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쉬피오. <법률적 인간의 출현>
Reading 2015. 6. 23. 03:29알랭 쉬피오. 『법률적 인간의 출현: 법의 인류학적 기능에 관한 시론』. 박제성 · 배영란 역. 글항아리, 2015. Trans. of _Homo juridicus: Essai sur la fonction anthropologique du Droit_ by Alain Supiot, 2005.
비교적 최근에 번역된 <법률적 인간의 출현>을 읽었다. 페이퍼에서 법의 의미를 다루어야 할 부분이 있어서 예전에 사놓은 김에 쭉 봤다(인용은 하긴 했는데 솔직히 딱 맞는 건 아니었다...시간이 쪼들려서 그냥 쉬피오로 인용해 버렸지만). 본문은 320쪽 정도에 각주 90쪽. 번역 문장이 특별히 나빴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몇몇 고유명사 번역은 거슬렸지만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법을 공부하지 않은 지라 둔감한 탓이 있겠지만 중간에 몇몇 기술적인 부분을 빼고 흐릿한 요지를 이해하는데 딱히 난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아마 내가 모르는지도 모르고 넘어간 부분들이 적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어차피 지금 보이는 만큼만 읽는 거니까).
다만 한국어판 제목 <법률적 인간의 출현>이 원제 법적 인간Homo juridicus의 함의를 온전하게 전달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사소한 것으로, 법률적 인간의 '출현'이 부제 '인류학적 기능'(물론 anthropology는 인간학이자 인류학이며, 나로서는 굳이 여기서 한 쪽을 택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과 합치면서 마치 이 텍스트가 법인류학적 성격을 띠는 것처럼 이해하도록 독자를 유도할 가능성을 감안하면 "출현"이라는 단어를 왜 넣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애초에 이 텍스트는 법률적 인간이라는 개념의 출현을 다루는 것도 아니며 (적어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뜻에서) '인류학적'인 텍스트도 아니기 떄문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면, 이 텍스트 내에서 쉬피오가 구체화된 개별적 규범으로서의 법률lex/loi/law과 "개별적 권리들에 그 의미와 효력을 부여하는 규범적 일체"(34)로서의 법ius/droit/(영어에는 대응하는 표현이 없다)을 분명히 구별하면서 후자의 역할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법'률'적 인간으로 옮긴 것은 의아하다(juridicus가 '법률'에 더 가까운가?). 역자 해석을 봐도 법과 법률을 특별히 구별하고 있지 않아서 양자의 구별에서부터 출발하는 본문과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양자의 구별은 훨씬 더 커다란 맥락의 갈등, 즉 영미권의 자연권natural right 전통과 대륙의 자연법natural law 전통 사이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쉬피오 본인이 영국의 코먼로common law 전통이 일반규범으로서 기능하는 자연법의 개념 자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보편적인 규범의 존재를 전제하는 자연법의 개념을 개개인의 (주관적인) 권리로부터 출발하는 자연권 전통은 수용/인정하지 못한다. 프랑스를 포함한 대륙의 법이 빠르게 영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쉬피오의 기획은 자연법적인 전통을 (그 나름의 새로운 형식으로) 다시 강조하면서 새로운 일반규범의 필요성을 제기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따라서 적어도 독자들은 법과 법률 사이의 구별을 계속 의식하면서 따라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법률적 인간>은 고대부터 현대(동시대)까지, 서구만이 아니라 일본, 인도, 중국을 포함한 타 문명권까지, 법학만이 아니라 (철학은 물론) 사회학과 경제학까지 광대한 범위에서 자유자재로 끌어와 논지를 전개하는 책이라 어느 정도 중심을 잡아놓고 읽지 않으면 자칫 흔들릴 수 있다. 물론 쉬피오의 논지가 가장 중점적으로 겨냥하는 시공간은 동시대 서유럽/프랑스로, 한편으로는 산업사회에 맞추어져 있던 법이 신자유주의 및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며(쉬피오는 노동법 전공자고 실제로 이 텍스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도 4장 및 5장에서 노동법 관련 사례들을 다룰 떄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연합의 등장으로 인해 국가에 의한 법이 우회 또는 무력화되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가 <법률적 인간>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다른 문화권의 참조는 종종 너무 짤막한 인용으로 행해져서 (해당 인용들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서구적 개념을 상대화시키기 위한 도구적 사용 이상의 것 같지는 않았다.
