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조문 / 박원순 성추행 논란의 정치적인 성격에 대한 단평

Comment 2020. 8. 6. 21:58

[아래 글은 본래 2020년 7월 18일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되었다]


누구도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이 정치적 쟁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포털의 뉴스 댓글란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20대·여성층의 이탈조짐을 드러내는 정권 지지도 여론조사는 그러한 기대가 현실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각자의 윤리적인 입장과 별개로, 현재 사건의 정치적 결과가 어떠할지를 상식적인 수준에서나마 한번쯤 전망해볼 필요는 있다.


주요한 행위자는 누구인가? 박원순 시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강성 정권지지자들(이하 박원순 지지자), 성추행 피해자 혹은 고소인의 안전과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하 피해자 지지자), 그리고 민주당 정권이 있다.


각 행위자가 원하는 바와 피하는 바는 어떻게 추정할 수 있을까? 박원순 지지자들은 일차적으로 박원순의 명예와 신망이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고, 좀 더 근본적으로는 문재인·민주당 정권의 세력을 지켜내고자 한다--반대로 말해 죽은 이의 명예가 더욱 추락하고 정권 인사들의 힘이 약화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바라지 않는 일이다. 피해자 지지자들에게 있어 정의란 피해자가 더 이상 2차 피해를 입지 않고 피해에 대한 적절한 (유무형의) 배상을 받으며 권력형 성추행에, 그것이 확실히 범해졌다는 전제 하에, 적절한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성추행 건이 유야무야 되는 상황은 피해자 지지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중 최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권은 지지율과 주요 직위, 인적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정치적 영향력을 보전하고자 한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우리는 사태의 전개가 세 행위자 각각이 가장 피하고 싶을 결과에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박원순의 지지자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분별력보다 열정이 앞서는 사람들은 성추행 사건을 부인하고 피해자(와 조력자들)가 부도덕한 혹은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들이라 주장하여 후자를 침묵시키는 것이 고인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는 명백한 사실이 있다. 이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시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까지 사건조사·피해자 신변보호가 공적 절차의 영역 내로 수렴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현직 검사를 포함한 유력인사들에 의한 공공연한 조롱과 비난,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2차 피해에 직면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그럴법한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증거들을 하나씩 언론에 공개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지지해줄 집단적 여론의 형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박원순 지지자들에 의한 2차 피해와 피해자의 '공론화 시도'의 핑퐁게임이 격화됨에 따라, 성추행·성범죄에 매우 민감한 결코 적지 않은 수의 피해자 지지자들은 (우리는 주로 20-30대 여성들로 이루어진 이들이 정권지지층에서도 유의미한 지분을 차지하는 집단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성범죄 피해자가 억울하게 탄압받고 가해자는 아무 일이 없는' 고전적인 모델에 기초하여 현재의 사태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모델에서 볼 때 (정권지지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박원순 지지자들은 '성범죄 옹호자', '일베'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며, 고인은 이론의 여지없는 추악한 성범죄자가 된다. 나아가 이러한 추세를 방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당·정권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성범죄 무마의 공범들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2차 피해와 비난에 노출된다. 박원순에 불리한 사실 및 소문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유포된다. 지지층의 분열과 대립에 따라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은 손상을 입는다. 그리고 위기감에 사로잡힌 박원순 지지자들은 피해자가 정권의 주요 인사를 실각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적 사고에 빠져들어 더 강력하게 피해자를 공격하고 압박한다--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 행위자 모두가 정확히 자신들이 피하고자 했던 최악의 결과와 마주하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행위자는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손실의 가속을 막아낼 수 있는가? 현재의 전개를 바꿀 수 있는 역량을 지닌 행위자가 존재한다면, 이는 정권과 여당, 그리고 정권 지지층 중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로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정권 지지자들이기도 한) 박원순 지지자들, 특히 공적인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성범죄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뜻을 공개적으로 송출하는 게 해로운 결과만을 낳는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야만 한다(물론 정말로 성추행 사실이 있었는지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잠시만 말을 참고 조사결과가 나온 뒤에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된다). 모 검사의 SNS 발언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나온 친 정권 성향을 자처하는 인사들의 피해자에 관한 코멘트 중에 사태의 진정에 도움이 되는 말은 거의 없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는 뜻을 정권과 유력인사들은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둘째, 이와 동시에 피해사실이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 및 그 지지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철저하게 조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가 공식적인 절차의 바깥에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피해자가 박원순 지지자들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피해자는 더더욱 사적 여론에 의지하여 피해사실의 세부사항을 유포할 것이며(사적 여론을 거칠 때 그것이 더 과장된 형태로 해석될 위험도 있다), 정권이 성추행 사건을 외면한다는 인상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요컨대 공식적인, 혹은 그에 준하는 신뢰를 받는 제도의 작동을 통해 피해자에게 그가 안전한 상황에서 충분히 공정한 조사를 받으며, 관련 사건에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준 이들이 충분한 책임을 지게 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리고 이렇게 '제도가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결과적으로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흘려버린 만큼, 지금이라도 정권·여당 차원에서 '성범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선언하고 전 사회적으로 공직자의 성범죄를 척결하겠다는 선언을 선제적으로 내놓는 것도 현재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조국 사태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당시 정확히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려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을 끌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버티는 전략이 집권여당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뻔한 정치적으로 무익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조국 사태의 늪에서 집권당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올린 것은 정권도, 조국 본인도, 조국의 지지자들도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적인 유행이라는 비상사태였다. 이번에는 그와 같은 행운이 따라줄 가능성은 낮으며, 상대적으로 조국에 대한 분노를 지속할 집단이 뚜렷하지 않았던 작년과는 달리 비서 성추행 건은 젊은 여성층에게 더 지속적이고 강력한 분노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제어불가능한 거대한 불길로 번지기 전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정치적 행위자에게 요구되는 책임이자 역량이다.





