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포콕도 토머스 쿤에 매료되어 있을 때 쓴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는 물론 첫 저작부터 <야만과 종교>까지 거의 일관되게 특정한 시대/집단에서 공유되는 일반적인 '패러다임'을 구성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단지 포콕이 제시한 개념을 통해 이전에는 읽어도 흘려넘기기 쉬운 문헌과 논쟁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길이 많이 트였기 때문에 그러한 연구 모델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던 거죠. 정도의 차가 있는 거지 스키너도 정치이론 스타일의 글 말고 역사 논문으로 들어오면 굉장히 빡빡하게 자료들 갖고 와서 이야기하고요(가령 Reason and Rhetoric in the Philosophy of Hobbes 같은 책을 읽으면서 스키너가 성급한 일반론으로 가는가...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은 구별을 하는 게 제 생각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스키너든 포콕이든 역사해석의 이론가이기 이전에 역사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방법론적 원칙이 무엇이라도 이야기하든 간에, 실제로 어떤 자료들을 갖고 어느 정도의 시공간적인 틀 속에서 작업하는지에 따라, 다시 말해 구체적인 연구의 여러 조건에 따라 이들이 쓰는 글의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스키너든 포콕이든 왕성한 생산성을 지닌 일급의 역사가라면 여러 가지 종류의 자료를 폭넓게 다루면서 다양한 형식의 연구를 내놓는데, 자신들이 피력한 특정한 연구모델을 억지로 관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테고, 그런 몇 가지 지침에 자신들의 작업이 묶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스키너와 포콕의 작업은 이미 고전이고 앞으로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겠지만, 이들의 이론적 작업에 동의하는 연구자들조차도 그들의 연구모델을 그대로 쓰지 않습니다. 당연하지만 그런 연구모델은 어디까지나 참고가능한 모델일 뿐, 자기들이 하려는 연구의 여러 조건에 따라 채택해야 하는 연구모델이 달라지니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교훈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철학자들이나 '이론가'들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방법론적 고민을 하는지, 또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례연구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일반화된 이론 작업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들은 완전무결한 이론적 모델을 제시하는 데 큰 관심이 없고, 기껏해야 일반적으로 참고 가능한 지침들을 내놓거나, 아니면 다른 이들의 연구모델의 결점을 논박하는 정도 이상으로 잘 안 나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론적 코멘터리만 보고 이들의 연구가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건 대체로 무의미합니다. 철학적/이론적으로 훨씬 세련된 모델을 구축한다 해도 내놓는 역사연구의 결과물이 좋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 정치이론이나 사회철학, 사회이론 연구자들이 포콕이나 스키너의 이론적 모델을 열심히 파고드는 경우가 있는데, 내놓는 결과물도 제 생각에는 별 게 없지만 역사가들의 관심도 잘 못 받습니다. 그걸로 그들의 작업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무척 제한적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요)

      요약하면, 1에서 추측(?)하신 구별은 스키너와 포콕을 정리하는 데 크게 유용성이 있지 않고, 만약 이들의 방법이나 연구모델의 장단점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이들의 이론적인 코멘터리나 (크게 도움이 안 되는) 3차문헌 위주로 보는 대신 그냥 이들의 작업을 많이 읽으면서 분석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이 되겠습니다 ㅎㅎㅎ


      2) ㄱ, ㄴ, ㄷ에서 말씀하신 내용 모두 저의 개인적인 입장과 가깝긴 한데요, 역사학의 역사를 좀 파보면 역사학의 본령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들이 나오고, 그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비슷한 논쟁이 최소한 18세기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각자가 역사적 작업을 놓고 뭘 하고 싶은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게 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 말씀하신 "80년대 이후 '정치' 개념의 변전"이 어디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쪽수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역자해제 중 80년대 이후의 변화는 ('정치' 개념의 변화라기보다는) 주로 정치사상사 연구에서의 "언어적 전환"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요, 이건 미국 정치철학/정치사상학계에서 데리다·푸코 등등 20세기 후반 프랑스·독일의 일부 철학적 작업이 들어와 영향을 끼치면서 언어와 담론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경향을 가리킵니다.


