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고등교육?

Comment 2021. 7. 19. 01:02

오늘 교육 관련 기사를 읽다가 다음의 내용을 보고 간단히 포스팅.

 

1.

 

"기회는 물론 과정과 결과의 공정을 강조하는 이 지사의 생각은 교육문제를 보는 시각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문제의 본질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고 있느냐’에서 찾는다. 이 지사는 “독일의 경우 대학가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가는 반면 우리는 기를 쓰고 대학에 가려 한다. 이 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소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독일에서는 고졸 기술자가 대졸자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대우받지만 우리는 고졸자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보수를 더 많이 받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온갖 불공정이 판을 친다. 때문에 대학으로 가는 문, 즉 입시제도를 아무리 우아하게 만들어도 갈등과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사를 잘 아는 한 교육계 인사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정부가 수천만원의 장학금을 주면서 직업계고 학생이나 비진학 청소년은 외면하고 있는 처사가 과연 공정한 교육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7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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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일에서 학생들이 대학을 안 간다는 것도 수십 년 전 이야기인 듯 하다. 이미 2017년 자료에도(https://overseas.mofa.go.kr/de-bonn-ko/brd/m_7690/view.do?seq=1343195)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높아지는 추세임. 동년배 인구중 1학년 학생 점유율을 보면, 2005년에만 해도 37% 수준이었으나, 현재 55.5%으로 상승"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에서 대학진학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여기에는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대학진학여부에 따른 소득격차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연관되어 있을 성싶다. 산업의 지형이 변하면서 노동의 사회적 가치 또한 등락을 겪는 게 유별난 일은 아니다.

 

위 인용문에서 (혹은 이재명 지사에게 조언을 해주는 교육인사들이) 주장하는 바에 함의된 내용과 달리, 독일은 현재 EU 내에서 고등교육분야 경쟁력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1990-2000년대부터 독일대학의 국제경쟁력 약화에 관한 우려가 계속해서 나왔고, (지나가면서 들은 바로는) 미국 대학에서 원격교육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독일의 뛰어난 학생들이 독일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가버리는 문제도 있었다.

 

독일은 이후 EU단위의 볼로냐 개혁, 국제화전략 등으로 해외학생들을 유치해왔고(2010년대엔 포닥 유치에도 공을 들여서, 중국과 함께 포닥 자리가 포화상태였던 영어권의 인력을 상당히 데려온 걸로 안다...물론 전세계적으로 연구자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교수되기가 힘든 건 비슷한 듯 하다ㅠㅠ), 2000년대 중반부터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엘리트대학 육성정책을 진행시키고 있다(https://www.keid.de/german-education-info/7afd4661-0e05-4068-a2d9-268a0be96a15). 즉 독일은 전국의 각 대학에서 학문 영역별로 세계적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 지원정책을 펴고 있고,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2.

 

독일교육은커녕 독일 전공자도 아닌 입장에서 무언가를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계속해서 고등교육정책에 관심을 가져온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지점들은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1) 우리가 수십 년 전의 유럽을 상상하며 떠올리던 낡은 관점을 이제 갱신할 필요가 있다. 유럽 각국도 자신들의 문제가 있고 그걸 씨름하기 위해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움직이는 세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한다. 지나치게 낡거나 좁은 통로에 의존하고 있는 낭만화된 유럽의 이미지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특히 대학교육은 더욱 그렇다. 특별히 이재명 지사의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독일 고등교육도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따라 계속해서 정책을 바꾸어가고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2) 그와 맞물려, 이제부터라도 한국사회에서 고등교육정책을 논의할 때 입시문제, 등록금문제, 학력/학벌(평준화)문제, 취업률문제와 같은 쟁점 이상의 주제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그런 쟁점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은 무엇보다도 사회의 시민/구성원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가단위의 지식(재)생산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한다. 좋든 싫든 대학의 국제경쟁력 문제는 유학생에 기대어 먹고 사는 작은 대학이든 세계의 우수한 지적 인력을 유치해야 하는 선도적 위치의 대학이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는 코로나와 함께 원격교육시장에 뛰어드는 고등교육기구가 늘어날수록 더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이 R&D 비중이 적은 국가는 아니지만, 극히 뛰어난 일부의 영역을 제외하고 여러 학문분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지적 역량을 보유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지원을 제시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3) 시민교육의 이상은 중요하지만, 이것을 현재 한국에서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교양인문강좌 혹은 도덕교육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결국 '미래의' 시민/사회구성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식과 훈련이 어떤 것인지를 질문하고 그에 따라 시민교육의 모델을 구성해야만 한다. 현재 시민교육론에서 아쉬운 점은 그것이 많은 경우 도덕적 구호의 차원에서 머물다보니 대학의 운영과 같은 영역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업에서도 ESG열풍이 부는 것처럼, 대학 또한 인권·윤리의 관한 필수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해야만 하며 고등교육정책 또한 이를 자신의 과제 중 일부로 편입시켜야 한다. 당장 한국대학이 북미 대학들이 겪는 바와 같은 인종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의 전반적인 운영이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P. S.