[아래 글은 본래 2020년 7월 7일 페이스북 계정에 작성한 글을 PPSS 게재를 위해 수정한 버전이다. PPSS의 해당 기고문 링크는 https://ppss.kr/archives/221550 참조]


정권 유력인사들의 안희정 모친상 조문을 둘러싼 논란에서, ‘어쨌든 사람 된 도리로 모친상에 조문을 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제법 많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은 비판론의 핵심 논리를 읽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판론에서 가장 중요한 논지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권 유력인사들의 안희정 모친상 조문이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 간의 ‘사적인’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대표들의 ‘공식적인’ 행사로 치러졌고 또 그렇게 연출/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보자. 조문객들이 사적인 친분관계에 의거해 개인 자격으로 조용히 오갔다면, 더불어 언론 보도를 사절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면 많은 사람이 달가워하지는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조문 화환을 포함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정권의 주요 인사·공직자로서 조문을 행하고 있음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조문객들 스스로가 이 자리에 정치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부여해버린 것이다.


망자에 대한 애도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도의 마음과 별개로, 조문은 어떤 의복을 입고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와 같은 형식적인 차원이 무척이나 중요한 고도로 사회적인 행위다. 예컨대 우리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크게 떠드는 조문객을 보면서, 그가 설령 진심으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할지라도, 무척이나 부적절한 모습이라고 판단한다—진정성 못지않게 어떤 형식이냐가 중요한 행위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조문이다. 조문객들이 자신들의 공인·유력자로서의 자아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들은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신들의 조문을 공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안희정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연대의 뜻을 품은 것처럼 오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측면을 보지 않은 채로 ‘조문이 잘못되었다니, 그럼 인간적인 도리도 뭉개버리라는 거냐’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사태의 핵심을 외면한 채로 논란을 더 키울 뿐인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하다.


