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와 개입주의, 개성

Comment 2014. 4. 6. 04:02

대략 1개월에 한 권을 마치는, 빡세다면 빡세고 느리다면 느린 세미나다. 처음 목표는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지만, 푸코를 접해본 적이 거의 없는 (있다고 해봐야 <감시와 처벌> 정도가 전부인) 세미나 구성원들 사이에서 푸코를 읽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텍스트를 풀다 보니 어느새 나의 해제강의처럼 변해버리긴 했다; 세미나의 민주주의적 이상(?)을 포기하고 나서 의외로 사람들이 별다른 불만없이 나름의 만족을 표시하며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처음에는 단 둘만 남더라도 계속 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세미나인데 어쩌다보니 4-5명의 인원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온 상식과 어긋나는 상황은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부분적으로는 사람들이 텍스트/세미나를 통해 나름대로의 목표를 도달하는 과정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 때문도 있다. 모두가 나처럼 활발하게 질문을 던지고,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는 데 세미나의 의의를 찾지는 않는다. 혼자 조용히 책과 노트에 필기하며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세미나가 끝난 이후에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숙고하며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텍스트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세미나를 통해서 텍스트 및 저자의 주장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표를 둘 것이다(지금의 세미나는 약간 이런 경향이 크지 않나 싶다). 특히나 한국처럼 의사표현 자체의 부담이 큰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조용한' 이해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구성원들이 더 많다고 보아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리라.

어쨌거나 과정 자체가 아니라 도달하려는 목표와 방법론의 개인차를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세미나의 형식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그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고정된 형태로 굳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다. 세미나든, 토론이든 관건은 자유로움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무언가 의미있어 보이는 질문을 해야한다는 부담이 사라졌을 때, 그리고 무언가 이야기하고/질문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알아서 입을 연다. 세미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구성원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그 자체로 답답해하고 문제시 삼는 대신 그 침묵이 어떤 성격의 침묵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일종의 '민주주의적 강박'에 따라 강제로 '모두가 한 마디씩' 말할 것을 요구하는 선택지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그런 선택지는 최약자에게 최소한의 발언기회를 보장한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이점도 없었는데, 이미 세미나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그러한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을 따라 이해를 형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과잉된 배려야말로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며, 누군가가 실질적인 앎의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이전의 지식형성과정을 기꺼이 폐기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점에서 나는 절대로 laissez-faire 를 윤리적 모범이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때로 자유방임을 민주적 원칙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두 원리의 이질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류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다 편안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가, 이는 진지하게 고찰할 문제라고 확신한다. 자유방임이 민주주의의 근본원리가 아니듯, (세미나에서) 개입주의는 반드시 민주적인--그러나 도대체 세미나에서의 민주적인 것이 뭐란 말인가?--원칙들과 충돌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모두가 자신의 몫을 최대한 챙겨가는 결과가 '정의'justice라고 한다면, 정의는 우연적인 상황, 개별자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고찰하는 일 없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그럼 세미나에서의 강의(?)를 준비해야하는 사람의 희생이 너무 큰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오해인데, 세미나를 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사실 최대의 수혜자다. 바로 그만큼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고 자신의 언어로 재형식화, paraphrase하는 기회를 받는 사람은 없다. 사실 나는 세미나의 성격이 이렇게 되면서 가장 많이, 적극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몇 주 전 처음 이 텍스트를 읽었을 때 5장 후반부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방금 나름대로 설명하는 방법을 찾았다! 이런 거야말로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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