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자.

Comment 2014. 4. 18. 20:30

책을 읽다가 잠시 컴퓨터를 켰다. 페이스북은 온통 침몰한 세월호의 실종자들 관련된 글로 가득하다. 몇 건이 기적적인 구조를 희망하는 글, 구호물품에 관한 글이 보인다. 사고가 벌어진 뒤 이틀이나 지났는데 적어도 웹을 통해 검색할 수 있는 공식적인 후원계좌가 없다는 게 조금 당황스럽다. 현재 검색되는 후원계좌는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구조작업원들과 (앞으로 구조되길 희망하는) 피해자들에 대해 전반적인 관리/책임을 수행하는 공식적인 총괄기구가 없다는 말도 된다. 실제로 언론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확신할 수 없는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상황 자체가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해경이든, 기업이든 확실한 정보창구를 담당하는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언론에 대한 불신 같은 걸 이야기하기 전에 정보를 집약하고 공개여부를 판단하며 앞으로의 수색/구조방향을 결정짓는 조직이 먼저 존재하고 또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게 먼저인데, 각종 쏟아져나오는 기사를 보면 구조본이 실제로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도, 맡을 의사도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곳곳에서 링크되고 있는 실종자 가족모임의 대국민 호소문을 보면 (그리고 그 내용이 주요 포털 메인으로 아직 안 올라오고 있는 걸 보면) 중앙대책위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보다 언론을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에 들이는 노력이 좀 더 정성스러운 것은 확실해 보인다. 첫날은 비상사태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을테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상황이면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역사적인' 재해라면, 그리고 한국이 지금까지 겪어온 다종다양한 사고들을 감안한다면(내가 10대가 되기 전부터 한국은 평온한 나라는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dynamic Korea라는 구호를 만든 김대중 정부 때가 그나마 큰 사고가 적었다), 재난대책관련 특수기구를 설립하는 매뉴얼이 이미 존재하고 사고가 터졌음이 확인되자마자 그 매뉴얼과 규범들에 따라 일처리가 진행되었어야 한다(보통 한국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평가받는 군대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지금 사실상 해경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구조본을 보면 과연 매뉴얼대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이 정상궤도 안에서 돌고 있는지, 아니 재해대책관련 매뉴얼을 평소에 마련해놓긴 했는지조차 확신이 가지 않는다. 나는 지난 6년간 한국정부의 행정능력에 적잖은 회의를 품게 되었는데, 이번 사건은 나의 회의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입법, 사법, 언론에 이어 현대국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까지 무능력하다면 우리가 별 뜻 없이 이야기하는 "이 나라는 엉망진창이야"라는 표현은 발화자들의 의도 이상으로 진실과 가깝게 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포탈을 통한 언론과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는 대다수의 글은 "누군가"에 대한 불신과 무책임에 대한 성토로 가득차 있다. 왜 "누군가"라고 적을 수밖에 없냐면, 현 정부가 매우 영리하게도 구조작업 간의 각종 문제에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구 자체를 만들지 않았거나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대상이 있어야 효과적인 비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은 명확한 대상을 찾지 못한 채 막연히 한국사회 전반을 향하고 있다(덕택에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 가능해졌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 책임을 묻고, 필요하면 후원금을 재빨리 보내고, 정보를 집약하고, 현장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어쨌든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무정부상태는 대체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총괄적인 기구가 우리에게 노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는,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을 생각할 게 아니라 이전의 한국에는 그런 역할을 하던 무언가가 존재하는 척이라도 했다는 사실에는 아직 사람들의 생각이 대체로 미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서 공식적인 창구를 마련해야 하는 역할이 기본적으로 정부에 주어진다는 것에는 모두들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잊어버린 건지, 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지, 이미 했는데 단지 심각하게 눈에 띄고 있지 않을 뿐인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온라인을 통해 가능한 접촉면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안 하고 있는 거라면 매우 화가 나겠지만, 못 하고 있는 거라면 화를 내도 바뀔 수 없음을 뜻하기에 두려운 기분이 들 터이다.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그들이 면책될 수는 없겠지만--의 구속영장발부기사를 보아도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만큼 이 사태는 크게 돌아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상황이, 그리고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뻔히 보였기 때문에 웹에 접속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음을 말로 표현한다고 해서 구조작업이 더 잘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 신뢰의 부재, 무책임성 같은 주어없는 형용구들(보통 이런 말들은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에 반성하면서 나오는 말이다...)을 벌써부터 말하는 걸 보면서 언제나 현실이 예측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그렇기에 조금 더 암울한 기분이 되었다. 분노와 좌절과 (정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무능력함이 조금 더 빨리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이에 수면 위에 위태롭게 드러나 있던 뱃머리도 가라앉아 버렸다. 마지막의 기적으로든, 아니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대참사로든 이 사태가 일단락이 된 다음에, 나는 사람들이 안도와 냉담으로 들어가는 대신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는 쪽으로 일이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아까운 사람들을 더 잃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삶들이 우리 눈 앞에서 천천히 아무런 조치없이 스러져 가는 걸 며칠에 걸쳐 의식하고 살아가는 일을 또 한번 겪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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