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현실, 정치의 범주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노트
Critique 2019. 6. 7. 14:51지난 며칠 간 이런저런 학술행사에 들를 일이 있었다. 문학, 정치, 역사의 관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자리였는데, 잠시 시간이 나는 김에 단상을 남긴다.
1. 문학작품과 현실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사람들, 특히 "이론"을 베이스로 출발한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과거의 문학텍스트에 자신에게 익숙한 이론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거나, 텍스트와 저자가 그러한 이론틀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해는 대체로 텍스트, 저자, 언어가 속해 있는 수많은 맥락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거나 매우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며, 언어적 조형물의 섬세함을 대패와 같이 밀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이론적 읽기'가 실제로 풍부한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는 얼핏 생각하면 그럴듯한 주장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인간의 다양한 신체적 잠재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이 반대편에 있는, 그리고 지금 다루고자 하는 마찬가지로 심각한 오류는 특정 시대의 문학텍스트가 그 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며 또 그걸 읽어내는 게 유의미한 연구라는 주장이다. 보통 (문헌학적/지성사적 훈련을 받은 적 없는) 역사가들 혹은 그러한 논의를 의심없이 수용하는 일부 순진한 문학연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전제는 텍스트가 생산되는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명백한 오류다.
"사회반영론"이란 태그가 붙을 수 있는 이러한 입장은 애초에 과연 텍스트의 생산자 혹은 저자가 '사회적 현실'이란 걸 재현하려고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위태롭게 흔들린다. 발자크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들, 그리고 자신들의 저작이 세계를 '재현'한다고 믿었던 일군의 작가들을 제외하면, 과거의 텍스트 대다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령 그러한 의식을 갖고 쓰는 경우라고 해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데, 글쓰기 장르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자라난 세계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당시의 예술적 유행을 포함해 수많은 담론적·관습적 맥락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생산은 생산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저항불가능성이니 담론의 감옥이니 하는--이건 처음부터 특정한 텍스트가 저항이나 해방을 의도하고 있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서만 유의미해지는 이야기다--한참 전의 클리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관념적인 층위에서조차도, 행위자로서의 작가는 그가 맞닿아 있는 다양한 언어적 맥락·관습을 자원으로서 삼아서, 그리고 오로지 그것들을 활용해서만 행위로서의 텍스트를 '직조'할 수 있다. 맥락은 행위자들의 한계를 노정하지만 동시에 풍부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가능성의 자원이다(그런 점에서 '담론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방정치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인간사회의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 광신의 소산이다; 사회의 개선은 사회 내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서의 요점은, 따라서, 텍스트가 자신에게 주어진 언어적·관습적 자원을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그러한 맥락 속에서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뛰어넘어 거기에서 어떠한 사회적 현실의 반영을 찾아낼 수 있다는 비역사적인 믿음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일자의 유출에서부터 세계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신플라톤주의적 존재론을--이러한 신비주의는 오늘날엔 종종 "구조와 그 반영" 혹은 "무의식에서 드러나는 진실"과 같은 진부한 도식으로 반복되곤 한다--진지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마찬가지 이야기를 "인격"의 문제에서도 할 수 있다. 비학문적인 독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문학연구자들에게도 왕왕 엿보이는 이러한 오류는, 과거의 특정한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이 마치 오늘날 우리들 자신과 같은 한 명의 "인격적 존재"인 것처럼 규정하고, 등장인물의 행위와 선택을 우리에게 친숙한 오늘날의 윤리적·과학적 기준에 입각해 기술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태도로 나타난다.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겠다. 가령 어느 순진한 이공계 학부생이 우연히 중세 성자전(hagiography)에 나오는 기적들을 보면서 "이건 다 과학적으로 틀린 이야기인데, 이 성인들이라는 사람은 정말 얼척이 없네, 이건 볼 필요가 없어!"라고 반응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문학연구자들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러한 이야기가 어떠한 글쓰기 관습 내에서 쓰여졌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답변할 것이다. 정확히 마찬가지의 지적을 문학텍스트의 등장인물을 읽어내는 독법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설령 텍스트의 저자가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을 문학적 장치가 아닌 하나의 고유한 현실적 인격으로 그려내고자 한 경우라고 할지라도--물론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저작은 전체 문학사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해당 저자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도덕적 측면을 포함한) 인간학이 어떤 것이었는지, 인물과 행위를 그려낼 때 어떠한 문학적 관습이 적용되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있다. 