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오렐. <경제학 혁명> / 던컨 폴리. <아담의 오류>

Reading 2015. 2. 19. 00:56

지난 주말부터 지금까지 두 권의 경제학 관련서를 읽었다(불행한 사실은 내 연휴 독서계획이 예상보다 매우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의도치 않게 두 텍스트 모두 주류 경제학의 근본적인 가정을 "신화", "신학"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18-19세기 고전파 경제학의 출현 및 19세기 후반 신고전파로의 이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연구의 틀을 보완하는데--이 흐름을 공부한 건 석사 때부터였다--나름의 참조점이 될 듯 하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쌓아온 전제들의 신뢰성을 해당 영역 전문가들의 논지로 보충할 수 있다는 게 기쁘지만(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벤담과 제번스가 이토록 중요하게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경제학 서적을 찾아내어 기쁘다)  , 그 자체로 사회 및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리라 생각한다.

 

 

데이비드 오렐. <경제학 혁명: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김원기 역. 행성:B웨이브, 2011. Trans. of _Economyths: Ten Ways Economics Gets It Wrong_ by David John Orrell, 2010.

 

던컨 폴리. <아담의 오류: 던컨 폴리의 경제학사 강의>. 김덕민, 김민수 역. 후마니타스, 2011. Trans. of _Adam's Fallacy: A Guide to Economic Theology_ by Duncan K. Foley, 2006.

 

 

 원제가 <경제신화>인 오렐의 책은 방금 다 읽고 이쪽 분야에 관심있을 것 같은 지인들에게 추천문자를 돌렸다. 명쾌하고, 쉬우면서도 근본적인 지점까지 건드린다. 매우 폭넓은 분야를 인용하면서도--비록 거친 정리긴 하지만 경제학 이론을 다루는 책에서 <계몽의 변증법>의 요지를 언급하는 걸 본 적은 처음이다--재치있는 독설 및 명쾌한 요점정리가 책을 잘 붙들어주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역자가 맡은 국역도 (몇 군데 사소한 실수가 있긴 하지만) 좋아서 술술 읽는데 무리는 없다. 이 책은 오늘날 주류경제학의 예측모델 및 그것이 기반하는 19세기 후반 신고전파 경제학의 이론적 및 현실적인 문제들을 10개의 장에 걸쳐서 매우 폭넓게 비판한다. 쉽게 말해 주류경제학에 대한 전통적인/최근의 이론적 비판들을 종합하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장부터 5장까지가 신고전파가 상정하는 수리/물리모델이 정작 오늘날의 수학/물리학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구시대적 이론을 차용해 '비과학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힌다는 데서 이론을 내파시킨다면, 6장부터 10장까지는 현실의 권력지평 및 자원/생태적 요소의 미반영, 측정불가능한 요소의 생략 및 윤리적 판단의 배제, 극단적인 불평등의 초래에 이르기까지 주류경제학 모델에 대한 외재적 비판 및 (비시장적 사회경제적 교환방식의 고안을 포함한) 대안적 사고방식을 제출한다--맑스주의 정치경제학 비판, 생태학적 비판을 포함한 다른 주류경제학 비판을 접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후반부의 논의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후반 한계효용론자들이 수리모델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기존의 고전파를 대체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경제학의 주류에 등극했다. 수리모델은 학문의 엄격성 및 '과학적' 성격을 강조하는 강점을 가졌고, 이 강세는 현재의 사회과학계에 경제학적 논리의 적극적인 침투로 이어져 "경제학 제국주의"란 용어가 나오기까지 이르렀다. 오렐이 지적하는 문제는, 이 주류경제학의 시장예측 및 (금융규제완화를 필두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결정이 기반하고 있는 물리모델이 심각하게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정작 수리/물리학에 새롭게 등장한 복잡계 과학의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주류경제학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예외적 위기'를 포함한 시장의 전개를 예측하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마치 (저자가 전공한) 날씨예측모델이 잘못된 전제에 입각하여 절망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던 것처럼 말이다.

