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와 한국적 모델에 대한 단상

Comment 2020. 4. 4. 21:24

책 홍보기간 동안에는 다른 포스팅을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사실 그럴 시간도 별로 없다ㅠㅠ), '코로나 사태' 한 가운데에 있는만큼 그에 대한 관찰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몇 가지 생각하고 있는 단상 중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대화로 나누었던 걸 짧게 적는다.


1.


이른바 '한국식 대응모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한국 언론들이 재인용하는) 여러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모델을 '대량의 신속한 검사 + 확진자 동선 추적 및 공개 +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 정도로 요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여기에 함의된 요점은 많은 경우 '중국식 권위주의 독재 모델이 아니라고 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도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정도일텐데, 이 문제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다룰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 반대편에서는, 물론 훨씬 소수파의 목소리긴 하지만, '어차피 개인정보 멋대로 공개하는 거 한국이나 중국이나 별반 차이 없는거 아닌가'하는 냉소적인 평가도 있다. 이런 반응들이 모두 진실의 일부를 가리키고 있는 거겠지만, 나는 그러한 평가들에서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지점도 생각해보고 싶다--바로 '일상공간의 유지'라는 측면이다.


지금까지 COVID-19 사태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진 대응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을 것 같다.


A. 중국모델. 현재 사태가 심각하게 전개된 유럽 여러 나라/도시에서 어느 정도 채택하고 있는 '전면적 봉쇄' 방법.

B. 한국모델.

C. '집단면역' 모델. 스웨덴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지역감염을 이미 상정하고 적극적인 차단조치를 취하지 않되 중환자가 발생할 경우 개별대응.


일상공간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A와 C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우한이나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에서 볼 수 있듯, 전면봉쇄는 일상적 사회공간을 극단적으로 축소하여 감염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바이러스 자체가 소멸하는 시점까지 해당 상태를 유지하는--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버티는'--걸 목표로 한다. 집단면역모델은 일상을 가능한 평상시에 가깝게 유지한다. A 모델은 중국처럼 국가의 압도적인 무력행사로 해당 상태를 유지할 수 있거나, 이탈리아처럼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다수가 납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강력한 정치적/심리적 불만을 초래한다는 문제가 있다. C 모델은 감염자 및 사망자 수가 일정 이하로 유지되고 사람들의 정부신뢰가 지속되는 한에는 문제가 없지만, 몇몇 시뮬레이션에서 예측하듯 피해 정도가 사회의 물리적/심리적 한도를 넘어서게 될 때 아주 많은 타격을 입게 된다는, 다시 말해 불확실한 리스크에 전면적으로 노출된다는 약점이 있다.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B 모델의 핵심은 구획의 분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격적인 검사'와 확진자 동선추적&공개의 진정한 의의는 사회 내에서 경계선을, 즉 바이러스위험지대와 안전지대(라고 가정되는 영역) 사이의 분할선을 긋고, 후자, 다시 말해 일상이 유지될 수 있는 범위를 선명하게 표시하는 데 있다. 1) 대량검사와 동선추적을 통해 사회 내에 바이러스가 유통되는 영역을 식별하고 2) 확진자 동선공개를 통해 바이러스 유통가능성이 있는 경계선을 표시하며 3) 나머지 영역은 '대체적으로 안전하니 일상적인 생활을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유지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게 B 모델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이때 마스크는 3의 영역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핸 추가적인 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A 모델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에 진입하려던 미국 및 유럽국가에서 빈번하게 관찰되는 생필품 사재기/매진 행위는 일상적 사회공간을 최대한 보존&공표하는 B 모델 하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필품 축적에 돌입하는 이유가 통상의 상업/사회적 삶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에서 비롯한다면, B 모델은 경계선 안쪽에서는 통상의 삶이 (비록 상당한 타격을 입은 채라 하더라도) 유지된다는 판단이 있기에 그러한 행위양식이 출현할 요인이 거의 없다. A 모델이 장기화될 시에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대규모의 국가적 조치의 필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것도 B 모델의 차이점이다.


요컨대, 검사와 같은 의료적-행정적 조치와 개인의 기본권 제약이라는 측면만으로는 국가들의 상이한 대응방식 간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일상적 사회의 유지라는 기준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유의미한 것은 아니겠지만, 코로나 사태가 어떤 변화를 초래했고 또 그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다시금 어떤 변화들을 가져올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예측하기 위해서는 국가 대 개인, 권위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순한 도식에 얽매여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 둘 보다 더 큰 수를 셀 필요가 있다.



