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크롱크&김민철, <볼테르> 한국어판 저자&역자 서문 옮김

Intellectual History 2020. 5. 30. 15:55

올해 9월 후마니타스에서 출간예정인 볼테르 입문서의 저자와 역자가 함께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이 앞서 공개되었다. 원저는 Nicholas Cronk, Voltaire: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P, 2017 로, 옥스포드대학 출판부의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에 관해 들어본 독자들은 곧바로 알아차리겠지만, 평범한 독자와 전문가가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영어권 스칼라십의 한 정점에 위치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https://global.oup.com/academic/product/voltaire-a-very-short-introduction-9780199688357). 저자 니콜라스 크롱크는 유서깊은 볼테르 재단(Voltaire Foundation)의 디렉터이자 해당 재단에서 발간 중인 볼테르 전집의 총 편집자로, 세계 최고의 볼테르 전문연구자 중 한 명이다(https://www.voltaire.ox.ac.uk/about/our-people/professor-nicholas-cronk). 내 페이스북과 블로그에서 종종 언급되곤 하는 역자 김민철 선배는 프랑스혁명 및 계몽주의 전문연구자로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번역자라 할 수 있다. 단순한 대중서도, 단순한 연구서도 아닌 대중서로서든 연구서로서든 높은 수준에 있는 저작이 집필되고 번역되기 위해서는 좋은 저자와 역자를 포함해 아주 많은 요소들이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요소들의 결합이 실제로 구현된 매우 운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모든 사항을 뒤로 하고서라도, 매 문장이 무척 정갈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지적 깊이를 잃지 않는, 자체로 좋은 글이기에 한국어판 서문을 공유한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니만큼 완성된 책이 우리 곁에 다가오기까지의 100여 일 간 천천히 여러 번 읽으면서 음미해주시면 좋겠다.


한국어판 서문 원 주소: https://www.facebook.com/egaliberte/posts/1266754806862658




볼테르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 니콜라스 크롱크의 책 <볼테르>를 번역했습니다. 9월 초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크롱크의 제안으로 저자와 역자가 공동으로 한국어판 서문을 작성했는데요, 원어병기한 부분들을 임시 삭제하고 여기 미리 공개해봅니다.


- 저자 & 역자 공동서문 -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노력할수록, 나는 그러한 지식이 필연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광활한 중국 땅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며, 그들에게 유럽이란 마치 우리에게 조선이나 북부 일본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 볼테르


볼테르의 수첩에는 이와 같은 생각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소장했던 6천 권의 학술서 목록이 입증하듯, 볼테르는 비유럽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다. 이 관심으로부터 그의 저술 중 가장 야심 찬 작품인 <민족들의 습속과 정신에 관한 고찰>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보편사를 서술하려는 선구적인 시도였다. 이전의 ‘보편사’는 보쉬에의 1681년작 <보편사에 관한 소론>처럼 기독교 유럽 세계의 역사로 서사를 한정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와 달리 볼테르는 지구상의 제 민족을 포괄하는 역사를 서술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는 세계 온갖 민족들의 정치사ㆍ군사사를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그들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특히 문학에 대해 더 광범위하게 다루려고 노력했다. 그는 뒤알드의 1735년작 <중국 제국에 대한 묘사>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국문화의 온갖 면모를 묘사한, 당시 서유럽에서 매우 잘 알려진 책이었는데, 볼테르는 이 책에서 13세기 중국 잡극 <조씨고아>를 1731년 프레마르의 번역을 통해 발견했다. 그는 이 발견에 몹시 흥분하여 그것을 토대로 비극 <중국고아>를 썼다. 그것은 칭기즈 칸이 금나라를 침공한 시기의 북경 황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 의무, 그리고 최종적인 용서의 이야기였다. 이 비극은 1755년에 파리의 코메디프랑세즈에서 초연되어 큰 흥행을 구가했다. 볼테르의 명성이 워낙 자자했던지라, 작품은 곧 다른 유럽어들로 번역되었다: 영어(1756년), 이탈리아어(1762년), 네덜란드어(1765년), 스웨덴어(1777년), 포르투갈어(1783년), 에스파냐어(1787년), 덴마크어(1815년), 폴란드어(1836년). 13세기 중국 극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볼테르의 시도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것은 극장이라는 공간을 넘어 유럽 문화에 영향을 미칠 만큼 흥행했다. 볼테르는 프랑스 작가였지만 프랑스인 독자층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으며, 이미 생전에 전 유럽에 걸쳐 유명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물론 <중국고아>에서 한국(고려)이 언급되긴 하지만, 볼테르의 글에서 한국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거의 대부분 그의 <습속론>에서다. 그는 한국을 “우리 지구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거대한 중국(몽골) 제국의 일부분으로서 언급하며, 칭기즈 칸의 정복사업들을 묘사하는 부분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볼테르는 자신에게 정보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했으며, 한국이 유럽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했다.