 

 전반부의 논의를 요약한다면, 신고전파 모델은 모든 시장참여자가 (벤담으로부터 유래한) 공리주의적--시장 내 효용최대화를 지향하는--'평균적' 인간이라 가정한 뒤, 그들 사이에 어떠한 정보교류 및 질적 차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 그들을 양적으로 집합시킨 시장을 상정한다. 모두가 동일한 입장을 갖고 움직이는 시장은 자연스럽게 어떤 안정된 '균형'에 도달하는 경향을 가지며, 따라서 약간의 요동이 있을지언정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자유로운 시장은 모든 시장참여자가 가능한 최대의 이윤에 도달하는, '균형점'에 이른다--저자가 라이프니츠를 알았다면 서로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모나드들이 최선의 상태에 도달한다는 "예정조화"적 신학이라는 코멘트를 덧붙였으리라; 이런 점에서 볼 때 주류경제학의 전제를 이루는 논리는 19세기 후반이라기보다는 17세기 후반의 신학적 모델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복잡계 과학의 시선에서 볼 때 이러한 모델의 최대 문제는 균질적이면서 서로 간에 소통하지 않는--문자 그대로 '모나드적'인--'평균적 인간'을 가정한다는 데 있다. 이는 시장 곳곳에 흩어져있는 시장참여자들이 서로 간에 불균등한 정보를 교환하고 따라서 예측하지 못한 이질적인 행동패턴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창발적 속성"Emergence Attribute), 그리고 적절한 정책적인 제어가 없을 때 시장변화경향의 되먹임(feedback)에 따른 가속화로 인해 전체 시스템에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엄청난 쏠림현상을 보여준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실제의 시장상황은 주류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정규분포 범위를 매우 빈번하게 뛰어넘으며, 후자가 거의 신념에 가깝게 견지하고 있는 "시장은 결국 안정된 상태로 향한다"는 명제는 복잡계 연구의 입장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주술적 산물에 불과하다.

 

 

 던컨 폴리의 <아담의 오류>는 오렐의 텍스트가 제기하는 주요한 이론적 문제들의 일부를 공유한다. 단 폴리의 책은 한국어판 부제 "던컨 폴리의 경제학사 강의"(원래의 부제는 "경제 신학으로의 안내서")가 보여주듯 경제학사의 관점에서, 즉 아담 스미스부터 맬서스와 리카도, 맑스 및 한계효용론자들을 거쳐 20세기 중반(케인즈, 하이에크, 슘페터)에 이르기까지의 정치경제학 이론들을 조망하면서 주류경제학 전통에 함축된 특정한 이론적 가정을 검토한다. 이런 점에서 <아담의 오류>는 이론적 오류 자체에 대한 논파라기보다는 각각의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할 때 전체 사회의 경제적 번영이 알아서 초래된다는 '신학적 전제'가 어떻게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되어 왔는지에 대한 추적에 가깝다; 물론 맑스와 케인즈처럼 이러한 전통에 비판적이었던 이들의 이론 역시 상당한 비중을 갖고 소개된다. 경제사상사에 대한 (비주류적 시각에 입각한) 저술을 이미 어느 정도 읽어온 독자라면 폴리의 이야기가 그렇게 낯설고 새롭지는 않을 것이다. 단, 분량도 짧고 대체적으로 쉽게 정리된 책이지만--번역도 깔끔하다--, 군데군데 꽤나 이론적으로 생각해봐야 하는 대목들이 있다(나는 매우 급하게 읽어서 그런 부분을 충실히 따라가지 못했다). 몇 대목을 인용해둔다. 나는 이후에 역자들이 추천한 뒤메닐&레비의 저술들을 따라가볼 생각이다.

