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 연구와 그 실천적 활용에 관하여

Comment 2020. 4. 19. 13:56

아래는 2020년 4월 17일 오후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Zoom)에서 열린 <포럼 대학의 미래>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간략히 수정하여 올린 글이다. 토론문은 크게 발표자의 핵심주장을 요약하고, 서구의 대학사 연구, 특히 학문사/학술사적 연구조류를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고, 역사적 접근법을 바탕으로 어떤 유효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를 매우 가볍게 제안하고자 했다. 한국 사회에서 고등교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그 의의는 (한국 자체가 몰락하지 않는 이상) 줄어들지 않겠으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고등교육/대학(원)이 어떻게 만들어져왔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으며, 어떤 전망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소수의 선구적인 노력을 제외하면 아직도 고유한 지적인 분야로 성립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의 주요 인사들은 정치인들의 무지를 비난하곤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대학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기구가 부재하다는 걸 심각하게 인지하는 교수들은 극히 드물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학은 그 바깥을 관찰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관찰해야 한다.


이 토론문이 그런 문제의식이 공유되는 데 아주 약간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언급한 볼프강 베버의 <유럽 대학의 역사>는 문장이 조금 딱딱하게 읽힐 수는 있지만 정말로 아주 좋은 책이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9640611 / 지성사 연구에서 보면 약간의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소한 문제다). 대학과 지식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시간을 들여 읽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사실상 한국에 번역소개된 책 중에서--적어도 지금 구할 수 있는 책 중에서--전문대학사 연구자가 쓴 유일한 책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역자도 대학사 연구자다).


**토론문에서는 다룰 시간이 없어서 넘어간 점을 보충설명하자. 요시미 슌야의 <대학이란 무엇인가>는 적어도 서구 대학사 소개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낡은 문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종종 잘못된 도식에 입각한 오류를 범한다. 종교/교회는 19세기까지도 대학 내의 지식생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으며(가령 헨리 뉴먼의 <대학의 이념>의 경우, 콜리니Stefan Collini의 2012년 책 3장에서 지적하듯이, 단순히 국민국가적 교양대학이 아니라 신앙과 이성, 공동체적 도덕의 결합을 핵심적인 규범으로 두고 있다), 초기 근대에 널리 보급된 인쇄기는 대학과 충돌하는 별개의 미디어가 아니었으며 대학의 구성원들 또한 인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책이 쉽게 읽히는 건 장점이지만, 서구의 지적 풍경을 이해하는 데 의지할만한 책으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빌 레딩스의 책은 특히 '진보적' 대학론에서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는데, 기본적으로 리오타르의 논리구조 및 1990년대 미국 '이론' 필드에서 유행했던 거대서사(국민국가의 붕괴와 초국가적 자본의 세계지배 등등 이제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에 토대해 미국 대학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적확한 기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뿐더러, 대학사를 제대로 다룬다기보다는 몇몇 주요 인물의 텍스트를 비역사적으로 읽고 나열하는 점에 그치는, 지성사적으로도 신뢰할 수 없는 책이다. 이미 영어권에서 많이 인용된 책이니만큼 비판적인 검토를 위한 용도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추천할만한 책이 아니다.


꼭 전문 대학사 연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비평적' 통찰을 주면서 인문학/인문대학의 위기에 관해 참고할 만한 책을 찾는다면, 차라리 토론문 주석 1번에 언급한 스테판 콜리니의 책들을 보라. 콜리니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의 문학/도덕적 담론을 지성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 연구자일 뿐더러, 대학 문제와 관련해서 지금도 London Review of Books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기도 하다. 아직 번역계약이 비어 있다면, 두 책 모두 그리 두껍지 않으니만큼, 빠르게 번역되어 요시미와 레딩스 등등의 책을 대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포럼 대학의 미래> 4월 집담회 토론문 