더불어 이 상황에는 조문 옹호자들의 ‘인간의 도리’론으로는 전혀 해소되지 않는 좀 더 복잡한 정치적인 난점이 잠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희정의 존재는 현 정권의 ‘페미니즘적’ 기조 및 젊은 여성층의 지지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위험으로 남아 있다. (2030 남성들의 낮은 정권 지지율을 벌충하는 것이 2030 여성들의 높은 지지율임을 고려하면, 후자의 여론이 정권에 갖는 중요성은 절대로 과소평가될 수 없다.) 정권에는 다행스럽게도, 안희정은 성폭행 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독자적인 노선을 천명한 정치인으로 분류되었고, 그가 최종적으로 성폭행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정권은 페미니스트들, 혹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성폭력에 무척이나 민감한 여성 지지자들과의 갈등을 키우지 않을 수 있었다. 종종 정권 지지자 중에 ‘안희정이 무죄를 받았다면 민주당의 정치적 자원이 더욱 풍부했을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눈에 띄는데, 안희정 무죄판결이 여성 지지층에 얼마나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정권이 그것이 초래했을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싸매야 했을지를 고려하면 그런 망상은 정치적으로 저능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이후 다음/카카오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볼 수 있듯, (안희정 관련 기사 댓글 창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다수의 정권 지지자들, 혹은 안희정 지지자들은 지금도 성폭행 판결을 부인하면서 안희정을 ‘꽃뱀에 물렸을 뿐인 불운한 희생자’로 추켜올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물론 누군가가 끝까지 안희정의 성폭행 유죄판결이 충분한 증거를 결여한 부당한 판단이라고 믿는다면, 어차피 현재 주어진 근거만으로는 서로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만큼 더 논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역시나 충분한 근거가 없는 채로—혹은 일방의 근거만을 채택한 채로—성폭행 피해자가 안희정에게 죄를 덮어씌운 ‘가해자’라고 공개된 영역에서 모욕을 퍼붓는 것은,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이 모욕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다. 안희정이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상황과 별개로, (정권 지지층으로 추정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여전히 안희정은 불륜을 저질렀을 뿐이라며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정권과 (성범죄와 2차 피해 문제에 매우 민감한) 여성 지지층의 관계가 악화할 불씨는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유력인사들의 조문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자신들과 안희정이 여전히 ‘인간적인 관계’임을 한 명의 정치적·공적 행위자로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태도가 정치적인 해석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실제 조문객들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이번 조문의 형식은 안희정이 여전히 ‘우리 동지’의 한 구성원이며 그런 동지애의 관계가 어느 여성의 성폭행 이슈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다. 다른 자리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여전히 그런 것보다는 ‘동지애’를 공식적으로 과시하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는 조문객들이 실제로 여기까지 의도하여 안희정을 공공연하게 응원하고 복권시키고자 한다고까지 해석할 이유는 특별히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진짜 잘못은 그저 자신들의 특정한 행위가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해보지 않았다는 것, 혹은 (586과 그 후계자들이 종종 그런데) 자신들보다 노회하고 교활했던 선배들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에 여전히 둔감하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안희정 조문 건을 둘러싼 비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정권 옹호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지는 무엇일까? 가장 쉽고 실용적인 길은 그냥 논쟁이 발생지지 않도록 침묵하여 아예 논란의 불씨를 잠재우는 방법이다. 논란은 아직 몇몇 사람의 분노를 자아내는 수준일 뿐이니만큼 별다른 충돌이 없다면 머잖아 사그라들 것이다. 여성층의 정권지지율이 흔들릴 가능성은 다행히도 아직은 크지 않다.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퇴물정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정의당은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당내의 영향력 있는 공식적인 그룹으로 남아 있다. 그에 비해 가끔 어설플지라도 확실하게 여성 친화적 정책 노선을 천명하고 있으며, 여초 카페 여론주도층의 막강한 지지를 받는 더불어민주당이 젊은 여성층의 지지를 독식하는 현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 선의와 성실성에도 현 정권에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부동산 정책에서처럼 건드려 봐야 손해만 보는 영역에 반복적으로 뛰어들어 애초에 시도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굳이 초래하고야 마는 때가 있다.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지자들이 그런 어리석음까지 모방할 이유는 없다.


다른 한 가지 길은 모친상을 조용하고 엄숙한 비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라 마치 정치인과 정치인이 회동하여 위세를 떨치는 장으로 만든 안희정을 비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철저하게 사적인 조문만을 받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정치인인 그가 이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이 모든 논란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사태가 아직 일부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의 표명 정도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까닭은, ‘성폭행범’이 정치인으로서 복권되지 않으리라는 합의와 믿음이 지지층 전반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안희정이 민주당에서 정치인으로 재기하는 순간, 우리는 다양한 입장으로 쪼개진 민주당 지지층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물어뜯고 함께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능동적인 지지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런 끔찍한 미래가 도래하지 않도록 미리 싹을 쳐 두는 일일 것이다.


한 가지 사소한 부탁을 더하자면, 여전히 안희정에 미련을 못 버린 주변의 아저씨들이 피해자를 공공연히 모욕할 때 그분들께 그냥 좀 닥치고 있으라고 말해주면 무척 고맙겠다.

Trackbacks 0 : Comments 16
  1. 이것이냐 저것이냐 2020.09.05 20:23 신고 Modify/Delete Reply

    박원순 국장에 대한 비판을 백번 동감합니다.

    다만 안희정 지사에 대해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 재판은 객관적인 증거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치뤄졌습니다. 안희정의 이후 위축된 행보나 김지은 비서의 일관,구체적인 진술이라는 심증이 있었단 것은 인정합니다.과거의 성인지감수성 관련 판례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전 그 판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 증거들의 부재를 지적하며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비서 김지은씨의 진술이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및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행정부에 속하는 여가부는 ㅣ심 후 한 쪽을 지지하는 입장문을 발표함으로써 3권 분립을 훼손하였습니다. 

    만약 제 댓글로 인해 언짢으시다면 유감입니다.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성인권과 인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안희정 사건과 관련하여 위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틀렸다고 생각하시거나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지적해 주시면 제가 배우거나 경우에 따라 판단을 수정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BeGray 2020.09.08 00:47 신고 Modify/Delete

      안희정 전 지사가 초기에 바로 혐의를 인정하는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었죠.

      제가 대법까지의 판결문을 다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분명 김지은 씨의 진술 채택여부를 놓고 논란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통상의 성폭력 범죄와는 달리, 피고인의 특정한 성적 행위 자체가 존재했다는 것은 양자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며, 그것이 위계에 따른 강압인지 여부가 쟁점이었기 때문에 이걸 바탕으로 성폭력범죄에서의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이 비판받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해당 판결이 무죄추정의 원칙 및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했다는 배ldH 님의 말씀은 두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진술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죄형법정주의란 기존의 법률에 의거해 사건의 유무죄 및 형량을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안희정 케이스는 분명 기존의 법률을 적용하는 형태로 결정이 났습니다; 해당 법률의 적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 판결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위반했다고=기존 법률이 없음에도 자의적으로 형량을 내렸다고 주장하기는 좀 많이 무리이지 않나 싶습니다.

