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사상과 문체 - 아도르노 루카치 하이데거>의 아도르노 독해에 대한 논평

Comment 2014.10.26 03:46

원래 다른 분의 글에 댓글로 단 내용. 글투를 고치지 않고 옮긴다. 아래 링크는 김윤식 선생의 글 "사상과 문체 - 아도르노 루카치 하이데거"(1997년 문학동네에 수록).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OFtY&fldid=641F&datanum=347&openArticle=true&docid=OFtY641F34720041210093029


"김윤식 선생의 글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개별성과 단독성을 구분하는 논지가 정확히 가라타니 고진의 80년대 후반의 저술 <탐구>에서 개별성과 구별되는 단독성을 설정하는 것을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드는 사례도 비슷하고요(이후의 논지 전개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가라타니만 한 이야기도 아니니 표절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어쨌든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표절 사건이 잠시 머리를 스쳤네요.


원론적으로 스타일과 사유, 세계의 깊은 연관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도르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김윤식의 독해에 몇 가지 오해의 여지가 있는 점을 보충합니다.


김윤식의 글만 보면 아도르노가 마치 <계몽의 변증법> 이후에 여러 계기를 거쳐 <부정변증법> <미학이론>의 아포리즘적 문체로 나아간 것처럼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계몽의 변증법>의 끝부분에서도 '파편'fragment들로 채운 장이 있고, 1940년대 중반에 이미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와 영향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파편적인 성격의 글쓰기인 <미니마 모랄리아>가 있었죠(첨언하자면 저는 아도르노의 <형식으로서의 에세이>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서문격인 <인식비판적 서론>과 연결된 맥락에서 읽힙니다). 저 자신이 아도르노를 독일어 원어로 읽지 못한지라 스타일 상의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어쨌든 기존의 논증축적 식 글쓰기와는 다른 종류의 글쓰기의 가능성을 아도르노가 지속적으로 탐색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는 당연하지만 문체 상에서만이 아니라 총체성 혹은 전체의 연관관계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도 이어져 있죠; 이런 점에서 아도르노는 단순히 이단과 파편의 포지션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었고, 따라서 '이단을 외쳤지만 애초에 이단 자체가 그것이 거부하는 정통에 종속된 게 아니냐'는 식의 김윤식의 결론에는 동의가 가지 않습니다.


헤겔에 대한 김윤식의 해석도 조금 갸웃거려지는 면이 있습니다만, 만년의 아도르노와 만년의 하이데거를 수렴시키는 김윤식의 독해는 조금 더 문제가 될 수 있겠네요. 저는 하이데거를 모릅니다만, 아도르노에 대한 논의에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김윤식의 결론부, 즉 아도르노가 객체로서의 자연에 대한 미메시스를 하나의 해답으로 보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주체 혹은 동일성 원리를 강화시킨다는--김윤식의 진술이 아주 선명한 것은 아니라서 정말 이를 의도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는 해석은 아도르노의 근본적인 입장들을 고려할 때 곧바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변증법의 정신에 충실한 사람답게 아도르노 또한 본래적인 자연의 인식에서도 '매개적인' 측면을 강조하죠. 그 매개적인 면모의 가장 중요한 대변자가 역사고요. 다시 말해 (김윤식이 말하는) 하이데거 식의 "우리의 원천적인 조상"이라는 것 자체가 이러한 역사적인, 매개적인 측면을 성찰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라는 게 아도르노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어떤 준거점의 역할을 갖는다면 그건 '부정적인', 비판적인 기능을 통해서, 다시 말해 주체나 주체의 동일성 원리에 깃들인 불의를 지적하는 형태로 가능합니다. 적어도 제가 해석하는 바에 따르면--물론 지적 권위는 없습니다ㅋ--아도르노가 주체와 객체를 맞세울 때 이는 김윤식이 의심하는 것처럼 최종적으로 주체에게 객체를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 모두 양자가 배치된 전체적인 구도/짜임관계konstellation에 대한 인식으로, 다시 말해 각각의 항들의 고유성 자체가 해소되지 않는 전체적인 별자리와 같은 앎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김윤식의 독해는, 물론 이 글 자체가 애초에 역사나 전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뿐더러(아도르노가 총체성이란 개념에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가 단순히 파편들의 나열에 되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 기획의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어쨌든 아도르노는 전체적인 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려고 했을 뿐이죠), 자연이나 주체-객체 관계의 문제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이해와 반론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윤식이 자연이 갖는 의미, 그리고 주-객 관계의 갈등을 전체적인 구도에서 어떻게 새롭게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지극히 헤겔적인) 모티프를 묻지 않은 채로 자기 자신에게 익숙한 논리를 아도르노에게 내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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