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인문학과 대학: 비판적 논평 하나

Critique 2020. 7. 6. 02:14

김우재 선생의 문제적인 칼럼(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1480.html)에 대해서 이미 여러 인문학 전공자들이 비판적인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나도 (인)문학전공자이기도 하고, 인문학 자체의 역사에도 어느 정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덧붙인다.


김우재 선생의 글은 (그의 이전 글이 종종 그랬듯) 대학과 인문학을 다룬다. 유감스럽지만 이번 글은 필자가 대학도, 인문학도 잘 모른다는 걸 보여준다.



1. 


먼저 필자가 대학에 관해 내놓는 설명부터 살펴보자: "근대과학이 대학의 학제에 포함되면서 실험실이 생겨났고, 이후 미국에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중심대학이 파생된 것이 중세 이후 변화의 전부였다. 대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변화에 게으르고 무책임한 조직이다. [...] 대학은 원래 학문을 탐구하는 곳으로 시작되었고, 그 본질을 지키면서 사상의 자유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추동해온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 대학은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학은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전락했다. [...] 대학이 변질되면서, 학문 탐구를 담당하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대학원으로 이전되었다. 대학이 추구하던 원래 모습을 간직한 곳은 대학원이다."


필자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된 기본적인 대학사 연구서부터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중세 이래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직업인 양성소로서의 기능이었다. 이는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학위를 주었는지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법률가와 의사는 물론, 애초에 성직자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19세기까지) 국가/사회통치기구의 중요한 일원이었던 서구 세계에서의 신학학위까지 포함해, 대학은 국가의 통치 및 사회에 필요한 특정한 지식인 집단을 길러내는 기구였다(그리고 개개의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한 직업적 경로에 입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대학이 변하지 않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현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학이 국가/사회에서 차지하는 근본적인 기능에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학문을 탐구하는" 본질에 기초해서 "사상의 자유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추동해온" 곳으로서의 대학이 실제의 대학사에서 존재했는지에 관해 나는 무척 회의적이다. 대표적으로 칸트를 포함해 몇몇 사상가들이 특수한 논쟁상황 속에서 (가령 칸트의 경우 한번 출판금지를 당했다가 풀려난 이후에-)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러한 논리를 내세운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의 68운동이나 한국의 1980년대 대학가의 학생운동권과 같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그러한 이념은 어디까지나 비교적 소수의 연구자들이 신봉하는 믿음의 차원이었으며 실제로 대학이 그러한 공간으로 기능했다고 볼 이유는 없다. 그건 68의 유럽과 80년대의 한국이 각각 유럽과 한국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시기였던, 달리 말해 딱히 일반적인 시기가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정리하자. 김우재 선생의, 공정히 말하자면 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여러 연구자들이 은연 중에 공유하고 있는, 대학관은 역사적으로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다른'이 아니라 '틀린'이다). 그가 대학사 연구에 관해 무엇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신뢰할 수 있는 튼튼한 연구를 참조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이에 관해서 나는 일전에 간단한 소개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begray.tistory.com/516). 물론 앞으로의 세계가 지금까지의 궤적을 따르리라는 법은 없고, 이는 대학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의 코로나사태가 국가통치기구와 전문지식(생산)의 위상 및 양자의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줄 전망이 그걸 약화시킬 가능성보다는 더욱 커 보인다. 대학원과 연구소들이 담당하는 연구기능은 물론, 미네르바스쿨로 대표되는 원거리/비대면 교육의 확산이 코로나사태 이후의 학부교육을 과연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도 쉽게 예측하긴 어렵다(이에 관한 나의 견해는 이 포스팅을 참조 https://begray.tistory.com/518).


물론 현재 한국 대학과 교육부가 드러내는 혼란과, 그에 일조한 일부 교원들의 무책임과 태만에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념이 곧 잘못된 사실인식에 기초한 근거없는 이야기를 언론칼럼에 내지르고 보는 자세를 정당화해주지는 못할 성싶다. 블로그에 개인의 감상을 쓰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연구자로서의 직함을 달고 공적인 지면에 기고하는 거라면, 필자에게 지금보다는 좀 더 정확한 사실관계와 괜찮은 분석을 요구하는 게 나의 잘못인가?



2. 


