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로서의 일베와 표현의 자유

Comment 2014. 5. 13. 12:1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1189


이 기사에 대한 코멘트.



필자의 원론적인 취지가 전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일베 자체가 현재로서는 하나의 배출구=표상일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교육'장소라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체이자 장치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순진하다. 일베는 무언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지금 일베가 문제가 되는 지점은 그곳에서 극우파적인 발언이 나와서가 아니라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합의되어온,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하되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온 무의식들까지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표출이 어떠한 터치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시한다는 것 자체에 있다.

솔직히 50대, 60대를 비롯해서 일베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해오던 사람들은 원래 있었다(당연히 518 때 전두환이 틀어준 뉴스를 그대로 보고 믿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단지 자신들이 그런 말을 대놓고 할 때 돌아올 결과를 의식해서, 혹은 자신의 무의식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때 터져나올 결과를 의식하고 있었기에 말을 못했을 뿐이다. 지금 일베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해도 되는 장소이자, 그것을 하는 것이 어떤 쾌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사회에서 욕을 먹을지언정 용인받는다는 것을 그 자체로 드러내고 권장하는 장소이다. 일베의 이용자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보여주는 곳만이 아니라 바로 그 추악한 방식으로 표출을 해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믿음을 공공연하게 퍼트리는 곳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전략적인 국면에서 본다면, 일베를 그대로 두고 활용하는 극우파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후속세대를 기르고 영향력을 확보하는 루트이기도 하다. 예컨대 변희재와 같은 인물이 극우파들에게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일베에서 어떤 정치적 세력/지지자들의 양성을 기대하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SERI나 KDI, 각종 '연구소'들이 우파들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를 공식적으로 전파하는 전진기지라면, 일베는 극우파들이 자신들의 비공식적인 이데올로기를 비공식적인 경로로 전파하는 전진기지, 즉 우파식 대중정치의 명백한 수단이다.

물론 반드시 폐쇄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글쟁이들이 "가스통 할배"들이 온갖 난동을 부려도 단지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그 할배들에게 얻어맞고 욕을 먹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고 움츠러든다는 걸 잊어서 안 되는 것처럼, 일베의 문제를 표현의 자유로 쟁점화시키는 건 전혀 정치적이지 못한 판정이다. 우리는 현상을 볼 때 원칙을 볼 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아야 한다(나는 푸코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공하는 혜안 중 하나가 실천, 효과, 장치라는 틀로 국면을 해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판단이 단순히 공론장에서 이뤄지는 게 아님을, 그것이 어떤 커다란 힘의 충돌의 일환임을, 끊임없는 전투의 반복이며 그 전투의 개별적인 결과들이 축적되어 전체적인 판도 자체가 바뀐다는 것을 안다면 (조금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면, 특수한 것들이 일반적인 것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면) 저렇게 순진한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반론의 견지에서 덧붙여본다면, 특정한 자유가 무한정 늘어날 때 자연스럽게 선이 담보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무반성적이다. 공론장은 갖가지 정치적 침투로 항상 오염되어 있는 곳일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기구들의 향방을 바꾼다는 데서 그 자체로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공론장들이 그 근본적인 차원에서 '차마 넘어설 수 없는' 한계선 위에 세워져 있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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