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근대 도덕 언어 · "초기 페미니즘"의 기본구조에 관한 노트

Intellectual History 2021. 9. 2. 09:43

원래 한 달 전에 마쳤어야 했을 ㅠㅠ 박사논문 2장 후반부를 이제 시작하고 있다(쓰기 위해 읽어야 할 문헌은 얼추 다 읽었으니 이번 주말까지 초고를 마치는 게 목표다). 스스로 괴로울만큼 비생산적인 시간이었지만--일단 스크린 크기가 확 줄어드니까 눈이 훨씬 빨리 피로해진다--그렇게 묵히는 동안 몇 가지 중요한 도식이 정리가 된 건 좋은 일이다.

 

1.

 

초기 근대 유럽, 적어도 17-18세기 잉글랜드 도덕언어의 핵심은 다음의 세 가지 개념을 축으로 삼는다. 그것은 의무, 역량(덕성),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다.

 

1) '의무'(duty)란 누군가가 특정한 관계, 예컨대 신과의 관계, 국가·공동체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와 같은 영역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의 집합이다. 예컨대 오늘날 보편적 인권의 개념은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권리를 보유한다고 규정한다. 초기 근대의 도덕 언어는 그와 달리 인간의 도덕적 삶을 인간이 연결되어 있는 구체적인 관계들 내에서, 그리고 각각의 관계가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무들을 통하여 이해했다. 18세기 정치언어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연법, 특히 자연권의 언어는 도덕언어에서는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차지한다.

 

이 설명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단 한 가지 사실만 생각해보면 된다. 17-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덕지침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답은 키케로의 <의무론>(Three Books in Offices; 17-18세기에만 해도 여러 영역본이 계속 출간되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리처드 얼스트리의 <의무론>(The Whole Duty of Man, 1658), 사무엘 푸펜도르프의 <자연법에 따른 의무론>(The Whole Duty of Man, According to the Law of Nature, 영역 1691)이다. 이중 초기 근대 프로테스탄트 자연법의 전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푸펜도르프의 책조차도, 목차만 훑어봐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신에의 의무, 자기 자신에의 의무, 타인에의 의무를 순서대로 설명하고 그 뒤에 구체적인 상태·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의무를 지니는지 짚어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자연권의 개념에 지나치게 큰 가중치를 부여하게 되는 오늘날의 편향으로 인해 우리는 자연법 저작을 권리론으로 읽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애초에 자연법이라는 말의 사용되는 일상적인 용법에서 알 수 있듯 자연법 전통 또한 의무론의 성격을 더 크게 가지고 있다).

 

(로크의 <통치론>을 근대 도덕철학의 대표저작으로 놓으려는 **잘못된** 시도가 종종 나타나는데, 적어도 17-18세기 세계에서 이 책은 가끔 도덕적 논쟁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치팸플릿 혹은 정부론 장르에 속한다. 자유주의, 급진주의, 보수주의 모두에서 나타나듯 정치언어와 도덕언어의 경계선이 매우 흐릿해진 오늘날의 평자들이 간과하곤 하지만, 과거의 독자들 또한 자신들이 무슨 장르의 책을 읽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크 본인 또한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도덕적 논의를 위한 저작으로 <교육론>(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과 <기독교의 합리성>(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국역본 제목은 <성서를 통해 본 기독교의 이치>), 그리고 <인간지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을 썼다.)

 

2) 덕성(virtue) 또는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도덕적 역량(moral capacity)이라 부를만한 것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고, 또 의무를 수행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가리킨다. 법이나 의무의 존재를 절대적 속박이나 억압처럼 과장해서 이해하는--그래서 그것을 '이론적으로' 비판하고 무너트리고 교란하고 전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현대의 급진적 철학자들과 달리, 초기 근대의 모럴리스트들은 현실의 인간이 주어진 의무를 준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초기 근대 문헌에서 악덕과 정념에 관한 논의가 넘쳐나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도덕적 '힘'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덕성은 이러한 힘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역량을 중심에 놓는 철학적 전통에서 종종 발견되듯, 덕성-악덕의 개념에 기초한 도덕언어는 더 나은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명백하게 구분하는 도덕적 엘리트주의의 면모를 잠재하고 있었다.

