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Comment 2014. 5. 7. 00:22故 승욱선배의 납골묘에 다녀왔다. 그가 죽었을 때 나는 군대에 있었고 문상을 갈 수 없었다. 반드시 인사를 드리겠다고 마음먹었고, 이른 시점은 아니지만 맹세를 실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대전의 햇살은 뜨겁고 그늘 밑의 바람은 차가웠다. 버스를 갈아타고 시 외곽으로 나갔다. 한적한 정거장에 내려 조금 걸어들어갔다. 산과 녹빛의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 납골공원이 있었다. 바로 곁에서 나이들었지만 기운을 잃지 않은 농부가 호미로 잡초를 열심히 골라내고 있었다. 초파일이라서인지 차들이 많았고 제법 가족들도 많았다. 울음소리가 없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등에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 반찬이 담긴 박스를 든 채로 선배를 마주했다. 만 서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배는 졸업가운을 입고 작은 사진 속에 들어 있었다. 햇살 때문인지 약간은 찌푸린 듯하기도 하고, 과정을 마쳤다는 기쁨에서인지 약간은 웃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내가 잠시 휴가를 나왔을 때 그가 식사자리에 와 주었던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와 웃음소리, 세미나를 할 때의 진지한 표정과 말이 떠올랐다. 같이 취객을 배웅하던 순간도, 도무지 어처구니없던 순간에 그에게서 터져나왔던 폭발적인 웃음도 떠올랐다. 왜 그는 이렇게 이른 나이에 죽어야 했는가? 왜 그는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후배의 배웅을 받아야만 하는가? 왜 좋은 사람들은 먼저 떠나는가? 그는, 김수행이 적었던 것처럼, 사물과 사물의 생리를 보았기에 죽은 것일까? 차라리 그런 것이었다면 나았을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솟구쳤고 억누른 눈물 대신 그칠 수 없는 한숨만 계속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오랜 습관에 따라 울음을 억누르는 대신 펑펑 눈물을 쏟았다면 차라리 내 기분은 편해졌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울음으로 죽은 이를 보내는 편한 길을 갈 방법을 모른다). 화가 나고 슬프고 좌절스러웠다. 이제서야 그의 부재가 실감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가 죽고 10개월 간 처음으로 그의 존재가 생생히 떠올랐다. 그것이, 그의 존재가, 그의 부재의 존재가 내 안에서 아직까지 지울 수 없는 울음으로 남아있다.
꽃 한 송이를 유리에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주었다. 5월 8일에 다 치울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후회할 걸 알았다. 내 안의 죽은 이든 내 안에 있지 않은 죽은 이든 그 꽃을 미소지으면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틀림없이 미소지으면서, 뭐 이런 걸 다 가져오냐면서 받아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할 때 어떤 목소리로 말할 것인지까지 분명히 떠올릴 수 있다. 그에게 무엇하나 줄 수 없다는 것이 괴롭고 그에게 무언가를 건네고자 하는 나의 상상과 노력은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한다.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잘 알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를 동지라고 생각했고, 동지를 잃는 것은 언제나 너무 아프다.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잃어도 사람은 어떻게든 흘려보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동지를 잃을 때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 잃음을 계속해서 떠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한동안, 그의 죽음이 나를 떼어놓기 전에는 나는 그의 죽음을 떼어버릴 수 없음을 안다. 사람은 죽은 이를 보내기 위해 예식을 치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죽음을 나의 것으로 온전히 만들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내가 언젠가 그것과 다시 헤어질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는, 내가 그의 죽음에 어떻게든 잠시라도 안기지 않고는 그의 죽음과 작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한동안 내 발걸음에는 그의 무게가 실릴 것이다.
공원을 나와서 잘 닦인 길가 옆에 있는 정자에 앉았다. 잠시 시원했으나 곧 바람은 냉하게 내 몸의 열기를 뺏어갔다. 그의 죽음과 나의 삶을 생각했다. 그의 삶과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하던 질문들, 나의 공부와, 연구자로서의 삶과, 무의미와, 쓸모없음과, 기생충 같은 삶과...그것들을 껴안고서도 기생충처럼 살지 않았던 사람을 생각했다. 그리고 벌레들은 살아남았는데 왜 벌레처럼 살지 않은 인간은 죽었는가를 생각했다. 그가 성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면모들은 그랬다. 어쨌든 그렇게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고, 죽기까지 그가 마주했던 짐들을 떠맡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몫까지 얹어 한참 동안 나의 질문을 생각했다. 질문의 무게에 눌려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거른 점심과 배고픔까지도 잊어버리고 한참을 앉아 질문하고 생각하다가 다시 일어났다. 누군가를 짊어지고 있는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어쨌든 삶의 목표는 존재하고 그것이 있는 한 나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버스는 한참 동안 오지 않았고 나는 허공과 산과 정류장 뒷편의 철길과 드문드문 오가는 차들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편으로 그를 보내고 한 편으로 그를 업어왔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에 눈가만 붉어졌다. 지금 이렇게 찔끔찔끔 우는 대신 언젠가 딱 한 번 들었던 그의 웃음만큼이나 폭발적으로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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