      3) 19세기 후반-20세기 초중반의 지적인 변화를 개괄하는 좋은 작업은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정도 큰 서사가 잡힌 18세기 말까지의 연구와 달리, 프랑스혁명기 이후 현재까지의 지적인 변화를 만족스럽게 정리하는 개괄적인 역사가 나올만큼 세부연구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혁명기에 도대체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괜찮은 작업은 이제야 조금씩 논문 단위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 이후 본격적으로 19세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우리가 거칠게나마 괜찮은 정리를 하게 되는 건 수십 년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세부적인 주제를 다룬 논문이나, 분야를 좁혀서 연구한 작업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19세기 서구의 지적 공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세기 독일 대학에서 나오는 각종 학문연구--그러니까 18세기처럼 사회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아마추어 지식인들이 아니라 진짜 대학에서 작업을 하는 전문연구자들--를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그게 유럽 각국의 지식인들과의 의사소통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는 작업이 나와야 합니다. 특히 학술사 쪽에서 그런 걸 시도하는 연구자들이 19세기로 이제 들어가고는 있는데, 10년 안쪽에 괜찮은 단행본 연구들이 좀 나오긴 하겠지만 통사급으로 나오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대충 유명한 철학자나 사상가 몇 명 놓고 퉁치는 (그러니까 엄밀한 작업이라고는 볼 수 없는) 책으로 때우는 시기가 이어질 것 같네요.

      학술서 급은 아직 한국어로 거의 번역이 안 되어 있습니다(그나마 전기이긴 하지만 스테드먼 존스의 마르크스 전기 정도?). 가령 바이저의 <헤겔 이후>는 흥미로운 개설서이지만, 바이저 자신의 시선이 특정한 철학적 문제의식에만 집중되어 있는 만큼 독일역사주의 학파의 본령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고요, 이거스의 <독일역사주의>도 방향은 좀 다르지만 비슷한 한계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후설이나 하이데거를 대표로 하는 현상학-해석학적 조류들이나, 프로이트를 위시한 정신분석학, 여타 사회과학/철학 분파들, 문예비평의 전통[...],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등과 같은 현대 사상에서의 큰 줄기"는, 물론 아직까지도 이런 다이제스트가 "현대 사상"의 핵심이라고 믿는 분들이 한국 안팎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서구 학술장의 특정 부분에 불과하며 지금은 이미 절정기를 지난지 오래인 흐름이라 20세기 중후반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사가 있는 게 아니라면 특별히 가중치를 둘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앞으로 다시 연구되어야 하는 것도 워낙 많고요)


      4) 아도르노는 참 매력적인 저자죠(물론 제가 아도르노를 좋아헀던 건 지성사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ㅎㅎ 그때는 지성사라는 게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시기여서...). 다만 개별자에 대한 엄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와 별개로, 아도르노는 특별히 역사적인 작업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아도르노 본인의 사회분석 모델은 독일철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사회학 등이 뒤섞인 20세기 초중반 학문적 과도기의 산물이라 지금 연구자를 위한 용도로 참조하기에는 한계가 있긴 합니다.


      5) 제 생각에 lecanix 님께서 학문과 비평 등의 사상사에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지금 단계에서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3차 문헌을 더 보는 대신 1차 문헌이나 뛰어난 지성사가의 작업을 직접 읽는 단계로 들어가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크게 정리한' 3차 문헌 중에 괜찮은 책도 잘 없거니와, 그런 책들은 나중에 필요하면 언제든 짬짬이 빨리 읽고 따라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서 지금 훨씬 더 집중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기에 굳이 볼 이유가 없습니다. 더불어 좋은 3차 문헌을 읽는다고 해도 1차 문헌과 2차 문헌에 대한 감각을 갖고 읽는 것과 아닌 것 사이에 이해도의 차이가 크고요.