      둘째, 무죄추정의 원칙은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피고인을 죄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재판없이 누군가를 유죄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절차의 유무가 중요합니다. 안희정 사건에서, 비록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안희정을 최종 판결 이전에 비판/옹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권력이 재판과 무관하게 그를 유죄로 취급했다거나, 혹은 피해자 측이 그럴 것을 주장해서 받아들여졌다거나 한 적은 제가 알기로 전혀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이 되었던 점은 김지은 씨의 진술을 채택할 것이냐 마냐의 문제였고, 그것은 철저하게 한국의 정식재판절차 내에서 결정이 났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입장이 갈릴 수는 있습니다만, 그건 무죄추정의 원리와는 다른 쟁점입니다.

      제가 법 전공자는 아닙니다만, 기본적인 개념이 많은 분들에게 오용되는 것 같아 조심스레 정정한 점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본문의 포스팅은 안희정이 실제로 죄가 있냐 아니냐와 별개로, 그와 다른 사람들의 특정한 행위가 정치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안희정이 실제로는 무죄라고 할지라도 그와 다른 이들이 갖는 행위의 정치적인 논란지점은 여전히 남으며, 그걸 가벼이 볼 수 없다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2. 이것이냐 저것이냐 2020.09.08 02:40 신고 Modify/Delete Reply

    제가 잘못 알고 있다 생각하실 때, 가감없이 비판하고 정정해 주신다면 그것은 매우 감사하고 유익한 일이겠지요^^
    상세한 답변 감사드리고 포스팅의 취지 또한 어떤 의도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원칙에 대해 오해하여 잘못된 진술을 하였다는 데 있어 간략하게 반론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1.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근대 형법과 형사법의 대원칙입니다. 판사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지 않으면 유죄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두 원칙의 정의에 대해서는 begray님께서 위에 밝혀 주신만큼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

    2.직속상사로서 임면권이라는 위력을 가졌음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위력을 사건 전후에 행사하거나 언급한 정황이 없습니다. 고로 위력에 의해 자유의지가 제한되었다는 것은 비약적인 논리이며 자의적인 판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특히나 유일한 증거가 한 쪽의 진술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런 점에서 재판부는 무죄추정원칙을 어긴 것이죠.
    자유의지란 것 자체가 철학적으로 따지면 매우 복잡한 개념이겠으나 일반적으로 통제이론가들은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음(the ability to do otherwise)’을 키워드로 제시
    합니다. 위계관계의 존재와 진술만을 이유로 상호간의 성적 관계를 위력에 의한 강제적인 성격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명백한 무죄추정원칙 위반이며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원님재판'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력의 존재자체를 달리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규정한다면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기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명백한 물증이 없는 경우 모든 상하관계의 직장동료, 금전적 연관, 비즈니스 관계 이러한 유형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성적인 행위는 한 쪽의 진술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정도의 기준이라면 매우 부당하고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무죄추정원칙을 완전히 파괴하는 기준입니다.

    3.판결에 대해 조금 덧붙이자면 1심에서 무죄 판결의 근거 중 하나는 원고가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할만한 언행이 아니라 판단되는 것들을 하였다는 데 있었고 물론 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단 맹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물증이 있는 상황에 피해자다움을 고려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나 이렇게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위력 여부 등 개연성과 심증으로 따질 수 밖에 없는 경우 마찬가지로 윈고가 관계후 사적인 친구와의 대화에서 안희정 지지발언을 하고 순두붓집을 검색하는 등의 행위의 일반적 의미 또한 고려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4.제11조 (업무상 위력등에 의한 추행) ①업무·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추행한 자는 2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법률에 의하여 구금된 사람을 감호하는 자가 그 사람을 추행한 때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아까 주장한대로 위력에 의한 관계임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할 때 두 항에 모두 해당하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죄형법정주의의 엄격해석 원칙 (유추해석 금지)이 위반되었다고 봅니다.

    5.또한 덧붙이자면 국가권력 중 사법부가 무죄 추정 원칙을 위배했음은 위에서 썻고 더하여 말씀하신 것과 달리 행정부의 산하 기관인 여성가족부는 재판이 끝나기 전 원고에 대한 편향된 지지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는 무죄추정원칙 위반일 뿐 아니라 삼권분립을 흔드는 행동입니다.