오늘날의 독자가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윤리적 상식을 그와 매우 다른 세계에서 빚어진 텍스트의 등장인물에게 그대로 적용할 때, 그 결과는 텍스트에 대한 풍성한 독해보다는 오히려 해당 독자가 비판적 거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학적 전제들이 얼마나 특수한 것이었으며 또 얼마나 편협하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근대소설(novel)이라 부르는 장르를 포함해 많은 문학텍스트는 독자들이 그 등장인물들에 어떠한 형태로든 감정적 이입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교묘한 장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등장인물이 현실의 인격과 같은 층위에 놓여 이해되어야 함을 뜻하지는 않으며, 우리 자신의 인간학적 기준을 다른 시공간에서 배태된 텍스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적어도 성숙한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서 "현실"이라는 말의 용법에 내포된 트리키한 지점을 지적하고 싶다. 오늘날 다수의 문학연구자들은 물론 단순하고 거친 반영론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텍스트가 어떤 현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거나, 그러한 '드러냄'을 잘 읽어내는 연구가 중요하다는 식의 태도는 일반독자와 연구자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문학이 현실을 보여준다-는 식의 진술에서 "현실"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점부터 말하자면 명확한 개념적 실체로서의 "현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이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독자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기를 바란다.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서, 다른 모든 것들 그저 '재현'으로 만들어버릴 뿐인 특권적 위치로서의 "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가? "물리적 현실"이나 "경제적 현실", "계급적 현실", "정치적 현실", "성차별적 현실" 등등에서처럼 "현실"이라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오로지 한정적인 맥락 내에서 쓰일 때만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이런 예들에서 "현실"은 무언가 거짓된 것, 겉으로만 그러한 것, 잘 알려지지 않은 것 등과 대비되어 존재하는, 오직 그러한 대극적 위치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수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문학이 현실을 드러낸다-는 진술로 돌아가보면, 그 토대에는 어떠한 (가치있는) 사실을 "현실"이라는 우월한 위치에 설정하고, 문학텍스트를 그 반대편에서 그러한 현실의 "재현"/"대표"(representation)로 설정하는 양극적인 존재론이 깔려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존재론에 입각한 재현의 수사학이 많은 경우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정치체제를 포함한--대의/대표민주주의 정부는 그것이 다수 인민의 의지라는 가장 중요한 "현실"을 재현/대표한다는 전제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여론(public opinion)의 용법 또한 마찬가지다--여러 영역에 깊숙히 들어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설령 유용하고 바람직한 허구(fiction)일지라도 허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며, 연구자들이 그러한 수사학을 하나의 실체라고 믿어버리면 곤란하다. 우리는, 적어도 연구자들은, 우리 자신의 삶이 메타적인 층위에 놓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에조차도 메타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어떠한 "현실"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뒤섞어버리는 허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겠다. 적어도 문학의 영역에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문학적 실천들은 그때그때 발화자의 편의에 따라 지정되는 어떠한 "현실"의 재현물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인간세계의 현실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여기에서 나는 재현-현실의 수사학 혹은 그러한 논리에 입각한 존재론이 아닌 인간세계의 제각기 다른 실천들을 "현실"(들)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를 채택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간에, 적어도 문명화된 인간들은 문학텍스트를 생산하고, 향유하고, 공유하고, 그로부터 언어와 사유를 습득하고, 다시 자신의 언어와 사유를 텍스트에 기입하고자 노력하고, 문학의 생산과 향유를 위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법과 관습을 구축하고 이를 다시 수정하는 등등의 행위를 해왔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지칭하는 (수사학적인) 개념으로서의 "현실"이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는 인간들이 대부분의 사회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문학적 실천을 수행해왔다는 것이야말로 분명한 현실임을 무미건조하게 지적하겠다. 문학텍스트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경제적이든 뭐든 다른 종류의 현실"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바로 그러한 이유에 기대어서만 문학텍스트 및 그 연구가 가치있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빠져들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문학은 그 자체로 인간사회의 상당한 영역을 차지하는 고유한 현실, 적어도 그 현실의 일부분이다. 문학연구가 인간과 인간세계를 탐구하는 하나의 전문화된 학문적 분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비록 많은 경우 그 방법론적 논의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았음은 인정해야겠지만--일차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문학이 광범위한 현실로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다른 모든 현실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학이라는 현실이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혹은 본질적인 영역을 차지한다는 주장은 틀렸다. 그러나 그것을 배제할 때 인간 삶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는,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매우 불완적해지게 될 거라는 지적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나는 문학연구를 초월적이고 특권적인 진리 혹은 행위-외재적인 현실의 추구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특정한 영역을 구성하는 역사적 실천들에 대한 학문적 탐구로서 규정한다.