2.


한국과 중국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가행정권력의 개입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때때로 '동아시아적' 모델로 한데 묶이곤 한다. 두 국가의 중앙집권적 행정권력이 가진 유례없는 통치능력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지만(나는 단순히 추상적인 정부형태나 개인의 권리에 기반해 가능한 많은 걸 설명하려는 정치이론모델은 현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낡고 도태된 사고방식이고 덧붙이고 싶다), 그것만으로는 양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유의미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


가장 명시적인 차이는 한국은, 적어도 현재의 한국 정권에서 시민사회의 집단적인 여론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에서 여론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조작과 통제의 대상으로서 중요하다--예컨대 정부가 얼마나 모든 걸 잘 해왔고 중국인들은 피해자들이며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중국 바깥에 있다는 걸 주입하기 위해 들어가는 엄청난 노력을 보라). 두 나라 모두 국가의 목표를 위해 개개인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제약될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집단적 여론이 어느 정도 자율적인 요소로서 정부의 결정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의 여부, 그리고 통치집단이 그러한 여론을 두려워할 대상으로서 존중하느냐의 여부를 묻는다면 두 나라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한국의 정권은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포퓰리스트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권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 중 하나는 지지율이다(물론 정권이 이러한 전략을 취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매우 강력한 지지자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강한 행정력과 그러한 행정력을 의심하고 견제하는 강한 여론의 공존이야말로 지난 20년간 한국 정치모델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가 최소한 군사독재 시절부터 시작되어 민주당 계열 정권에서도 꾸준히 유지·발전되어 온 면모라면, 후자는 김대중 정권 이래 민원실, 행정의 '서비스'화, 그리고 (전국적인 인터넷망 구축 및 대규모 온라인 커뮤니티 형성에 힘입어 태어난) 집단적 악플·온라인마녀사냥 문화와 같은 상이한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구성되었다. 한국의 국내행정력은 쉽게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지만, 그처럼 언제든지 시민 개개인의 삶을 장악할 수 있을만큼 강한 행정력이 온라인 제보와 대규모 악플을 통해 언제든 (종종 비효율을 낳을지라도) 스스로의 결정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도 역시 흔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이고 공격적으로 작동하는 여론은 경우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의 인생을 파탄에 몰아넣거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정책마저 비틀어버리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그 존재를 통해 국가행정이 보다 쉽게 개선되는 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개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심지어 같은 개인 간에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집단적인 권력으로서의 인민은 강력한 여론을 형성한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면모이자, 민주주의를 그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논의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3.


물론 상기한 사항들이 타당하다고 해서 한국적 모델의 일반적 우수성을 마음 편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강한 여론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소수자와 개인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분위기에서 강한 여론은 언제든 강한 폭력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그때 국가권력은 모든 사회구성원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포기하고 여론의 폭력을 그저 방관하기 쉽다. 더불어 모두가 기꺼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는 사회는 종종 전체적으로 볼 때 비효율적인 경로를 채택하기도 쉽다.


