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조문 / 박원순 성추행 논란의 정치적인 성격에 대한 단평

Comment 2020. 8. 6. 21:58

[아래 글은 본래 2020년 7월 18일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되었다]


누구도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이 정치적 쟁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포털의 뉴스 댓글란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20대·여성층의 이탈조짐을 드러내는 정권 지지도 여론조사는 그러한 기대가 현실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각자의 윤리적인 입장과 별개로, 현재 사건의 정치적 결과가 어떠할지를 상식적인 수준에서나마 한번쯤 전망해볼 필요는 있다.


주요한 행위자는 누구인가? 박원순 시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강성 정권지지자들(이하 박원순 지지자), 성추행 피해자 혹은 고소인의 안전과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하 피해자 지지자), 그리고 민주당 정권이 있다.


각 행위자가 원하는 바와 피하는 바는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 박원순 지지자들은 일차적으로 박원순의 명예와 신망이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고, 좀 더 근본적으로는 문재인·민주당 정권의 세력을 지켜내고자 한다--반대로 말해 죽은 이의 명예가 더욱 추락하고 정권 인사들의 힘이 약화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바라지 않는 일이다. 피해자 지지자들에게 있어 정의란 피해자가 더 이상 2차 피해를 입지 않고 피해에 대한 적절한 (유무형의) 배상을 받으며 권력형 성추행에, 그것이 확실히 범해졌다는 전제 하에, 적절한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성추행 건이 유야무야 되는 상황은 피해자 지지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중 최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권은 지지율과 주요 직위, 인적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정치적 영향력을 보전하고자 한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우리는 사태의 전개가 세 행위자 각각이 가장 피하고 싶을 결과에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박원순의 지지자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분별력보다 열정이 앞서는 사람들은 성추행 사건을 부인하고 피해자(와 조력자들)가 부도덕한 혹은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들이라 주장하여 후자를 침묵시키는 것이 고인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는 명백한 사실이 있다. 이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시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까지 사건조사·피해자 신변보호가 공적 절차의 영역 내로 수렴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현직 검사를 포함한 유력인사들에 의한 공공연한 조롱과 비난,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2차 피해에 직면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그럴법한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증거들을 하나씩 언론에 공개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지지해줄 집단적 여론의 형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박원순 지지자들에 의한 2차 피해와 피해자의 '공론화 시도'의 핑퐁게임이 격화됨에 따라, 성추행·성범죄에 매우 민감한 결코 적지 않은 수의 피해자 지지자들은 (우리는 주로 20-30대 여성들로 이루어진 이들이 정권지지층에서도 유의미한 지분을 차지하는 집단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성범죄 피해자가 억울하게 탄압받고 가해자는 아무 일이 없는' 고전적인 모델에 기초하여 현재의 사태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모델에서 볼 때 (정권지지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박원순 지지자들은 '성범죄 옹호자', '일베'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며, 고인은 이론의 여지없는 추악한 성범죄자가 된다. 나아가 이러한 추세를 방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당·정권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성범죄 무마의 공범들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2차 피해와 비난에 노출된다. 박원순에 불리한 사실 및 소문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유포된다. 지지층의 분열과 대립에 따라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은 손상을 입는다. 그리고 위기감에 사로잡힌 박원순 지지자들은 피해자가 정권의 주요 인사를 실각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적 사고에 빠져들어 더 강력하게 피해자를 공격하고 압박한다--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 행위자 모두가 정확히 자신들이 피하고자 했던 최악의 결과와 마주하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행위자는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손실의 가속을 막아낼 수 있는가? 현재의 전개를 바꿀 수 있는 역량을 지닌 행위자가 존재한다면, 이는 정권과 여당, 그리고 정권 지지층 중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로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정권 지지자들이기도 한) 박원순 지지자들, 특히 공적인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성범죄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뜻을 공개적으로 송출하는 게 해로운 결과만을 낳는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야만 한다(물론 정말로 성추행 사실이 있었는지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잠시만 말을 참고 조사결과가 나온 뒤에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된다). 모 검사의 SNS 발언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나온 친 정권 성향을 자처하는 인사들의 피해자에 관한 코멘트 중에 사태의 진정에 도움이 되는 말은 거의 없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는 뜻을 정권과 유력인사들은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둘째, 이와 동시에 피해사실이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 및 그 지지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철저하게 조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가 공식적인 절차의 바깥에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피해자가 박원순 지지자들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피해자는 더더욱 사적 여론에 의지하여 피해사실의 세부사항을 유포할 것이며(사적 여론을 거칠 때 그것이 더 과장된 형태로 해석될 위험도 있다), 정권이 성추행 사건을 외면한다는 인상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요컨대 공식적인, 혹은 그에 준하는 신뢰를 받는 제도의 작동을 통해 피해자에게 그가 안전한 상황에서 충분히 공정한 조사를 받으며, 관련 사건에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준 이들이 충분한 책임을 지게 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리고 이렇게 '제도가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결과적으로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흘려버린 만큼, 지금이라도 정권·여당 차원에서 '성범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선언하고 전 사회적으로 공직자의 성범죄를 척결하겠다는 선언을 선제적으로 내놓는 것도 현재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조국 사태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당시 정확히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려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을 끌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버티는 전략이 집권여당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뻔한 정치적으로 무익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조국 사태의 늪에서 집권당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올린 것은 정권도, 조국 본인도, 조국의 지지자들도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적인 유행이라는 비상사태였다. 이번에는 그와 같은 행운이 따라줄 가능성은 낮으며, 상대적으로 조국에 대한 분노를 지속할 집단이 뚜렷하지 않았던 작년과는 달리 비서 성추행 건은 젊은 여성층에게 더 지속적이고 강력한 분노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제어불가능한 거대한 불길로 번지기 전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정치적 행위자에게 요구되는 책임이자 역량이다.