    또한 원고 측 변호인은 "증거들을 너무나 쉽게 배척했습니다. 사회적 의미와 무게감에 대한 고민 없이 죄형 법정주의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말에 너무 쉽게 의존해 (판결했습니다.)" 라고 1심 후 말한 바 있는 데 begray님이 말씀하신 것과 달리 (2심)재판 전부터 무죄추정원칙을 부정했다고 판단됩니다.

    이상 부족하고 긴 글 읽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 2020.09.08 09:55 Modify/Delete

      배idh님이 제기하신 반론은 솔직히 말해서 begray님의 지적을 전혀 참고하지 않은 문맥상 동어반복입니다...보다 효율적인 대화를 위해 댓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시고 수정하시는 게 좋을 것같아요.지나가다 참견해서 죄송하지만 주인장께서 답이 조금 늦으시는 편이다보니 불필요한 과정은 최대한 줄이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나 싶어요.

    • 이것이냐 저것이냐 2020.09.08 12:33 신고 Modify/Delete

      음님/ 솔직히 말씀 드려서 조금 불쾌합니다.
      1.저 글은 begray님의 지적의 일부분에 대해 반론하는 글입니다.
      2.내가 지적을 전혀 참고하지 않는다던가,동어반복을 한다던가, 글을 수정할 것을 주장하신다면 최소한의 (본인이 생각하는)근거는 제시하시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
      3.참견해서 죄송하다 하셨는데 최소한의 논리와 성의를 갖추었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공격적인 주장과 요구만 있으면 곤란합니다. 그럼 참견이 되는 것이죠.
      4.본문의 판결 관련 무죄추정원칙과 죄형법정주의 침해 여부는 법조인,법학자들마저 치열한 토론과 이견이 있어왔던 주제입니다. 따라서 제가 그 중 한 쪽의 입장을 취한 것을 begray님께서 두 개념에 대한 오해로 간주하신다면-전혀 불쾌하진 않았지만- 저 또한 반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5.제가 쓴 글을 읽고 반대할 순 있지만 '동어반복'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은...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동어반복'의 의미를 모르시거나 '독해력'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네요..

    • 2020.09.08 15:48 Modify/Delete

      우선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하지만 다시 댓글을 읽어봐도 제 의견을 수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배님께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 유죄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셨는데요,begary님은 해당 용어 자체가 잘못된 뜻으로 쓰였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유죄를 증명할만한 완벽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유죄가 아니다"라는 이상적인 도덕률이 아닙니다."유죄로 판결되지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절차 상의 원칙이죠.실제로 안희정 씨는 유죄로 판명되기 전까지 법적으로 무죄였고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여기에 가치 판단이 개입할 요소가 있습니까?

      "무엇이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 가해지목자가 절차상 유죄로 취급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다른 범주에 속해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이라면 위같은 반론이 어째서 사오정스러운 반론인지 아셔야 합니다.정말 유효한 반론을 제기하고 싶으시다면 해당 용어가 학술적인 층위에서 다르게 쓰인 용례를 찾아 제시하든지 하셔야죠.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떠드는 아무말대잔치가 되어버리니까요.실제로 배님께서는 begray님의 지적은 안중에도 없이 아예 다른 쟁점을 끌고와 혼자서 떠들고 계십니다.

      개별적인 판결 근거에 대해서는 배님께서 불만을 가지실 수 있고 일견 타당한 부분도 있을겁니다.하지만 그건 배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이 과연 독해력의 문제일지 엄밀함의 문제일지는 제가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 2020.09.08 22:46 신고 Modify/Delete

      음/ 제 글이 다소 난잡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제 능력과 시간이 부족한 소치입니다. 계속 논쟁하고 싶진 않지만 간단히 답글 달겠습니다.

      1. 요점은 진술이 그 자체로 법적효력을 가지는 것을 인정하나 그것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면 성범죄 피고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않는 경우 유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피고 스스로가 무죄를 입증하지 못할 시 심증만으로 처벌될 수 있다면 이는 사실상 피고를 판결 이전, 재판 과정에서부터 유죄로 추정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죄추정원칙을 존중한다면 원고가 혹은 검사가 유죄를 증명하는 것이 유죄 선고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행정부에 속하는 여성부가, 그리고 사회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이 그를 더 심하게 유죄추정한 바 있지만 그것은 이 댓글에서 다루지 않겠습니다.(begray님이 부정한 부분이 아니므로.)

