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스튜어트.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Reading 2015. 2. 14. 03:44

매튜 스튜어트.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석기용 역. 교양인, 2011. Trans. of _The Courtier and the Heretic : Leibniz, Spinoza, and the Fate of God in the Modern World_ by Matthew Stewart, 2006.


 원제를 직역하면 "궁정인과 이단자: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그리고 근대세계에서 신의 운명" 정도가 되겠다. 당연히 이단자는 스피노자, 궁정인인 라이프니츠를 가리킨다. 국역제는 그렇게 좋은 제목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은둔하며 살던 스피노자를 방문한 건 라이프니츠 쪽일 뿐더러, 애초에 이 텍스트는 두 철학자가 "왜" 만났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시선을 끌어보려 노력한 티가 엿보이나 여러모로 모자란 번역제와 달리 내용 자체는 튼실하다. 교양인은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전기나 장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전기를 포함한 "문제적 인간"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좋은 책을 좋은 번역, 튼튼한 만듦새로 만들어 온 출판사고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도 예외는 아니다. 책 자체의 구성이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한데다가 한국어도 이런 책 치고 거의 이물감없이 잘 읽힌다(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 전기 국역본이 한국어 문장이 약간 아쉬운 점이 있던 것과 대조된다). 라이프니츠를 읽기 전 가벼운 읽을 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집어들었는데 기대했던 읽는 재미는 둘째치고 지적인 흥미를 충족시키는 정도도 꽤 높다.


 이 책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 대한 철학적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인물의 삶을 소개하고 그 삶에서 어떻게 사상이 배태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상이 어떻게 이후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명한다. 통상의 철학적 전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에는 두 명어치의 삶/사상이 있고, 양자의 관계가 서술의 중추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사상이 특히 신 개념에서 근대 철학의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의 사유에서 신이 더 이상 인격적인/도덕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자연'으로 녹아버린다면,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적인 논리를 따라가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세상 만사를 가능한 최선의 길로 이끄는 도덕적으로도 선한 인격신, 초월적인 신 개념을 채택한다. 요컨대 무(無)냐 전부냐다. 두 가지 갈래길의 근본적인 방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저자에게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근대 철학의 근본적인 지향점을 정립한 최초의 근대 철학자들인 셈이다.


 이 책은 사유에서 부분이 전체와 분리되어 설명될 수 없다는 교훈을 충실하게 따르기에 두 철학자의 사상에서 신 개념만 따로 떼내어 논의하는 게 아니라 양자의 철학의 주요 쟁점을 기본적으로 그러나 상세하게 짚어준다. 적어도 내가 주저들을 읽은 스피노자의 경우 스튜어트의 설명은 대체로 간명하며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 부분은 없다; 특히나 초보적인 독자라면 어지간한 개설서를 보는 것보다 스튜어트의 설명을 따라가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신학정치론>의 논리가 품고 있는 정치적인 설명 같은 건 나와 있지 않다...기본적으로 스튜어트는 신학/철학적 맥락 및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스피노자는 조망한다). 내들러를 포함해서 영미권의 주요한 해석자들의 논의를 버무리고 교통정리했다고 봐도 되겠다--다만 마트롱, 들뢰즈, 게루 같은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빛나는 스피노자 해석 전통은 거의 참고되지 않는다.


 라이프니츠의 경우 나는 아직 국내에 나와있는 저술조차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의 해설이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 간단한 감상조차도 내리기 어렵다; 다만 한국어로 존재하는 라이프니츠 관련 자료의 양부터가 아직도 형편없는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스튜어트의 책이 제법 유의미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어느 정도 공인된 내용을 그대로 풀이하는 스피노자 해석이 아닌 라이프니츠 해석이야말로 이 책의 중심주장이 담겨 있다. 스튜어트는 라이프니츠가 단순히 스피노자를 방문한 게 아니라 그 만남에서 이후의 인생 및 사유를 결정짓는 어떤 근본적인 무언가를 보았고, 바로 그러한 맥락, 즉 스피노자주의의 본질에 대한 저항과 거부의 논리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라이프니츠의 광범위하고 복잡한 사유를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앞서 설명했듯 그 가운데에는 '신' 개념이 있다). 적어도 텍스트에서 말하는 내용만 볼 때는 스튜어트의 주장은 분명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에티카>는 언젠가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기도 했고, 최근 스피노자 해설/주석서들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 이 책은 거기에 라이프니츠라는 짐을 하나 더 얹어 준 셈이다. 별 불만은 없고, 단지 내가 뻗어나가야 할 가지가 하나 더 늘었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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