코로나 사태라는 맥락을 좀 더 강조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의 위기상황이 어느 정도의 시간적 길이를 가질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인지 명확한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내 생각에 재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태가 어느 정도의 시간적 길이를 가질지, 그 기간 동안 한국 정부가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예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고려가 없는 한 현재의 재정투자가 충분한지 부족한지에 대한 판단은 모래 위의 성 짓기와 다를 바가 없을 공산이 크다). 만약 여름에 거짓말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잦아든다면 충분한 정부투자에 기초해 현재의 대응방식을 두 달 간만 연장하면 될 일이겠지만, 반대로 백신의 개발이 예정보다 늦어지고-더위가 바이러스의 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완치자의 재감염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을 경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총력전 체제처럼 국가에 의한 식량배급제의 실시까지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얼마나 오랫동안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태가 장기화될 때 어떤 형태가 가장 효율적인 대응방식이 될 것인가? 요컨대, 우리의 정치적/정책적 고민이 '시간'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 모든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고찰하고 응답하기 좋은 환경에 있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이 질문들을 회피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더 가까워져 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하는 3월 22일 페이스북에 올렸던 포스팅]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독특한 지점 중 하나는, 특히 신천지와 일부 개신교회를 경로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국가-방역-교회 간 역학관계가 급속히 재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수십 만명의 신도들로 구성된 종파의 전체 인명부를 통채로 입수하고 종교단체에 집단예배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다수의 시민들이 지지하는 상황은 적어도 초기 근대 이후 기독교와 국가의 역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예가 아니다. 심지어 평소에 정권에 비판적인 경향이 강한 네이버 기사 댓글에서도 집단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에 대한 비판여론이 압도적인 편이다: 어느 베스트댓글의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지"라는 표현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국과 서구의 다른--특히 이번 코로나 감염에서 취약한 면모를 보인--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차이점 중에는 군사독재 시절부터 이어져내려온 막강한 행정력 외에도 교회와 같은 사적 집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포함된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나라에서 그것이 '실현불가능한' 과제였다면, 한국은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안 했던' 과제였던 것이다. "전광훈 교회 ‘다닥다닥’ 모여 매일 예배…부침개 나눠 먹기도"(KBS)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6&aid=0010807227 "중단 권고에도 현장 예배 '강행'...이 시각 연세중앙교회"(YTN)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2&aid=0001418052 [속보]'중단' 권고에도…전광훈 목사 교회 등 현장예배 강행(아시아경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77&aid=0004647103 물론 이런 '한국적' 전통이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앞으로 보수-우파의 발언권이 유의미하게 늘어나게 될 경우, 과연 종교단체, 특히 개신교 교회에 대한 국가통제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좋든싫든 보수우파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나는 보수지지층들이 다음과 같은 불안요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보수의 정치적 대표자들이 한국 개신교회, 특히 극단적인 보수 스탠스를 취하는 교회들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웃어넘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종교적 광신enthusiasm은 서구 초기 근대의 정치사상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으며, 그 시기의 탁월한 사상가들에게 이 문제의 심각성은 널리 공유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싶다. 리버럴·진보·합리주의 정치의 너무나도 매끄러운 언어 속에서 세계는 이미 세속화된 장소이며 교회는 점점 사라져가는, 따라서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결국 무시해도 좋을 골동품으로나 존재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래의 세속화 연구에서 누차 강조되었듯, 세계는 결코 전면적으로 세속화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교회는 한국만이 아니라 한국보다 더 '발전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집단이며, 통제되지 않는 교회만큼 공포스러운 대상은 예나 지금이나 드물다. 특히나 '합리적 보수'를 주장하며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생각하는 이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 심연은 당신들의 발 밑에서 입을 벌릴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사태/대응을 바라보며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과 마스크 수출입 문제도, 가슴 벅찬 국가적 자부심의 확인도 아니다. 국가와 종교의 '한국적인' 관계가 우리에게 무엇을 불/가능하게 하는지, 그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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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20.04.05 15:53 Modify/Delete Reply

    저는 현재 상황을 '카르테시안 모멘트' (Cartesian Moment)라고 부르고 싶네요. (포콕 형님 보고 계십니까?)
    뭐 한국이야 좀 다르긴해도 국가봉쇄, 왠만하면 집안에 머물러라고 강압적인 자가격리 조치를 취하는 나라들이 많으니 지금이야 말로 데카르트처럼 방안에 앉아서 성찰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 "거 참 성찰하기 좋은 날씨네")

    국내외 막론하고 다들 집에서 지루함 어떻게 이길지, 넷플릭스로 뭘봐야 할지나 추천하는 현실에 충격받아서
    넋두리 여기에다 써봤습니다. (전세계 철학과 놈들 보고 있나? 니들이 이런 말을 했어야지...)

    • BeGray 2020.04.10 10:55 신고 Modify/Delete

      ㅎㅎㅎㅎ 음성지원이 되네요. 처박혀서 공부하고 글쓰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 sw19classic 2020.04.05 18:45 Modify/Delete Reply

