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정리 및 인용
Reading 2014. 9. 18. 23:23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_Die Perspektive als symbolische Form_. 심철민 역. 도서출판b, 2014.
최초에 이 책의 이름을 접한 게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읽으면서였고 그 활용에 무척이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미술사에 특별한 관심이 없음에도) 파노프스키의 이름을 여러 차례 들어서 당연히 국역이 존재했을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갖지 않았는데, 이번에 학교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아무래도 불과 2주도 되기 전에 막 출간된 이 책이 적어도 출간된 텍스트로는 국내초역인 것 같다. 도해랑 옮긴이 해제 빼고 작은 판형에 널찍한 줄간격으로도 본문 20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꽤 작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고전적인 텍스트가 이토록 늦게 출간된 게 황당할 정도로 놀랍다. 마찬가지로 가라타니가 <기원>에서 인용했던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이 작년에나 국역된 걸 보고--참고로 <기원>은 원래 1970년대에 집필된 텍스트다--반가우면서도 씁쓸한 기분이었는데, <원근법>이 지금에나 초역이라니 조금은 황당한 기분이다. 번역은 아주 잘 읽히는 한국어는 아니고 매우 딱딱한 편인데 그래도 읽고 이해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정도 한 군데(200쪽 밑에서 세번째 줄 원래 존대말로 표기되어야 할 부분이 반말로 끝나는)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오식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가라타니 고진 편집상태의 암울함에 비하면 훨씬 낫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신칸트학파, 특히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이론적 배경을 깔고 오는 텍스트다. 어떤 면에서 미술사에 대한 지식보다는 역으로 칸트, 그러니까 칸트 자체에 대한 지식이 아닌 (인식구조에 대한) 칸트적 관점의 숙지 여부가 <원근법>을 이해하기 위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나는 전자를 결여한 채로 읽었고 몇몇 기술적인 언급들을 제외하고 전체의 요지를 이해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나는 이제서 이 텍스트로부터 출발하여 신칸트학파와 카시러를 조금씩 읽어나가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칸트학파에 대해 뭐라 언급할 입장이 못 된다;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그 시기의 많은 독일의 철학전공자들처럼, 젊은 시절 신칸트학파의 자장 안에서 공부했다는 것 정도만 말해둔다. 어쨌든 파노프스키의 이론적인 요점은 우리가 특정한 '상징형식' 또는 인지/사고구조를 갖고 있으며--마치 칸트적 오성이 감각자료들의 종합하여 하나의 상을 만들어낼 때 경유하는 범주들처럼--, 예술창작의 문제에도 이러한 인지구조/형식/범주가 근본적인 전제로 개입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파노프스키는 우리가 공간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공간감정' '세계감정' '공간직관' 같은 범주들에 기댄다고 설명하며, 이때 이러한 범주는 '정신생리학적' 인식이나 사물의 '객관적인' 구조와는 다른 것이다. 다만 칸트적 오성이 보편적인, 그러니까 초역사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인식구조로 등장한다면, 파노프스키는 '상징형식'이 시대와 역사적인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고 바라본다는 점에서 칸트적 인식론에 역사적 성격을 부가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정확히 말해 고대로부터 르네상스기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에서의 원근법=상징형식이 어떠한 변모를 거치며 전개되어 왔는가, 조금 더 나아가 근대적인 공간지각구조가 회화와 조각 등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다시 말해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추적하는 게 이 저술의 작업이다. 이 텍스트가 단순한 교양독자가 아닌 근대연구자로서 내 흥미를 끄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이것이 근대적인 공간지각의 형성과정과 그 몇 가지 성격을 드러낸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보통의 독자들에게는, 우리에게 자명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원근법적 인식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인식구조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의 성격을 들춘다는 의미에서) 인문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 나름의 의의가 있겠다.