[아래 글은 본래 2020년 7월 7일 페이스북 계정에 작성한 글을 PPSS 게재를 위해 수정한 버전이다. PPSS의 해당 기고문 링크는 https://ppss.kr/archives/221550 참조]


정권 유력인사들의 안희정 모친상 조문을 둘러싼 논란에서, ‘어쨌든 사람 된 도리로 모친상에 조문을 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제법 많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은 비판론의 핵심 논리를 읽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판론에서 가장 중요한 논지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권 유력인사들의 안희정 모친상 조문이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 간의 ‘사적인’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대표들의 ‘공식적인’ 행사로 치러졌고 또 그렇게 연출/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보자. 조문객들이 사적인 친분관계에 의거해 개인 자격으로 조용히 오갔다면, 더불어 언론 보도를 사절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면 많은 사람이 달가워하지는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조문 화환을 포함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정권의 주요 인사·공직자로서 조문을 행하고 있음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조문객들 스스로가 이 자리에 정치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부여해버린 것이다.


망자에 대한 애도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도의 마음과 별개로, 조문은 어떤 의복을 입고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와 같은 형식적인 차원이 무척이나 중요한 고도로 사회적인 행위다. 예컨대 우리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크게 떠드는 조문객을 보면서, 그가 설령 진심으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할지라도, 무척이나 부적절한 모습이라고 판단한다—진정성 못지않게 어떤 형식이냐가 중요한 행위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조문이다. 조문객들이 자신들의 공인·유력자로서의 자아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들은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신들의 조문을 공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안희정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연대의 뜻을 품은 것처럼 오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측면을 보지 않은 채로 ‘조문이 잘못되었다니, 그럼 인간적인 도리도 뭉개버리라는 거냐’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사태의 핵심을 외면한 채로 논란을 더 키울 뿐인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하다.


