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티. <공포의 변증법>, 2장 "대일식" 발제.

Reading 2014. 9. 20. 22:54

8월 초 세미나에서 썼던 발제. 세미나에 지각하면서 후다닥 썼기 때문에 문장이 고르지 못하다(방금 올리면서 명백한 비문은 눈에 띄는 대로 수정했다). 어쨌든 내가 이 글을 해석하는 요점은 실려 있고, 언젠가 따라 읽을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라는 생각으로 발제문을 올려둔다.




<공포의 변증법>(Signs Taken for Wonders) 2장:  「대일식: 주권의 세속화로서의 비극 형식」

(The Great Eclipse: Tragic From as the Deconsecration of Sovereignty) 발제


프랑코 모레티는 이 글에서 르네상스 시기의 영국희곡, 특히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기를 둘러싼 비극형식의 변천으로부터 주권자=왕의 위상 및 세계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인 이해가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읽어내고자 한다. 물론 이 시기는 17세기 중반의 영국혁명, 찰스 1세의 목을 자르는 방향으로 향하는 길목인 만큼 이 여정은 그다지 희망찰 수가 없다. 모레티는 “비극 형식[...]에 의해 실제로 수행된 역사적 ‘과제’[“task”]는 정확히 지배적인 문화의 기본 패러다임의 파괴”였으며, “비극은 절대 왕정에게서 모든 윤리적·합리적 정당성을 박탈해버렸다. 비극은 왕을 세속화함으로써 그를 참수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었다”고 주장한다(64-65). 텍스트로 곧바로 들어가기 전에, 그의 주장을 구성하는 몇 가지 흐름들을 나열해보자. 원경에는 16-17세기 영국의 역사적 격변이 있다1). 영국의 강력한 봉건왕정은 헨리 8세의 무리한 전쟁 및 재정지출로 약화되었고,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와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었지만 이후 제임스 1세의 절대왕정적 구조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불러일으킬 의회의 반발 및 상승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정도는 아니었으며(그리고 이는 영국 상업적 농업의 성숙으로 인한 농촌자본주의의 재빠른 도래와 맞물린다—왕과 귀족/의회의 갈등은 애초에 재정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2) 결국 찰스 1세에 이르러 의회파와 왕당파의 갈등은 내전 및 청교도혁명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정치적 격변은 다시금 ‘비극형식’tragic form을 통해 상징적으로 묘사되며, 비극형식이 드러나는 텍스트들로 모레티는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초기에 집필된 <고보덕>Gorboduc부터 제임스 1세 시기의 (벤야민을 원용하여) ‘바로크적’ 비극들까지를 선정하여 다룬다. 이렇게 독해의 층위를 분할하여 볼 때 모레티가 ‘역사’(영국내전으로의 진행)와 텍스트('비극'들)의 매개를 위해 비극 ‘형식의 내용’content of form을 매개로 간주한다는 전체적인 방법이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주지하다시피 이것이야말로 루카치, 바흐친, 아도르노, 제임슨에 이르기까지 서구 맑스주의 문예비평 방법론의 핵심을 이룬다—이는 초기의 모레티가 아직 기본적으로 맑스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작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절은 정치적 세계의 상징적 재현물로서의 비극형식과 그것이 <고보덕> 및 <리어 왕>(King Lear)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다룬다. 르네상스-영국혁명 기 정치비극의 기본적인 전제는 비극이 “모든 것이 왕의 결정에서 기원하는 우주를 제시한다는 것”이다(65). 그러나 절대왕정으로 돌입할 수 없었던 영국봉건제의 성격 상 그러한 재현은 “절대주의의 제도들이 아니라 문화, 가치들, 이데올로기를 무대에 올린다”(66). 모레티는 이론적으로 중요한 지적을 덧붙인다. 곧 절대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와 권력의 관계는 다르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연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현실적인 권력을 묘사하고 옹호하는 것이 상부구조로서의 문화의 역할이라면, 신으로부터 권력 및 가치체계가 부여되는 절대주의 체계에서는 권력이 단순한 현존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만 하며, 그렇기에 의미 및 이데올로기의 층위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중요한 장치로서 문화텍스트들의 위상이 자리한다. “정치적 관계들은 오직 [문학텍스트 등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그러한 질서를 재생산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권리를 가”지며, “절대주의 문화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부구조의 정점들에 국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부구조, 즉 정치적 통치의 존재 조건에도 영향을 미친다”(67). 따라서 이 시기의 극예술, 그중에서도 정치적 관계를 다루는 비극은 보다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고보덕>과 (그것을 전유한) <리어 왕>에서 정치적=세계 질서의 핵심은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심으로서의 왕에게 있다. 그는 주권자로서 유일하게 자기-결정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보편적 존재이다. 정확히 이러한 무제약적인 자유가 주권의 변증법적인 역설을 초래한다. 곧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판단에 입각해서 움직이는 주권자는 단 한 발자국으로 전제군주가 되는 것이다. 주권자는, 모레티가 칼 슈미트(Carl Schmitt)을 원용하며 설명하듯, ‘합리적 이성’의 제약조차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주권자이나, 바로 그러한 본질이 주권자를 언제든지 전제군주로 타락할 수 있게끔 한다. 슈미트가 20세기 초반의 맥락에서 의회민주주의-자본주의가 초래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거의 초월적인 주권권력이 등장하는 예외상태 및 예외상태 이후의 주권권력에 의한 새로운 질서의 부과를 요청했다면, 영국비극에서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끝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것을 촉발하고, 시민전쟁을 촉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왕이 결정 속에서 드러내는 힘은 그를 전제군주로서 뿐만 아니라 통치 불능자로 선언한다. 그 결과 주권의 행사는 완전한 무질서로 이어진다”(70).3) <고보덕>이든 <리어 왕>이든 주권자의 무분별한, 그리고 ‘이성에서조차도 자유로운’ 권력행사가 촉발하는 위기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이러한 논리를 재현한다. 곧 <고보덕>에서 왕은 의지로, (의회를 구성하는) 귀족 계급은 이성을 대변하며, 결국 전자가 촉발한 문제를 후자가 해결한다는 구도는 의지와 이성의 융합될 수 없는 분할을 드러내어 “지배적인 문화를 지탱해온 연결들을 단절”한다(73). 그러나 이성에 의한 ‘의미의 수복’에 따라 다시 체제를 복구하는 <고보덕>과 달리, “<리어 왕>에서는 그나마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이성은 패배할 뿐만 아니라 사건들의 흐름에 의해 조롱당하고 해체 된다”(82).4)