국역본은 본문을 다시 요약하는 옮긴이 해제를 빼면 총 세 부분, 본문, 미주,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70쪽 정도로 꽤 짧아서 본문만 읽는데든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 없다. 미주는 대체로 전문적인 문헌학/사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때때로 본문의 이해와 결부된 지점들이 있어서 그래도 한번은 짚으며 보기를 권한다(주석에서만 다루는 도판들도 있다). 도판은 본문 및 주석에서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그림들로, 글과 같이 읽어야 그림이 어떤 점에서 중요한지, 또 역으로 그림을 거쳐야 글의 설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와 같이 미술사에 문외한인 독자도 글과 도판만 잘 따라가며 읽어도 파노프스키의 논의를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이다. 1장이 원근법 일반에 대한 설명과 (시각적 상을 '구'면에 투영하는) 고대 원근법의 활용을, 2장이 고대-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원근법 및 그 시대의 '공간감정'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한다면, 3장은 A.D. 2세기-6세기 기간 동안 고대적인 원근법이 해체되고 비잔틴 양식 등을 거쳐 성기 중세의 조각 등에서 새로운/근대적인 원근법을 위한 '체계공간'이 나타나는 과정을 다룬다. 13-14세기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결국에는 하나의 소실점과 (관람자의 공간과 이질감이 없는) '통일된 공간'을 제공하는, 다시 말해 인간의 주관적 시각을 수학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 근대적 원근법이 나타나게 된다. 4장은 완성된 근대적인 원근법이 어떠한 문제/비판을 야기했는가를 다루면서 원근법의 몇 가지 중요한 성격에 대해 논평한다. 개인적으로 파노프스키의 분석은 그 자체로도 고전적이지만 그에 기초해서 추가적인 사고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데(그리고 문학연구자들은 당연히 가라타니의 <기원>을 같이 읽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가라타니는 파노프스키를 원용해서 꽤나 색다른 작업을 한다), 일단은 주요부분 인용부터 남긴다.
""Perspectiva라는 말은 라틴어로서, '통해서 봄'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식으로 뒤러[Albrecht Dürer]는 원근법 개념을 의역하려고 했다. [...] 즉 집이나 가구 같은 개개의 대상들이 '단축법' 하에 그려져 있는 경우만이 아니라, 화면 전체가 (르네상스기 또 다른 이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하자면 '창'으로, 즉 우리가 그 너머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여기는 그런 '창'으로 변해 있는 경우에,--따라서 개개 인물이나 사물의 형체가 소묘적으로 그려져 있거나 입체적으로 붙어 있다고 여겨지는 그러한 물질로서의, 회화표면이나 부조면이 그 자체로서는 부정되고, 모든 개별사물을 포함하는 전체적 공간이 그것을 통해 인지되며 또 거기로 투영되는 그러한 단순한 스크린Bildebene으로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경우에--,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만, 완전한 의미에서의 '원근법적인' 공간직관이 행해지고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7-8)
: 당연히 칸트적 인식구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요점은 우리가 단순히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식의 범주/형식 자체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형태를 띠며, 그것이 예술작품의 생성에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파노프스키의 작업은 "우리가 보고 인식하는 과정"이 어떤 구조를 갖는지에 대한 인식이다.
"정밀 원근법에 의한 작도는 정신생리학적 공간의 이러한 구조를 원리적으로 추상한다. 왜냐하면 공간의 직접적인 체험과는 낯선 저 등질성과 무한성을 공간의 표현 속에 현실화하는 것은 단순히 원근법적 작도의 결과만이 아니라 바로 그 작도의 의도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원근법은 정신생리학적 공간을 수학적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이리하여 정밀 원근법에 의한 작도는 앞과 뒤, 좌와 우, 물체와 사이 공간(빈 공간)의 구별을 부정하며, 공간부분들과 공간내용들의 총체를 단 하나의 '연속량'Quantum continuum으로 해소시켜 버린다. 이 원근법은 우리가 고정된 하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두 눈으로 보며, 그 때문에 '시야'가 구와 비슷한 물체의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도외시한다. 이 원근법은 가시적 세계가 우리에게 의식될 때의 심리적으로 조건지어진 '시각이미지'와 우리의 물리적 안구에 그려지는 기계적으로 조건지어진 '망막이미지' 간의 중대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의 협력에 의해 촉진되는 우리 의식 특유의 '항상적 경향'은 보이는 사물에 대해 그 사물 자체에 걸맞은 일정한 크기나 형체를 귀속시키며, 따라서 그것은 이 사물의 크기나 형체가 망막이미지에서 겪는 변화를 고려하지 않거나 또는 적어도 그 전부를 고려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2-13)
: 실제 사물 --(변용)--> 물리적 시야=망막 이미지: '구' --(변용)--> 시각이미지: 우리가 머리로 인식하는 평면. 원근법은 이중 시각이미지를 기준으로 모든 공간을 재편한다.