 

3) 그렇다면 인간은 덕성 혹은 도덕적 역량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초기 근대의 모럴리스트들은 이 질문에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첫째, 앎과 지식의 차원이다--우리는 무엇이 선함과 덕성에 부합하며 무엇이 악덕에 해당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특히나 기독교 도덕론에서 이는 '우리가 어떻게 신이 부여한 법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번역되었으며, 로크의 <인간지성론>(누누이 말하지만, 본원관념innate ideas의 부인에서 시작해 인간의 말이 지식을 다루기에 얼마나 불완전한 도구인지 지적하고, 진정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다루는 이 책의 논의 순서를 이해한다면 근대적 개인주의니 근대적 주체니 하는 시대착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및 <기독교의 합리성>(여기서 로크는 신약 복음서를 중심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최소한의 본질을 추출하고자 한다)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저작이다.

 

둘째, 수양과 훈련의 기술이다--우리는 어떻게 도덕적 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가? 좀 더 분명히 말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도덕적 역량의 주체로 빚어낼 수 있는가? 키케로와 스토아주의적 전통의 영향이 듬뿍 묻어나는 로크의 <교육론>은 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내 아이에게 오직 좋은 것만 주고 싶은' 현대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겠지만, 아이를 굶기고, 추위에 내놓고, 거친 옷과 맛없는 음식에 익숙해지게 해야 한다는 로크의 주장은 엄격한 자기통제("극기")의 훈련을 통해서만 인간이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혹은 스스로를 본능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빚어낼 수 있다는 도덕적 패러다임에서 지극히 모범적인 전형과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도 다수의 저자들에게 앎과 훈련, 지성과 의지의 두 축은 특별히 상충하는 요구가 아니었다. 애초에 주체를 훈련시키는 기술 또한 하나의 지식이었으며, 올바른 문예와 지식의 습득은 단순한 허영이 아닌 '교양', 즉 자기수양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샤프츠베리의 <체계>(Characteristics)부터 맨더빌, 허치슨, 흄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무척이나 정교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거쳐 칸트와 토머스 리드, 헤겔에 이르는 '근대 도덕철학사'에서 덕성이 인간 본성의 산물인지, 혹은 다른 복잡한 과정을 거쳐 습득된 제2의 천성인지에 관한 메타적인 논의--이른바 "사회성sociability 논쟁"--가 치열하게 이뤄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음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좀 더 일반적이고 실천적인 또 다른 "철학" 전통에 속하는 풍부한 저작들을 보면 이 논의에 뛰어드는 대신 적당히 절충적인 입장을 택하고--예컨대 인간이 선한 본성을 부여받긴 했지만 기독교적 가르침을 준수할 때만 덕에 이를 수 있다든가--자신들에게 좀 더 중요한 '본론'에 진력하는 게 그리 드문 예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도덕적 성향이 자연스레 타고나는 것이든 사회 속에서 익혀지는 것이든, 덕성을 기르고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어차피 필요하지 않은가?

 

2.

 

"초기 페미니즘" 혹은 초기 근대의 여성개혁·양성평등을 주장한 당대의 필자들 또한 의무, 역량, 지식과 훈련에 입각한 초기 근대 도덕 언어의 기본 구조 내에서, 혹은 그 기본적 논리를 활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했다. 18세기 중후반까지의 팸플릿과 논설문, 지침서, 문예 저술 등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입장 또는 서술전략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17-18세기 잉글랜드의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덕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여성이 (제한적인 영역에서나마)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자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이들은 '역량'의 논리를 지렛대로 삼아 '자격'에서의 동등함을 도출하고자 했다. 도덕적 역량의 언어에 잠재한 엘리트주의적 면모 또한 여성의 동등한 자격을 옹호하는 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우리는 초기 페미니즘 문헌의 상당수에서 남성 못지 않은, 혹은 뭇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탁월한 여성들'의 목록이 길게 나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카치오의 여성 위인전은 초기 근대의 팸플릿에서 여성 위인 혹은 신화적 여성들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하는 수사적 전통으로 이어졌다.

