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비자의 대중예술 소비, 인지의 단위 [121111]

Comment 2014. 3. 18. 14:31

*2012년 11월 11일 페이스북


_SE7EN_ 이 Qook TV 영화에서 무료로 풀린 걸 방금 발견했다. 지금까지 절반 정도 보았는데(물론 생활관 동기들의 암묵적인 관습에 따라 1.2배속으로-), 확실히 그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보는 맛이 있지만, 나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관람하는(혹은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더욱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 "소비"하는) 생활관 동기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대중적 시청자들의 예술소비=향유양식 자체를 흥미롭게 보게 된다(<세븐>이나 _Eyes Wide Shut_이 상영 20분이 지나기도 전에 '아주 지루하고 길고 쓰레기 같은, 재미없는 영화'라는 코멘트를 받게 되는 광경은 내 삶에서 드물게 보는 순간이다). 이러한 관찰 자체가 언젠가는 의미있는 분석으로 도달할 수 있으리라 희망하게 되는데, 어쨌든 지금까지 알게 된 경험적 사실 두어가지만 나열하자면, 작품은 더 이상 전체로서가 아니라 순간적인 파편들의 나열로 이해되며, 그 가치는 각각의 파편들이 얼마나 지속적인 자극을 제공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세븐>에서 사람들이 흥미를 갖기 시작한 순간은, 다시 말해 이 영화를 볼만한 영화라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은 나태sloth의 죄목으로 고문받은 피해자의 신체-이미지 자체와 접하는 순간에서부터다. 이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게 되는데, 최근 오로지 강렬한 이미지들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져 강렬함조차 밋밋해지는 영화들이 나오게 되는 것(단적으로 <세븐>의 bastard 정도라고 할 수 있는 _Saw_ 시리즈들)은 이러한 감상 양태 자체와 절대로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주체들의 내적 구조의 형식은 마치 utility 에 대해 Jeremy Bentham이 내놓은 가설과 같이 (쾌락의 양과 지속성) 구성되며, 매 장면들과 시퀀스는 한없이 반복적으로 쪼개져서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면 "창문없는 단자"처럼 되어버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칸트가 그려낸 인간의 내적구조로부터 이성 및 상상력의 차원 자체가 결여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요컨대 단순한 이미지들을 종합해서 전체로 만들어내는 능력 자체가 더 이상 활용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가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라고 말했다면,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 모래낱앋들처럼 변해버린다.

그러나 여기서 단순히 묵시록적 전망이나 파국적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아마도 위의 모든 관찰(나는 위에서 언급한 진술들이 단순한 추측이 아닌 철저한 사실이라고 고집할 수 있다)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종합=상상력/이성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전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러한 조건 위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의 이성과 인간의 내적 구조에 대한 탐구가 후근대기post-modern era의, 혹은 후기 자본주의late capitalism의 그것을 어떻게 창출하는가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면, 후자의 연구는 다시금 그러한 상황이 무엇을 낳을 것인가, 이처럼 그 자체가 조건이 되어버린 사유-양식이 무엇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주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아직까지 나는 후근대의, 혹은 후근대적 소비주의 사회post-modern consumerist society의 사유양식을 좀 더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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