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수업 기록 [140428]

Comment 2014. 4. 29. 02:08

세 번째 수업 끝. 이제 이번 학기에 직접 수업을 하는 일은 더 없다. 부담은 덜었지만 (대신 GSI 업무가 하늘에서 폭풍처럼 쏟아지고 있다...) 아쉽기도 하다.


고골의 텍스트는 확실히 어렵다. 풍자적인 환상소설이란 것 자체가 읽을 때 재미있는만큼 분석하기 쉬운 게 아니기도 하고,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19세기 전반의 러시아 사회 자체가 낯선 탓도 있다. 거기에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 학생들이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올 거라고 예상하고 수업을 짜면 안 된다(생각해보면 나도 학부 3학년 때까지는 책을 안 읽고 수업에 들어갔다...그때는 그냥 읽고 싶은 다른 책을 읽고 살았다. 3학년 때 당시 지도교수께서 근엄한 목소리로 "책을 안 읽고 수업에 들어가는 건 바보짓이야!"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그때부터 마음을 좀 고쳐먹었던 것 같다). 토론을 시켰을 때 역시나 드러났지만, 보통 다섯 편의 단편 중에 한두편 정도만 읽고 들어왔던 것 같다. (전날 단체로 수업 빼먹으면 안 되냐는 질문도 있었는데)결석한 인원이 적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과제 총평을 먼저 했다. 이 텍스트가 왜 어려운지를 설명하고 과제가 (즐겁게, 부담 없이 자기 생각을 써보는 것 이외에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말했다. 무언가를 써볼 때 비로소 우리는 글과 글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써지는 글은 없다는 걸 알아야 비로소 읽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세가 생긴다. "글을 쓰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사려 깊은 태도"를, 다시 말해 읽기에 요구되는 윤리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총평을 끝냈다.

 사전 강의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초현실적인 것', '환상적인 것'이 단순히 기발한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언어와 현실의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언어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고골을 말하면서 프로이트를 말하지 않는 게 더 어렵다. 광기와 비정상의 언어, 꿈과 무의식의 언어를 무의미한 소리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의미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야말로 정신분석의 근본정신이다. 한번 정도 프로이트를 읽어보는 게 좋을 거라는 이야기.

 두 번째 항목은 러시아와 유럽의, 서로가 서로의 무의식처럼 기능하는 관계. 칠판에 개발괴발 유라시아 지도를 그린 후-_-;; 나폴레옹 전쟁-크림전쟁-1차대전/러시아혁명-2차대전의 맥락에서 어떻게 러시아가 유럽인들의 가슴 깊숙히 각인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지금의 유로마이단-크림공화국 분리에 따른 동시대적인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 강조하면서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여러분들도 그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마쳤다. 솔직히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학생들이 한창 유로마이단 사태 때 고3이어서 그랬는지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냐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 여튼 영미나 프랑스, 독일과 달리 러시아는 우리들 머릿속의 지도에서 꽤나 찌그러져 있어서 이렇게 꺼내어 상기시키지 않으면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여기까지 15분 조금 안 지났다.


토론은 본래 여섯 개의 질문을 준비했는데 학생이 조금 빠진 것도 있고 해서 세 조로 진행시켰다. 1) '코'를 통해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2) '외투'에서 아까끼는 왜 죽는가? 3) '광기'란 무엇인가? 애초에 학생들이 제출한 질문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서 새로 질문 만들어내느라고 애 좀 먹었다. 더 쉬운 질문을 만들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질문들이 본격 토론자 엿먹이는 것들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어떻게든 쉬운 주제를 고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책을 안 읽어와서인지 조별 토론은 지지부진했다; 토론 시간에 말은 없고 그제서야 책을 후다닥 펴보고, 해설도 살펴보고 (물론 해설을 본다고 답이 나오는 주제가 아니었지만...ㅋ), 한 명이 다른 조원들에게 작품 설명도 해주고... 단편은 그래도 조금 읽고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중간 지나서부터는 학생들의 공부체력이 푹푹 줄어드는 걸 체감할 수 있다. 그래도 여섯 명씩 머리를 맞대니까 발표는 그냥저냥한 내용이 나왔다(고학번도 아닌데 벌써부터 말로 때우는 애들도 보였다...다른 애들이 순진해서인지 그럴듯한 말에 넘어가는 걸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조별 질의는 그냥저냥이었고 그냥 내가 코멘트를 조금 덧붙였다. 사실 처음부터 꽤나 어려운 텍스트라고 각오했기 때문에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토론은 총 30분. 한 명이 내내 퍼자긴 했는데...


나머지 15분 동안은 아무래도 내 마지막 수업이니만큼 문을 닫는 강의를 하기로 했다. 마지막이라고 강조해서 그런지 다들 적어도 겉으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들었다(고 믿고 싶다ㅋ).

첫 번째 주제는 수업의 커리큘럼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기본적으로 북반구에 사는/중간계급 이상의/교육받은/남성들이 쓴 텍스트들로만 커리큘럼이 이루어져 있다는 걸 먼저 지적했다. 여성, 퀴어, 피억압 인종, 하층계급(프롤레타리아), 교육소외계층의 목소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처음에 여성작가도 한 명도 없고 여성인물도--그나마 스탕달을 빼고는--한 명도 없다는 걸 알고 나도 좀 놀랐다. 그리고 스피박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인용하면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주체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작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인문학이 자기가 희망하는만큼 보편적인 앎/실천이 되기 위해서 바로 자기 자신에게부터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듣고 있는 강의를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얘기했다.

두 번째 주제는 읽기의 한 방법론에 관한 것. 텍스트와 독자의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텍스트가 속해 있고 또 재구성하는 세계와 독자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부딪혀 보려는 노력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게 내 세 번에 걸친 수업의 기본적 입장이자 학생들에게 희미하게나마 가르치려고 했던 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읽기'에 관련된 질문을 던져보는 게 당장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사실 개별적인 텍스트들의 축적 못지 않게 계속 곱씹을 필요가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적어도 내겐 그러했다.

 마지막은 내 이야기를 하는 대신 아감벤의 텍스트를 소리내어 읽었다. 내가 직접 읽으면 지루할 게 뻔하니까, 학생 모두에게 해당 인용부분을 타이핑한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한 문단씩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도록 했다. 다들 프린트물을 들고 읽은 걸 보면 나름 효과적인 방법이지 않았나 싶다. 애초에 아감벤이 (좋은 국역자의 덕도 있겠지만) 음미하기 좋은 말들은 많이 한다. 읽기가 끝나고 "동시대인"이 되려는 노력의 의의를 강조한 뒤 수업을 끝냈다. 시간은 딱 정각.


아래는 수업 마지막에 같이 읽은 아감벤의 텍스트 인용문이다. 한두 부분은 원문과 다르게 내가 수정을 가하기는 했다.



“...우리는 우리로부터 수세기 떨어진 저자의 텍스트와 더 최근 혹은 최신의 텍스트를 읽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좌우간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해당 텍스트와 동시대인이 되는 데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미나의 ‘시간’은 동시대성이며, 그런 만큼 우리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검토되는 저자들과 동시대인이 되기를 요청받는 것이다”


“(니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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