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 2권: 쾌락의 활용>, 장치, 주체화, 억압과 욕망--말년 푸코의 현재성

Critique 2014. 7. 27. 15:25

세미나를 위해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을 다시 읽고 있다. 한두달 쯤 내가 얼마나 대충 모자라게 읽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역시 혼자 읽는 것과 세미나를 위해 어떠한 책임감을 전에 처음 읽었을 때에 비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서 예전에 느끼면서 읽는 게 다르고,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는 이의 역량에 따라 전해줄 수 있는 가르침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다시 새긴다. 다른 무엇보다도 국역본으로 30쪽 정도 분량인 서론은 꼼꼼히 살펴 읽을 가치가 있다.

 

여기에서 푸코는 1980년 이후의 기간, 국역된 텍스트들을 기준으로 하면 <주체의 해석학> 강연부터 수 년 간 자신이 수행한 작업의 핵심적인 의미를 명확한 언어로 서술한다; 다만,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명확함은 적어도 푸코의 작업을 대강이라도 이해하는 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앎의 의지>는 성sexuality이라는 장치dispositif 혹은 매개medium를 통해 어떻게 (국가적) 권력이 피지배자들에 대한 '지식'을 창출하고 또 그들을 지배하는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었다. 바꿔 말해 국가 혹은 정부라는 키워드, 아직 푸코가 명확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 통치주체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푸코의 권력 이론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길에 이끌린다; 보통 핵심어구로 인용되는 "권력은 편재한다"는 테제는 지배의 주체가 없다거나 하는 식의 '권력의 신비화'와는 완전히 무관하다--정확히 그 반대에 푸코의 입장이 놓여있다. <쾌락의 활용>부터의 작업은 마찬가지로 성 장치=매개를 다루되 그것이 주체화subjection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고대의 성적 실천 및 주체화를 통해 분석하며, 이를 통해 기독교 지배 이후의 근대적 주체화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형태의 주체화임을 밝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푸코가 누차 직접적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권력의 이론과 주체화-윤리의 이론이 전혀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애초에 그는 권력-지배와 주체화의 문제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성이라는 양자에 동시에 활용되는, 근대권력-주체화의 가장 핵심적인 장치/매개인 것이다(나는 여기에서 통상의 용법과 달리 장치를 매개라는 변증법적 전통의 핵심과 의도적으로 연결시킨다--비록 바타이유에 대한 서평 <위반에 대한 서언>에서 드러나듯 푸코는 자신이 더 이상 변증법적 언어가 철학을 위해 활용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매개=장치라는 키워드에 정향했다는 것이야말로 그가 변증법적 사고훈련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우리는 통상적으로 권력의 문제를 지배자/억압자와 피지배자/피억압자의 구도로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예컨대 독재자와 민중,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정부와 시민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후기 푸코를 읽는다면 "권력의 편재를 분석한 뒤에 절망의 감옥에 빠져서 개인의 윤리에 코를 박고 저항 혹은 미학적인 삶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기존의 이해에서 헤어날 수 없고, 말년의 작업들이 갖는 근본적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오독의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푸코가 사물을 "약간 옆으로 비켜서 보기 위해"(<쾌락의 활용> 26) 채택한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벤느Paul Veyne가 약간은 과장되게,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 푸코는 거시적인 주체가 아닌 미시적인 실체들로부터 시작한다. 요컨대 지배자를 곧바로 보는 대신 실제로 행해지는 지배행위/효과/작용을 먼저 본다. <쾌락의 활용> 서론에서 몇 문장을 인용하자. "나는 행동이나 사상, 사회나 그것의 '이데올로기'들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 인간 존재가 어떤 식의 '문제설정'을 통해 스스로를 사유될 수 있고 사유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내주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 같은 문제설정의 출발점이 되는 '실천들'을 분석한 것이다"(26).

 

이 인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약간의 이론적인 설명을 덧붙이자. 통상의 '권력의 관념론자들'에 대항해 후기의 푸코는 정확히 정 반대의 길, 예를 들자면 효과(작용)-실천-장치(매개)-권력과 같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간다. 아마도 미시적인 분석(언설, 지배, 실천, 기술)에서부터 거시적인 분석(담론틀, 권력, 통치성)으로 나아가 양자를 연결하는 과정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일 <안전, 영토, 인구>에서 잘 드러나듯, 푸코는 추상화된 현상의 거시적인 작동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미시적인 수준의 관찰에서부터 재구축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종 푸코로부터 어떠한 방법론도 얻어내지 못한 채 그를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후기의 푸코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혁신적인 수준에서 방법적 전환을 이룩했을 따름이며,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사유의 협소함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가 장치라는 구체적인 것,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자신의 사유를 진행한다는 전제 위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왜 <성의 역사>라는 프로젝트가 인간의 성적인 삶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있지 않은가를 이해한다. <성의 역사>는 장치로서의 성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며, <앎의 의지>는 그것과 그것에 결부된 지식이 국가/정부권력의 관점에서,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는 성과 성과 관련된 실천들이 (권력과 무관할 수 없는) 개인들의 주체화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성 자체(그런 것이 있다면!)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푸코의 성이란 마치 맥거핀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와 같은 맥거핀이 어떤 효과를 갖고 또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논의의 중점에 둔다는 점에서 '성의 역사'는 텍스트의 핵심을 드러내는 제목으로 적절하다.