    BeGray님, 오랜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거두절미하자면,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전세계적인 어떤 관점의 전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여쭙고 싶습니다. 특히 저는 기존에 BeGray 님께서 몇 차례 지적하셨던 '상상 속의 서구 지성의 장' 같은 아이디어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입장으로서, 구체적으로 질문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서구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이 이번 사태로 인해 과연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측면들에서 서구는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도원향 내지는 하나의 역할 모델과도 같이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국내의 지성은 서구의 지성을 따라가야 하고, 아무래도 서구가 더 진보되고 진전되어 있으며, 예전의 조던 피터슨 사례와 같은 몇몇 패권적인 백인 남성 인물들에는 유독 강력한 '환상화된' 권위를 부여하는 듯합니다. 비단 지성이 아니더라도, 북서부 유럽과 북미의 라이프스타일 및 사회풍조는 흔히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할 이상으로 묘사되곤 했었습니다. 우리에게 서구는 올림포스와도 같은 곳이며, 더 개화되고, 더 문명화되고, 더 깨어 있고, 더 선진적이고, 더 성숙하다는 암묵적인 인상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던 것이 이번 사태에서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CNN에서 대놓고 "서방이 틀렸고 아시아가 옳았다" 는 식의 기사를 내는가 하면, 우리가 동경했던 서구의 시민사회 문화가 도리어 사회적 혼란을 들불처럼 확산시키는 (ex. 국가봉쇄 전날 밤에 마지막을 즐기자며 한데 모여 축제를 즐겼다는 프랑스인들, 휴지와 탄약을 사재기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라거나) 센세이셔널한 기사들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아시아인 인종차별 행위들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더욱 대조됩니다. 하나의 유럽이라느니, 세계 시민주의라느니 하면서 어깨동무하던 게 무색하게, 서로가 서로의 마스크와 방역물자들을 압수하면서 아귀다툼을 한다던 어떤 보도도 기억납니다. 올림포스 12신들의 추태를 목도하고 있는 신도들의 심정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합니다.

    서구 모델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일각의 우려가 옳든 그르든, 저는 서구 모델에 대한 (불경한?) 의심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국내에서 과연 얼마나 힘을 얻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서구사회의 기존의 패권적 위상에 어느 정도의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회의론의 결과로 서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지, 그 변화가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관점의 전환기까지도 될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사회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전염병의 확산이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보수적이고 불관용적이며 편견이 심해지게 만든다' 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진보주의자들이 이에 대항하여 방역 전문가들과 전염병 연구자들, 전문성 있는 관료들을 추켜세우는 경향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이 도널드 트럼프와 대조되는 모범 사례로 해외에 소개되기도 했었다고 압니다. 이것이 사회심리학적으로 시사점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의 노력이 성공적이라면 코로나 이후로는 '엘리트 전문가들에 의한 통치' 가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제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종류의 인문학적인 논의는 익숙하지 않아서, 자칫 잘못된 전제로 인해 위험한 방향으로 논리가 흘러갔을 수도 있습니다. (ex. 그 서구 모델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며 과연 엄밀한 표현인지, 그것을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 보는 게 맞는지, 우리가 서구 모델을 동경했던 게 맞는지,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같은 근본적인 문제제기 등...)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혹시 염려가 되신다면 기탄없이 말씀 부탁드립니다.

    sw19classic 드림.

    • BeGray 2020.04.10 11:17 신고 Modify/Delete

      오랜만에 뵙습니다. sw19classic 님께서 나무위키에서 여러 책들을 면밀하게 정리해주신 것은 깊은 감동을 갖고 읽었고, 매우 유의미한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말씀하신 질문은 매우 중요한 주제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저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서 제 의견을 말씀드린자면,

      1) 확실히 '서구'를 이상적 모델로 간주하던 기존의 언어는 관습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힘을 부분적으로나마 잃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게 단번에 이뤄지는 전면적인 몰락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이고 점진적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2) 서구 내에서 '서구적 모델'의 강력한 경쟁자로 제시되고 있는 '중국 모델'은 특히 사드 사태 이후 한국에서 어떤 대안적인 역할을 하기 힘듭니다. 몇 년 전까지 한국에서 고개를 서서히 들고 있던 '중화론자'들이 지금은 입장을 교묘하게 바꾸거나 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 한국에서는 적어도 당분간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 위협감은 더 커질 것입니다.

      3) 물론 서구의 여러 민주주의자들에게 한국이 (중국모델이 아니더라도 코로나를 통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소환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한국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이 새로운 문명적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 내에 그러한 합의가 있거나 하지도 않으니까요. 다만 (이미 서구가 마련해준 기준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이 세계정상급의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는 계속 나올듯 합니다.

      4) 예술이나 학문 등을 포함해 한국이 아직 서구를 여전히 이상으로 여길만한 지점들은 당분간은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한국의 학술장은 여전히 '건설중'인 상황이기도 하고요. 더불어 여성주의를 포함해 성평등의 문제에서 '서구사회'가 갖고 있던 이상향으로서의 힘을 여성주의자들이 곧바로 포기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정말로 다른 선택가능한 대안이 없으니까요!).