대학사 연구와 실천적 활용 

2020년 4월 17일 

이우창(서울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먼저 정준영 선생님의 발표(‘대학,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대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 넘어서기’)를 듣고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토론에서는 크게 세 가지 사항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발표내용을 제가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짧게 말씀드리고, 다음으로 서양의 대학사 연구 중 특정한 경향에 관한 짧은 소개를, 마지막으로는 그러한 역사 연구가 (아마도 포럼에 계신 분들께 더욱 중요할) 연구자들의 실천적인 과제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정준영 선생님의 발표는 요점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한국 인문사회학계에 통용되는 ‘대학의 위기’ 담론에는 대체로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이 대학에 특정한 ‘본질’ 혹은 그로부터 도출된 규범적 지향을 강하게 전제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러한 본질 또는 규범적 지향에 입각하다보니 정작 “대학이 실제로 직면하는 현실들, 그리고 해당 사회 속에서 대학이 실질적으로 떠맡았던 역할을 [대학] 분석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즉 대학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발표자가 제안하는 것은 기존의 본질론·규범적 지향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대학에 대한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입니다. “대학을 하나의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로 보려는 태도를 버리고, '대학'을 때로는 현미경으로 때로는 망원경으로 들여다 볼 필요도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학의 문제, 즉 우리의 대학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지금의 역할을 하는가의 질문은 역설적으로 ‘대학이란 무엇인가’ 방식의 정의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을 때, 이를 좀 더 경험적인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대학이 하나의 제도로서, 하나의 문화적 장치로서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어떻게 배태되어왔는지가 더 명료하게 보이지 않을까?”와 같은 진술은, 특히 ‘제도’와 ‘장치’와 같은 키워드에서 볼 수 있듯, 거시적 구조에만 집중하는 대신 넓은 의미의 사회사적 접근에 따라 실제로 대학의 운영에 작동하는 다양한 요소 및 그것들의 배치에 초점을 맞출 때 더 많은 것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선명하게 표명합니다. 

 


다음으로는, 저는 기본적으로 18세기 영국 지성사·문학연구자이기도 하므로, 발표자의 주장에 깊이 동감한다는 전제 하에 근래 서구 대학사 연구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조류를 짧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작년까지 한국어로 된 저술 중 서구 대학사 연구의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는 저작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음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발표문에도 인용된 두 권의 책, 요시미 슌야의 『대학이란 무엇인가』(서재길 역, 글항아리, 2014[원저 2011])와 빌 레딩스의 『폐허의 대학』(윤지관·김영희 역, 책과함께, 2015[원저 1996])의 경우 지나치게 낡은 연구에 의존한 도식적인 서사를 차용하거나, 과거에 유통되던 거대서사에 입각한 유사역사적 분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학문제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 참고하기 좋은 자료는 아닙니다.1) 


다행히 올해 초 볼프강 베버의 『유럽 대학의 역사』(김유경 역, 경북대학교출판부, 2020[2002])가 출간되면서 상황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비록 출간 후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만큼 초기 근대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세속화·계몽주의에 대한 도식적인 규정이 눈에 밟힙니다만, 거시적인 정치적 맥락만 아니라 제도·자원·인적구성·학문적 실천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을 밀도 있게 조명하는 만큼 몇 차례 꼼꼼히 읽어보면서 대학사의 궤적을 구성하는 출발점으로 삼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서 책 도입부의 한 대목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대학사 연구 자체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개별 “[대학] 기관 및 학자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낡은 형태의 대학사 서술”이었다면, “늦어도 1970년경부터 시작된 대학사 연구에서는 대학의 사회사적 역할과 영향이 그 중심에 놓여” 있었으며, 두 접근방식은 “대학교육 및 학문적 활동의 외적 조건과 결과를 구명하는 것을 그 작업영역으로 본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13). 베버는 이처럼 “대학사를 대학이라는 기관에 의해 설치되고 생산된 지식의 연관 없이 단지 외면적 역사로만 서술하는 것”이 충분히 생산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며(15), 지식의 생산·유통·변화를 아우르는 학문적 실천을 역사화하는 작업, 즉 학문사적 접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며, 영국 지성사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도 최근에야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2) 학문사 혹은 학술사(history of scholarship) 연구의 성과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소개를 맡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만큼, 아주 개괄적인 수준의 정보만을 전하는 점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3) 학술사는 무엇보다도 과거의 학술적·지적 실천 자체를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분야를 지칭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태인으로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활동했던 로마사가 아르날도 모밀리아노(Arnaldo Momigliano, 1908-87)는 고전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서를 그 자체로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고문헌 자료의 수집·감정·복원(antiquarianism)과 같은 다양한 학문적 기법들이 과거의 역사서술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강조함으로써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현재 프린스턴 역사학과에 재직 중인 앤서니 그래프턴(Anthony Grafton, 1950-)을 필두로 한 일군의 역사가·문헌학 연구자들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및 종교개혁기의 다양한 학문적·지적 실천을 탐구하고 특히 문헌비판기법(criticism)과 같은 지적 실천들이 이후 계몽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초기 근대 유럽의 학문적 논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는 다양한 연구를 제출했습니다.4) 