모레티는 1절의 후반부에서 다시 자신이 다루는 수십 년 간 비극이라는 장르에 담긴 의미가 어떻게 변천하는지를 조망한다. 최초에 “비극은 크게 보아 불행 또는 죽음과 동의어”로서 운명과 왕의 갈등을 표현하였다면, <고보덕>이 예시하는 두 번째 단계에서 비극은 왕이 전제군주가 되지 않도록 경고하고 “이성의 지위를 강화”하는 “교육적인 미적 형식”이 된다(84). 그리고 <리어 왕>이 대변하는 세 번째 단계에서 “이성의 테두리”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때는 익숙했던 정신적 지도[“spiritual guidance”]를 박탈당한 것을 발견하며 [...] 관객들은 말 그대로 혼자 힘으로 생각하도록[“think for themselves”] 강제된다. 최초로 아무 것도 또 누구도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86)5) 그리고 그 뒤에 (영국 자유주의 정치체제의 상징적인 핵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합리적 공중rational public이 정치적 판단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다.

2절에서 모레티는 그와 같은 비극의 역사적 흐름 사이에 등장했던 정치극의 다른 시도들을 조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셰익스피어의 <이척 보척>(Measure for Measure)으로, 여기에서 주권자는 잠시 어둠 속에 물러나 대리인-귀족-(잠재된) 악당에게 권력을 맡긴 후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문제를 완벽하게 파악, 마침내 전권을 행사하여 마치 편재하는 신과 같이 정의를 행한다.6) 곧 전능하고 정의로우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이상적인 주권자의 모습이 “정치적 해결책”으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이처럼 특수성=부분적인 것(헤겔)과 총체성=전체적인 것(골드만) 사이의 이해관계를 총괄하려는 시도는 결국 비극 내에 화해 불가능한 갈등을 심어놓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모레티에 따르면 <맥베스>(Macbeth)와 <햄릿>(Hamlet)은 이러한 분열, 의지와 이성 간의 해결불가능한 괴리를 드러내며, 점차 시적인 성격을 띠는 두 텍스트의 독백은 더 이상 통합될 수 없는 주권자=세계질서 하에서의 분열된 의식을 표현한다(여기에서 루카치가 생각나지 않으면 거짓말일 것이다).

