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청계광장

Comment 2014. 5. 25. 19:04

어제의 청계광장은 햇빛이 가려진 대신 습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꽤 많았지만 아주 많지는 않았다. 집회 중후반 중 사회자가 3만명 정도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정확한 수치는 아닐테고. 몇 년 사이에 처음 목도하게 된 집회는 확실히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물론 소라고둥부터 종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공간이 광장 소리를 듣기엔 너무 협소한 공간임을 생각해야겠지만--지인이 서울은 제대로 된 광장이 없는, 오로지 지배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말했는데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어쨌든 뒤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크레인에 매달린 거대한 스크린이 청계천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송되는 화질이 너무 좋고 음성도 나쁘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최측이 준비한 영상들의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마치 집에서 TV로 집회현장을 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크린만 쳐다보았다. 이런 기술적 진전이 집회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순전히 좋은 것인지, 혹은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인지는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들은 많고 다양했다. 물론 전체 인원수는 많이 모자랐지만, 광우병 때와 비교하면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참여자들 비율이 높았던 것 같다. 가족끼리 온 경우도 적지 않았고 유모차도 심심찮게 보였다. 국화를 손에 쥔 다섯 살도 되지 않아보이는 아이들이 꽃줄기로 돌바닥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종이컵에 꽂아놓은 촛불들도 많았다. 여기저기서 전단지와 A4 사이즈의 종이피켓을 나누어주었다.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 및 KBS 정상화 요구 서명 등 각종 서명지도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대체로 말이 없었고 표정도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몇 주 전 처음 보았던 추모행진에 비하면 침울함과 슬픔은 비교적 줄었다. 이제는 무엇이 이들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까? 가끔씩 #가만히있으라 피켓도 보였다. 전의경들은 건물 사이 골목의 그늘 밑에 무리지어 서 있었다. 어차피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시간 안쪽에 충돌할 위험도 없고, 주최측도 경찰/권력과 물리적 충돌을 각오할 생각은 없어서 해당 시간 내에만 참여하려는 사람들은 연행같은 거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진행은 기본적으로 발언과 공연의 연속이다. 내가 청계광장에 도달했을 때는 집회가 시작한지 조금 시간이 지난 시점이어서 그 앞쪽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민중의례 같은 것도 했을까?). KBS 보도본부장(?)의 반성적인 발언과 함께,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및 안전규제완화 등에 관해서 (조금 놀랍게도...수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국노총 공공연맹에서 나와서 발언을 했고, 유가족 대표도 나와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오열하듯 부르며 같이 불러줄 것을, 잊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학생은 "~야"로 부르고, 교사는 "~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적잖은 위화감이 있었다...그들은 죽은 뒤에도 여전히 학생과 교사일 수밖에 없는가? 그것이 그들에게 더 나은 관계일까?). 갓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사람이 올라와 죽은 이들에게 쓴 편지를 낭송했다. 많은 사람들이 군중을 찍었는데, 때로 플래시가 필요없는 상황에서 터지는 걸 볼 때 채증경찰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가장 신경이 쓰인 지점은 유가족 대표의 발언을 제외하고 사실상 연행자들에 관한 언급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연행자야말로 경찰과 정부에서 이 집회를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길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6.4 이후 선거결과가 집권당과 현 정부의 승리로 판명될 경우 집회를 향한 권력의 태도는 꽤나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것은 나만의 추측일까?). 궁극적으로 사적인 추모, 분향소에서의 안전한 추모가 아니라 집회라는 공적이면서 공적이지 않은 형태가 등장한 까닭은, 그것이 일시적으로 공적 권력-질서-가치체계를 무화시키거나 적어도 그것과 거리를 두는 다른 규범에 입각한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공적인 권력의 행사 그 자체를 비판하고 질의하기 위함이라는 것만 강조해두자.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이 집회는 탈정치라는 자장 하에서 아주 멀리 나온 듯 싶지는 않고, 이것이 그 자장 하에 오래 붙잡혀 있을수록 다른 무엇보다도 집회로서의 성격 자체와 모순된다는 점 때문에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08년도의 광우병 투쟁이 최종적으로 맞은 운명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집회를 '관리하는' 권력의 의도일지도 모른다(내가 경찰간부면 그렇게 하겠다-_-;;). 정치적인 기조와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고 단지 여론에 귀찮은 영향을 끼치는 집회만을 소거시키고픈 권력 말이다.