볼테르는 유럽인들이 잘 모르는 민족들에 대해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중동의 나라들이 이를테면 유럽과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수많은 설화”를 갖고 있음에 주목했다. 물론 그가 “설화”라는 표현으로써 겨냥한 것은 기독교의 성경이었고, 그것과 유사한 “설화들”이 중동에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가톨릭이 스스로 내세우던 유일성과 보편성을 공격한 것이었다. 볼테르는 다르다넬스 해협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의 관습은 서로 다르겠지만 윤리적 사고의 근원은 모든 민족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일본에서든 프랑스에서든 새해 첫날에는 친지들과 친구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지구 전역에 공통된 전통과 관례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민족들 사이의 표면적 차이를 넘어, 볼테르는 인간은 지구 어디서든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그는 특히 종교에 관해서 각 문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을 찬미하지만 결국 인류는 우주를 창조했고 선한 도덕을 설파하는 ‘최고존재’를 함께 찬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비판받기 쉬운 입장이다. 종교사가들은 세계 여러 종교 간의 실체적인 차이들을 지적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개념을 들어 볼테르가 유럽의 기준으로 중동의 문화를 평가하는 식민제국의 깔보는 듯한 태도를 견지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쨌거나 유럽이 중동에 식민제국을 건설하기 이전 시대에 활동한) 볼테르에게 공평하지 못한 비판인데, 왜냐면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으며, 구할 수 있는 소량의 자료를 완전히 이해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항상 자신의 목적을 당당하게 선언했으니, 그것은 곧 모든 문화에 공통된 인간성의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밝혀내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볼테르는 유럽중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만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가 유럽중심주의자가 아니기는 어차피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그가 원한 것은 인류 공통의 속성과 가치를 묘사하는 것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1760~1761년에 <세계시민: 중국인 철학자의 편지>를 출판했는데, 이 책은 런던에 거주하는 것으로 설정된 가상의 중국인 화자가 쓴 편지들을 모은 형식을 취하여 영국 사회를 비평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세계시민”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 볼테르를 최초의 “세계시민” 중 한 명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구체성의 집합체에서 보편성을 발견해내곤 하던 볼테르는 유럽 계몽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특히 ‘기성 종교의 광신과 교조주의에 맞선 저항’이라는, 널리 알려진 판본의 계몽의 상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볼테르를 소개하는 책은 거의 없었다. 국내 연구로는 역사학, 문학, 철학, 정치학 분야의 학자들이 전공자를 위해 쓴 소수의 논문이 있을 뿐이다. 도서시장에서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거둔 성공에 묻혀, 볼테르의 글은 몇몇 ‘고전적’ 작품만이 번역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독자들이 수월하게 접하는 것은 <캉디드>와 <관용론> 정도에 그치며, 서점에서 볼테르라는 ‘인물’에 대한 책을 발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공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독자들은 이 공백이 메워진 다음에야 비로소 이전에 커다란 공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 볼테르’에 대한 권위 있으면서도 간단명료한 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현대사를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튼튼한 민주국가 중 하나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평화적인 정치혁명을 이루어냈다. 사람들은 공론장에서 온갖 낡은 매체와 새로운 매체의 도움을 받아 강고한 교조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실험하려는 논쟁들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볼테르의 세계다. 이것이야말로 그 회의주의적인 시인이 감히 너무 큰 목소리로 내다보지는 못했으나 때로는 광신과 전제정이 사라진 미래, 인민이 정치적으로 관대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존재가 된 미래를 꿈꾸며 다소 낙관적으로 조심스럽게 희망해보던 세계다. 그런 ‘세계’가 지금 여기 도래한 것은 아니지만, 볼테르의 ‘세계’란 곧 이 가능성들이 새겨진 변화의 공간, 그 변화의 과정이 내전과 살육으로 이어지지 않는 관용의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행기제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공간이다. 이것은 인간이 개별적ㆍ집단적 의지로써 서서히 삶의 조건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하는 세계다. “계몽의 세기”에 이 같은 낙관주의는 반은 진지한 것이었고 반은 전략적인 것이었다. 뒤틀리고 복잡하지만 감동적이고 당당하며 해방적인 볼테르의 18세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니콜라스 크롱크 & 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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