우리의 맥락에서 짚어야 할 지점은, 초기 근대 유럽의 학술사 연구가 단지 개별 학자들의 지적 실천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머무르고 활용하고 서로 연결되었던 제도·기구, 대표적으로 대학 및 국제적인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1981년 르네상스 과학사·철학사가 찰스 슈미트(Charles B. Schmitt, 1933-86)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2000년 이후에는 중요한 초기 근대 대학사·지성사 연구자인 모더카이 파인골드(Mordechai Feingold, 1951-)가 편집을 맡고 있는 학술지 『대학사』(History of Universities)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5)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오늘날의 영어권 학계는 초기 계몽주의 시기 대학 안팎에서 벌어졌던 지식인들의 논쟁 및 대학과 지식생산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6) 


이러한 일별을 바탕으로, 저는 이제 학술사의 연구 동향을 포함한 서구 대학사 연구의 소개가 앞으로 좀 더 유의미한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점과 함께, 다양한 제도와 장치의 차원 못지않게 우리의 대학에서 실제로 대학의 여러 구성원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적 실천을 수행해 왔는지, 다시 말해 오늘날 대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지식의 생산, 유통, 혁신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더욱 중요한 연구주제로 끌어 올려져야 한다는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표자께서 강조해주신 사항, 즉 대학에 대한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인식이 어떻게 우리의 실천적 관심과 맞닿을 수 있을지에 대해 간략한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시선의 토대에는 세계 속의 존재들이 동일한 경로를 반복하지 않으며 각 시공간에 따라 고유한 문제를 갖는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1980년대의 인식에 기초한 대학담론은, 물론 그것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곧바로 무의미해지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만, 2020년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풀어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특히 한국의 대학처럼 지난 30여년간 엄청난 변화들이 발생했던 곳에는 말입니다. 따라서 실천적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선 한국의 대학과 그것이 속해 있는 조건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질문하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장치·비/언어적 자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가급적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커다란 물음에 분명히 대답하지 않은 채로 대학 문제에 대해 유의미한 실천적 지침을 구축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A. 우리의 국가와 사회는 오늘날 어떠한 지식을 요구하며 또 필요로 하는가; 국가/사회의 통치와 지식의 관계는 무엇인가? (특히 인문사회계열의 ‘문과적’ 지식의 가치는 어떤 논리에 입각하여 이해되고 있으며, 어떻게 스스로의 제도적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B. 그러한 필요 속에서 현재 대학에게 주어진 역할과 자원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유무형의 자원들, 법령 등등) 


C. 대학 "내에서" 다양한 학문적 실천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바람직한 학문적 실천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환경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가령 대학원생 및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환경은 실제로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가?) 


D. 대학 안팎에서 대학 및 학술장의 운영에 관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식에 근거하여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예컨대 대학행정, 대학평가기관, 연구재단 등의 국가기구 등등) 


E. 상기한 층위들의 분석 위에서 우리의 목표란 무엇이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의 연속은 무엇인가? 

 

요컨대 우리의 대학은 어떠한 맥락 속에 위치하며, 어떤 자원과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 대학의 구성원들, 특히 연구자와 학생들의 학문적 실천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분명히 말해 현실의 대학 구성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대학개혁운동은 모래 위의 성보다도 취약합니다)를 추상적이고 규범적인 거대도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근거에 기반한 경험적인 시선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목표와 전략을 설정하고 실천에 돌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구는, 세계에 대한 관찰은, 우리 연구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토론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 물론 이런 형태의 비판적/비평적 작업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는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사가·문학연구자이자 공적 지식인인 스테판 콜리니(Stefan Collini)의 대학론들, What are Universities For? (London: Penguin, 2012) 및 Speaking of Universities (London: Verso, 2017)와 같은 책들이 아직 한국어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2) 리처드 왓모어, 『지성사란 무엇인가?: 역사가가 텍스트를 읽는 방법』, 이우창 역, 오월의봄, 2020. 


