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Comment 2014. 4. 22. 18:39

방의 창문을 열고 커튼을 젖혔다. 방의 위치가 나름 좋아서인지 살짝 손에 닿지 않을 거리에, 창보다 약간 낮은 높이에 나무들이 있다. 작고 동그란 잎이 달린 나무 한 그루가 조금 높이 솟아 있고 그보다 아래에 하나는 완전히 붉은 잎의, 다른 하나는 완전히 녹빛의 단풍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띈다. 다른 동의 벽돌건물보다 조금 먼 거리에는 노랑 크레인이 높이 솟아 있고, 그보다 멀리에 산자락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해는 어느새 완연히 다가온 여름을 가리키듯 저녁 6시를 앞두고도 아직 제법 높은 곳에 있어서, 그 빛이 나무들에 다가와 부딪히고 다시 곳곳으로 스러져 흩어진다. 빛을 뿌리는 잎들을 보면서 불과 두달도 되기 전 이곳에 들어왔을 때 잿빛의 가지들만 앙상하던 것들이 벌써 이렇게 풍성한 모양을 갖추었구나 새삼 놀란다. 싸늘하지는 않지만 너무 뜨겁지도 않은, 온기를 조금 담은 바람이 잎의 무리들을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흔들고, 그 여유있는 흔들림과 떨림은 녹빛과 빛 자체의 깜빡거림이 되어 크고 길고 풍성한 호흡처럼 나지막한 움직임으로 내 방에까지 생을 건넨다. 그것들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제각기 다르게 하지만 하나의 삶처럼 움직이고, 그곳으로부터 빛과 바람과 나뭇가지들, 잎들이 서로를 자유롭게, 또 부드럽게 휘감고 있음을 본다.


창가에 서서 창틀을 붙잡고 나무를 바라본다. 자연적인 인과관계들을 제외하고 어떠한 줄거리도 없어야할 나무들의 흔들림으로부터 마치 이야기가 존재하는양, 그것이 사람의 말로 표현될 수는 없으나 다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바람과 나무와 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나는 단지 볼 수만 있고 이해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 단지 이야기를 보면서의 평온함, 즐거움, 떨림, 그리고 가슴먹먹함만을 기억하고 그곳에 이야기가 있었음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큰 걱정들과 작고 끈질긴 슬픔들을 잠시 눌러두고 나는 맑은 공기를 힘차게 들이쉬듯 내게 다가오는 이야기로 가슴을 채운다. 이것은 즐거움도 슬픔도 고통도 분노도 아니다. 어떤 존재 그 자체의 충만함이, 그러나 그조차도 완전히 순수하지 않은 형태로, 나의 다른 감정들을 외밀하게 둘러싸고, 마치 해안가의 이물질들을 파도가 부드럽게 휘감고 두르는 것처럼, 그리고 이윽고 해변을 완전히 채우듯 나를 채운다. 나는 말만이 아니라 생각조차 함께 잃어버리고 단지 그 광경과 그 이야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만일 내게 사려깊음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이 광경을 어떠한 언어로도 붙잡을 수 없으며 어떠한 이미지로도 기억할 수 없고 단지 나를 채웠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순간들의 연쇄를 가만히 지켜보아야 함을 받아들인 뒤 이윽고 그 사실조차도 잊어버릴 것이다. 마치 해변가의 어린아이가 손 안에서 파도를 놓아주어야 하듯이. 나무와 빛과 바람의 이야기는 나보다 크고, 심지어 나무와 빛과 바람보다도 크다. 이야기가 지나간 뒤 풍경이 그저 저녁나절의 한 광경으로 다시 줄어들었을 때 나는 다시금 공허감을 느낀다. 공허감을 통하여 나는 무언가 더 큰 것이 있었음을 부정적으로 기억한다.


해가 내려와 앞 동에 걸쳤다. 잎들은 조금 더 어두운 녹빛이 된다. 바람은 온기를 잃고 다시 서늘해져서 내 손목과 발을 시큰거리게 한다. 그러나 빛이 비추고 있는 저 멀리의 나무들은 아직도 반짝거리며, 앞의 나무들은 이제 바람과 어우러져 소리를 낸다. 이는 바람의 소리이면서 나무의 소리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의 소리이기도 하다. 소리로부터 나는 무언가 이야기를 듣는다. 말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는, 단지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있다는 것을, 있으리라는 것만을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삶의 어둠을 피해 울분을 안고 산과 숲과 호수를 찾아간 이들을 새삼 떠올리면서 나는 산도 숲도 호수도 되지 못할 정도로 작지만 여전히 나름의 이야기를 소리내고 있는 나무들을 본다. 나는 소리를 듣고, 이야기는 나를 어루만진다. 더더욱 빠른 속도로 기울어 가는 태양이 이윽고 모습을 감출 시점이 된다면 나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불을 켤 것이다. 내일의 수업을 위한 글을 쓰면서 창문없는 밀실에 들어가 내가 기억할 수 없고 떠올릴 수 없는 무엇을 그리워하며 떠올릴 것이다. 새벽에 잠시 커튼 사이로 창문을 열어 고요한 냉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때도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소리를 잠시 들을 것이고, 어떠한 소리도 없다면 침묵을 들을 것이다. 언젠가 고독 속에서 과거를 그리워했듯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날들도 분명히 올 것이다. 지금 그때를 위해 슬퍼한다고 그때의 고독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나는 과거에 과거를 그리워하던 시절과 미래에 과거를 그리워할 때를,  미래에 미래를 안타까이 여길 때를 함께 본다. 나에게 좀처럼 즐거움이란 없는 것일까, 싶다가도...행복한 사람에겐 역사가 없다면, 적어도 나는 역사를 가질 권리는 있겠구나,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하고 다시 답한다. 더 이상 나에 관해서 묻고 대답하는 게 지겨워져서 언젠가 또 다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보고 듣기 위해 창문 밖을 바라볼 때가 필시 오리라 생각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러므로 문제가 될 수 없는 문제를 그 자리에 둔 채로 저녁을 먹고 글을 쓰러 가야겠다. 그러면 적어도 삶은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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