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에밀> / 찰스 테일러. <헤겔>. 단상들.

Reading 2014. 9. 10. 02:23

드디어 <에밀>을 (국역으로) 5부까지, 그러니까 끝까지 읽었다. 원래 방학 때 마쳤어야 할 일이지만 추석 연휴에라도 끝내서 다행이다. 이제 <신 엘로이즈> - 고백 3부작...정도만 읽으면 얼추 어디가서 루소 기본적인 것들은 읽었다고 할 수는 있겠다. <에밀>을 여기에서 요약하지는 않겠다. 시간을 내서 국역으로나마 인용구를 죽 정리하는 편이 제일 나을 거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루소를 만약 한 권만 읽는다면 <에밀>을 읽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텍스트, 이 한 권에서 출발해서 엄청나게 많은 경로로 나아갈 수 있는 일종의 교차로 같은 텍스트다. 루소는 여기에서 어떻게 미덕을 성취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거기에서 다시금 인간적인 미덕으로 발전할 것인가라는, 일종의 U자 형 논의를 전개한다. 그런 점에서 루소는 로크적인 감각론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어떻게 감각적 토대 위에서 미덕에의 도달을 통해 '자유로워질' 것인가에(칸트가 떠오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초점을 맞추며 에밀의 교육과정은 이 목적에 충실히 따른다. 시간적으로 에밀이 태어나기 전서부터 성인기까지, '공간적'으로 어린 시절의 마을에서부터 여행을 떠나 만난 소피Sophie와의 결혼을 거쳐 공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탐방까지 포함하는, 곧 점에서 출발하여 일종의 면으로 확장해나가기에 아주 많은 것들을 <에밀>에서 꺼낼 수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며칠 안에 인용할 만한 대목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영어를 읽기엔 몸과 머리가 피곤해서(오늘 밤에 귀경했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헤겔>_Hegel_ 국역을 읽었다. 영어로도 제법 두텁지만, 그린비에서 출간된 국역본은 1,100쪽에 육박한다(역자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원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5만원 씩이나 들여 사지는 않으려다가, 어쨌거나 국내에서 쓰이는 헤겔 철학의 용어들과 영어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사게 되었다. 100쪽 가량의 1장을 읽었다. 헤겔이 등장하게 된 사상사적 배경을 논하는 1장을 조금 읽는 것만으로도 출간 후 40년을 바라보는 이 책이 진정으로 탁월한 저술임을 알 수 있었다. 테일러는 벌린(Isaiah Berlin)의 제자답게 철학사에 대한 매우 폭넓으면서도 정리된 시선을 보여준다(벌린 및 테일러의 논문지도제자였던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Beiser가 독일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철학사적 작업으로 자기분야를 쌓아가는 것도 나름 이러한 흐름 하에 있는 듯 싶다). 간추리면 (자유주의/경험주의/합리주의적) '계몽'--이에 가장 근접한 설명한 호르크하이머의 '근대철학'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에 대한 비판으로 독일 표현주의/낭만주의적 문제틀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명징하게 설명하는데,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의 관점과 근본적인 전제들을 다수 공유하면서도 보다 디테일한 층위까지 내려가 설명한다. 19세기 초의 철학/사상적 세계를, 그러니까 계몽주의와 그 이후의 세계를 하나의 지적 흐름이 아닌 상호 대립적인 두 흐름의 전개로 파악한다는 관점이 설득력있을 뿐만 아니라 18-19세기 영국 자유주의 사상사의 전개를 살피려는 나의 작업에도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 일단 루소-칸트-독일낭만주의-헤겔의 전개를 기계론/유물론/공리주의 전통과의 대비에서 설명하고 또 샤프츠베리와 "도덕감정의 이론가들"도 잊지 않고 언급해주는 폭넓음은 어떤 형태로든 여기에 한 다리는 걸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루소를 읽은 직후에 <헤겔>을 보았다는 것도 적지 않은 행운이다; 나는 위에 적었듯 루소로부터 감각의 인간과 미덕의 인간의 계기들이 공존하며 후자로 전자를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동력을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테일러의 입장은 그러한 독해를 정당화해주는 면이 있다. 더불어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에서 군데군데 서양 근대철학에 대한 코멘트를 하면서 헤겔을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지는 주체=관찰자의 시점에 대항하는 흐름의 정점으로 놓는 식의 구도를 언뜻 보여주는데, (<정신현상학>은 읽었으니까 나름 어렴풋한 감은 있었지만) 이번에 테일러를 읽으면서 푸코의 설명이 보다 선명하게 이해되는 느낌이다; 다만 칸트는 역시 데카르트로부터의 계보에 넣기에는 분명히 이질적인 것(특히나 <실천이성비판>처럼)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어쨌든 바쁜 와중에서도 짬 나는 대로 조금씩 읽으려 한다.


내일은 로크랑 제임스랑 해서 하루 종일 영어만 읽으려고 한다...세미나 및 수업과 같은 나의 공식적인 의무를 지금까지 하나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빡세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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