3) 이하는 『지성사란 무엇인가?』 47쪽 옮긴이 주를 바탕으로 일부 수정 및 확장한 내용임. 


4) 그래프턴의 르네상스 연구에 관한 한국어 소개로는 임병철, 「르네상스 휴머니즘,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 『한국사학사학보』 19 (2009년 6월): 169-98의 4절을, 그래프턴의 저작 중 한국어로 번역된 것으로는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서성철 역, 일빛, 2000), 『시간 지도의 탄생』(대니얼 로젠버그와 공저, 김형규 역, 현실문화, 2013), 『각주의 역사』(김지혜 역, 테오리아, 2016) 등이 있습니다. 그래프턴의 풍부한 연구 및 서구 학술사·문헌학 전통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선집으로는, Ann Blair&Anja-Silvia Goeing eds., For the Sake of Learning: Essays in Honor of Anthony Grafton, 2 vols., Leiden: Brill, 2016을 참고.
초기 근대 "문헌비평criticism" 개념에 관한 학술사적 연구로는 Benedetto Bravo, "Critice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and the Rise of the Notion of Historical Criticism", in History of Scholarship, ed. by Christopher Ligota and Jean-Louis Quantin (Oxford: Oxford UP, 2006), 135-95 및 Nicholas Hardy, Criticism and Confession: the Bible in the Seventeenth Century Republic of Letters, Oxford: Oxford UP, 2017 등을 참고.


5) 그 외에 Rens Bod, Jaap Maat, Thijs Weststejin eds., The Making of Humanities, 3 vols., Amsterdam: Amsterdam UP, 2011-14 등도 참고. 


6) 예컨대 Dmitri Levitin, Ancient Wisdom in the Age of the New Science: Histories of Philosophy in England, c. 1640-1700, Cambridge: Cambridge UP, 2015 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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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 2020.04.21 06:30 Modify/Delete Reply

    좋은 내용입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대학의 사회적 관점이 부족하다는 느낌..^^

    • BeGray 2020.05.09 13:03 신고 Modify/Delete

      "사회적"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학사의 사회사적 접근은 (물론 한국에서는 그것도 부족하지만) 이미 한때 유행했던 흐름이라 굳이 제가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 storico laico 2020.04.21 19:50 Modify/Delete Reply

    영미권의 대학사 연구는 물론 파인골드만한 분이 없지요. 그 밖에 프랑크푸르트의 거벽이신 하머슈타인 선생과 (& 울리히 물락) 살라망카 대학사가 로드리게스-산 페드로 베사레스, 파비아 대학사 관련 연구들 (http://www-4.unipv.it/webcesup/index.php?option=com_content&task=category&sectionid=1&id=1&Itemid=68&limit=50&limitstart=50) 등을 언급할 수 있겠으나 고전 문헌들의 번역이 전무한 상황에서 history of scholarship이 얼마나 한국학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지는 큰 의문입니다.

    • BeGray 2020.05.09 13:07 신고 Modify/Delete

      제가 전혀 모르고 있던 유럽대륙 쪽의 흐름을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술사는...말씀하신 대로 고전문헌학이 한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 뿌리를 내리려면 아직 갈 길이 먼 듯 합니다 ㅠㅠ 어차피 그건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저는 현재로서는 학술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지도그리듯 소개되고 거기에서 다른 인문학 필드의 연구자들이 어떤 통찰을 얻을 수만 있어도 만족입니다(개인적으로는 17-18세기 문헌들을 뒤져보는 입장에서 문헌비판의 전통과 18세기 계몽주의의 연관성을 따라가보는 데 흥미가 있습니다) ㅠ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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