      저는 지식이 부족하고 필력이 모자랄지언정 법률용어를 도덕률로 착각하고 어디서 얼핏 들어 본 단어를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 BeGray 2020.09.09 01:05 신고 Modify/Delete

      정성스럽게 반론을 써주신 점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말씀해주신 반론이 논리적인 비약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간단히 말해 안희정 재판에서 성관계에 위력이 작용했는가 여부의 판단은 주어진 '절차 내에서의' 수행입니다. 해당 판단이 '자의적이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습니다만(제가 위계에 의한 간음의 법리와 판례들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않기 때문에 판단의 자의성 여부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무죄추정의 원칙 및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했다고, 다시 말해 '절차 자체가 부인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논리적 비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조금 더 도식적으로 설명한다면,

      무죄추정의 원칙 및 죄형법정주의가 유무죄의 판단이 주어진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면(A),

      말씀하신 "자의적인 판결", "유일한 증거가 한 쪽의 진술", "위계관계의 존재와 진술만을 이유로 ... 강제적인 성격으로 규정한다는 것", "비현실적인 기준" 등등...은 <절차 내에서 이루어진> 재판관의 판단(B)의 적절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A와 B는 엄연히 다릅니다. 좋은 예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학생이 시험에 아예 응시하지 않아서, 혹은 주어진 절차를 위반하여 부정행위를 시도하다가 0점 처리된 것과, 시험에 응시했으나 오답을 내서 0점을 맞은 게 결과적으로는 똑같이 0점 판정으로 동일할지라도 두 행위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님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좀 더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재판관은 명백하게 주어진 절차 속에서 안희정의 행위가 위계에 관한 간음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라 처벌을 선고했죠. 배ldH 님이 기술하신 사건전개 또한 재판관의 "판단"이 부적절하다는 것이지, 재판관이 "절차" 자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그리고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 모두 절차 혹은 형식에 관한 규범이죠. 배ldH님의 기준에서 재판관의 답안지가 0점이라고 하실 순 있겠지만(혹은 일부러 0점을 맞았다고 보고 괘씸하다고 생각하실 순 있겠지만), 그러한 경계를 넘어 재판관이 절차를 위반하고 부정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발언일 것입니다.

      물론 B의 부적절성이 심히 크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수사적으로 "이건 A를 위반한 것과 같다!"고 외치고 싶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수사적으로나 허용되는 진술이지, 엄밀하게 말하자면 타당하지 않은 진술입니다. 배ldH님께서 스스로 써주신 내용 자체가 재판관의 판단을 계속해서 문제삼고 있으며, 그 판단의 부적절함이 '마치' 절차적 원칙을 위배한 것과 같이 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실제로 절차적 원칙이 위배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도 하고요. 5번에서 원고측 변호인이 왜, 어떤 맥락에서 그런 표현들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바탕으로 안희정 사건의 판단이 두 원칙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념을 엄밀하게 사용하지 않는 대중적인 언어에서나 어쩔 수 없이 통용되는 것이지, 정확하게 말하고 사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안희정 케이스에 관해서는 뉴스로 보도된 사항 이상의 것은 잘 모르고, (저 자신은 안희정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에 따라 재판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해당 사건에 관해 개념의 오용을 통하여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진술을 하는 걸 정당화해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만약 제 지적에 반론을 제기하시고자 한다면, 안희정 사건에서 B의 위반이 너무나 심각해서 "마치" A를 위반한 것과 같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그건 앞서 말씀드렸듯 감정적인 레토릭으로나 쓸 것이지 개념의 분석에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마치'의 벽을 너무 쉽게 뛰어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죠),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 A가, 재판의 절차 자체가 문제였는지를 제기해주신다면 좀 더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

    • 이것이냐 저것이냐 2020.09.09 13:19 신고 Modify/Delete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 주장은 절차를 위배한 것과 같다기보다는 실제로 절차가 위배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어긴 판결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기도 하다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간단히 말해 무죄증명실패가 유죄선고로 이어진 것은 애초에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무죄추정원칙이란 재판 전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 뿐 아니라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따라서 내용뿐 아니라 형식 그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보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작동에 있어서는 둘을 엄밀히 분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면이 있으며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지 않을 경우(명목상의 형식을 지켰다고 '가정'하더라도) 원칙의 존재 의의가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법관의 직업적 특성 상 개인일 뿐만 아니라 그가 법적인 행위나 판단을 할 때에는 기관으로의 성격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반복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면 현실적으로 두 원칙은 깨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적용의 문제는 형식적 절차의 문제와 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학술적 용어로서의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정의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입니다.)

      덧붙이자면 begray님의 댓글 중 '국가권력(정부는 대표적인 국가권력이지요?)은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피고를 유죄로 추정한 사실이 없다' '원고측이 그것을 요구한 사실 또한 없다'를 그 중에서도 최소한 전자를 정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위에 쓴 대로 여성부는 2심 진행 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상태에서 원고 지지 성명을 내었고 여성부는 명백하게 행정부의 일부이며 그런 기관이 무죄추정원칙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물론 이는 삼권분립 훼손에도 해당합니다.)

      저는 딱히 정치적으로 안희정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법치에 자의성이 최대한 배제되는 것, 또한 그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유지되는 것을 중시하는 입장입니다.