대략 2시간 정도의 집회가 끝나고 행진이 이어졌다. 처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잠깐 나와서 적지 않은 인원이 나름대로 반색을 표하면서 따라불렀다. 애초에 대규모 인원이 행진하기 좋을 정도로 큰 도로를 점유할 수 없어서 행진은 마치 긴 뱀이 스물스물 기어가는 양 진행되었다. 집회가 청계광장에 멈춰있을 때와 비교한다면 기술적으로 열악했다. 저 멀리서 스피커로 구호가 외쳐졌는데 뒤쪽에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뒤쪽에서는 어떻게든 구호를 알아듣고 따라 외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가 아주 성공적이지는 않아서 전체로 본다면 단지 곳곳에서 산발적인 구호가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피켓과 촛불을 들고 나아갔고, 최초의 "박근혜도 조사하라"는 이어 "박근혜는 퇴진하라"로 바뀌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대통령 퇴진 구호만 나와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있는데, 대중정치, 곧 집회에서 산발적으로 이런 구호가 나오는 것을 갖고 집회가 틀렸느니 뭐니 하는 사람은 집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대상을 논하면서 스스로의 지적 우월성을 만끽한다는 점에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한심하다). 집회의 구호들은 대체로 하나의 거대한 무의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그 무의식은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이해될 수는 없다) 그 집단, 혹은 그 집단이 대표하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개별적인 단서다. 그것은 분명 권력에 관계된 하나의 목소리이지만, 그것과 직접적으로 권력을 겨냥한 (보다 "책임있는" 위치의) 발언은 애초에 다른 성격을 갖는다. 아직 한국사회의 많은 이들, 특히 자신이 지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사태를 순수히 법적인 층위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은 결코 법적인 영역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특히 대중의 정념과 관련된 영역은 말이다.


행진을 더 이상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간 후에 또 다시 대량의 인원이 연행되었다고 뉴스가 나왔다. 지금까지 누적된 연행인원만 해도 (08촛불의 비슷한 시점과 비교한다면) 상당한 수다. 확실히 경찰이 지난 6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것, 그들의 집회관리기술이 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식적인 집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여 인정한 후, 그게 끝나고 조금이라도 정해진 선을 넘는 순간 신속하게 포위하여 연행한다. 지금은 연행에 대한 매뉴얼적인 조치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연행->구금->신속한 사법적 조치로 연행된 이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집회 참여를 고려하는 인원들의 참여의향을 꺾는 방식은 현재 매우 효과적으로 실천되고 있다. 지인 중에서도 (물론 집회참여경험이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지만) 연행이 무서워서 못 나온다는 사람이 실제로 있고. 사실상 현재 집회참여인원의 상당수가 "합법적"인 틀 안에서만 움직이길 고수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 틀을 좁혀놓고 그 틀에서 삐져나오는 소수만 포착하면 경찰은 "전장에서의 숫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전략을 관철시킬 수 있다; 사실 순수하게 사실적으로 기술한다면 만 단위 이상이 남아서 움직일 경우 경찰이 연행으로 그 인원을 제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무엇보다 유치장 개수가 모자란다...). 단지 이 집회와 참여자들의 다수가 안전하게 남아있기를 원하는 한 그 선을 뚫고 나오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일 수밖에 없고 공권력은 그것을 각개격파하기만 하면 된다. 소수의 일탈자를 붙잡았을 뿐이라는 설명은 그것이 실질적인 전시효과(집회에 참여하면 벌금을 내게 될 것이다-라는)를 계속해서 강조하면서 동시에 공권력의 정당성을 심지어 집회 참여자들에게도 부분적으로 납득시키고 무엇보다 이 모든 '양떼'를 길들이는 국면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도구다. 어쨌든 전술적인 관점에서 사고한다면 현재는 이렇고, 집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르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6년 동안 경찰은 확실히 성장했고, 그에 비례해 집회의 기술은 성장하지 못했다(이것이 조직화된 힘과 그렇지 못한 힘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너무 집단주의적인 것일까?).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세월호 및 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기 전에 (마치 기를 모으듯) 엄청나게 눈을 깜빡거리고 그 뒤 30초 가까이 눈을 부릅뜬 뒤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 나왔다. 한번 직접 영상을 보고 그의 준비성과 연기력을 확인하고 싶다(여기에 링크가 있다...http://blog.daum.net/dldudwn319/5064). 루리웹에서 출발 전날 글을 남기고 결국 사망한 이의 글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많이 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눈물이 나왔다. 특히 혼자 있는 이들에게 이 나날들이 많이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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