      크게 두 가지 루트를 함께 추천하고 싶은데요,

      1) 이제 정치사상사 및 학술사의 고전급을 멀리서 간단히 요약하는 대신 실제로 읽어보는 노력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핵심저작을 꼽으면,

      -한스 바론,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
      -퀜틴 스키너,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전2권)
      -J. G. A. 포칵,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전2권)*
      -버나드 베일린,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
      -도로시 로스,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전2권)*
      -우디 그린버그, <바이마르의 세기>

      을 메인 커리큘럼으로 추천하고, 여기에 여력이 되면

      -볼프강 베버, <유럽 대학의 역사>
      -제이컵 솔,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이언 해킹, <우연을 길들이다>
      -존 위티 주니어, <권리와 자유의 역사> (단 위티 주니어의 책은 특정한 전통의 거대서사를 앞서 상정하고 쓰여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앤서니 그래프턴, <각주의 역사>
      -Arnaldo Momigliano, _The Classical Foundation of Modern Historiography_ (짧습니다)

      정도를 더하고 싶습니다.

      이것과 함께

      2) 이 포스팅(https://begray.tistory.com/538)에 정리한 1차 문헌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아서 자신이 없다면,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 홉스, 로크, 스미스만 우선적으로 읽으세요. 그리고 특히 홉스의 경우 다른 포스팅에 입문을 위한 주요 2차 문헌을 소개해놓았으니 그걸 따라가보면서 꼼꼼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폭을 넓히고 기본적인 지도를 닦는 준비를 해 왔다면, 이 두 경로로 한 학기에서 1년 정도만 읽어도 눈에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건투를 빌며, 혹시라도 추가로 문의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주세요 :)

    • lecanix 2021.01.08 20:13 Modify/Delete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셔서 뭐라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ㅠ 혹시 괜히 저때문에 밤을 지새우신 것이 아닌가 싶어서 송구스러운 마음까지도 드네요... 좌우간 제 거추장스러운 질문들에 성실히 답변해 주시고 또 훨씬 더 심도있고 풍부한 조언들을 담아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대체로 수용의 의사를 담은 재답변을 올리며 이제 다시 공부하러 가보겠습니다 :D

      1) 대체로 제가 추정한 그 대조점의 근거바탕이 되었던 역자분의 코멘트는, 특히나 스키너에 대한 평에 관해서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것이로군요.. 이제보니까 역자분이 사학 전공이 아닌 엄연한 정치철학 쪽이신 듯헌데, 아무래도 이런 점 때문에 유독 방법론적 고찰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또 애초에 이 텍스트 자체가 당시 비역사적인 철학이나 실증주의적인 사회과학 사조들과의 논쟁을 중적으로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을 상기해보면 더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하구요. 여하튼 결국엔 역사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론이란, 그냥 단순편리하게 머무를 수 있을 그런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선험적으로 매개되어 있을 그런 편견적인 전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지침들 비슷한 것이라고, 달리 간단하게 말하면 '반-방법론'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하면 얼추 맞겠지요?

      2 & 3 & 5) 의외로 제가 고려해두고 있는 거의 모든 영역들이 마침 대부분 정치사상사 연구에 포섭되는 것들이었군요. 그렇다면은 뭐 이제는 더 이상 학술영역들을 애써 엄격하게 주관적으로 범주화시키면서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도 그리고 애초부터 잘 있지도 않은 그런 개괄서들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고, 일단은 그런 식으로 단념한 상태에서 리스트로 제시해주신대로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에 매진해보도록 해봐야겠습니다!

      + 그 정치 개념에 대해서는, 지금 막 다시 읽어보니 아무래도 제 기억 상에서 잠시 착상들 간의 혼선이 있었나 봅니다;; 추정컨대 아마 80년대 이후부터 전반적인 역사학계 내에서 '정치'라는 영역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상황을 떠올리게 되면서(<20세기 사학사> 같은 책에서 본 바에 따른건지 뭔진 가물가물합니다만), 혹시 이 "언어적 전환"이라는 것과 크게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조잡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끝에 가서는 결국 이 '정치' 개념 자체가 어딘가 큰 변화를 겪었구나하는 저의 자의적인 판정으로 완전히 잘못되게 대체되었던 것 같네요...ㅎㅎ;;