 

둘째, 이들은 지식·도덕수양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여성옹호론자들은 한편으로 딩대 다수 여성이 도덕적·지적으로 열등한 처지에 놓였음을 인정하되 이는 여성이 교육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성이 제대로 된 도덕적 지식·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남성과 동등한 도덕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 지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던 만큼,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여성 문인들은 여성의 교육에 포함되어야 하는 지식을 논의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여성 문인들은 스스로 지식과 덕성(특히 기독교 도덕)의 체현자가 되고자 했으며 또 서로를 그렇게 묘사했다.

 

셋째, 초기 페미니즘 도덕 언어는 기본적으로 의무론의 지평 내에 있었으나, 예컨대 아버지의 강압적인 지시에 불복할 수 있는 딸의 권리라든가, 남편의 과도한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부인의 권리와 같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여성이 저항권과 같은 '권리'를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이는 여성 일반의 권리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특정한 관계'에서 허용되는 권리였다). 이는 내전과 혁명이 여권론의 발달에 끼친 직접적인 영향 중 하나로, 이전 세대의 저작을 읽고 이해했던 드문 여성들 중에서는 헤스터 멀소처럼 직접적으로 저항권·자연권 저작을 언급하고 인용하는 예도 있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시기 정치적 활동을 수행하거나 정치적 논변을 제시한 여성 저자를 찾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정치언어"로서의 초기 근대 페미니즘을 연구하기란 무척 까다롭다. 이는 무엇보다도 자유주의와 그 비판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현대와 초기 근대의 공적/사적 영역의 구별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법과 권리의 논리에--급진주의적 전통의 '억압/지배와 해방/저항'의 구별은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적 전통의 '법과 권리'의 대립을 극단화한 한 가지 버전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기초하여 도덕언어와 정치언어를 사실상 통합해버렸고, 따라서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사적인' 도덕언어로서 분류되었을 페미니즘의 언어는 손쉽게 '공적인' 정치영역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유주의 비판을 노정하는 '급진주의적' 페미니즘 정치이론의 상당수가 결국에는 '약간 더 확대된' 자유주의적 지평에 머무르도록 이끌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기 근대 세계에서 정치언어와 도덕언어의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개인의 도덕적 삶을 규정하는 언어가 (인체와 정치체의 '유비'와 같은 우회로를 통하지 않고) 정치적 정당성·규범의 언어로 침투하거나 번역되기란 쉽지 않았던 세계에서 여성의 도덕적 위상에 관한 논의가 정치언어로 침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메리 아스텔이라는 예외적인 사례는 어디까지나 교회와 기독교 도덕의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국교회 안팎의 논쟁이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던 왕정복고-명예혁명기의 독특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아스텔보다 결코 덜 지적이지 않았던 18세기의 여러 여성문인들에겐 아스텔의 열광적인 성향도 또 그것이 국지적으로나마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정세도 이미 지나간 세계의 것이었다.

 

3.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두 가지 일반적인 교훈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번의 노트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첫째, 법과 권리, 가해와 피해 등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도덕언어의 틀이 유일하고 보편적인 논리인 것은 아니다. 의무론적 전통을 포함해 우리는 좀 더 다양한 도덕, 나아가 정치언어의 가능성을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다. 과거의 문헌을 들여다볼 때는 특히 그렇다.

 

둘째, 18세기 정치언어를 자유주의의 틀로 이해하는 게 심각한 오독을 낳듯이, 오늘날 자유주의·급진주의 페미니즘을 기준으로 삼고 18세기 '초기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 불과 2-300년 가량 전의 세계만 해도 우리의 정치-도덕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에 기반하는 도덕언어가 폭넓게 유통되었다. 여성옹호론 논변 또한 그것을 곧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기준이라는 잣대에 들이대기보다 그것이 당대의 언어적 자원, 패러다임 등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또 해당 언어가 무엇이 불/가능했으며 어떤 가능성들을 열어두었는지를 질문하는 편이 생산적이다.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언젠가 나올 박사논문을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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