      저의 기존 판단은 변하지 않았지만 Begray님의 설명 또한 '완전히' 부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고 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공부를 계속 하고자 합니다.끝까지 논쟁하기엔 서로 여러 제약과 한계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토론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짓고 귀하의 주장을 참고하여 개인적으로 좀 더 숙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BeGray 2020.09.11 18:32 신고 Modify/Delete

      네, 저는 말씀해주신 해명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해당 사건의 판결이 애초에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그냥 배ldH 님께서 생각하는 타당한 판결이 나오지 않은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인과관계를 자의적으로 추론하고 있으며, 자연과학/사회과학의 분리 같은 논리가 여기에 왜 들어오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과학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법논리의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설명 또한 법논리의 차원에서는 상당히 자의적인 해석처럼 보입니다. 여튼 다른 독자들을 위한 코멘트는 여기까지 덧붙이는 걸로 하고, 토론을 마무리하신다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P. S. 당시 여성부의 지지성명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행위임은 물론 사실입니다만, 그게 실질적으로 행정력을 동원한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해당 성명은 재판 전 무죄추정을 어겼다기보다는 재판의 판결이 나온 뒤 이에 불복하는 형태였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의 원리 위반이 아니라 다른 원리--예컨대 3권분립 등--로 적용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우리는 A사건에서 B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 제3자가 해당 판결에 불복하는 의견을 냈다고 해서 "무죄추정의 원리를 위반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법의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되는지를 조금 더 엄밀히 살펴보신 다음에 말씀하신다면 오해와 실수가 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3. 뮐러 2020.09.22 21:04 Modify/Delete Reply

    언론에 보도된 피해호소인의 주장이 전면으로 드러나면 우리 사회는 언제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원순 시장의 급작스러운 부재에 대한 조의에 일일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상황이 유감스럽다.그는 촛불의 안전을 보장했던 시장이고 다수 시민의 삶을 나아지게 한 행정가이자 인권운동가였며 그를 잃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건과 별개로 그가 했을지 모를 행위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며칠 몇달 혹은 수년 후에도 이어질 것이다. 일부 활동가의 생각과 달리 대다수 시민은 이 둘을 구분한다.남을 평가하길 좋아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방식을 되돌려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조문을 '피해자를 외롭게 할 수 있다'며 구태여 보이콧하겠다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엄중한 상황에 대한 사리분별을 하는 다수 시민을 2차가해자쯤으로 취급하는 짓이라고 말이다.그런 질 나쁜 정치방식을 진보 고유의 정치방식이라고 본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진보는 다수파의 정치가 될 수 없다.류호정과 장혜영의 논평도 인디언 기우제식으로 고인의 생전 행동을 부분적으로 사후예측했다 하더라도 이는 여전히 나쁜 정치다. 그들이 피해호소인과 연대하고 싶었다면 조문 보이콧 선언 이전에 장례 이후 자신이 확신하는 피해호소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제반 준비부터 만전을 기해야 했다.그리고 나는 지금 자신이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사정에 멋대로 빙의하며 떠들어대는 방식이 매우 천박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고인의 죽음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지금은 추론하기 난망한 상황이다.
    제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좀 아꼈으면 좋겠다. 지금 필요한 미덕은 인내심과 자제심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부 SNS 극단분자들에게나 통할 인디언 기우제식 정치를 진보정치의 간판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방식으로 간다면 결국 신지예의 녹색당 시즌2로 끝난다.

    뒤늦게 박원순 사태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살펴보다 박가분 씨가 남긴 트윗을 발견했는데요 본문과 배치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꽤나 그럴 듯하다고 느꼈습니다.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BeGray 2020.09.23 11:05 신고 Modify/Delete

      저는 박가분 씨의 해당 트윗이 그다지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 "대다수 사리분별을 하는 시민"과 "진보활동가"의 구도는 너무 단순합니다. 이 케이스에서 "시민들"에게도 여러 의견이 있는 건 너무나 쉽게 확인가능한 사실일 뿐더러, '성범죄자[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에 대한 공적인 장례가 적절한가를 두고도 역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죠. 정의당의 일부 의원들이 거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들은 따라서 좋든싫든 어떠한 선택을 한 건데, 그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저런 방식으로 논거를 짜는 건 저는 좀 갸우뚱 합니다.

      2) 다음으로 조문 보이콧 이전에 피해자의 명예를 지키는 쪽에나 신경 쓰라는 이야기도 역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는 논리가 아닐까 합니다. 박원순의 성추행 혐의 자체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공소권 없음으로 인해 거의 영구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상황, 즉 사실관계의 법적인 확정이 난망한 상황에서,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의 장례를 공적 행사로 치르는 게 피해자에게 부당한 추가적인 피해를--심리적인 것이든 명예의 차원이든--주리라는 건 명확했다고 봅니다. 저는 박가분 씨의 해당 입장에 두 가지 측면에서 동의하지 않는데, 첫째로 이 사건에서 박원순의 불행한 선택 이후 '사실관계가 모두 밝혀지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 확정하기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그 이후에나 움직이라는 요구가 정치적 행위자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조언일 가능성이 높고, 둘째로는 그의 시점에 실제로 피해자의 명예와 권익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입니다(저라면 설령 박원순의 공공장을 지지하는 입장일지라도 그게 피해자의 명예와 상충할 수 있는 안건이라는 것 자체는 인정했을 겁니다; 그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죠).