현재의 법, 그리고 법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주체로서의 국가가 빠진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먼저 <법률적 인간>의 1부는 인간, 법/법률, 계약이라는 세 가지 근본적인 범주를 다루며, 그뒤 2부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 지배방식의 변화, 인권의 위기라는 구체적인 사안들을 다룬다. 당연하지만 전자가 좀 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층위를, 후자가 구체적인 실례들을 더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1장부터 6장까지 이 책에서 쉬피오의 기본적인 입장은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1부(1-3장)를 잘 이해해 두는 것이 2부(4-6장)의 함의를 섬세하게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쉬피오가 일관되게 견지하는 입장은 무엇인가? 직접 텍스트를 읽으면 명확하게 드러나겠지만, 쉬피오는 오늘날의 사회가 과학기술의 전례없는 발달과 무제약적 시장지배에 의해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의 정체성이 삶, 죽음, 성과 같이 어떤 한계를 부여하는 범주를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면, 그러한 한계를 초월하는 상황이 올 때 인간의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상실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쉬피오는 각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제공하기 위해 법, 그리고 법과 결부된 국가가 공동체의 규범을 제공하는 역할을 다시금 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필연적으로, 예컨대 동성결혼과 같은 주제에 대한 코멘트에서 볼 수 있듯, 몇몇 대목에서 쉬피오는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 이는 그가 '성'을 인간이 자명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근본적인 한계지점으로 간주한다는 데서 비롯되는데, 바꿔말하면 그러한 근본적인 한계지점들과 맞닥트리는 경우에 쉬피오와 같은 입장이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쉬피오가 여기서 법의 실질적인 제정자이자 담지자로 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눈여겨 봐야 하는데, 이를 통해 쉬피오는 개개인의 권리만을 유일하게 실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자연법 전통과는 물론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이 존재한다는 자연법적 전통과도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제정하는 공동체=국가라는 형식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되 규범의 구체적인 내용은 각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논리는 실제로 텍스트에서는 단 한번 스치듯 지나갈 뿐인 임마누엘 칸트를 상기시킨다. 칸트가 '독단론'과 경험적 회의주의 사이에서 보편적인 형식으로서 인간의 인지구조를 제시했다면--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감각내용을 갖되 그것을 처리하는 형식에서 보편적인 상동성을 갖는다--쉬피오는 모든 사회가 그 구체적인 법률에서는 고유한 차이들을 존중하되 국가의 법이라는 형식 자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일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대신 개별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지점들, 예컨대 국제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호소한다(6장).
내 생각에 쉬피오는 프랑스의 적당히 진보적인 공동체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가 각각 개별이슈에 대해 급진적인 코멘트를 제시한다고 해도 앞서 말했듯 그의 사유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단위는 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가 복지국가 모델에 애착을 갖는 것처럼, 그리고 복지국가 모델을 갱신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일 때들이 있는데, 애초에 국가와 인민이 가장 긴밀한 유대를 맺었던 순간 중 하나가 복지국가 시기였음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라운 건 아니다. 이런 '좋았던 복지국가'에 대한 향수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그는 예컨대 <가난을 엄벌하다>의 로익 바캉을 떠올리게 한다; 건강한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등등. 이론적으로 크리티컬할 수 있는 지점을 짚자면, 그는 직접적으로 자연법적인 전통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의 주장들은 대체로 국가가 실현해야 할 당위가 존재한다는 암묵적인 전제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당위가 과거와 같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쉬피오의 국가/법이 따라야 하는 당위란 어떤 것인가? 쉬피오는 국가/법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종속되어야 할 당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하지 않기 때문에--그것이 법학자의 자기한계짓기일수도 있겠지만--그 부분은 다소 '상식'에 기댄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에게 슈미트와 같은 예외적인 법학자에게서 볼 수 있는 힘, 현재의 파국 기저에 있는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그로부터 뛰쳐나가려는 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큰 서술보다는 오히려 디테일한 대목들이 흥미로웠다. 마치 모두가 국가를 잊어버린 듯했던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는 국가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마치 서로를 밀며 겹겹이 쌓인 순서대로 해변에 도달하는 파도처럼 우리 곁에 닥쳐오는 걸 볼 수 있다. 쉬피오의 '시론'essai은, 적어도 국가의 이론이라는 측면에서,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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