      4) 제 진술의 뉘앙스가 다소 좀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은, 다만 저의 의도는 아도르노의 사유모델이 당장 역사적 연구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고 피력한 것이기 보단 단지 그를 읽으면서 이론 및 방법론에 대한 양자의 견해나 태도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인상을 워낙 강렬하게 받은 탓에, 또 실제로도 아도르노의 강의록들을 읽으면서 지성사식 사조의 이론적/철학적 전제들에 대하여 예상 밖으로 나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저만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서 결론적으로는 적어도 개괄적으로 공부하는데 있어서는 좀 보완적으로라도 도움될 수 있지않을까 싶은 피상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그리고 또한 begray님의 지적 편력에 대한 저의 코멘트는, 물론 제가 완전히 오해할만하게 쓴건 매우 확실한터라 지금 막 정정하자면 지성사와의 연관 때문에 아도르노에 흥미를 보셨다는게 아니라 그저 앞서 지목해온 그런 유사점들 때문에라도 오히려 그 반대로 지성사 입문에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실 수 있었던게 아닌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종종 도식적인 사유방식이 짙은 몇몇 포스트 이론들처럼 단순히 반체계적인 것에 몰두하기 보단, 되려 체계 및 전체 자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그것을 적실하게 극복하며 현실을 파악할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유사한 의식에서 비롯되는 그 양자 간의 이론적 친화성 속에서 아무튼 begray님이 우연히 그 경향에 이끌리신게 아닌가 가볍게 예측해본 것입니다ㅎㅎ

      많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BeGray 2021.01.10 00:00 신고 Modify/Delete

      덕택에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있던 1차 문헌 리스트를 드디어 실제로 작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역시 지성사가들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르지만 저는 실제 역사연구는 그러한 측면이 크다고 보고요, 이슈트반 혼트 같은 경우 노골적으로 케임브리지 학파=반(anti-)학파라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2) 네, 르네상스 인문주의부터 학문의 역사 자체를 훑어보게 되면 지금-한국의 학부에서 채택하고 있는 학문분과/학술영역의 구별이라는 것도 역사적으로 특수한 구별에 따른 (경우에 따라서는 그 원천이 된 미국에서는 이미 바뀌었는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남아있기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는 어쨌든 '현재 연구자들이 만들어놓은 지식의 한계선'이 있다는 걸 깨닫고 연구성과 자체를 상대화해서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시점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는 직접 1차, 2차 문헌들을 만져가면서 갈 시간입니다 :)

      4) 아도르노의 체계비판적인, 그리고 체계비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사고법은 확실히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서 암시했듯,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데까지는 다른 저작들이 필요했고, 아도르노의 비중이 특별히 컸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 지성사 연구를 단순히 하나의 흥미로운 방법적인 체계로만이 아니라 본인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유-분석모델로 습득하게 되실 때쯤에 제가 왜 이런 거리두기를 하는지 이해하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앞으로 1년이고 2년이고 정말 즐겁고 빡세고 힘들게 공부하는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그것만큼 행복한 나날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역시 새해 복 많으시고, 앞으로도 이야기 나눌 거리가 있을 때 얼마든지 말씀주세요 :)

  6. 2020.11.20 21:05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7. A 2020.10.28 15:20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begray님! 번역하신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여쭤보고 싶은 점이 생겨서 고민하다 이렇게 방명록을 남깁니다. ㅠㅠ

    1. 해제에서 “언어맥락주의 (지성사)의 목표는 과거의 저자들이 논쟁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언어 및 지적 전통을 이해하고 복원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성사가가 아무리 1차 문헌 및 관련된 다른 저작을 모두 세심하게 읽고 저자가 ‘의도’한 바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지성사가가 내린 결론에는 어느정도 주관적 해석이 개입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콕과 스키너가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반대의 결론을 이끌어 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지성사가들이 비판한 다른 역사 방법론과 마찬가지로 지성사 역시 텍스트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에 해당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언어맥락주의라는 방법론은 매우 흥미롭고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성사의 방법이 저자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비판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2. 그렇다면 결국 지성사가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기존에 (특정한 한 방향으로만 주로 해석되던) 어떤 텍스트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맥락중심의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학계의 논쟁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가능해짐으로써 텍스트에 대한 담론 (또는 지성사적 해석에 대한 담론) 활성화시키는 것에 있는 것인가요?

