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하순 짧은 독서노트.

Reading 2015. 7. 25. 13:29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덕의 상실>_After Virtue_. 이진우 역. ; 번역 별로(인내심을 발휘해 읽을 수는 있음), 분석적 언어와 사상사가 마주하는 흥미로운 텍스트. 먼저 20세기 후반 현대의 도덕적 붕괴를 지적하고, 그것의 연원을 설명하면서 서구에서 공통의 정신세계가 붕괴된 이후 윤리체계를 세우려는 근대의 시도들(키에르케고르, 칸트, 벤담)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세지윅의 직관주의intuitionism-20세기의 정의주의emotivism 및 도덕적 아노미로 이어진다는 흐름을 제시한다. 후반부에서는 도덕/윤리의 복구를 위해 고대부터의 덕 윤리학을 재검토하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 및 공동체적 세계관의 복구를 주장한다. (울프를 포함한) 블룸스베리 그룹의 윤리학을 직관주의-정의주의 계보에 놓는 것, 제인 오스틴으로부터 덕의 언어를 찾는 게 흥미롭다. 아직 3판(2007년) 서문을 안읽어 봤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체크할 것. 테일러(_Sources of the Self_)와 유사하면서도 어떻게 다른지도 생각하기.


콜린 고든, 그래엄 버첼, 피터 밀러 편. <푸코 효과>_The Foucault Effect_. 심성보, 유진, 이규원, 이승철, 전의령, 최영찬 역. : 번역은 대체로 괜찮다. 거의 25년 전 책이고 실제로 수록된 글은 80년대 초의 글들인데 나는 지금 읽어도 많은 것이 새로웠다. 아주 거칠게 분류하면 1부는 푸코의 인터뷰와 강의를, 2부는 18-19세기 관련 연구들을, 3부는 (보험 및 리스크에 대한 글들을 포함하여)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를 다룬 연구들을 수록했는데, 의외로 2부와 3부에 실린 논문들이 지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내게는 캠브리지 학파의 관념사/정치사상사 연구와 푸코적 문제의식을 연결하려는 고든과 버첼의 글, 그리고 통계학의 역사를 다룬 해킹의 글이 가장 관심이 갔다. 파스퀴노와 프로키치의 글도 체크. '사회'라는 것의 개념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노동계급을 포함해 사회를 통치하려는 장치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분석들. 나는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에발드의 '배신'부터 먼저 들어서 거리감이 있었는데, 리스크 이야기를 에발드만 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특히나 통계의 역사와 함께 할 때) 얼마나 많은 범위를 커버하는지를 보며 생각을 달리 했다. 요컨대 사회의 복잡화가 증대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포착하고 통치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장치/언어가 발명되는가를 추적하는 게 <푸코 효과>의 저자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며, 이 문제의식을 따라가보는 것은 전통적인 역사관/사회이해에 묶여 있던 나와 같은 독자들을 '계몽'하는 효과를 준다.


이상영, 김도균 공저. <법철학>. 한국방송통신대학 교과서. : 자연법/자연권에 대한 법학적 기초를 참고하려고 법철학 전공자에게 추천받아서 죽 훑어봤다. 의외로 재밌는 내용이 많다(내용에 별 상관없지만 랑시에르가 인용되는 걸 봐서 저자들이 어떻게든 최근의 논의들까지 소화하려는 티를 내려고 하는 게 조금 귀여웠다). 법실증주의의 형성과정, 자연법, 자유론(롤스, 드워킨 등), 법과 인권의 관계 등등. 20세기로 넘어올 생각은 아직은 별로 없는데 이쪽 논의는 기본적인 체크는 해두려고 한다.


