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덕감정론 및 루소에 관한 대화
Intellectual History 2015. 11. 15. 15:19영국의 도덕감정론에 대한 간략한 정리노트. 댓글로 달았던 내용을 옮겨온다. 대충...17-18세기에서 직접 읽은 텍스트들을 빼고 참고한 주요 2차 문헌들은 테일러(Charles Taylor), 바커-벤필드(G. J. Barker-Benfield), 이스트반 혼트(Istvan Hont), 앨버트 허쉬먼(Albert O. Hirschman), 콜린 캠벨(Colin Campbell) 등등이다. 사실 종교사랑 문학사가 좀 더 보강되어야 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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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8세기 도덕감정론자들에 대해서 아주 개괄적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신의 선한 섭리적 질서(providential order)의 존재. 16-17세기의 신교/청교의 주된 흐름이 인간이 신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면, 17세기 중후반부터 아르미니우스파 등이 유입되면서 점차 신의 선한 의도를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신이 인간이 자유의지와 이성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허락했다거나(예를 들어 밀튼의 후기작 <실낙원>_Paradise Lost_를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세계의 운행이 인간의 행복을 점점 더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논리 등을 꼽을 수 있겠지요.
2) 인간이 구원에, 신의 섭리/우주적 질서에 부합하는 삶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오직 은총"이라는 루터의 교리나 칼뱅의 예정설과 같은 교리로부터 점차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량을 발휘할 때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만) 우주적 질서에 합일할 수 있으리라는 논리가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합니다. 샤프츠베리가 이런 흐름과 스토아주의의 결합을 보여주죠.
이 두 가지 사항이 17세기의 청교주의가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 등을 거쳐 훨씬 더 '자애로운 신'의 세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여준다면, 다음 두 가지는 18세기에 특히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3) 인간이 우주의 질서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할 때, 인간의 감각/감정이 그 매개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17세기 후반부터 감각론에 기초한 인간학이 대두하게 되는 흐름과 연관이 있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지각하는 능력, 인간이 움직이는 동력으로 감각sense과 정념passion이 꼽히고, 이것들이 이성을 통해서 제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해 적절하게 활용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점차 강해집니다(물론 정념의 활용이라는 문제는 17세기에 홉스와 스피노자에게서 이미 나타납니다). 샤프츠베리와 허치슨 등 18세기 전반부의 도덕감정론자들은 이러한 맥락 위에서 도덕감정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인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하나 강조할 점은 이렇게 선에 부합하는 감정이 그 자체로 쾌pleasure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즉 선한 행위는 우리의 쾌락을 촉진하며, 쾌락과 같은 감정을 통해 우리는 선을 알고 그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4) 18세기 특히 중반부쯤부터 두드러지는 주제는, 인간에게 바람직한 삶이 상업적인 시민사회 안에서 가능해진다는 믿음입니다(경우에 따라서 로크에게서 이러한 테마의 원조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부터 맨더빌, 허치슨을 거쳐 볼테르에 이르기까지 18세기 전반부는 상업과 사치가 사회의 덕과 부패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집니다. 특히 18세기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에 도달한 영국은 상업을 발달시키면서도 (적어도 치명적인 수준까지는) 부패를 피하는 모델로 추앙되며, 몽테스키외(<법의 정신>)나 볼테르(<철학적 서한>)와 같은 프랑스의 관찰자들에게서 이런 인식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18세기 후반 도덕감정론자들의 후예(흄과 스미스)들은 인간이 (문명)사회 안에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덕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전제를 받아들입니다(이 점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이 루소의 가장 독특한 면모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3과 4의 결합은 한편으로 고양된 감정을 옹호하고 동시에 쾌=선을 추구하는 소비주의적 윤리로까지 이어집니다. 실제로 영국에서 17-18세기에 걸쳐 광범위한 독서공중 및 소비사회가 출현한다는 경제사적 측면도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가 스미스에게서 볼 수 있는 결론, 곧 인간은 도덕감정을 통해 사회 안에서의 바람직한 삶에, 미덕있는 삶에 도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것이 우주의 (선한) 섭리에도 부합하는 삶이라는 믿음 역시 3과 4의 결합에 기초하고 있죠. 그리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면서 도덕감정론적 체계를 비판하는 적어도 두 가지 입장이 출현합니다. 하나는 도덕감정이나 초월적인 섭리 등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그런 거 없다"는 벤담 등 급진적 계몽주의/공리주의의 계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기대하는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맬서스의 논리입니다(그리고 양자는 함께 정부, 제도, 입법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죠).
물론 한 시대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도달한 도덕감정론의 흔적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복음주의 전통, 특히 웨슬리 형제를 태두로 하는 감리교의 확장은 내밀한 감정의 표출과 종교적 선을 연결시키는 논리가 19세기에도 대중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며, 비슷한 논리가 감상소설 등의 문학텍스트에도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물론 구체적인 덕의 형태 등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반동기에 많이 바뀌지만요). 맬서스가 모두에게 충격을 준 시대에 낭만주의자들이나 박애주의자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자유시장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경제신학'은 한 세기를 더 가죠.
아래는 루소를 전공하는 선배가 달아준 댓글. 영국도덕감정론자들과 비교할 때 루소가 어떤 독특함을 지녔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허락을 받고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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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ray 씨가 상을 차려줬으니 저는 숟가락만 올리겠습니다. BeGray 씨가 설명한 항목들에 대한 루소의 입장을 18세기 프랑스의 맥락에서 간략하게 지적합니다.
1) "신의 선한 섭리적 질서(providential order)의 존재."
