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초상>. <에밀> 1-3부. <통상관념사전>.

Reading 2014.09.07 01:37

헨리 제임스. <한 여인의 초상>. 전2권. 유명숙, 유희석 역. 창비, 2013.


엊그제부터 읽던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한 여인의 초상>_The Portrait of a Lady_ 국역본을 다 읽었다(어차피 수업조교 때문에 원서로도 읽을 예정이다). 소설도 탁월하고, 국역도 탁월하다(중간에 딱 한 대목, 아마 투기적speculative을 사변적이라고 옮긴게 아닐까 하는 대목이 있긴 한데 둘 다 의미가 안 통하지는 않는 것 같고...나중에 읽으면서 검토하게 될 듯). 유쌤 번역을 읽다보면 어쨌든 내 언어를 만들어준 사람들 중 한 명이라 그런지 번역된 텍스트를 읽어도 내 한국어의 범위를 조금 더 깊게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텍스트를 19세기 후반(1881년에 초판이 나왔든가 할 거다)의 '자유주의의 위기와 책임/윤리의 문제'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좋은 삶'에 대한 방향을 설정할 수 없게 된 세상에서 무엇으로 당위의 토대를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랄까. 어차피 나중에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으므로 더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유희석 선생의 해설은 성실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품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않고, 기본적으로 루카치식 리얼리즘을 (반성없이) 최종적인 판단근거로 삼는다는 점이 사고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맑스를 정말로 따르는 이들이면 이런 종류의 루카치식 판단근거를 비역사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장 자크 루소. <에밀>(_Emile de l'Education_). 전3권. 박은수 역. 성문각, 1973. [<루소 전집> 전 7권의 1-3권]


루소의 <에밀> 1972년 국역본을 읽기 시작했다. 국역본은 1권이 1~3부, 2권이 4부, 3권이 5부로 이루어져 있다. 막 1권을 다 읽었다. 초반부가 매우 흥미롭고, 물론 루소가 로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는 곳곳에서 읽었지만 그 영향을 아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확실히 <인간오성론>은 그 짜증스러움에 비해서 매우 중요한 텍스트인 것은 맞는 듯 싶다). 직접 인용하는 대목도 여러 군데 있고, 감각 및 인간학에 대해서는 인용하지 않아도 로크적 틀에 기초해서 서술하고 있다. 홉스도 종종 언급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특히 1-2부는 (아직 나는 4-5부를 안 읽었다) 사상사의 맥락을 꼼꼼히 참고하면서 따져읽을 필요가 있다. 루소는 한편으로 (훗날 효용주의=공리주의로 불리게 될) 감각의 인간관, 특히 인간을 쾌락과 고통의 주체로 간주하는 시선을 받아들여 인간에게 욕망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오성론>의) 로크 및 다른 효용주의자들과는 달리 루소는 여기에 역량/덕성의 인간관을 도입한다. 그가 인간 및 생명체의 근본적인 속성으로 힘, 생명력, 능력과 같은 요소를 제시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스피노자(<에티카>, <신학정치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그가 스피노자를 읽었는지 혹은 그러한 사유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사실은 꽤나 디테일한 '훈련과정'이 제시되는 3부에서는 이러한 역량/덕성을 확장시키는 작업이야말로 교육=인간형성의 핵심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체의 해석학>을 포함한 말년의 푸코가 <에밀>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의아스러울 정도다. 요컨대 한편에는 감각(쾌락-고통)의 인간이, 다른 한편에는 역량/덕성의 인간이 있다. 루소에게 인간의 자유는 역량이(즉 능동적 주체성) 자신의 욕망(수동적 주체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고, 자신의 "힘에 대한 브레이크"로서의 이성은 그러한 자유를 위한 도구다. 교육은 인간의 역량/덕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진정한 주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따라서 그 모든 교육과정에 (아이를 자기지배, 혹은 푸코의 용어를 빌려 자기-배려the care of the self의 주체로 만드는)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논리에서 필연적이다. 물론 루소의 체계를 단순히 이러한 요소로만 환원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4-5부를 다 읽은 뒤에 보다 서술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의 역사 위에서 벤담식 인간 대 마키아벨리식 인간의 구도를 설정하려고 하는(그러니까 이게 내 박사논문의 큰 입장이 될 것이다) 내게는 아주 중요한 저술이 될 것 같다. 본래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텍스트 자체도 꽤나 재밌지만 내 예상 이상으로 내게 중요할 듯 하다. 역으로 요즘 시들해진 로크 읽기를 다시 정신차려 읽어야 겠다는 좋은 자극이 된다. 로크 없이 루소 없고, 역으로 루소의 중요성이 로크 읽기를 촉진한다- 책이 좀 낡아서 곰팡이가 피었는지 방에서 계속 읽다보니 온 몸이 좀 근질근질하고 기관지가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만-_-;;



귀스타브 플로베르. <통상관념사전>(_Le Dictionnaire des idées reçues_). 개정1판. 