      5) 국가, 통치의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 한국이 이미 그 단계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바깥에서 쉽게 카피할 모델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현실을 빨리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기존의 담론장에서 서구를 원천으로 삼아온 경로의존성이 쉽게 뒤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정치언어의 경우, 서구의 정치언어 자체가 놓쳐온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언젠가 따로 포스팅에서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전문가-관료-엘리트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흐름은 (이건 특히 STS의 중요한 논쟁거리인데)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를 곧바로 인민 대 엘리트 구도로 보는 데는 저는 좀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다수의 민중'이 누군가의 기본적인 권리를 폐지해야 한다고 외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시점에서는요. 실제로 정부와 학술장이 사회의 통치에 어떻게 작용하고, 그것을 효율화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지, 한국의 경로 위에서 최선의 모델이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는 게 더 유효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질문에서 의도하신 바에 제가 제대로 답변했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겠지만) 저는 이 주제로 계속 대화가 이뤄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니, 언제든 댓글을 달아주시면 답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sw19classic 2020.04.11 01:51 Modify/Delete

      빠른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답변하신 바를 종합하면, 서구를 문명의 이상적 모델로 지칭하는 언어가 서서히 약해질 것이나, 우리가 그것을 대신하여 우리 스스로를 어떤 모델의 전범으로 내세울 준비는 되어 있지 않으며, 제3의 선택 가능한 대안조차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서구 모델을 참조하려는 기존의 경향은 제한적으로나마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는 이 말씀이 제대로 된 답변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제게 상당한 자극이 되었기에 기쁘게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당분간 우리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시기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됩니다. 우리가 서구로부터 더 이상은 무작정 보고 배울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우리가 우리만의 모델을 내세울 문명적인 자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제3의 국가를 본받을 수도 없다면, 결국 철학적(?)인 불확실성이 전보다 확연히 커진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저를 자극하는 것은, 그렇다면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마인드셋을 갖게 될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에 저 역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봤습니다. 만일 우리도 문명의 전범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가 그렇게 따르려던 저 서쪽 나라들도 문명의 전범이 아니라면, 어쩌면 저는 이것이 냉소주의의 확산 또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 중의 하나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됩니다. 즉, 한편으로는 모두 다 틀렸다는 환멸감이 나타나서, 결국 모든 문명적인 것에 저항하는 반문화가 설득력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DC인사이드에서 발견되는 관조적인 냉소의 분위기가 질박한 예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처음부터 만고불변의 문명적 해답은 없으며 각국마다 처한 문제가 다를 뿐이라는, 즉 어떤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에 각자가 다 옳다는 인식에 도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러운 생각이 있다면, 서구권에서는 대안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아마도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진정한 우리의 가치로 되돌아가자', '우리의 지혜를 다시 찾자', '정답은 우리의 것 속에 있다' 처럼 과거를 참조하는 움직임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코로나19 이후의 서구인에게는 우리가 우리의 덕목의 어떤 것을 잊고 있었는지 성찰하고 자성하는 선택지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리 자신에게 참조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는 처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우리 자신을 세계 속에서 하나의 문명적 모델로 내세우기도 망설여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예상에서 조심스러워지는 이유는, 제가 그 이유를 19C 말~20C 중반의 근대화 및 식민지 경험에서 감히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것이 이미 당연히 세계적이고 문명적인 것으로 통했었던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것을 문명적인 것의 기준에 비추어 부정당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신적 계보 내지는 툴박스 속에 문명화의 정답이 있다는 확신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확신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BeGray 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생각의 전환이 상당히 점진적이고 한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위에서 제가 뭔가 거창하게 생각했었던 변화 역시 그만큼 미미하게 나타날 것이고, 멀쩡히 생존해 있는 기존의 '서구-이상' 모델과 경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예측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새로운 모델을 추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활로를 찾기 위해 학계와 같은 전문가 집단을 내세우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서구 일각에서 자기들의 문명적 현주소를 비판하기 위해 앤서니 파우치 같은 인물들이나 국내 질본 관계자들을 거론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런 전문가 집단은 서구냐 비서구냐를 떠나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 및 문명적인 것의 근본적 힘을 표상하는 강력한 사례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서구-이상' 모델이 급격히 폐기되지 않고, '전문가-이상' 모델이 급격히 떠오르지도 않는다면, 어쩌면 '서구&전문가-이상' 모델 정도로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전부 명확한 인식론의 도움을 받지 않는 채로 쓴 글이어서, 사실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의 가치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쾌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줄곧 어렴풋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수 개월 내지 수 년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실제로 어떠한 변화가 초래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sw19classic 드림.