김우재 선생의 글에서 다루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인문학이다. 그의 다소 혼란스러운 글에서 핵심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문학은 "주로 텍스트 독해와 강독 등으로 구성된" 분야인데(다만 필자는 이러한 활동이 중세에서부터 변한 것이 없는 초보적인 지적 행위라고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비대면과 온라인수업의 확산, 즉 "디지털화"로 인해 그러한 교육행위는 대학에서 자리를 상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사상의 자유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사회비판의 업이다. 이는 원래 대학의 존재이유였는데, 오늘날 대학이 이러한 역할을 방기하고 있으니 인문학도 마음 편하게 대학 바깥으로 나가서 기쁘게 사회비판담론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믿음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나, 인문학은 전문화된 지식 생산 행위의 성격을 갖고 있지 못한 교양비판의 학문이다. 둘, 디지털화되는 대학에서 인문학과 교양비판은 버림받을 것이며,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대학에 대항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첫 번째 전제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우재 선생이 인문학에 대해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인문학에 관한 몇몇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문학 교수들이 쓴 신문칼럼을 열심히 읽었을 수는 있겠다) 확실한 사실은 그는 여러 인문학 분과의 역사와 실제 연구양상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혹은 중세 후기에서부터 다른 시공간의 문헌--주로 로마법과 성경이라는, 당시 국가와 사회의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전거를 제공하던 고전텍스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교정하는 문헌비판의 테크닉은 인문주의자들과 문헌학자들을 통해 발전된 전문적인 학문적 기예였다. 물론 때로 그런 형태의 문헌비판이 '사회비판'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지식인들의 (틀에 박힌) 사회비판'과는 달랐다. 예컨대 로렌초 발라의 콘스탄티누스 기전장 연대 교정에서처럼 문헌비판 교육을 받은 이들은 통치자들의 정당성과 권한을 뒷받침하는 여러 논리들을 검토했으며, 개중에는 마키아벨리와 피렌체의 정치사상가들처럼 고전문헌의 검토를 통해 일종의 정치/사회이론모델을 구축한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종교전쟁과 계몽주의를 일부 사회비판적 대중지식인에만 초점을 맞춰 협소하게 이해하는 과거의 통념을 답습하지 않는다면, 19세기 이전에도 대학과 각종 학술원, 지식인 협회가 법적인·정치적인 정당성 외에도 (주어진 자료 내에서) 유럽의 각 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유럽 바깥의 오래된 나라와 민족들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두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 타당성을 검토하며 (필요하다면 추론적 역사학과 같은 이론적 기법을 활용해서라도) 각국의 역사와 핵심원리에 관해 종합적인 상을 제출하기 위해 풍성한 시도를 해왔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삼권분립을 소개헀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법의 정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 따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18세기 초중반 유럽에서 구할 수 있던 자료들을 통해 일종의 사회이해모델을 구축하려 했던 하나의 전범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전문화'에는 당연히 체계적인 학술적 주석 작성과 같은 학술적 글쓰기의 형식 성립 또한 포함된다. 그리고 19세기 독일대학의 역사학자들은 한결 엄격한 사료비판과 문서고(아카이브) 활용, 학계에서의 논쟁 등을 통해 자신들을 '18세기의 아마추어들'과 구별되는 전문연구자/학술인으로 제시하고자 했다(이 시기 '전문적이고 엄밀한 학문'으로서 스스로를 정립하고자 한 것은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말해, 유럽사에서 근대 인문학의 핵심은 사회비판적 정신이라기보다는, 좁게는 기존의 문헌/지식을, 넓게는 국가와 사회를 포함한 세계를 가능한 정확하게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목표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갖가지 학문적 장치들의 수립과 고도화라고 보는 게 역사적으로 좀 더 타당한 진술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학문적 수단을 활용하여 문명과 사회를 비판하고 자신의 대안적 전망을--그것이 얼마나 말이 되든 간에--제시하고자 한 사상가들은 계속 존재했으며,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후대에 '인문학의 영웅'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영웅들에 집중해서 실제 인문학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그 핵심적인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간과한다면 곤란하다.


필자의 두 번째 전제를 논하기는 좀 더 까다롭다. 미국 대학들을 포함해 많은 대학들이 점점 더 STEM을 포함해 사회 및 시장의 수요가 큰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을 위한 자리의 비중이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으나 인문학계가 특별히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미래의 전망이 들어맞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겠다.