"[...] 현대인들 중에서도 이 만곡[직선이 안구의 구체와 같은 구조로 인해 휘어져 보이는 것]을 눈치챈 이들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임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확실히 부분적으로는 평면 원근법적 작도의 습관화(사진을 보는 것에 의해 이 습관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도법도 그 편에서 보자면 전적으로 특정한 그리고 실로 특수하게 근대적인 공간감정 내지--만일 그렇게 말해도 좋다면--세계감정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17)
: 특정한 공간감정에 기초한 '기준'의 "습관화"
27쪽부터 34쪽까지 2장 후반부는 전부 주의깊게 읽을 가치가 있다. 모두 타이핑하기는 힘들어서 일부만 옮긴다.
"[...] 원근법은 가치의 계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양식Stil의 계기이기는 한 것이며, [....] 원근법이란 그 안에서 "정신적 의미내용이 구체적인 감성적 기호와 결부되고, 이 기호에 내면적으로 동화되는" 그러한 '상징형식들' 가운데 하나라고 불려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개개의 예술상의 시대나 지역이 원근법을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원근법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것이 이들 시대나 지역에게 본질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인 것이다." (27)
"고전적 고대 예술은 순전한 물체예술이었다. 즉 이 예술은 단지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예술적 현실로서 인정했으며, 또한 소재상으로도 삼차원을 점하고 기능이나 균형 면에서도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따라서 항상 어떠한 방식으로든 의인화되어 있는 개별 요소들을, 단순히 회화적인 방식에서 공간적 통일체로 결합시켰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적 내지 조소적인 방식에서 하나의 조직화된 군으로 구성했던 셈이다. 그리고 헬레니즘이 내부로부터 약동하는 물체의 가치와 나란히 외부로부터 보이는 표면의 매력을 긍정하고, [...] 생명을 지닌 자연과 나란히 생명없는 자연도, 조소적인 미와 나란히 회화적인 추함이나 비속함도, 딱딱한 물체와 나란히 그것을 에워싸며 결합시키는 공간성도 모두 표현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느끼기 시작할 때조차도, 그 예술적 표상은 항상 여전히 개개 사물에 광범하게 집착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공간은 물체와 비물체의 대립을 받아들여 이를 해소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말하자면 그 물체들 사이에 남아 있는 어떤 것으로서 느껴졌다." (27-28)
" [...] 그려져 있는 공간은 하나의 집합공간에 머물러 있을 뿐, 그것은 근대인이 요구하고 실현한 공간, 즉 체계공간이 되지는 않은 것이다. [...] 우리가 인상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근대의 입장은 빈 공간과 물체를 한데 아우르는 한층 고차의 통일을 항상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 입장에서의 관찰들은 이러한 전제에 의해 애초부터 고유한 방향과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기 떄문이다. [....] 그에 비해 이러한 포괄적인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는 고대는 공간성의 모든 플러스적 요인을 얻어내려 할 때 말하자면 물체성의 마이너스 대가를 반드시 치르지 않으면 안 되므로, 공간이란 실제로 사물을 잠식하면서 존립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거의 역설적인 다음과 같은 형상, 즉 물체들 사이의 공간의 재현을 단념하기만 하면 고대예술의 세계는 근대예술의 세계에 비해 한층 확고하고 조화로운 세계로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묘사 속으로 함께 끌어들이려고 하자마자--따라서 풍경화이 경우에 그 정도가 가장 높아지는 것이지만--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모순에 찬, 꿈같이 어두운 세계가 되어버리는 거의 역설적인 현상을 설명해 준다." (29-30)
"[...] 고대의 원근법이란 근대의 공간과는 원칙적으로 구별되는 특정한 공간관[...]의 표현이며, 따라서 또한 마찬가지로 근대의 세계관과는 구별되는 특정한 세계관의 표현인 것이다. [....] 고대인들이 각도 공리를 무시하지 않았던 것은, 조형예술 속에서 표현을 구하고 있었던 저 공간감정이라는 것이 전혀 체계공간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계공간이라는 것이 고대의 예술가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듯이, 또한 그것은 고대의 철학자에게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이었다." (30-31)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고대의 공간이론에서]항상 세계의 전체는 근본적으로 비연속적인 어떤 것으로 항상 머물러 있었다. [...] 