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환, 「세력균형과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유럽 질서의 붕괴」

Intellectual History 2020. 6. 12. 17:31

아래는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 재직 중이신 안두환 선생님(http://psir.snu.ac.kr/korean/faculty_view.php?id=26)의 논문 「세력균형과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유럽 질서의 붕괴」(이하 「세력균형」)의 원고를 저자의 동의를 얻어 출간 전 공개하는 것이다(해당 원고는 『평화의 정치사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집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이다). 케임브리지 학파, 그중에서도 이슈트반 혼트(István Hont, 1947-2013)와 안두환 선생님을 포함한 혼트의 학생들은 지난 40년 간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국제정치경제사상의 의미와 복잡성을 조명하는 다양한 연구를 해왔으며, 그들의 노력에 의해 상업사회 논쟁은 이제 18세기 서구 정치사상을 조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로 다시 인식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블로그와 번역서 등을 통해 누차 언급해왔듯, 케임브리지학파가 일구어놓은 18세기 계몽주의·상업사회 논의의 진면목을 한국어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없었다. 본 포스팅을 통해 그 첫 걸음을 내딛는 영광을 허락해주신 안두환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리처드 왓모어의 『지성사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을 통해 지성사에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되신 분에게는 그 호기심을 달래면서도 더욱 크게 만드는 계기가, 해당 시기 국제정치사상사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풍부한 참고문헌을 통해 앞으로의 공부방향을 다듬는 교두보가 되기를 희망한다.

 

글의 길이는 200자 원고지 기준 230매가 넘는 짧지 않은 분량이다. 더하여 베스트팔렌조약부터 프랑스혁명기까지 한반세기 가량의 시대를, 또 사무엘 푸펜도르프·찰스 데브넌트·볼링브로크·프랑수아 페늘롱·데이비드 흄·몽테스키외·에머 드 바텔·장-자크 루소·아이작 드 핀토·칸트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상가와 논자들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소개하는 글이니만큼 18세기 유럽정치사상사, 특히 국제정치경제적 논의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겐 내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체로도 선명한 논리를 지닌 친절한 글에 약간의 설명을 붙이는 실례를 무릅쓰고자 한다.

 

 

서론부터 결론까지 총 여섯 개의 절로 구성된 「세력균형」의 목적은 "18세기 세력균형의 개념과 실천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다.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글은 크게 두 가지 축을 바탕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첫째는 베스트팔렌조약에서 루이 14세의 도전, 다시 위트레흐트조약과 각국의 무역경쟁을 거쳐 제국 간의 충돌과 혁명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치사의 맥락이다. 글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축은 그와 같은 국가·왕조들 간의 전쟁과 무역, 동맹과 확장이 쉴틈없이 이어졌던 18세기 유럽정치사를 배경으로 각각의 사상가들이 전쟁과 평화에 관해 무슨 문제의식을 지녔고 어떠한 논리를 제시했는지를 살피는 세력균형의 지성사다. 

 

세력균형의 논리가 형성되고 변모해가는 역사적 과정은 좀 더 상세한 시선이 필요하다. 먼저, 1절에서 상세히 소개되는 페늘롱의 입장에서 드러나듯, 세력균형의 논리는 단순히 평화와 전쟁의 문제 이전에 고대 로마의 역사를 전범으로 삼는 고전기의 정치언어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공화국에서 제국으로의 변모, 그리고 제국의 몰락이 보여주듯, 권력의 집중에 의해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는 세력이 통치하는 세계가 부패와 파괴, 멸망을 피할수 없다는 것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정치언어에서 '보편적 사실'에 가까운 위치를 점하는 교리였으니, 17-18세기의 유럽 또한 이러한 운명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고 다수의 논자들은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입각해 여러 논자들은 (특히 프랑스와 같은) 어느 한 국가도 절대적인 패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세력균형이야말로 국가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가능케하는 대안이라고 주장했고, 또 그러한 기준에 따라 각국의 정치적 선택을 평가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글의 3절에서 흄과 몽테스키외를 통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상업"의 역할이다. 실제로 위트레흐트 조약 이전에도 '근대' 자연법 전통에서는 교역이 상호의존성을 증대시켜 인간의 사회성sociability을 증진시키고 나라와 민족을 교화한다는 논리가 존재했으며,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비교적 선진적인 국가들에서는 자신들이 '상업사회' 문명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갔다. 17세기부터의 자유무역옹호론과 함께 이는 흄과 몽테스키외를 경유하여 다시 국가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즉 국제적인 상업과 교역의 번성이 국가들 간의 호혜적인 평화를 가져온다는 틀로 재구축되었다. 그러나 상업의 대두가 갖는 함의는 양가적인 것이었다. 당대인들은 상업으로 얽힌 관계가 단순히 호혜와 상호번영만이 아닌 경쟁과 다툼의 장이기도 하다는 걸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국제교역에 입각한 세력균형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상업은 평화의 사도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나팔수가 될 수 있었다. 3절 후반부에서부터 특히 4절까지는 무역경쟁과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국제적 세력균형에 대한 믿음이 위기에 직면하는 과정을 그리며, 5절은 이제 유럽 밖에서까지 이어지는 제국들간의 경쟁과 혁명들의 도래로 계몽주의 시기 세력균형론이 붕괴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간략히 그려낸다.

 

인간의 본성과 정치체의 명운을 설명하던 초기 근대의 언어들이 상업과 교역이라는 주제와 어떻게 맞닥트리는지, 그리고 후자가 어떻게 전자를 재구축하는 강력한 자장으로 작용하는지에 주목하여 장기 18세기/계몽주의 시대의 정치사상사를 개괄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세력균형」은 혼트와 그의 학생들이 구축해온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선명히 드러내는 뛰어난 저술이다. 『무역의 질투』(Jealousy of Trade, 2005)를 비롯한 혼트의 저작을 주의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그리고 긴 호흡을 갖고 20세기 초 독일의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에게까지 닿는 정치사상사의 고전들을 떠올릴 수 있는 독자라면, 이 논문의 뿌리가 연결된 보다 깊은 지적 전통이 지성사 연구에서 더욱 풍성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도, 이 글은 길고 요동치는 시간 내에서 사상과 세계의 역동적인 관계를 음미할 수 있는 좋은 안내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이 글이 도달하기를 기대해본다.

 

 

[*2021년 4월 6일 수정, 2023년 12월 29일 링크수정 / 저자의 요청에 따라 기존에 실었던 본문을 삭제한다. 해당 논문을 보실 분께서는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 게재된 같은 내용의 워킹페이퍼 링크로 들어가시면 pdf 파일을 열람할 수 있다: 
http://snuiis.re.kr/sub5/5_3.php?mode=view&number=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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