 

"스미스는 비록 최초는 아니지만, 근대사회를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보는 방식을 공고히 했다. 이 두 영역 가운데 하나는 개인들이 주도하고 상호 작용하는 경제적 영역으로, 사익 추구의 유익한 결과를 보증하는 비인격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다른 하나는 이기심이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들에 대한 의식적인 균형을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이는 정치, 종교, 도덕적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그 밖의 사회적 삶의 영역이다. 이런 분할이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을 분과 학문으로 성립시킨 자유주의적 / 경제 세계관의 토대가 된다." (1장 16-17)

 

"스미스는 분명 자본주의가 이기심을 그 대립물(타인에 대한 배려와 봉사)로 전환시킨다는 명백히 자기 모순적인 통념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자본주의적인 소유관계의 규칙들 안에서 이기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실제로는 동료 인간들에게 선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스미스는 우리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악을[개인 단위의 이기심 추구] 받아들이면, 이로 말미암아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선[전체 사회의 공공선]이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도덕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스미스나 그의 계승자들은 모두 사적인 이기심이 어떻게 공적인 이타심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엄밀하고 확고하게 입증할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이들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아가 스미스적 합리화 과정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져오는 현실의 결과들, 특히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약자들에게 / 부과하는 문제와 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 서로 갈라놓는 극심한 불평등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18-19)

 

"맬서스의 관점에서 빈곤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더 많은 문제를 낳거나, 혹은 빈곤의 문제를 훨씬 더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 빈곤한 이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인구가 안정화될 수 있는 생활수준과 임금을 더 낮추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적 수준에서 발생하는 빈곤의 문제는 악화된다.
 이와 같은 추론 방식이 아담 스미스의 오류가 가진 특징이다. 이는 행위의 직접적인 효과(빈곤한 이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자선)와 간접적이고, 체계적인 효과(인구를 확대시키고 빈곤한 이들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키는 자선)를 대비시키는 방식이다. 이 추론은 이런 대비를 통해 자선을 행하는 도덕적 충동에 저항해야만 한다고 말한다(실제로 빈곤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빈곤한 이들에게 기부하지 마라).
 이런 유형의 추론 뒤에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놓여 있다. 상품 교환과 임금노동을 통한 노동의 사회적 분업의 조직화는 인간관계의 평범한 논리를 체계적으로 전도시킨다. 상품 체계의 논리는 타인의 이익과는 대립되는 자기 이익을 절대적인 것으로서 이야기해야 함을 가정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이 논리를 따를 때, 그 체계는 부를 생산하도록 작동한다. 반면에, 이 이상한 도덕적 논리를 회피하고 타인을 직접 도우려고 하는 시도는 모두 시장의 법칙에 의해 좌절될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무역에 투자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것을 거부하는 투자자는 실제로는 노예무역에서의 이윤율을 상승시키게 되고, 노예무역을 하는 데 아/무런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돕게 된다. [...] 상품 교환의 논리는 그 원리와 결론에서 모두 도덕적 논리에 반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상품 교환의 현실과 그 법칙이 도덕적 행동을 가로막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의 오류는 삶의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일부가 된다." (113-14)

 

"19세기 경제학의 역사는 두 개의 극점 사이에서 동요했다. 그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수리물리학이 있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칼 멩거, 빌프레도 파레토, 존 베이츠 클라크, 어빙 피셔, 레옹 발라스 등과 같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경제생활의 합리성과 안정성을 보증하는 "자연법칙"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공리화된 수리적 경제학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반대편에는 생물학이 있었는데, 소스타인 베블런과 같은 경제사학자들과 경제사회학자들은 역설과 아이러니를 특징으로 하는 역사적 진화 과정으로 현대자본주의를 규정하려고 했다. 20세기 경제학의 출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인 알프레드 마/셜 같은 경우에는 (그가 자신의 교과서 구석진 부록에다 분류했던) 수학적 방식으로 자신의 경제적 원칙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생물학의 진화론적 수사를 채택해 이런 두 극 사이의 동요를 흡수했다.
 서로 다른 방식이긴 했지만 수학적 방식이든 생물학적 방식이든 간에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의 오류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수학적 방식의 경제학은 경제적 생활로부터 윤리적 질문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했다. 그것은 경제적 생활을 "선택의 자유"를 따를 수밖에 없는 객관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나타내려고 했다. 생물학적 방식을 따르는 경제학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고, 따라서 비판적이었으며, 자본주의를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결과이자 단계로 보았다. [...] 여기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는 적자생존과 적응이라는 진화적 선택의 냉혹한 과정 속에 완전히 감추어지게 된다." (1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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