물체들은 등질적이고 무한정한 양적 관계들의 체계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정된 용기 속에 서로 합쳐져 있는 내용들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개개 사물의 양태들이 해소되는 '연속량'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그에게는 개개 사물의 존재를 넘어서는 에네르게이아 아페이론[현실태로서 무한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그 이유는 근대적으로 말해보자면, 항성권도 또한 하나의 '개별사물'에 지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감성적 공간'과 '이론적 공간'은 동일한 하나의 감각의 상 아래에 있는 지각공간을 변형시켜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이 감각이 어떤 경우에는 직관적으로 상징화되어 나타나고 다른 경우에는 이론화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 바로 여기에서야말로 특히 명확하게 보인다."(31-32)
: 즉 여기서 파노프스키는 예술(감성적 공간)만이 아닌 사상(이론적 공간)도 함께 관통하는, 그러니까 그 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특정한 감정/사유구조의 존재를 전제한다. 어떤 면에서 그건 넓은 의미에서의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다.
"특정한 예술적 문제들에 향해졌던 노고가 일정 한도까지 추진되어--기존에 채택된 전제들로부터 볼 때--동일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무익하게 보이게 되면, 통상 커다란 역전 내지 좀 더 적절히 말해 커다란 방향전환이 일어나곤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방향전환은 그 주도적인 역할을 새로운 예술영역이나 예술장르로 이행시키는 것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이미 획득된 것을 포기함으로써, 다시 말해 외견성 '보다 단순한' 표현형식으로 되돌려짐으로써, 옛 건조물의 폐자재가 새로운 건조물의 구축을 위해 이용되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35)
: 후퇴와 전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선'의 관점에서, 시간-길이를 가진 사태를 바라보기.
"그리하여 고대와 근대의 중간에는, 그러한 '역전' 속에서도 최대의 역전을 보이는 중세가 놓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중세의 미술사적 사명은, 고대에 [...] 개개 사물들의 다수성으로서 표현되어 있었던 것을 현실적인 통일성으로 한데 융합시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통일성에의 길은--역설적으로 보일지라도--우선 당장은 존립해 있던 통일성의 파괴를 경유해서만 도달되었다." (36)
"그리고 거기에서[원근법 관념의 해체를 보여주는 작품에서] 만들어지는 통일성의 특수한 형식은 다시금 동시대의 철학--이교적 및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의 빛의 형이상학--의 공간관에서 그 이론상의 대응물들을 갖는다. "공간이란 더할 나위 없이 촘촘한 빛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 프로클로스에게서 보인다. 이 어구와 더불어, 세계는 예술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최초로 하나의 연속체로서 파악되게 되지만,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 견실함과 합리성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즉 공간이 하나의 등질적이고 또 그렇게 말해도 좋다면 동질화하는 유동체, 하지만 측정 불가능하고 심지어는 무차원적인 유동체로 모습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의 '체계공간'으로 향하는 바로 그 다음의 행보는, 분명 통일화되어 있되 그러나 빛으로서 유동화하고 있는 세계를 다시금 실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세계로 만들어낼 때까지 일단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간을 평면으로 환원하는 것"(38-39)
"만일 로마네스크 회화가 물체와 공간을 동일한 방식으로 또 동일한 결연함을 가지고 평면으로 환원시켜버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공간과 물체의 느슨한 광학적 통일성을 확고한 실체적 통일성으로 변화시켜, 양자의 등질성을 최초로 실로 정확하게 확립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42)
"[로렌체티의 그림을 설명하며] 바닥면에 그려진 깊이방향의 선들이 여기에서 처음으로 전부, 더욱이 의심할 여지없이 완전히 수학적인 의식을 지니고서, 한 점으로 향해 있다는 사실이며(왜냐하면 '깊이방향의 모든 선들이 향하는 무한히 먼 점들의 상'으로서의 소실점의 발견은 말하자면 무한 자체의 발견의 구체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 바닥면 자체에 부합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이다. [...] 그럼에도 측면은 끝없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될 수 있는 어떤 띠 모양 공간의 바닥면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명백히 바닥면이 그 위에 배치되어 있는 개개의 물체들의 크기와 간격을 우리에게 읽어내게 하려고 하는 의도에 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51)