우선 나는 (코로나와 무관하게) 대학에서 인문학 전공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입증하는 방식의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김우재 선생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생존투쟁이 지식생산의 한 기술로서, 혹은 전문적 영역으로서의 인문학적 훈련을 포기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사회비판/시민사회담론으로서 축소되는 형태를 통해서 가능할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대학 바깥으로 나간 인문학자 집단 중에 유의미한 수준의 지적 재생산에 성공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거니와(가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놀라운 독학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학술지식의 생산에 기여하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미 대학에서 훈련받은 인문학 연구자들 또한 전문적인 연구를 포기하고 '비판적 지성'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일정 시점 이후 똑같은 논리를 반복하는 고장난 시계가 되지 않은 사람도 없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예를 이미 많이 알고 있으며, 그들의 인격은 존경받을지언정 그들의 발화는 적어도 지식의 측면에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무용한 외침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 지 오래다. 그저 몇 가지 미사여구를 통해 준엄한 목소리로 사회의 치부를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일이라면, 굳이 인문학자가 아니라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 많이 있다. 김우재 선생이 제시하는 길은, 물론 배수진을 치고 '근성!'을 강조하는 슬로건 정도로 좋게 받아들일 순 있겠지만, 인문학에게는 생존이 아니라 자멸의 길에 가깝다.


전문지식인으로서의 인문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과정은 좋든 싫든 하나 밖에 없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이 생산하는 전문지식이 사회와 국가에, 혹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을지를 입증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들은 인문학교육을 단순히 잡다한 생활상식과 아름다운 감성충전의 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학생들에게 졸업 이후의 삶에서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는 역량을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재편해야 한다. 그것이 직업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한 역량이든 간에(어쨌든 대량의 자료를 주어진 시간 내에 정확하게 이해하고 유효한 분석을 명료한 언어로 도출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정치적/사회적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든 간에 말이다(오늘날 미국은 아무리 풍요롭고 기술적으로 발전한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다수의 시민이 적절한 시민적 교육을 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행복하게도 과거의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노력 없이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며, 그 결과 현재의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이 맞이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언어와 방책을 여전히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답변 비슷한 것으로 찾아낸 '기초학문의 보전'과 '인문학 대중화'라는 두 가지 논리는, 물론 그것이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겠으나, 인문학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하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좀 더 제대로 된 답변의 시도가 필요하다. 그때 핵심은 '어떻게 전문지식/교육으로서의 인문학이 국가와 사회에 자신의 역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가'가 될 것이다.



3. 


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김우재 선생의 잘못된 사실인식에 근거하여 잘못된 해답(?)을 내놓는 칼럼을 온전히 필자 개인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은 공정한 태도는 아니다. 우리는 전현직 인문학자들, 인문학으로 이름을 알린 비판적 지식인들이 그 핵심적인 인식이나 논리에서는 김우재 선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를 외쳐왔음을 잘 알고 있다. 김우재 선생이 초파리 연구자가 아니라 인문학 전공자였으면 과연 지금과 같은 수준의 비판을 받았을까? 그가 그 자신의 논의가 오리지널한 것이라고 믿는지와 별개로, 그의 주장 대부분은 사실 이미 한국 인문학계의 적지 않은 '어른'들이 술자리에서, 지면에서, 강의실에서 되풀이 해 이야기해 온 클리셰에 지나지 않는다(따라서 인문학계의 일부 '어르신'들이 이 글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샤워를 마친 남자아이들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매료되는 것은 흔한 난치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 전공자들 혹은 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둘러싼 논쟁에서 진정으로 향해야 할 지점은 김우재 선생이 얼마나 맞고 틀리냐가 아니다. 그가 필자의 논의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필자의 잘못 이전에 시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낡아빠진 자기인식을 지속하는 한국 인문학계/지성계의 문제다. 이제는 어르신들의 좋았던 시절에나 통용되던 잘못된 답변을 내놓는 일은 그만두고 좀 더 괜찮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보는 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일이 아닐까? 많은 인문학 지성들이 공리주의를 저열하고 저급한 것이라 무시하지만, 우리가 지금보다는 좀 더 높은 효율로 더 큰 효용을 추구할 필요는 있다--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P. S. 진보언론도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으면 전문지식에 관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지적 기준을 갖추기를 바란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대학원생들조차 진보언론이 대학/고등교육/전문지식에 관해 무언가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믿지 않는다. 데스크의 눈에 괜찮은 글이라고 뽑아놓고 보니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여 같이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꼴을 언제까지 반복할 요량인가? 인생에 도움이 되고 싶으면 교수/전문가 기고자 선정 퀄리티가 탐사보도 퀄리티의 반의 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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