플라톤. <파이드로스>. 김주일 역. 정암학당 전집. : 너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냥 쭉 읽으려고 봤다가--나는 어차피 고대철학에 일정 이상의 지적 에너지를 투여할 생각이 없다...나는 고대철학이 어떻게 근대적 조건 하에서 변형/수용되는가 쪽에 더 관심이 가며, 고대철학에 대한 내 관심사는 기초지식의 축적 이상의 것이 아니다--의외로 무척 까다로운 내용이 많아서 놀랐다. 애초에 1) 사랑(소년애)과 자기 지배의 문제 2) 플라톤의 영혼론 3) 말하기와 글쓰기의 문제와 같이 상이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신차리고 읽지 않으면 읽다가 길을 놓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주제 모두 흥미롭고, 특히나 18-19세기에서 어떻게 플라톤이 다시 소환되는지를 되새김질하기 위해서 도움이 된다.


클라우스 뒤징Klaus Düsing. <헤겔과 철학사>_Hegel und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_. 서정혁 역. : 아주 마음에 드는 번역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참고 읽을만은 하다. 반납 기한이 코앞에 닥쳐서 다소 급하게 요지만 따라가며 읽었다. 헤겔의 철학사 서술을 검토하며 그것이 헤겔 철학/논리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검토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신플라톤주의(플로티누스, 프로클루스), 스피노자, 칸트 등이 검토된다. 뒤징은 각 철학자들의 요점을 짚고 헤겔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헤겔의 독해에 어떤 해석들이 따라붙었는지를 검토한다(연구사가 상세하게 검토되기 때문에 나처럼 직접적인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해당 부분을 건너뛰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독일어권의 연구자들은 물론, 영미권과 불어권의 저자들도 검토대상이다(예를 들어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 파트에서는 마르샬 게루의 저작이 주요하게 언급된다). 나는 순전히 헤겔의 논리학이 완성되는 과정에만 관심이 있어서 이 책 자체에서보다는 헤겔이 플라톤으로부터 어떻게 변증법의 논리적 기초를 읽어냈는지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조만간 <파르메니데스>와 <소피스트>를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읽으려 한다. 여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요성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Armstrong, Nancy. _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_. 1987. : 세미나에서 읽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80년대의 책. 페미니즘-정신분석, 프랑스 이론, 신역사주의적(즉, 매우 기계적인) 푸코 수용, 사회사, 문화사 및 계급갈등의 수용, 아카이브 연구 등 (미국) 영문학계의 80-90년대를 특징짓는 다양한 조류들이 마주한다; 그것들이 완전히 매끄럽게 융합하지 못하기 때문에(가령 'desire'라는 개념의 용법이라든가, 암스트롱이 제임슨Fredric Jameson의 틀을 가져오면서 계급갈등을 가정소설의 범주 안에서 설명하려는 방식 등등)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꽤 당혹스러운 면이 있겠지만, 역으로 80년대 영문학계를 지성사적으로 접근하는데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테제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8-19세기에 걸쳐 영국 사회에서는 남성-공적/정치적 영역, 여성-사적/가정적 영역의 분할이 심화되었고 특히 중간계급middle class에서 여성을 후자의 도식에 걸맞는 인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읽을거리들이 발생하는데, (내훈서conduct book과 함께) 소설이 대표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일종의 이상적 여성상ideal woman을 제시하는데 여기에서 여성은 가정영역을 다스리며 도덕/덕moral/virtue을 체현하는 인물이 된다. 암스트롱은 소설이 이러한 여성을 조형하면서 갖가지 사회적 갈등 및 성적 욕망 등을 내면/의식consciousness의 문제로 억압/응축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80년대 '진보적'이라 간주되던 것들의 프레임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때문에 비판에 취약한 지점들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서사가 지탱가능한지는 회의적이다(2005년도의 _How Novel Thinks_에서는 문제의식 자체가 훨씬 단순한 도식으로 축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논의들을 검토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되짚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시대 전공자들이 공부할 책이긴 하다. 어쨌든 가정소설domestic fiction이라는 영역, 일상의 영역이 문학의 시공간으로 등장한다는 흐름 자체는 여전히 숙고할 가치가 있다.



지금은 루소의 고백 3부작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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