"장소는 그 장소에 두어지는 물체보다 앞서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응당 맨 먼저 도안에 의해 확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54)
"얀 판 에이크의 <교회의 성모>에선, 공간의 시작은 더 이상 그림의 한계와는 겹치지 않고, 화면은 그 공간의 한복판에 놓여 있어, 그 결과 이 공간은 화면의 앞쪽까지도 타고 넘어서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거리가 짧기 때문에 패널 그림의 앞에 서 있는 관찰자도 함께 에워싸 버리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 즉 그림이 척도에 있어서나 의미에 있어서 '현실의 단면'이 된 것이며, 이제 마음에 그려져 있는 공간은 실제로 그려져 있는 공간을 모든 방향에서 넘어서 있다--바로 그림의 유한성이 공간의 무한성과 연속성을 감지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56)
: "수학적인 의식" - "무한"이 뻗어나가는, 그래서 관람자가 있는 공간까지 포괄할 수 있는 공간의 재현 - 크기의 객관적인 "측정" 가능성. 즉 공간의 설정.
3장의 끝부분은 이제 근대적 원근법이 표상하는 한 시대정신의 전환을 공간개념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르네상스는, 미적으로 이미 일찍이 통일되어 있었던 공간상을 수학적으로도 완전히 합리화해내는 데 성공했다--이미 보아온 대로 거기에서는 공간의 심리적-생리학적 구조의 추상화를 진척시키고, 고대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에 의해서였지만, 그러나 그 대신에 이제 [시선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무한한 확장을 갖는, 분명하고도 무모순적인 공간형성물이 작도 가능하게 되고, 이 공간형성물의 내부에서는 물체들과, 물체들 사이의 빈 간격이 서로 법칙적으로 결합되어, '총체로서 파악된 물체'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즉 이제 보편타당하고 수학적으로 정초 가능한 규칙이 생겨난 것 [....]" (62)
"이와 더불어, 집합공간으로부터 체계공간으로의 커다란 발전이 그 잠정적인 결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원근법의 획득도 또한 동일한 시기의 인식론 및 자연철학 쪽에서 달성되어 있었던 사태의 구체적 표현에 다름아닌 것이다. 임의로 설정된 시점에 중심을 두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을 동반하는 참된 중심 원근법이 점차 형성되어감으로써 [...] 그때까지는 여전히 은폐되어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과의 결렬을 추상적 사고가 결정적이고 공공연하게 수행하였다. 나아가 이 시기는 [...] 단지 신 안에 예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경험적 실재 속에서도 현실화되어 있는 무한의 개념(말하자면 자연의 내부에서의 에네르게이아 아페이론, 현실태로서 무한한 것의 개념)을 전개시키고 있었던 시기이다. "가능성에서 무한히 커다란 것은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와 "무한히 커다란 것은 현실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라는 이 두 명제 사이에서 [...] 14세기의 논리학자들은 장벽을 설치하였고, 이 장벽은 견고하고 넘을 수 없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이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려 하고 있다. [...] 그것은 서서히 무너지고 토대가 붕괴되어 1350년부터 1500년에 이르기까지 때가 무르익음에 따라 조금씩 붕괴되어가는 것이다." (62-63)
"현실적 무한성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결코 생각될 수 없었고, 전성기 스콜라철학에 의해서도 신의 전능이라는 형식으로밖에, 즉 천상의 장소로서밖에 생각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이제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의 형식이 된 것이다. 즉 우주의 관점이 말하자면 탈신학화하여, 공간은 [...] 이제 연속량, 3차원으로 이루어진 자연학, 모든 물체에 앞서는, 또한 모든 물체가 없어도 존립하고 만물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자연이 되는 것이다. [...] 신의 전능보다도 커다란 이 세계, 즉 공간적으로 무한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두철미 계량적인 것인 [....] 이미 이 공간관은 후에 데카르트주의에 의해 합리화되고 칸트의 교설에 의해 형식화되는 바로 그 공간관인 것이다." (63-64)
"주관적인 시각인상이 대폭 합리화된 것이며, 그 결과 마침내 이 시각인상이야말로 확고한 기초를 지닌, 그리고 전적으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무한한' 경험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그것은 정신생리학적 공간을 수학적 공간으로 이행시키는 전환이 달성된 것으로서, 달리 말하면 주관적인 것의 객관화가 달성된 것이다." (65)