 

나는, 많은 '자유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들이 믿는 바와 달리, "결과의 평등"은 단지 도덕적인 구호만이 아니라 현실정치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제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극단주의적 포퓰리스트가 아직 대두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잘 체감을 못 할 수도 있겠지만, 2010년대 유럽·북미 정치는 불평등이 대대적으로 쟁점화되면서 포퓰리스트들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아시리라 믿는다). 매우 도식화된 논리로 말하자면,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결과의 불평등을 지나치게 방치할 경우 이는 선거를 통한 대규모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그런 점에서 '기회의 평등'에만 초점을 맞춘 공정 담론은 일시적인 호소력은 있겠으나 국가운영의 원리로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혹은 분배적 정의)와 같은 가치들은 함께 추구되어야 하지 단독으로 추구되어선 안 된다.

 

문제는 기회·결과의 평등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종종 효율성과 경쟁력을 무시하는 형태의 논리로 빠져든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 현대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국제무대에서의 협력·경쟁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있고, 따라서 국가·사회 내부의 평등을 막무가내로 관철하다보면 전체 사회의 자원·역량이 하락하는 문제가 있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특정한 '평등정책'이 사회구성원의 여러 역량을 제한하고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고, 이는 한국의 위치 상 결코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정치적/정책적 논의를 할 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원리로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앞서 말했듯,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혹은 분배적 정의)와 같은 가치들은 함께 추구되어야 하지 단독으로 추구되어선 안 된다." 이것은 물론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둘째, 그 연장선에서, 기회의 평등이냐 결과의 평등이냐 효율성이냐 식의 어느 한 가지 가치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바보같고 비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어떻게' 그것들을 (설령 그때그때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함께 끌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정치적 논쟁이 종종 과장된 수사와 입장을 동반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걸고 진행되는 논쟁에서 좀 덜 과장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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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21.07.28 17:44 Modify/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합니다만 특별히 교육일반이나 고등교육에 관해 할 말은 없고, 대신에 말씀하신
    "'움직이는 세계'로서의 유럽"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책 몇권 있어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중에 도움이 될까 싶어 소개해봅니다.

    세 권 정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첫번째 책은 독일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의 The Society of Singularities 입니다. 부제는 기억이 맞다면 '근대의 구조변동을 향하여' 입니다. 두번째 책은 2018년 아도르노 강연자이자 아마도 그 강연을 책으로 엮어낸 독일 역사학자 루츠 라파엘의 Beyond Coal and Steel 석탄과 철강을 넘어서 입니다. 두 책은 각각 사회학자와 역사학자의 저서입니다만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70년대를 기점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후기 근대 혹은 포디즘 대공장 사회 이후의 유럽에 대한 연구입니다. 비그레이님이 언급한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발언은 아무래도 60년대까지의 유럽의 이미지 혹은 길어도 70년대 중반까지의 유럽에서 통용되던 이야기 같은데 (비그레이님 말대로 뭐 일종의 레토릭이겠죠. 참모들이나 조언해주는 전문가들이 유럽의 현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닐테니 말입니다) 뭐 여튼간에 유럽 친구들은 무슨 문제를 겪었고, 어떻게 해결할려고 해왔고 지금은 뭘 하는가에 대해서 개괄해볼 수 있는 책들인 것 같아 적어봅니다. 레크비츠의 책은 번역중인거 같고 (어디선가 근간으로 소개되는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라파엘의 책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책은 프랑스 지리학자 Christophe Guilluy의 Twilight of the Elites: Prosperity, the Periphery, and the Future of France 입니다. 지난 몇년간 특히 눈에 띄었던 프랑스의 극우파의 약진이나 최근의 노란조끼 운동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라고 보는데 이제 막 읽기 시작해서 뭐 자세한 내용은 못 적겠습니다.

    전부 다 유럽의 (고등)교육문제를 다루는 책은 아닙니다만 (부분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관련이 있으며, 유럽의 최신 근황(?)을 아는데 좀 도움이 될 것 같은 책들입니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더운 여름에 뇌를 더 뜨겁게 만드는 책들이 과연 좋은걸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적은게 아까워서 그냥 댓글 그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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