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y James. _Washington Square_.

Reading 2014. 9. 14. 01:21

수업에서 다룰 James 의 _Washington Square_를 읽었다. 국역으로 전에 읽고 다시 원서로 읽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분량이 워낙 짧아서 (Oxford 판으로 본문이 170쪽 밖에 안 된다) 쭉쭉 잘 넘어간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내 느린 속도로도) 10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


별개로, WS는 국역으로 읽을 때도 무척 재밌게 읽혔지만 역시 읽기 훈련을 지금까지 영어텍스트들로 받아와서인지 대사와 단어의 미묘한 지점들을 잡아내는 일은 이번 읽기가 훨씬 잘 보인다(국역으로 2시간도 안 걸려 읽을 수 있는 책을 10시간 넘게 들여 읽었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애초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너무 다르니까). 더불어 미묘한 지점들의 감정선을 잡아내는 일도 아무래도 2회차라서 그럴까, 이번 읽기가 좀 더 인물들에 깊게 다가서는 느낌. 기본적으로 _Portrait_같은 작품에 비하면 소품에 가까운데, 기본 구도가 겹치는 것도 있고 해서 사실 비교하며 읽는 것도 흥미롭겠다. 제임스가 정말 대화를 엄청나게 잘 구성한다는 감탄. Austen을 엄청 싫어했지만 사실 19세기 영국남성작가 중에 가장 Austen을 닮았다는 평을 받는다고 유쌤이 설명하신 그대로다. 물론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고, 이번에 읽으면서 그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두 작가의 텍스트에 그려진 세계의 질서에 대한 안정감 자체가 달라서, 오스틴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세계의 질서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모레티가 <오만과 편견>_Pride and Prejudice_를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같이 고전적 교양소설의 전범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제임스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안정적인 질서가 훨씬 흐트러져 있고(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스틴의 작품 중에 제임스의 그것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텍스트는 <맨스필드 파크>_The Mansfield Park_일 것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훨씬 '윤리적'이 되어야만 한다. 브룩스Peter Brooks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의 마지막 장에 제임스를 배치한 까닭은 한편으로 세계의 혼돈에 대한 감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단단한'solid 무언가를, 그것은 때로 윤리가, 때로 미덕이 되기도 하는데, 구축하려는 의지가 제임스의 여러 텍스트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학부 단편으로 읽히는 "The Real Thing"도 이 주제에 기초해서 읽을 수 있다). WS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물론 _Portrait_의 오즈먼드에 비하면 매력도, 어두움의 격이 떨어지는 악역을 맡지만, Morris Townsend 를 포함한 이 소설의 '악역'들은 전통적인 악역들과는 궤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Mrs. Lavinia Penniman이 가장 경박하고 열등한 인물임은 분명하나, Dr. Austin Sloper 가 자신의 누이와 공유하고 있는 맹목 혹은 악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기존의 도덕과는 다른 종류의 판별기준이 필요하며, 역으로 Catherine Sloper 가 단순히 순진한 피해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을, '단단한'solid 무언가를 만들고 구축하는 인물임을 깨닫는 것도 그러한 기준을 염두에 두어야만 가능하다. 어떤 면에서 순전히 본질적인 측면을 따진다면. 모리스와 오즈먼드의 차이보다 캐서린과 이저벨 아처의 차이가 더 적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18세기 혹은 19세기 초의 소설들과 본격 20세기, 특히 양차대전 후의 소설들 사이에 존재하는 크나큰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제임스의 윤리적 기획이 무엇인지, 적어도 왜 이런 기획을 짜는지 윤곽을 더듬을 수 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윤리' 또는 덕성/역량virtue은 특정한 종류의 '세계감각'을 바탕으로 함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랑 대화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심리묘사가 이 소설의 핵심이고, 어떤 면에서는 _Portrait_보다 꽤나 미묘한 지점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WS를 쳐내버리지 않고 읽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섬세함이 요구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부 때 읽었다면 그냥 어렴풋한 찜찜함만 남기고 큰 골조만 보았을텐데, 그나마 이런저런 인생경험(...)들을 겪은 뒤 보니 그렇게 큰 뼈대만 보지 않을 수 있는 여유와 안목이 조금이나마 생겼달까. 상아젓가락에 새겨진 미세한 무늬들을 보는 눈이 필요하고, 바로 그런 독자들을 위해 제임스의 소설이 존재한다고 봐도--다시 말해 그런 미세한 지점에서의 안목과 평가, 윤리적인 판단이야말로 제임스의 특장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역으로 이런 종류의 안목을 아직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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