: 파노프스키는 (수학적 원리에 기초한) 측정가능한 무한공간의 등장이 단순히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만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의 객관화"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새로운 공간의 창출은 우리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그러니까 망막이미지가 아니라 머리로 생각해서 '종합해낸',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상이 수학적으로 정초되면서 객관성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가장 주관적인 것이 다른 한편으로 가장 객관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정확히 칸트가 경험주의에 대하여 제시한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주관을,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과 수학적인 원리를 연결시켰다고 한다면, 역으로 이때 우리의 주관에 대한 이해 자체가 특정한 원칙에 따라 재편된 것이 아닐까? 즉 '정신생리학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 자체는 (적어도 인류의 신체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동일하다고 해도, 우리가 "우리는 이런 식으로 본다"라고 믿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조건의 산물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우리는 사진이 현실을 가장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도구라고 믿지만, 그리고 우리가 카메라가 사물을 보듯이 사물을 본다고 믿지만, 실제로 넓은 공간이나 깊이감이 있는 공간 등에서 렌즈로부터 눈을 떼면 렌즈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의 광경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본다면, 사실 우리의 지각은 우리가 우리의 지각이라고 이해하고 믿고 있는 것과도 또 다르다. 단순히 양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후자 자체가 특정한 사유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사고하자.
이 문제를 나는 근대에서 시장공간과 감각주체-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출현에 적용해보고 싶다. 오늘날 여러 사회과학 및 정부정책에서 사용되는 사회관을 도식적으로 요약해본다면, 한편으로 쾌락과 고통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을 축적하고자 하는 감각주체-경제적 인간들이 있고, 이러한 경제적 인간들이 살아가고 활동하는 공간으로서의 시장이 존재한다(그리고 정치적인 영역을 포함한 제반분야가 마치 시장인 것처럼 상정된다). 감각주체-경제적 인간의 행위는 (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측정가능한 것으로 등장한다. 조금 설명을 건너뛰어 묘사한다면, 시장은 경제적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즉 시장의 참여주체들은 이미 경제적 인간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경제적 인간들이 맺는 관계는 시장의 성격을 띤 사회를 암묵적으로 상정함으로써 인간-세계(공간)라는 양극은 이미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자는 서로를 강화한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이 시장이라고 교육받음으로서 경제적 인간이 되며, 우리들이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교육받을수록 사회는 시장으로 간주된다. 당연히 역사적으로 본다면 전혀 시장논리/경제적 인간에 부합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장논리-경제적 인간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형태는 아니다...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교육될 뿐만 아니라 긴밀히 연결된 두 개념이 실제로 서로가 서로를 소환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예컨대 벤담). 뒤집어 말한다면, 예컨대 근대의 원근법을 깨트리는 작업이 공간을 구축하는 수학적 원리와 우리의 주관 양자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포함하듯이, 시장-경제적 인간이라는 쌍개념은 양자를 동시에 비판할 때만 실질적인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만을 깨트리려고 하면 이미 구축된 시장이라는 사회가 그것을 다시 되돌린다. 사회만을 깨트리려고 하면 경제적 인간이 사회를 시장으로 재구축한다. 여기에서 근대비판을 위해 사회이론과 (인간관 비판을 목표로 하는) 윤리학의 재결합이 필수적으로 요구됨을 알 수 있다.