루소 또한 신의 섭리를 믿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계몽주의로 얼버무려 부르는 동시대 프랑스 철학자들과 대립하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유물론자들은 물론이고 볼테르 또한 점점 더 신의 섭리를 회의하고 부정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이들은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양립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격한 유물론자들은 인간의 자유 자체를 회의하기에 바로 그런 의미에서 기계론적 세계에서 섭리의 역할을 삭제합니다.) 루소는 인간의 자유와 신의 섭리가 공존하는 세계를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섭리에 대한 많은 논쟁을 일으킨 1755년 11월의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몇 달 후에 볼테르에게 보낸 편지, 일명 <섭리에 대해 볼테르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런 루소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2) "인간이 구원에, 신의 섭리/우주적 질서에 부합하는 삶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우주적 질서와의 스토아적 결합의 이상을, 루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루소의 유명한 '자연'은 그러한 우주적 질서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자연'은 루소가 믿는 기독교의 신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루소에게 이 '자연'은 신과 상관없이 인간본성에 대한 추론을 통해 내재적으로 밝혀질 뿐만 아니라, 그 실현에서도 특정한 신학에 기댈 필요가 없음이 밝혀집니다. 루소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종종 표현하는 내면의 탐구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신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지만 이 섭리는 이미 칸트의 합목적적 세계의 표상으로서의 신과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사부아신부의 신앙고백>). 이런 과정에서 루소에게 인간의 자유의 영역과 신의 섭리의 영역은 '개별적 악'의 영역과 '일반적 선'의 영역으로 분리됩니다. 그는 두 세계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양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인간이 우주의 질서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할 때, 인간의 감각/감정이 그 매개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한편 스토아적 이상은 루소에게서 자신의 이성주의를 소거당한 채 전유됩니다. 루소의 자연은 차라리 본원적이고 순수한 감정의 보고로서, 자연의 질서로 다가가게 해주는 인간의 자기성찰은 종교개혁의 전통 속에서 '느끼는' 행위로 규정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또한 루소가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던 영국경험론의 방법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루소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상태의 감정들과 그것을 느끼는 감각들은 모두 심각하게 변질되었기에 잘 느끼기 위해서는 감각과 감정에 대한 매우 정교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잘 느낄 능력을 대부분 상실했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관념들의 출처 또한 현재 세계 속에 있는 감정들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루소는 어느 시점에서 경험론적 방법을 극복할 필요성을 강하게 갖습니다. <신앙고백>에서 '판단'의 능동적 사용이나, <불평등기원론>에서 자연상태의 추론 등은 모두 경험론적 방법을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루소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데요, 그렇다고 루소가 감각론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특정한 비판을 통해 감각을 감각 너머로 보내길 원합니다. 자연상태의 추론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에서 나타나는 '존재감각'(<볼테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미 '존재감각'은 "모든 감각과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규정되기 시작합니다)은 모든 사회적이고 인과론적인 감각 너머에서 순수한 존재를 느끼는 감각입니다. 일종의 감각의 형이상학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루소에 대한 현대의 현상학적 해석의 토대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초-감각을 통해 인간은 어떤 선의 이념에 닿는 게 아닙니다. 그곳은 선과 악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한 자기충족적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이런 상태의 감각과 거기에서 맛보는 쾌락, 즉 선악의 세계가 무의미한 충족적 상태의 경험이 결국 인간을 선하게 만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4) "18세기,(...) 인간에게 바람직한 삶이 (상업적인) 시민사회 안에서 가능해진다는 믿음".
이 항목에서 아마 루소는 가장 보수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루소는 사치는 물론이고 상업에 대해서도 굉장히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는 도덕주의는 경제가 언제나 도덕에 의해 지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백과전서>에 루소가 기고한 <정치경제> 항목은 그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그의 자연에 대한 경도는 농업사회에 대한 과도한 이상화로 나아갑니다. 아마 이 점에서 루소는 후대의 맑스주의자들에게 상당한 점수를 삭감당했을 겁니다. 사실 그는 경제와 정치의 연관을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었음에도, 경제법칙의 자율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경제운용 자체를 정치 아래에 두려는 데 집중했습니다. 루소의 칼뱅주의와 제네바적 공화주의의 이런 영향은 (일단 최근의 경제의 '도덕성'을 묻는 흐름에서 루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별개로 하고) 하지만 루소의 엄격한 정치철학인 <사회계약>을 낳는 바탕이 된다고 평가됩니다. <사회계약>은 오로지 정치적인 주체들의 정치적인 행위만을 고려하는 책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계약>은 정치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덕'만을 다룰 뿐, 위에서 얘기한 개인들의 선의 실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루소는 정치(사회)가 완전히 사유되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그러므로 그것은 경제나 개인의 내면, 더 나아가 신의 섭리와 상관없이 사유되어야 한다고 믿고(<사회계약>의 '전체주의'), 그렇게 사유했을 때 그것이 개인의 삶과 거의 필연적인 불화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몽상>의 '개인주의'). 그것의 종합을 시도하는 <에밀>에서 루소는 자신의 제자이자 아들 에밀을 아주 소극적인 소시민으로 키웁니다.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면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소시민의 이상형을 고안합니다. 이것은 내면과 외면, 감정과 이성, 개인과 사회 사이의 긴장을 자신의 모든 원동력으로 삼는 루소 철학의 필연적인 결과이겠지만, 그 갈등과 모순이 여전히 현대인들에게도 중요하게 경험된다는 점에서 현대의 조건에 대한 명확한 탐구였다고 (그래도 루소전공자니까) 평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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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 루소의 (비교적 엄격한) 철학적 입장 안에서 이 항목들을 조명했습니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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