2. 정치의 범주와 역사
과거의 정치사상 혹은 정치언어를 탐구할 때,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적인 것의 범주 및 이론틀을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가능한가? 조금 달리 말해, 오늘날 우리들, 보다 정확히 말해 정치사상·철학·이론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지니고 있는 정치의 범주--공론장, 민주주의 등등--는 다른 시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보편성을 갖추고 있는가? 이 글의 독자들이 이러한 물음에 대한 나의 답변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상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서구 초기 근대 정치사상에서 '마키아벨리적 전통'이라 부를만한 언어를 예로 들어보자. 특히 <로마사 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정치체가 어떠한 조건에서 강성해지고 쇠락·멸망하는지를 주의깊게 검토했다. 거칠게 말해 마키아벨리는 정치체가 언제 어느 순간이든 너무나 쉽게 몰락할 수 있는 것인양 말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운명(Fortuna)의 작용일 수도 있고, 정치체 혹은 그 구성원들의 덕성/역량(virtù) 이 쇠락해서일 수도 있다.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몰락을 늦추고 막아내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입법, 정확히 말해 정치체의 통치시스템을 어떻게 정교하게 설정하느냐에 있었다. 시민군에 토대를 둔 민주정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지지에서 알 수 있듯, '입법의 과학'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정치체의 부패·약화를 막기 위해 정치체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덕성/역량 자체가 제고될 수 있는 제도적 구조를 탐색하고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마키아벨리의 세계에서 제 아무리 철저하게 고안된 법=통치체제라 할지라도 덕성/역량의 부패를 완전히 막아내기란 불가능하며, 일단 덕성/역량이 부패해버린 순간에는 가장 훌륭한 제도조차도 애초의 의도와 전혀 반대되는 결과를 이끌어내면서 오히려 정치체를 더욱 몰락으로 이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데 있었다. 요컨대 정치체의 명운이란 부패라는 거대한 적군에 의해 포위당한 고립된 성채와 같아서, 최초에 성채를 어떻게 축조했느냐에 따라, 혹은 때로 성문 밖의 적을 일시적으로 몰아내고 덕성을 고조시키는 쾌거에 따라 부패의 잠식과 몰락을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으나 결국에는 예정된 최후를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적 역사관은 마찬가지로 로마공화정 및 제정의 몰락과정을 정치체의 역사적 전개에 관한 표준적인 참고모델로 삼았던 수많은 초기 근대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이론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상업사회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질적인 민족들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면서 시민사회의 역사적 경로가 지닌 복잡성을 한층 더 깊은 수준으로 고려하게 된 18세기 유럽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18세기 유럽 정치사상의 표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극단에 가까운 장자크 루소를 예로 들어보자(물론 나는 마키아벨리에서도 그러했듯 루소에 대해 전혀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의 진술은 비전문가의 거친 도식으로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여전히 유통되고 있는 오해 속에서 <사회계약론>이 직접민주주의나 심지어는 (루소가 명시적으로 비판하는!) 숙의 민주주의의 교본처럼 거론되기도 한다(이러한 오해를 교정하는 유용한 글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민철, 「루소의 <사회계약론> 해제」<http://www.egaliberte.com/2019/03/blog-post.html>). 그러나 <학문예술론>, <인간불평등기원론> 등의 논고에서 드러나는 루소의 역사관에 짧게라도 주의를 기울여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전술한 마키아벨리적 전통을 포함해 서구 초기 근대 정치사상의 언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계약론>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입법의 과학'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는 어렵다. 인간/시민들의 권리와 정치체의 기원,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를 법률의 언어로 다루는 (그로티우스, 홉스, 푸펜도르프 등으로부터 비롯되는) 자연법 전통, 정치체제의 형태와 균형·부패의 문제를 역사와 덕성의 언어로 풀어내는 (마키아벨리와 해링턴 등의) 공화주의 전통이 혼재된 <사회계약론>은 결국 어떠한 정치체가 안정된 형태로 지속될 수 있는지, 자신의 몰락을 늦출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묻는 텍스트다(루소의 '입법의 과학'에서 자연과학적 언어의 흔적을 읽어내는 흥미로운 글로는 김영욱, 「일반의지의 수학적 토대와 비관주의: 루소 『사회계약론』 2권 3장의 해석 문제」, 『한국정치연구』 26.1(2017): 27-51 참고).