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데이비슨.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오늘날의 전망>. 간단한 소개.

Comment 2014.10.28 02:31

원문(국역) 링크: http://rreload.tistory.com/97


닐 데이비슨(Neil Davidson)의 글. 원제는 <영국의 신자유주의 시기: 역사적 전개와 현재의 전망>(The neoliberal era in Britain: Historical developments and current perspectives). 링크를 들어가보면 알 수 있겠지만 2013년 중반의 글이다.


온라인에 올려진 글치고는 꽤 길다. 맑스주의적 정치경제(정세)분석에 다소간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조금 낯설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난해하지 않고 맑스주의적 정세분석의 강점이 그렇듯 다양한 역사적 맥락들로 축조된 글이기에 찬찬히 시간만 들이면 대략의 요지는 따라갈 수 있다. 적어도 1970년대부터 40년간을 개괄하는 글이 이 정도 길이면 오히려 짧은 편인지도 모르겠다. 최초에 선진자본주의의 국제적 변화라는 맥락에서 출발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거릿 새처Margaret Thatcher 정권의 등장을 중심으로 영국 사례에 집중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곧바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내게는 적어도 경제영역의 모델에서는 브레너가 제시한 다국간 경쟁구도 모델이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 글 자체의 요약을 하는 대신 개인적으로 의미부여하는 부분들을 적는다.


강점은 일국 내의 시점에서 정권을 획득한 신자유주의 우파들--대자본과 정치권력의 카르텔--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데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순전히 경제적인 시각에 입각해 이야기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신자유주의 국가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강조하는 데이비슨의 분석은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그 세련됨과 구체적인 양상은 조금 다를지언정, 나는 데이비슨이 그려낸 새처 정권의 전략전술이 한국 우파정권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데도 적잖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데이비드 하비, 뒤메닐&레비 등의 분석을 검토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전개가 정치경제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설명한다. 단순한 폐해가 아니라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아직 흔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데이비슨은 (비록 이 글에서 주체화와 관련된 문화와 이데올로기 영역의 분석 비중은 매우 낮지만) 최종적으로 신자유주의로부터 파시즘적 성향을 포함한 신보수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경고한다. 일베와 신자유주의의 관계를 떠올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을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더 장기적인 경향(그 기원이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의 연속으로, 특히 감시와 억압의 영역에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국가 권력의 축적을 지향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결론 파트는 영국사/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냥 제껴버리고픈 유혹을 받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러지 말기를 권한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사민주의적/개혁주의적 정당으로서의 영국 노동당에 대한 설명은, 특히나 그것이 "차악"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새누리당보다 왼쪽에 있는 한국의 거의 모든 정당들에도 그럭저럭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우리가 데이비슨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으나 그로부터 숙고할 대목은 있다. 최종적으로 데이비슨은 정당정치에 대한 언급에서 갑작스럽게 이탈한다. 그는 노동계급 및 노조의 재조직화를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적 정치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그가 결론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조금 불만이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집단적 주체'를 재구축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데이비슨의 결론에 동의한다. 그게 꼭 노조일 필요는 없겠지만, 자본의 압력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 그리고 정치경제적인 맥락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유의미한 저항이 불가능하다; 마지막 결론을 집단적 주체의 형성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신자유주의적 주체화 과정 혹은 그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대한 설명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고유명사, 예컨대 앙드레 고르를 "고즈"로 쓴다거나, 로익 바캉을 "로이크 와캉"으로 쓰는 부분 등이 걸린다. 그래도 이런 길이의 글을 큰 무리없이 번역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역자들에게 (들리지 않겠지만) 감사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일독을 권한다.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