3절은 셰익스피어적 비극 이후의 제임스 1세 시대의 비극들을 다룬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참조점은 말할 것도 없이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이다. 이제 더 이상 텍스트의 의미 혹은 의미가 상실되었다는 메시지 자체가 특정 인물의 인격에 부여되지 않으며, “새로운 집단적 주인공”으로서의 궁정이 주권자를 대신한다(114). 궁정은 하나의 주체라기보다는 세계의 의미를 드러내는 장소 그 자체인데, 그곳은 “사적 이익들의 무절제한 충돌의 전형적인 싸움터”로서 (미덕virtue과 대비되는) 부패의 공간이다.7) 부패하고 타락한 복수의 주체들에 의해 음모들이 횡행하면서 “이해관계와 관점의 급증은 그것들을 모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누구도 음모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며, 심지어 그것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희곡은 이제 특권적인 관찰지점을, 이전에 비극의 주인공이 제공해주었던 것과 같은 중심을 결여하게 된다”(116). 살육과 음모, (성적인) 타락과 쾌락추구가 만연하는 총체적인 부패의 공간에 (아도르노가 「자연사의 이념」“The Idea of Natural-History”에서 <원천>의 핵심적인 정서로 지적한 바 있는) 벤야민적 ‘덧없음’의 정조가 덧붙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제임스 1세 시대의 비극은 결코 인간 사회를 위한 다른 토대를 찾으려고 하지 않으며 [...] 그것은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탈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이다”(126). 그곳은 “겉모습의 불확실성”과 “모호한 기호”가 횡행하며, “다 허물어져 가는 동시에 위협적인 장소”로서 “제임스 1세 시대의 극작가들의 상상력에서 그곳은 정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쫓고 축귀해야 할 궁정이었다”(129). 주지하다시피, 이후에 혁명의 발발 함께 영국에서 더 이상 정전으로 간주될만한 비극작품은 등장하지 않는다; 비극을 둘러싼 이후의 논의는 같은 책에 수록된 모레티의 뺴어난 글 <진리의 순간>을 참고하면 되겠다.


1) 이 부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으로 모레티 자신도 인용하는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의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Lineages of the Absolutist State), 특히 5장 참조. 국역본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페리 앤더슨.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1974 김현일 역. 현실문화, 2014. 5장 171-213.

2) 물론 우리는 앤더슨을 참조해보더라도 모레티의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간략하게, 영국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리고 이러한 전제군주를 제약하기 위해 나타난 ‘합리적 공중’을 반비판하기 위해 슈미트의 논리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정확히 슈미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몰락을 겨냥하며 그 해법으로 독재하는 주권권력을 요구한다. 무제약적 주권권력의 행사가 파시즘의 몰락 이후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확대지속되고 있다는 대표적 논의로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저술들을 참고.

4) <리어 왕>을 일본 중세무가사회로 옮겨 개작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란>의 결말부는 이러한 절망감을 매우 효과적으로 시각화한 사례일 것이다.

5) 바로 이러한 모티프를 염두에 둔다면 명예혁명의 이데올로그 존 로크(John Locke)의 인식론에 대한 텍스트--<인간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이 그토록 ‘독자 자신의 판단’을 강조하는 맥락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6) 17세기 후반부의 텍스트를 읽는 영문학 독자라면 이러한 구도에서 곧바로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의 장시 <압살롬과 아키토펠>(Absalom and Achitophel)이 떠오를 것이다. 동시에 훨씬 앞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평민과 지배계급(귀족, 성직자, 관료)의 갈등을 배경으로 왕의 공명정대함을 기원하는 로빈 후드 이야기의 설정도 참고.

7) 영국혁명이 궁정을 미덕과 부패의 언어를 통해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것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는 J. G. A. 포칵의 역작 <마키아벨리언 모멘트>(Machiavellian Moment)의 후반부, 특히 영국혁명을 다룬 부분(국역본은 2권 후반부)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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