      박원순 케이스가 그의 지지자들과 동료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음은 분명하고, 사실 어떤 입장을 선택해도 완전히 마음편한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당시의 사실관계와 맥락을 단순화해서 누군가의 선택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걸 정당화해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 뮐러 2020.09.23 11:43 Modify/Delete

      답변 감사드립니다^^박가분 씨가 최근에 올린 트윗들을 보면 류호정,장혜영 등의 여성 정의당 의원들과 그들이 지향하는 여성주의 정책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원래부터 페미니즘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으로 유명했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페미니즘의 사회적 효용가치에 대해 일부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냉정하게 주장을 펼치는 사람 정도로 이해했는데 요즘들어 부쩍 감정적으로 변모한 것같더라고요...ㅎㅎ물론 짧은 문장에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야 하는 트윗의 특성상 박가분 씨의 논거를 세밀하게 체크할 수는 없겠지만 뭐랄까요,여성주의=>정체성정치=>대중과의 단절=>진보의 몰락이라는 단순한 연쇄 도식으로 이제 "여성주의인 것처럼 보이는" 혹은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언행을 비난할 수 있다고 정당화하는 것같습니다.

    • BeGray 2020.09.24 11:13 신고 Modify/Delete

      뭐 박가분 씨가 그런 길을 꾸준히 밟아오신 것은 너무 명확해서...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북미 진영에서 리버럴 의제가 PC와 정체성정치에 끌려가는 걸 비판하는 스탠스가 있기는 한데요, 한국에서 PC&정체성 정치가 그만큼 커졌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라 여기에서 그 전략을 똑같이 받아오기는 곤란하지 않나 싶어요.

  4. 2020.09.25 04:41 Modify/Delete Reply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라 함은,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라고 판정된 자만이 범죄인이라 불려야 하며, 단지 피의자나 피고인이 된 것만으로는 범죄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인권사상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에는 혐의가 있는 것만으로도 범인처럼 다루어졌다. 더구나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이른바 혐의형(嫌疑刑)이 과해져 ‘무죄추정’이 발동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적법절차의 이념에 의하여 뒷받침 되는 오늘날의 형사소송체계 하에서는 설령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이념이 전 세계적으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정신의 반영으로 세계인권선언은 제11조 제1항에서 “형법상 범죄로 인하여 소추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변호에 필요한 모든 보장이 확보되어 있는 공개재판에서 법에 의하여 유죄로 판명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각국의 헌법에 영향을 미쳤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소송법적으로 국가, 즉 소추하는 측이 유죄의 입증을 해야 하는 법칙을 말한다. 이것은 ‘혐의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소송절차에서는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며,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의 책임은 기소자인 검사에게 있으며 피고인 자신이 무죄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검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넘는 정도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원칙에 따라 무죄판결이 나게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국가 인권위 사전을 살펴보니
    1.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라고 판정된 자만이 범죄인이라 불려야 하며, 단지 피의자나 피고인이 된 것만으로는 범죄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2.무죄추정의 원칙은 소송법적으로 국가, 즉 소추하는 측이 유죄의 입증을 해야 하는 법칙을 말한다
    (전문을 읽어보면 2가 함의하는바가 판결에 있어 중대하다는걸 알수있습니다)

    이렇듯 무죄추정원칙은 두가지 측면에서 정의되고있습니다. 한 가지 측면으로만 절차성을 제한해서 논리를 펼치는건 온전한 반박이 아닙니다.주인장님은 본질적으로 2의 해당하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교묘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위 의미를 자의적으로 A와B로 분리하는 자충수를 두셨습니다.
    제생각엔 개념적인 정의만으로도 위 토론과같은 아노미적인 담론에 해결책이 됩니다 . 따져야 할 부분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했는가에 앞서 '충분히 유죄입증이 객관적으로 충분히 되어졌는가' 라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 입장에서 배님의 의견은 합당한 문제제기일수 있습니다.

    • BeGray 2020.09.25 23:26 신고 Modify/Delete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위 논쟁 이후에 법률 전공자들과의 대화에서 판단의 내용의 측면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작동한다는 설명을 듣고 제가 해당 원칙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성범죄에서 피해자중심주의 및 성인지 감수성의 도입이 무죄추정의 원칙과 어떤 식으로 충돌(안)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설명을 접하지 못하여 정리된 댓글을 더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먼저 무죄추정의 원칙에 관해 좀 더 합당한 설명을 해주셨군요.

      보충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