"원근법은 예술적 현상을 확고한 규칙, 곧 수학적으로 정밀한 규칙으로까지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한편 이 현상을 인간에, 아니 더 나아가 개개인에 종속시키기도 한다. 이는 이 규칙이 시각인상의 정신물리적 조건들에 관계되어 있고 또한 이 규칙이 작용하는 방식은 주관적 '시점'이 행하는 자유로이 선택 가능한 위치에 의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원근법의 역사는 거리를 설정하고 객관화하려고 하는 현실감각의 승리로서도 파악되지만, 이와 동등한 정당성을 띠고서 [대상과의] 거리를 부정하는 인간의 권능지향의 승리로서도 파악된다. 다시 말해 외부세계의 확립이자 체계화로서뿐만이 아니라 자아영역의 확장으로서도 이해되는 것이다." (68)
"[원근법에 대한 질문들을 거론하며] 이들 모든 물음 속에는 현대적 용어를 사용한다면, 주관적인 것의 야망에 맞선 대상적인 것의 '권리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대상은 (바로 '객관적인' 어떤 것으로서) 관찰자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의 형식의 합법칙성, 예컨대 대칭적이라든가 정면을 향하고 있는 데서 생기는 형식상의 합법칙성을 별다른 방해 없이 발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상은 중심을 벗어난 소실점과 관련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확실히 비스듬히 보이는 투영도에서와 같이 그 중심축이 더 이상 객관적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단지 관찰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할 뿐인 좌표체계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또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잘 이해되듯이, 여기에서는 자의와 규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비합리성과 이성 등으로 통상 말해지고 있는 중대한 대립의 어느 한 쪽으로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아울러 바로 이 근대 원근법의 문제는 각각의 시대, 각각의 민족, 각각의 개인으로 하여금 특히 결정적이고 명확한 태도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69-70)
: "주관적인 것의 야망에 맞선 대상적인 것의 '권리주장'"은 사실 지극히 아도르노적인 표현이라서 조금 놀랍다. 실제로 어떤 사상의 연관이 존재하는 것일까?
"원근법적인 관점은, 그것이 주로 이성Ratio과 객관주의의 방향으로 이용되고 해석되든 혹은 주로 우연성과 주관주의의 방향으로 이용되고 해석되든 회화공간을 (비록 아직은 정신생리학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한 광범위한 사상 아래에서이긴 하지만) 원리적으로 요소들로부터 그리고 경험적 시각공간의 도식에 따라 구축하려고 하는 의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원근법은 이 시각공간을 수학화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이 수학화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해당 시각공간인 셈이다."(74)
: 마지막 문장을 체크할 것.
"원근법적인 관점은 종교예술에서의 경우, 예술작품 자체가 기적을 야기하게 되는 주술적인 것의 영역이나 또는 예술작품이 기적을 산출하고 예고하게 되는 교의적-상징적인 것의 영역을 폐쇄시켜 버린다. 하지만 원근법은 종교예술에 어떤 전적으로 새로운 것, 즉 환영적인 것[the visionary]의 영역을 열어주는데, 이 영역에서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말하자면 관찰자 자신의, 외관상 자연적인 시각공간 속으로 밀려들어오고 그리하여 관찰자로 하여금 그 사건의 초자연성을 본연의 의미에서 '내면화'하게끔 함으로써, 그 초자연적인 것은 관찰자의 직접적인 체험이 된다." (75)
"원근법적인 공간관은 실체를 현상으로 변하게 함으로써 신적인 것을 인간 의식의 단순한 내용으로 축소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거꾸로 인간의 의식을 신적인 것의 그릇으로까지 확장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근법적인 공간관이 예술의 발전에 이제까지의 과정에서 두 번에 걸쳐 확고부동한 자리를 점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 한번은 고대 신권정치가 붕괴한 때에 그 종언의 조짐으로서였으며, 다른 한 번은 근대 인권주의가 대두된 때에 그 출발의 조짐으로서였다."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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