진인혜 역. 책세상, 2012.


<에밀>을 읽다가 잠시 쉬려고 읽었다. 본래 저자 사후 출간된 <부바르와 페퀴셰>_Bouvard et Pécuchet_에 부록으로 나왔다는데, 집필 자체는 별도로 꽤 일찍 되었다고 한다. A~Z(국역본에서는 ㄱ~ㅎ) 순에 맞춰 표제어 및 간략한 풀이(?)가 정렬되어 있고, 국역본은 작은 판형으로 본문만 110쪽 가량이다. 곳곳에 실소를 터트리게하는 '재치있는' 대목들이 있다. 다만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의 <악마의 사전>_The Devil's Dictionary_ 같은 책과는 조금 달리봐야 하는 면이, 플로베르는 기본적으로 각각의 표제어들이 그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무관하게 어떤 용법usage으로 활용되는가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즉 저자의 냉소적인/비판적인 시선은 단어들의 용례/용법을 선정해내는 데 있는 거지, 비어스처럼 직접적으로 냉소적인 언술을 하는 데 있지 않다; 플로베르가 <감정교육>의 저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좀 더 잘 이해될 것이다. 무작위로 예를 들어본다면, "여행객"이라는 항목은 <언제나 '대담하다'. "당신 정말 대담한 여행객이군요." 철도용 말투로는 언제나 '신사 여러분'이 뒤에 붙는다. "여행객 신사 여러분."> 같은 식으로(71-72). 이런 면에서 나는 이 사전을 <보바리 부인> <감정교육>과 같이 특정한 '의식'을 묘사하기 위한 스케치적 성격을 강하게 띤 텍스트로 읽는다(진인혜 선생이 뒤에 플로베르와의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넣은 해설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는데, 어차피 내가 따라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잖는가?). 즉 개별적인 단어들이 아니라 이러한 단어들의 용법들, 관습적인 사용례들이 그려내는 특정한 언술집단(아마도 파리의 부르주아?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이 같이 실리지 않은 게 매우 아쉽다)의 언어와 의식을 그려내고 부분적으로는 (거리를 두어) 쏘는 데 이 텍스트의 '정신'이 있다고 말해도 틀리진 않을 성싶다. 정확히 <감정교육>의 그것과 같이 말이다. 다만 이 경우 핵심은 사람들을 에워싼 언어의 클리셰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꽤나 이상한 비교겠지만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_Keywords_가 떠올랐고, 물론 플로베르의 사전은 역사적 변천을 추적하지는 않으나 그 시대의 단면을 잘라낸 것 같은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킬킬거리며 봤던 대목 몇 개만 인용한다. '/'는 줄갈이표.


<갓댐Goddam : '보마르셰가 말했듯이' 영어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사람들은 연민으로 비웃는다.>

<교양인 :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 국회의원이 되는 것! 최고의 영광. / 의회를 비난할 것--줏대가 없다. / 모두 수다쟁이들.  /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기숙 학교 : 여자 아이들의 기숙 학교일 때는 '보딩 스쿨'이라고 말할 것,>

<대화 : 정치와 종교는 대화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디드로 : 언제나 '달랑베르'와 붙어 다닌다.>

<마키아벨리 : 그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를 범죄자로 여길 것.>

<마키아벨리즘 : 늘 몸을 떨면서 발음하게 되는 격렬하고 끔찍한 단어.>

<소유권 : 사회의 토대 중 하나. / 종교보다 더 신성하다.>

<소유자 : 인류는 소유자와 차용자라는 두 계층으로 크게 나뉜다. / --"당신은 어떤 신분이지요?"--"소유자입니다.">

<영국 남자 : 모두 부자이다......>

<영국 여자 : 그녀들에게 그토록 예쁜 아이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 늙은 영국 여자들은 언제나 못생겼다.>

<영국 정원 : 프랑스식 정원보다 더 자연스럽다.>

<외국인 : 언제나 '고상한' 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다. / 외국에서 온 모든 것에 대한 열광: 폭넓고 자유로운 정신의 증거. 프랑스 것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험담: 애국심의 증거,>

<외설 :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파생된 모든 학문적인 단어들에는 외설이 숨겨져 있다.>

<정육점 주인 : 혁명기에는 무시무시했다. / 정육점 주인은 모두 뚱뚱하다. / 모두들 사납고, 거리에서 아이들을 괴롭힌다.>

<침착 : 침착해야 한다. 우선 그것이 좋은 태도이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는 영국인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 언제나 '태연한'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판매 : 팔고 사는 것, 인생의 목적.>

<폭동 : 가장 신성한 의무(블랑키).>

<형편없는 : "르 피가로"지가 감탄할 만하다고 인정하지 않은 모든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에 대해서 "형편없군!"이라고 말해야 한다.>

<호모 : 에체 호모![Ecce Homo] 기다리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볼 때.>

<환상 :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체할 것. / 사람들이 환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한탄할 것.>

Trackbacks 0 : Comments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