    제가 영국의 지적 전통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고 지성사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보니 책을 완전히 잘못 독해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네요 ...ㅠㅠ 답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BeGray 2020.11.02 11:57 신고 Modify/Delete

      이렇게 질문 주시는 건 (제가 답변이 약간 늦을 수 있다는 점만 감안해주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1. "객관성"을 어떻게 규정할지, 그걸 도출하는 절차를 어떻게 세팅할 것인지의 문제일텐데요, 실제 (꼭 지성사가 아니더라도) 역사학적 논쟁의 흐름을 따라가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만, 결국엔 자료와 역사적 사실들을 갖고 논쟁하는 거죠.

      아주 간단히 말해, 역사학에서의 '사실'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사료확정 혹은 구체적인 개별 사실의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단계죠; A라는 책을 B라는 저자가 쓴 게 사실인가, 그 책의 첫 번째 구절이 C라고 쓰여진 게 맞는가, 그 책이 D 년도에 출간된 게 맞는가 등의 '객관적 사실의' 검토작업이 그러한 예에 해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개별 사실들을 놓고 사태를 설명하는 해석적 서사를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스키너가 말한 "의도의 복원"이 한 예가 될텐데요, 결국 이 저자/텍스트가 다른 저자/텍스트와 관계 맺고 있는 과정을 추적해보면 저자/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는 식의 해석과정입니다. 이런 해석적 서사는 당연히 여러 서사들의 논쟁과 경합을 통해 전개되고요, 그중에서 자료를 가장 정확히 활용하고 반론의 여지가 적은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의 해석이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보다 설득력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그에 대해 유의미한 반론이 나오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제가 잘 아는 부분은 아니지만, '과학적 사실'이 학계에서 어떻게 확정/공인되는가에 대한 논의를 생각하시면 비슷할 듯 합니다.

      요컨대, 언급하신 언어맥락주의적 입장의 객관성을 따지는 것은 대부분의 학문분과에서 연구자들이 논쟁 끝에 내리는 결론을 '객관적인 것'이냐고 따질 것인가 말 것인가와 비슷합니다. 첫 번째 기준에서, 즉 팩트냐 아니냐의 차원에서만 객관성을 논한다면 대부분의 학문적 해석이 그러한 것처럼 지성사가들의 작업도 그에 해당하지 않는 영역이 있겠죠. 하지만 우리의 학문적 시스템은 단순히 개별 팩트의 확정이 아니라 그러한 팩트들을 바탕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는 과정에도 '객관성'의 기치를 부여하는데요(당연하지만 모든 해석은 주관적이다, 라는 식의 진술은 실제 논쟁을 들여다보면 나올 수 없는 관념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지성사가들의 작업 또한 그러한 면에서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더하여 스키너와 포콕은 반대의 결론을 내렸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측면에 주목했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ㅎㅎ

      2.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목적은 지성사가들이 원하는 것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성사가들은 당연히 실제 역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석을 추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거고요.

      제 생각에 실제 학문장에서의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리고 과학철학/과학사 분야에서 과학적 사실의 인정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보시면 역사학의 '객관성' 문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오래된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ㅎㅎ

  8. 2020.09.09 13:59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20.09.17 14:52 신고 Modify/Delete

      댓글이 늘어나는 거 치고는 방문자 수에는 별 차이가 없어서 그냥 시간이 많이 남는 분들께서 이곳에서 소일거리를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9. A 2020.09.02 14:19 Modify/Delete Reply

    호르크하이머의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블로그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비판이론에 관심이 많은지라 2014-2015년도에 올리신 관련 글들을 하나씩 읽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코멘트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아도르노 관련 코멘트들이 많아서 너무 흥미롭고 행복(?)하게 읽고있어요. (프리즘에 수록된 것을 제외하고) 아도르노의 음악비평을 따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블로그 둘러보고 바로 <신음악의 철학>을 주문했습니다. 기대되네요. ㅎㅎ 어찌되었든 좋은 블로그 운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학위논문 작업도 술술 풀리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 BeGray 2020.09.07 23:56 신고 Modify/Delete

      비록 제 공부의 방향이나 방법, 관심사 모두 5-6년 전과 상당히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아도르노는 (가끔 마주칠 때) 여전히 재미있게 읽는 저자입니다 :) 제 블로그 포스팅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과거의 좀 더 부족할 가능성이 많은 코멘트들이 A 님의 공부에 누를 끼치지 않기만을 기원합니다 ㅎㅎㅎ

  10. 2020.08.04 15:22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