퀜틴 스키너.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Reading 2015. 2. 7. 13:32

퀜틴 스키너.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조승래 역. 푸른역사, 2007. Trans. of _Liberty before Liberalism_ by Quentin Skinner, 1998. [1997년 스키너의 케임브리지 대학 근대사 왕립석좌교수 취임강연에 기초한 텍스트]


 이 책은 스키너가 "신로마적 이해"라고 부르는 것, 조금 더 널리 알려진 호칭으로는 공화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자유의 개념을 다룬다. 통상적인 자유주의 대 공화주의의 도식에서 전자가 아이자이어 벌린의 "소극적 자유"처럼 자유의 개념을, 후자가 (포칵이나 매킨타이어처럼) 공동체적 덕성의 개념을 강조해왔다면, 스키너는 자유주의적 자유의 개념을 비판하는 공화주의적 자유의 전통을 제시함으로서 '적'의 토대를 무너트리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짧고 이해에 어려움이 없는 책이고 앞에 역자가 덧붙인 친절한 논문도 있지만, 지금은 도서관에서가 아니면 이 책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도식적으로나마 정리해보자.


 저자는 영국 내전--청교도혁명--기 왕당파와 혁명파의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에 대한 시민의 자유를 주장하는 후자에 맞서 대표적으로 홉스가 내세운 논점은 (자유 자체를 거부하는 대신) "자유란 육체가 그 힘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66, <리바이어던>의 '자유' 개념에 대한 챕터를 보면 오늘날에는 꽤 기이하게 들릴 홉스의 정의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특별히 폭정을 휘두르는 왕이 아니라면) 왕의 치하에 있든 아니든 법의 제약 하에서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같다. "시민적 자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법을 만드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얼마나 많은 법이 만들어지는가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행위가 사실상 제약을 받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133). 이러한 입장은 왕당파의 로버트 필머는 물론, 18-19세기의 벤담의 공리주의적 자유관에도 마찬가지로 드러나 있으며 오늘날 벌린의 정의에 기초한--나는 여기에 하이에크와 신자유주의자들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자유주의자들에게도 이어진다. 즉 스키너는 홉스-벤담-벌린-자유주의자들의 계보, 자유주의적 자유, "개인적 자유" 개념의 계보를 설정한다.


 여기에 대한 가장 비판적 입장은 "공적 자유"를 주장한 공화주의자들에게서 나왔다. <로마사 논고>의 마키아벨리를 포함해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주의적 전통에서 유래해 르네상스와 함께 인문주의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토마스 모어, 존 밀튼 및 제임스 해링턴(James Harrington, _Oceana_의 저자인데 국내에는 번역된 게 없다...한국에서 공화주의자들의 저술 번역은 놀라울 정도로 빈곤하다)으로 이어지는 이 전통에서, 진정한 자유는 일시적 행위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권력관계로부터의 자유에 있다. 즉 어떠한 종류의 종속관계도 없을 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 이들에 따르면 왕이나 군주의 통치 하에 있다한들 행위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상관없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언제든 그 자유 자체를 제약할 수 있는 권력관계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주인이 자기를 자유롭게 놓아둔다고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노예'의 자유와 다를 바가 없다. 공적 자유 개념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는 타인에 의한 통치가 아닌 자기통치를 통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기에 모든 자유민은 자신을 통치하는 행위인 공동체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전통은 윌리엄 펠리(William Paley)를 포함한 자유주의자들에게 "경험적으로 불가능한" 유토피아적인 것이라고 비난받았으며(131) J. S. 밀이나 차티스트 등과 같은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근대 영국에서 거의 잊혀졌다; 오늘날 직접민주제를 비판하는 대의민주제의 논리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영향 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공화주의자들이 궁정을 부패의 장소로 비판하고 이에 대항하는 덕성을 내세웠다면, "18세기 초에 이르러 궁정의 삶의 방식이 부르주아 계급으로 확대되면서, 독립적인 지방 신사들의 덕[성]은 예식을 중시하는 상업의 시대에는 맞지 않고 심지어는 적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신로마적 저술가들의 영웅은 수수한 마음을 지닌 것이 아니라 거칠고 촌스러운 것으로, 올곧은 것이 아니라 완고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것으로, 강직한 것이 아니라 무감각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 영웅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를 도시적 감각을 지니고 예식을 갖추고 세련미를 갖추어야만 하는 시대에도 아직도 촌스럽고 조야하게 사는 서부 지역의 지주와 같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인물로 바꾸어 놓는데 결국 성공했다"(146); 즉 18세기 상업사회에서 공적 자유와 (그러한 참여에 기인하는) 덕성의 가치는 촌스러운 것으로, 미적으로 열악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프랑스 혁명과 낭만주의의 도래에 이르러서야 일시적으로나마 도전을 받게 된다.


 스키너의 관점은 설득력이 있는데, 아마도 이 틀에서 가장 문제적이 될 인물이 있다면 그는 다름아닌 존 로크일 것이다(실제로 책의 몇몇 각주에서 로크는 꽤나 모호한 입장으로 그려진다). <통치론>의 두 번째 논문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듯, 로크는 종속적 권력관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서 매우 강력하게 비판한다. 왕과 같은 소수의 권력독점제체가 "자의적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에 대해 로크보다 강력한 경계심을 보여준 이는 드물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로크가 시민적 덕성의 개념을 폐기시키고 (최종적인 저항권은 인정하면서도) 시민사회적 삶의 영역을 신체 및 재산운용의 자유에 국한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바로 양자의 결합 때문에 로크는 오늘날까지도 (개인적) 자유주의의 가장 강력한 이론적 기원으로 남아있다; 로크는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실용적인' 면모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보여주는 인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상적으로 보다 완결성 있는 홉스가 아닌 로크가 이 전통의 핵심에 놓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스키너의 주장을 공화주의적 전통의 한 부분에 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자유의 개념에서만이 아니라 덕성과 공동체에 대한 참여라는 키워드를 결부시킬 때에만 공화주의 혹은 시민적 인문주의의 전통을 조금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때 로크의 입장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가 보다 분명해진다.


 통상적으로 스키너는 우리에게 역사학, 특히 사상사의 이해에 관해 방법론 상의 논쟁을 촉발한 인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그는 자유주의적 우파에 대항해 공화주의적 전통을 되살리려는 정치사상가이기도 하다(그를 테일러와 매킨타이어 같이 보다 철학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이들의 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의 후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며 번역 및 문장의 난이도라는 점에서도 다시금 읽힐 필요가 있다. 공화주의적 미덕에 대한 요구가 다시 제기되는 지금에 정작 그것에 언어와 사고를 제공할 텍스트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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