더불어 이 상황에는 조문 옹호자들의 ‘인간의 도리’론으로는 전혀 해소되지 않는 좀 더 복잡한 정치적인 난점이 잠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희정의 존재는 현 정권의 ‘페미니즘적’ 기조 및 젊은 여성층의 지지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위험으로 남아 있다. (2030 남성들의 낮은 정권 지지율을 벌충하는 것이 2030 여성들의 높은 지지율임을 고려하면, 후자의 여론이 정권에 갖는 중요성은 절대로 과소평가될 수 없다.) 정권에는 다행스럽게도, 안희정은 성폭행 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독자적인 노선을 천명한 정치인으로 분류되었고, 그가 최종적으로 성폭행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정권은 페미니스트들, 혹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성폭력에 무척이나 민감한 여성 지지자들과의 갈등을 키우지 않을 수 있었다. 종종 정권 지지자 중에 ‘안희정이 무죄를 받았다면 민주당의 정치적 자원이 더욱 풍부했을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눈에 띄는데, 안희정 무죄판결이 여성 지지층에 얼마나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정권이 그것이 초래했을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싸매야 했을지를 고려하면 그런 망상은 정치적으로 저능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이후 다음/카카오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볼 수 있듯, (안희정 관련 기사 댓글 창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다수의 정권 지지자들, 혹은 안희정 지지자들은 지금도 성폭행 판결을 부인하면서 안희정을 ‘꽃뱀에 물렸을 뿐인 불운한 희생자’로 추켜올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물론 누군가가 끝까지 안희정의 성폭행 유죄판결이 충분한 증거를 결여한 부당한 판단이라고 믿는다면, 어차피 현재 주어진 근거만으로는 서로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만큼 더 논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역시나 충분한 근거가 없는 채로—혹은 일방의 근거만을 채택한 채로—성폭행 피해자가 안희정에게 죄를 덮어씌운 ‘가해자’라고 공개된 영역에서 모욕을 퍼붓는 것은,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이 모욕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다. 안희정이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상황과 별개로, (정권 지지층으로 추정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여전히 안희정은 불륜을 저질렀을 뿐이라며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정권과 (성범죄와 2차 피해 문제에 매우 민감한) 여성 지지층의 관계가 악화할 불씨는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유력인사들의 조문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자신들과 안희정이 여전히 ‘인간적인 관계’임을 한 명의 정치적·공적 행위자로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태도가 정치적인 해석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실제 조문객들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이번 조문의 형식은 안희정이 여전히 ‘우리 동지’의 한 구성원이며 그런 동지애의 관계가 어느 여성의 성폭행 이슈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다. 다른 자리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여전히 그런 것보다는 ‘동지애’를 공식적으로 과시하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는 조문객들이 실제로 여기까지 의도하여 안희정을 공공연하게 응원하고 복권시키고자 한다고까지 해석할 이유는 특별히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진짜 잘못은 그저 자신들의 특정한 행위가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해보지 않았다는 것, 혹은 (586과 그 후계자들이 종종 그런데) 자신들보다 노회하고 교활했던 선배들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에 여전히 둔감하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안희정 조문 건을 둘러싼 비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정권 옹호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지는 무엇일까? 가장 쉽고 실용적인 길은 그냥 논쟁이 발생지지 않도록 침묵하여 아예 논란의 불씨를 잠재우는 방법이다. 논란은 아직 몇몇 사람의 분노를 자아내는 수준일 뿐이니만큼 별다른 충돌이 없다면 머잖아 사그라들 것이다. 여성층의 정권지지율이 흔들릴 가능성은 다행히도 아직은 크지 않다.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퇴물정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정의당은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당내의 영향력 있는 공식적인 그룹으로 남아 있다. 그에 비해 가끔 어설플지라도 확실하게 여성 친화적 정책 노선을 천명하고 있으며, 여초 카페 여론주도층의 막강한 지지를 받는 더불어민주당이 젊은 여성층의 지지를 독식하는 현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 선의와 성실성에도 현 정권에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부동산 정책에서처럼 건드려 봐야 손해만 보는 영역에 반복적으로 뛰어들어 애초에 시도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굳이 초래하고야 마는 때가 있다.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지자들이 그런 어리석음까지 모방할 이유는 없다.


다른 한 가지 길은 모친상을 조용하고 엄숙한 비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라 마치 정치인과 정치인이 회동하여 위세를 떨치는 장으로 만든 안희정을 비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철저하게 사적인 조문만을 받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정치인인 그가 이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이 모든 논란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사태가 아직 일부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의 표명 정도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까닭은, ‘성폭행범’이 정치인으로서 복권되지 않으리라는 합의와 믿음이 지지층 전반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안희정이 민주당에서 정치인으로 재기하는 순간, 우리는 다양한 입장으로 쪼개진 민주당 지지층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물어뜯고 함께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능동적인 지지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런 끔찍한 미래가 도래하지 않도록 미리 싹을 쳐 두는 일일 것이다.


한 가지 사소한 부탁을 더하자면, 여전히 안희정에 미련을 못 버린 주변의 아저씨들이 피해자를 공공연히 모욕할 때 그분들께 그냥 좀 닥치고 있으라고 말해주면 무척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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