    • BeGray 2020.04.12 16:16 신고 Modify/Delete

      중요한 물음과 꼼꼼한 성찰 제공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아마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동일한 상태의 불확실성 하에 있다기보다는 여러 입장들이 혼재된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클 거라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일종의 유사-소중화 모델, 즉 '서구'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인정하지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서구는 불신하며, 대신 한국이야말로 이상으로서의 '서구'를 실제의 서구보다 더 잘 구현하는 장소라고 기쁘게 믿는 태도의 지분도 결코 작지 않으리라 예상되니까요; 비슷한 예로 우파 개신교회들을 보면 한국은 유럽과 미국을 통해 기독교화되었으나 지금은 그들보다 더 우월한 기독교적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레토릭을 왕왕 마주하게 됩니다. 더불어 '근본적 가치'가 흔들릴지언정, 현실에서 '법과 질서'가 위협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 좌우파와 세대를 막론하고--어쩌면 젊은 세대에서 더욱--강력한 도덕적 믿음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반문명/반문화 흐름이 곧바로 강한 호응을 얻기는 조금 어려워 보여요. 어쨌든 이번의 위기가 서구 근대라는 '가치'의 위기인지, 아니면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 서구'의 위기인지--정확히는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하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싶습니다.


      만약 예측하신 것처럼 서구 각국이 '과거'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하게 된다면, 이건 그들에게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과거의 해법들은 과거인들이 마주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었기에, 그러한 해법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가능한 경우는 그다지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사 연구를 따라가면서 제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참조할 수밖에 없으나, 그 과거가 올바른 해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과거의 문화유산을 그거 과거의 것으로 보는 게 당연하게 된 한국인들은, 물론 그것이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강한 콤플렉스와 열등감, 불안을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으나, 어쩌면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모릅니다--그들에겐 과거의 답변으로 현재의 질문을 지워버리는 (잘못된) 길이 훨씬 까다로운 선택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 집단의 표상과, 위기에서 전문가를 찾게 되는 마음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사항에 깊이 동감합니다. 동시에 서유럽과 북미에서 지난 수십 년 간 진보/리버럴들이야말로 전문가-중앙정부를 줄기차게 공격해온, 그래서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그 공격에 합류했을 때 중앙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라는 아이러니도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서구적) 전문가-이상'의 모델은 분명히 계속 대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이 모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싶어할 만큼,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이번 답변의 처음부터 끝까지 덧붙였던 사항으로, 저는 한 사회의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서 그 사회를 단일한 주어로 놓는 것보다는 그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러 상이한 입장의 행위자들이 있고 그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결국 그 어느 행위자의 뜻에도 전적으로 부합하지는 않는) 결과를 가져올지를 바라보는 게 조금 더 복잡하고 세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부족한 근거 위에서 아주 흐릿한 예측만을 가능하게 할 따름이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이런저런 '문명비판론자'들보다는 좀 더 사려깊은 분석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

    • BeGray 2020.04.12 16:22 신고 Modify/Delete

      아, 조금 과거의 글이긴 하지만, 이 논문도 어느 정도 sw19classic 님께서 사고를 다듬으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279614

    • sw19classic 2020.04.14 02:15 Modify/Delete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소중화 개념이 있었다는 걸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치의 위기인지 현실이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여 발생한 위기인지 여부를 엄밀하게 숙고하지 못했던 문제도 있었습니다. 또한 사회가 하나의 행위자라기보다는 여러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복잡한 역동을 일으킨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하나의 행위자로 간주함으로써 얻는 편의성은 무시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일단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좀 더 장기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이 이상으로 인문학적인 고찰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나중에 몇 개월 내지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제 전공지식을 활용한 분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천해 주신 논문에도 감사드립니다. 이 주제로 BeGray 님이 지적인 열정을 갖고 계실 것 같았는데 실제로 갖고 계셨군요. 시간이 날 때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DBpia에서 헬조선 논문도 함께 추천해 주던데, 그쪽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sw19classic 드림.

    • BeGray 2020.04.19 13:14 신고 Modify/Delete

      ^^그 논문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든 싫든 사태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경로로 흘러가겠지만, 그러한 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의 범위는 대략은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거기에서 최악의 경로를 막는 게 아마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고요.

