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산의 웹툰들과 대중서사의 양식들

Reading 2015. 6. 28. 00:31

조금산의 <세상 밖으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전편을 보려면 2500원 정도가 드는데 아깝지 않다. 이것으로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나온 조금산의 만화는 다 본 셈이다(<시동>은 매주 챙겨보고 있다).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능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방 쪽 풍경을, 풍속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게 우선 눈에 띈다. 그는 섬세하게 묘사된, 정지된 2d 그림으로서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말투 하나에까지 디테일한 시선을 반영해 나름대로 세계를 조형하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동네에 왜 왔니>는 인물에서부터 출발해 동네의, 지역의 분위기를 그려내는 습작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서 볼 수 있는 첫 작품 <탁구공>은 두 인물 만으로만 구성된 다소 추상화된 구도 위의 작업이었고, <우리 동네에 왜 왔니>에서 <노숙자 블루스>까지는 여전히 관습화된 시공간을 활용했다; <노숙자 블루스>를 보면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서사작품에서 익히 봐왔던 줄거리와 전개, 분위기를 가져왔다--그래서 이 세 작품은 전반적으로 습작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다음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 중) 그의 본격적인 첫 장편이자 발전된 서스펜스의 기법을 보여주는 <세상 밖으로>에서부터 양식화된 서사는 현실적인 시공간의 디테일을 끌어오면서 풍성함을 확보한다. <우리 동네>-<노숙자 블루스>-<세상 밖으로>가 90년대-2000년대 한국 대중영화들로부터 서사와 분위기를 가져온 듯한 인상을 준다면, <시동>은 그러한 서사적 관습에서 조금 더 이탈하면서 작품의 무게를 서사에서 인물-시공간으로 조금 더 옮겨놓는다.


한국의 문화를 개별 장르에서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는 장르들 간의 침투를 추적하는 게 필수적인 작업일텐데, 조금산의 작품들을 따라가보는 건 그런 점에서 웹툰이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 한국의 대중영화에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을 벗어나 자기 색채를 만들어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스포츠 웹툰이나 소위 '병맛 코드'를 중심으로 한 웹툰들이 방대하게 축적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짤방/유행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다면, 웹툰의 장르적 확장과 함께 일정 길이 이상의 긴 호흡을 가져야만 하는 장편의 등장은 그 길이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서사적 구조물을 요구했다. 새로운 장르적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었겠지만(그리고 여기서 그 시도들을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쉽고 간편한 해법이 이미 성공한 기존의 장르를 참고하는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영화 및 드라마로 성공적으로 재창조된 웹툰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는 해당 웹툰 자체가 드라마 및 영화의 문법을 성공적으로 내장한 경우였을 가능성이 높다(물론 <이끼>와 같은 예외 역시 존재한다). 이런 장르간 참조에서 영화는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아마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하나의 좋은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웹툰은 60여 화 전체의 서사가 2시간 짜리 영화 한 편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편집될 수 있다. 그만큼 1회분 당 서사전개량의 밀도는 무척 낮으며, 여기에 대한 벌충은 매 회 (주로) 유머코드들로 메꿔진다. 영화의 대중적 성공과는 별개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양식의 관점에서는 일종의 과도기적 복합물에 가깝다(지금 시점에서는 이런 웹툰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조금산의 작품들이 어떤 형태로 이어져나갈지 지켜보고 싶다. 앞서 말했듯 대중영화의 관습들을 참고하고 또 시험해보았던 초기의 세 편 이후 <세상 밖으로>를 기점으로 조금산은 영화적 장르를 소화하는 것 이상의 작업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 밖으로>는 기본적으로 한 편의 영화로 재구축될 수 있는 서사적 프레임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텍스트 전체에 담긴 정보량은 2시간 짜리 영화에 담길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기 시작한다. 이는 일부분 상미의 감금 이후가 지나치게 반복적인 구도로 들어가기 때문인 탓도 있다; 부분의 서스펜스가 전체의 서사적 효율성을 잡아먹는다...비슷한 설정의 <이끼>와 비교할 때 <세상 밖으로>의 서사진행은 상대적으로 미숙하다. 물론 이것이 단지 서사적 정보량의 문제라면 특별한 일이 아니겠지만, 지역의 건물, 풍경, 인간유형이 그 자체로 고유한 색깔과 개성을 갖기 시작할 때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윤태호의 <이끼>가 세련된 서사적 구성을 자랑하는 대신 훨씬 더 관습화된 인물유형을 제시한다면, <세상 밖으로>의 남자 4인조는 확실히 조금산 본인이 좀 더 깊게 이해하는 인물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4명은 각각의 인물로는 특별히 개성적이지 않지만 이 넷이 모였을 때 만들어내는 군집의 독특한 리얼리티는 예민한 지각을 가진 독자라면 한번쯤 의식해볼 만한 것이다. 물론 이때까지도 인물조형의 수준이 맹아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세상 밖으로> 다음 <시동>의 보다 발전된 인물묘사를 본다면 발전된 묘사기법만이 아니라 그가  (10대-20대 남성들 중에서도) 특정한 전형을 포착하고 재현한다는 연속성 또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형의 독특함은 아마도 '지방색'이라 부를 만한 시공간적 배경의 특수성과도 이어져 있다. 이런 것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조금산은 표준적인 대중영화의 문법이 아닌 다른 종류의 문법을 채택 혹은 발명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아마 <시동>이 조금씩 TV드라마적 성격을 띠어가는 것은 이러한 요구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한국의 소설이 점차 고전적인 리얼리즘적 요구로부터 멀어져 다른 형태의 예술양식을 찾아갔다면, 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확실히 소설을 대체하는 '현실재현적' 예술장르로 기능했다(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2010년대에 와서 길거리와, 지방과--중심에서 빗겨난 커뮤니티들을 밀착해서 재현하는 대표적인 대중예술장르는 무엇인가? 웹툰이 유일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경향의 중심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한 리얼리티와 서사적 기법의 요구가 만날 때 어떤 결과들이 배태될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조금산의 작품들은 그러한 새로운 흐름을 기대케 하는 면이 있다. 예술장르로서 웹툰의 우월한 생명력은 이런 작가/작품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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