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마키아벨리적 역사관을 받아들인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루소 또한 정치체의 명운이 '입법의 과학' 혹은 통치제도의 설계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풍속·예의범절(manners), 보다 분명하게는 인민의 덕성/역량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느냐가 정치체의 흥망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임을, 정부형태의 선택을 포함한 입법의 기술은 그에 부분적인 영향만을 끼칠 수 있음을 루소는 명확히 하고 있다(<사회계약론>에서는 2권 12장에서 제4의 법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라). 우리는 이때 초기 근대, 종종 19세기 이후의 정치적 언어에서 풍속 혹은 인민/정치체의 덕성은 관습, 문예, 종교, 남/여성성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표현하는 언어는 단순히 인간사회의 여러 측면을 기술하는(descriptive) 역할을 넘어 규범적인(normative) 차원까지 포함했으며, 그 끝에는 정치체와 문명사회의 운명까지도 걸려 있었다--'남자다운 덕성'(manly virtue)이 곧 시민됨의 핵심인 세계에서, 여성화(effemination)는 단지 몇몇 개인들의 시민적 덕성의 상실을 넘어 문명 전체의 부패와 쇠락을 촉발하는 요인일 수 있었다(그런 점에서 특히 공화주의적 전통에 입각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오늘날의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모두 여성혐오자들로 불릴 수 있었다). 보다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초기 근대를 거치면서 세속적인 정치사상이 교회통치 및 신학적 논쟁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범주로 형성된다는 주장은 최소한 두 가지 지점에서 명백한 오류인데, 먼저 교회통치와 신학논쟁은 18세기에 (적어도 영국의 경우엔) 그 자체로 여전히 정치적 논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루소 본인의 시민종교론에서도 볼 수 있듯 정치적 사유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언어에서 오늘날 정치철학이란 것의 핵심적인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법과 권리의 언어 못지 않게 도덕적·역사적 언어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현실의 토대에는 개별 시민의, 가족의, 정치체의 덕성/역량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오늘날의 정치이론 연구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존재론이 자리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정확히는 연구자들이 전제하는 식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분리하고 전자를 정치적인 탐구의 영역으로 설정하는 논리는 초기 근대의 정치사상/언어를 이해하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나는 마지막으로 과거의 사유와 언어에서 정치적인 것을 이해할 때 오늘날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질문하고 싶다. 오늘날 일부 정치철학/이론 연구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정치적인 것'의 범주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예컨대 '근대적인' 정치적인 것의 범주가 국가와 공적인 영역의 독립으로부터 이어진다는 (최소한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의 <근대사에서 국가이성의 이념>부터 출발하는) 설명의 경우나,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통치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경우, 우리는 그러한 논리에 전제되어 있는 정치의 범주 자체가 매우 특수한 역사적 맥락 내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바꿔말하면 우리 자신의 세계를 포함해 그러한 전제가 등장하고 공인된 세계와는 다른 시공간에서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논의가 다른 전제 위에서 다른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것, 현재 일부 연구자들이 자명한듯이 설정하는 정치적인 것의 범주가 보편적인 개념도, 가장 우월한 개념도 아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디까지는 정치적인 탐구의 영역이고 어디부터는 아니라는 식의 경계선 설정은 실제 사례로 파고들어갈수록 더욱 쉽게 말하기 어려워진다. 특히나 언어와 사유를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연구자라면, 우리가 수업에서 배우고 논문에서 읽는 사유체계에 전제된 틀이 과연 우리 자신의 세계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데, 바로 여기의 정치적 행위자들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사고하고 행위하는 데 적절한지 여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학문과 연구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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