      즐거운 대화 다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때까지 몸 건강히 지내셔요 :)

  3. 지나가다 2020.04.06 23:48 Modify/Delete Reply

    벌어지는 일과 결과들을 보면 그냥 현장 파악이 안되는 사람들은 자기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할것 같은데 그게 안되는것 같다 그것뿐이군요.
    던져진 질문들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많은 답들이 주어지고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알수 있는 상황인데요. 그리고 이게 답이 정해진게 아니라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거기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유능하게 해결해 나갈수밖에 없는것인데.
    의사들이 정부대책에 대해서 뭐라하지만 의사들은 치료에 전문가지 방역에 전문가가 아니고, 이걸 모르고 의사들이 떠들어대면 의사들이 바보라는 얘기밖에 안되고.
    동일하게 인문학... 법제화해서 동선파악하고 격리시키는 과정을 독일에서는 어떤 법학자는 보건파시스트니 뭐니, 그것에 대해서 한국에서 격리된 프랑스 기자가 헛소리한다는 기사처럼.
    한국에서 나오는 얘기들 보면 정부 발표외에는 그닥 대부분 자기들이 읽은 한도 내에서 뻔히 한계가 보이는 얘기들만 하면서 그 안에서만 맴들고 있는데.....
    홍기빈이 기본소득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칼럼등에 현재 발전하는 기업 틀에 얘기하면 그쪽 업계분들은 모르는 소리한다고 웃고 있고, 그 기본소득을 이재명 같은 애들이 받아서 내용은 하나도 모르면서 떠들어 대는데 김상조는 명확히 한계를 알려주고 얘기하는데, 그럼에도 용어부터 부정확하게 밀고 있는 이해찬이나 그 부류들...죽 돌아가는 얘기보면
    현실적으로 알고 움직는것은 현재 한국에서는 정부관료와 기업가들 일부...
    나머지 얘기들은 들으면 한숨 나는 얘기들..그정도죠.
    집단면역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 생물학적인 개념이고 정치인들이 잘모르고 사용하는것이고. 그래서 죽이고 있고.
    모르면 배우고 자기 분야 벗어나면 항상 검색하거나 배우는수밖에 없을겁니다.

    들뢰즈 번역하고 이러저러하다 노무현 지지한다고 하는 어느분 몇 년전 중딩처럼 글쓰고 어이없는 상태를 봤는데 요즘보면 인공지능에 뭐에 세상의 지혜는 다 가진것 같은데 안철수 오버랩되어서 웃기기만 한데 왜 인문학이나 과학이나 전공을 좀 하면 세상에 대해서 다 안다는 착각을 하는지 그거부터 반성시키는 교육을 대학에서 해야할것 같기도 하고요.
    아는것은 극히 한정된 범위지식인데 그걸로 세상을 다 얘기하려고 하니...인문학이 뭔 의미가 있는지......

    • BeGray 2020.04.10 11:17 신고 Modify/Delete

      언제나처럼 솔직한 감상 자유롭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4. 성경 2020.04.07 14:11 Modify/Delete Reply

    조금 빗겨가는 얘기지만 나열하신 대응방식 유형에 사례 D로 "보우소나루 모델"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ㅋㅋ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명제와 함께 (실제로 한 말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언론에 의해 조작된 가짜 위기에 불과하다고 끊임 없이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어차피 만데타 보건부 장관은 대통령 지시는 모조리 무시하고 적극적인 봉쇄 정책을 펴고 있고, 주지사들과 시장들, 그리고 국회도 좌우를 불문하고 (심지어 극우파도) 보우소나루로부터 등을 돌린 상태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30%의 지지율을 보이는 그가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쿼런틴 반대 시위"를 조직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긴 하지만 스페인어계 중남미 언론을 중심으로 군부에 의한 "소프트 쿠데타"가 있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현 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장군인 브라가 네토가 실권을 쥐고 보우소나루는 직책만 유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도 보우소나루가 보건부 장관을 해임하려 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음을 보면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그가 기업계, 사법부, 입법부, 군부로부터 모두 지지를 잃고, 브라질이 중남미의 한 경향이 된 "군부 민주주의" 체제 (https://www.nytimes.com/2019/10/31/world/americas/latin-america-protest-military.html)에 합류하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코로나 사태가 드러내 보이는 (가속화시키는?) 국제 정치의 또 다른 측면인 것 같습니다.

