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반 혼트, "반사회적 사회성: 18세기의 관점" 소개
Intellectual History 2020. 5. 20. 15:52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대학 지성사연구소에서 며칠 전 이슈트반 혼트(Istvan Hont, 1947-2013)의 미출간 원고 "반사회적 사회성: 18세기의 관점"(Unsocial Sociability: 18th-Century Perspectives)을 공개했다. 1996년 1월 4일 옥스포드대학 뉴 칼리지(New College)(New College)에서 열린 정치사상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원고라고 한다. A4 14쪽 분량의 pdf를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는 https://arts.st-andrews.ac.uk/intellectualhistory/islandora/object/intellectual-history%3A438 참조.
원고는 기본적으로 2015년 혼트 사후 출간된 강연 <상업사회의 정치학: 루소와 스미스>(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Jean-Jacques Rousseau and Adam Smith, 2015)에서 다루어진 주제 중 일부를 다룬다. 즉 칸트의 "반사회적 사회성"(ungesellige Geselligkeit / unsocial sociability) 개념이 17-18세기 유럽의 정치/사회사상담론에서 지닌 함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혼트는 먼저 해당 개념, 즉 사회/무리를 형성하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물음이—인간 본성에 사회성이 존재하는가,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등등—당대에 단순히 윤리학/도덕철학적 주제만이 아니라 국가/사회를 이해하는 논리의 기본적인 토대였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해당 논쟁을 중심에 두고 그로티우스, 홉스, 푸펜도르프부터 출발해 영국의 섀프츠베리-맨더빌-프랜시스 허치슨을 거쳐 루소-스미스-칸트(그리고 이후에는 헤겔과 맑스 등의 19세기인들)에까지 이어지는 정치사상사의 계보를 제시한다.
비록 칸트를 표제로 걸었지만, 혼트가 실질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저자는 애덤 스미스다. 여기서 그가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지점은 장-자크 루소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스미스다. 루소가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발표한 1755년의 이듬해, 즉 1756년 3월에 발간된 에딘버러평론(Edinburgh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스미스는 프랑스의 주요한 계몽사상가들을 거론한 뒤 루소의 저작에 비교적 상세한 논평을 남겼다(기고문 원문은 Liberty Fund에서 출판한 스미스의 Essays on Philosophical Subjects, 1982 중 "Letter to the Edinburgh Review", pp. 242-56 을 참고). 루소는 분명 자신의 입장이 버나드 맨더빌 등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스미스는, 에딘버러평론 기고문에서 명시적으로 말하듯, "루소 씨의 체계"가 상당히 변화되고 다듬어진 형태로나마 맨더빌의 인간본성론을 공유한다고 지적했다. 혼트는 18세기 중후반 유럽의 가장 중요한 도덕철학론 중 하나인 스미스의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 초판 1759)이 이러한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입장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본인의 사회(성)이론을 구축하는 작업으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혼트는 이처럼 (반사회적) 사회성 개념을 둘러싼 논쟁을 지성사적으로 이해할 때 칸트와 칸트 이후의 사상가들이 하려는 사상적 작업의 본령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암시하면서 글을 마친다. 덧붙이자면, 앞서 언급한 2015년 출간저작에서 혼트는 이 원고에서의 논의를 훨씬 세밀하고 깊은 지점으로까지 밀고 간다--나는 수 년 내로 이 저작이 명료한 한국어로 소개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혼트 평생의 과제 중 하나는 17세기 자연법으로부터 출발해 칸트는 물론 맑스에 이르는 사상사의 궤적을 다시 읽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2013년의 때이른 죽음에 의해 그는 18세기 말부터의 독일 정치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작을 남기지는 않았으며, 그건 이 원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하버드에 있는 혼트의 가까운 동료 리처드 턱Richard Tuck의 <전쟁과 평화의 권리: 그로티우스에서 칸트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사상과 국제질서>[The Rights of War and Peace: Political Thought and the International Order from Grotius to Kant, 2001], 혼트의 학생이었으며 현재 예일대 역사학과에 재직 중인 아이작 나키모프스키Isaac Nakhimovsky의 <닫힌 상업국가: 루소에서 피히테까지의 영구평화론과 상업사회론>[The Closed Commercial State: Perpetual Peace and Commercial Society from Rousseau to Fichte, 2011]에서처럼 이 주제를 더 파고 들어간 저작을 남긴 사람들은 있다) 자연법과 사회성 논쟁을 가져와서 칸트의 도덕철학을 본격적으로 읽으려 했던 주요한 시도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제롬 슈니윈드(Jerome Schneewind)의 <근대 도덕철학의 역사: 자율의 발명>(The Invention of Autonomy, 1998, 한국어판은 2018) 정도이며, (독일어권의 연구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듯 하다. 이는 아마도 그러한 작업이 단지 18세기 정치사상의 커다란 테마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독일 내부의 맥락을 세심하게 읽어내려는 시선(영어권에서는, 철학적 논쟁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그나마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Beiser가 이런 작업을 시도한 대표적인 저자다; 예컨대 한국어로 번역된 <이성의 운명>, <낭만주의의 명령>을 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랑스혁명이 당대의 지형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를—혼트는 여기에 대한 '이론적' 작업을 시도한 바 있으나 이는 적어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서는 성공적이지 않았다—면밀하게 이해하는 과제를 모두 요구하는 까다로운 것이기 때문이리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자원을 가진 영어권의 학술장에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가 우리 곁의 연구자들 중에서 저 주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당연히도 이러한 작업은 많은 것들을 '거시적'이라는 허울 아래 대충 처리하려는 '거장다운' 시선보다는, 각 분야를 정확하고 엄밀하게 연구하는 전문연구자들의 주의깊은 협력을 통해서만 돌파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인문학계는 아직 (당장은 무용해보일 수 있는) '인문학적 전문성'을, 특히 문헌과 문헌, 언어와 언어의 관계를 지독하리만큼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는 태도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으며--그러나 진실로 새로운 것은 세련된 이론적 진술이 아니라 수많은 문서더미를 파고드는 고투에서만 나올 수 있다--서로 다르지만 인접한 연구분야를 전공한 전문연구자들의 생산적인 협업모델로 어떤 것이 가능할지 좀처럼 답변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혼트의 거대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연구서사가 남긴 과제와 같은 매력적인 작업은 어쩌다 한 명 나오는 천재/'큰 인물'에 대한 희구가 아닌 기본적인 전문성과 협업의 결합에서만 가능하다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상식을 덧붙이는 걸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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