    • BeGray 2020.04.10 11:19 신고 Modify/Delete

      보우소나로 케이스는 저도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꽤 중요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스트롱맨'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바와 별개로, 정말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가'가 무엇인지 한번쯤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ㅎㅎ

  5. 나그네 2020.04.19 16:44 Modify/Delete Reply

    재미있는 글을 하나 우연히 발견해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https://www.fsw.uzh.ch/foucaultblog/essays/254/understanding-corona-with-foucault

    [푸코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이해하기? Understanding the Coronavirus Pandemic with Foucault?] 라는 제목을 가진 글인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푸코의 통치성 강의를 떠올렸던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글의 저자인 필립 사라신은 역사학자이자 푸코 전문가입니다.

  6. ㅇㅇ 2020.05.20 15:12 Modify/Delete Reply

    이태원 집단 감염 사태가 발발하고 나서 예견하신대로 소수자 혐오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같습니다."아웃팅은 게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라는 주장이 전국민적으로 호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참 씁쓸하더라고요..또 연예인들의 사적인 만남에도 언론과 여론의 날선 비판이 가해지는걸 보면서 이게 과연 정당한 일인가 싶었습니다.이 글을 작성하신 이후로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특히 저 사건을 기점으로 추가적인 생각이 드셨을 같은데요 요즘 사태에 대한 begray님의 종합적인 감상이 궁금합니다!!

    • BeGray 2020.05.20 16:06 신고 Modify/Delete

      현재가 "종합적인" 감상이 가능한 시점인지 또 제게 그럴 역량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다만 아시다시피 공공안전과 개인/소수자의 권리 보호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들인데, 이번 상황에서처럼 필수적인 원칙들끼리 상충하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순간들이 종종 나타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듯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원리의 차원에서만 다룬다기보다는 기술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양자의 상충 및 그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지에 초점을 두고 풀어가는 게 맞아보이긴 해요. 그리고 그건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상당부분 정부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이해할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 ㅇㅇ 2020.05.20 17:10 Modify/Delete

      그렇다면 확진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가해지는 비판은 어쩔 수가 없다고 봐야할까요?저는 솔직히 지금 엄격하게 자가격리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싶고 확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민들이 코로나를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한편으로 여가생활을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확진자들이 악의를 가지고 타인과 빈도높게 접촉했다는 추가 정황이 포착되지 않는 이상 단순히 운이 없어서 코로나에 걸렸다고 간주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이것이야말로 "운 좋게" 타인과 접촉했음에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대다수의 시민이 당연히 취해야 할 공적 태도라고 생각하고요.(물론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담론은 얼마든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이 부분은 논쟁의 여지라도 있습니다.단지 "생계 유지" 이외의 요인으로 사적인 모임을 가졌다고 연예인들이 몰매를 맞는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언론이 공공안전 차원에서 확진자들의 감염 경로를 공개하는 것은 충분히 옳다고 볼 수 있지만 거기에 대고 시민에게 개별적으로 인신공격을 하는 행태는 과다한 월권행위라고 보는데...참 윤리적으로 난감합니다.저만 사회의 공감대 밖에서 외따로이 겉돌고 있는 것같고요ㅜㅜ

      대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캠페인은 개개인의 사적 영역에 어디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수준까지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걸까요..?

      +begray님의 답변을 통해 제가 "공공안전"이라는,소수자의 권리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너무나 간단히 무시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이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부담스러우시겠지만 여기 와서 질문을 드릴 때마다 항상 제 스스로가 그다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십니다..ㅎㅎ

    • BeGray 2020.05.27 15:26 신고 Modify/Delete

      말씀하신 대로 확진자 중 많은 사람들이 "운 나쁘게" 걸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코로나 사태에 대한 여론이 도덕주의적으로 작동하게 된 상황에서, 그렇게 운 나쁘게 걸린 사람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가해지는 것도 좋든 싫든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 듯 합니다(개인적으로 확진자들에게, 몇몇 심각한 예를 제외하면, 비난을 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들이 그러한 비난을 퍼붓는 광경을 보면서 특별히 마음 상할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판단을 하기 쉽지 않은 건, 법과 권리의 측면에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면 차라리 쉽지만, 이게 바이러스의 감염이라는, 즉 법과 권리의 언어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영역과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습니다. 즉 통상적인 권리의 차원에서 문제가 없는 행위를 한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그 권리의 행사자에게 침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그 권리의 행사자가 (의도와 무관하게) 타인을 침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거니까요. 요컨대, 말씀하신 권리와 윤리의 차원이 자신의 설득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구성원들에게 강력하게 다가온 게 지금의 사태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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