 

그렇다면, 성이 주체화의 장치로 기능하는 것은 근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력할 텐데 푸코는 어째서 유럽의 고대, 그리스-로마시기로 거슬러 올라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쾌락의 활용>을 초과하는 몇몇 맥락에 대한 참조가 필요하다. 먼저 푸코에게 있어 기독교적 지배는 유럽의 통치기술 및 주체화 방식의 전면적인 변혁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였다. <앎의 의지>에서 기독교적 고백과 정신분석의 상담 사이의 근본적인 유사성을 지적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바로 그가 정신분석 및 라캉을 제외한 정신분석가들에 대해 공공연한 비판을 수행한 것이 이러한 의심과 무관할까?) 그는 기독교적 지배 혹은 그로부터 기인한 권력 및 주체화의 기술들이 이후의 '세속화된'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그가 기독교적 통치-주체화 기술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주체화의 양태를 살피고자 했음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기독교 교부 카시아누스와 고백의 문제를 다룬 직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주체의 해석학> 강연을 했다는 사실을 참조하자. 둘째로, 푸코에게 있어 고대 그리스 시기는 단순히 기독교적 지배가 등장하기 전일 뿐더러 신의 말씀=성경==사회의 초자아=도덕이 주체화의 구조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이전의 시기였다. <안전, 영토, 인구>의 고대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밝히고 있듯,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시민주체들이 외적인 법 혹은 사회의 도덕에 휘둘리지 않으며 ''이라는 것이 근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형태와 같은 힘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외적인 강요, 금지, 부인의 계기들이 아직 지배적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의 시민주체들에게 (당연히 노예, 여성, 아이, 외국인은 포함되지 않겠지만) 자기형성 및 자기 윤리의 문제가 보다 '순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다. 실제로 푸코가 어딘가에서 자신이 고대를 선택한 이유로 근대의 주체화 과정에 개입하는 여러 맥락들을 일일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꼽기도 한다. 핵심은 성과 같은 장치들을 경유한 주체화 과정 및 그 실천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드러냄의 과정에서 근대 사회의 주체화가 결코 단일하고 보편적인 형태가 아님을 각인시키는 것이며 바로 이를 위해 고대의 주체화가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성의 역사> 전반을 흐르는 또 하나의 모티프에 관해 이야기하자. <앎의 의지>를 한 번이라도 주의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푸코가 빌헬름 라이히 등이 주창한 성해방 담론에 대하여 억압가설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비판적인 언급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푸코가 억압가설이라고 부르는 논리란, 우리는 19세기 중반부터의 성에 대한 엄숙주의 및 억압을 지배계급의 억압으로 이해하여야 하며 그에 대한 저항으로 성적인 실천 및 담론의 유통을 더욱 자유롭게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가리킨다(아마 1980년대-90년대-2000년대를 거치며 확산된 자유주의적 분위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에서도 억압가설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논리가 있었음을 알 것이다; 1980년대에 번역된 <앎의 의지>가 사실상 한국의 담론 형성에서 무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푸코는 실제로 우리가 성에 대한 억압으로만 기억하는 19세기에 사실상 (권력이 활용할 수 있는) 성에 대한 지식, 담론, 규제가 폭발적으로 증대했음을 지적하면서 성해방 담론이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의 장치를 더욱 확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내비친다. 우리는 <쾌락의 활용>에서도 억압가설또는 그것의 전제를 이루는 논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인용을 보라.

 

성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자신이 계획한 경험으로서의 성의 역사분석]은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사상의 도식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사상의 도식이란 성을 불변의 상수로 만드는 것, 그리고 성이 역사적으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면서 드러나는 것을 모든 사회에서 성이 직면해 있는 다양한 억압 메커니즘의 결과로 가정하는 것이다”(18). “욕망이나 욕망하는 주체라는 개념은 그 당시 하나의 이론은 아니라도 어쨌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적 테마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 비평적 작업 없이 18세기 이래 성의 경험이 어떻게 형성 · 발전되어왔는지를 분석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계보학에 손을 대지 않고서는 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욕망, 정욕, 혹은 리비도라는 연속된 개념들의 역사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천들을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실천들을 통해 개인들은 자신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작동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해독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라 고백하게 되었던 것이다”(19).

 

요점은 억압가설 자체를 권력 비판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만이 아니라, 억압가설과 쌍을 이루는 욕망의 주체’, 곧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욕망을 꺼내들지만 사실은 억압-욕망이라는 구도 안에 놓여 있는 욕망의 주체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검토하기 위한 계보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보학적 분석이라는 용어 자체가 암시하듯, 이는 우리가 단순히 어떻게 욕망의 주체를 (특히 성 장치와 관련해서) 일반적인 주체화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조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맑스식으로 용어를 만든다면) 주체화 양식mode of subjection이 결코 필연적인, 대체 불가능한 귀결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함축한다. 내친김에 푸코를 맑스에 조금 더 접근시켜 설명한다면, 후자가 생산양식의 역사를 기술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어떠한 난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며(<자본>),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암시했다면, 전자는 유사한 작업을 근대적인 주체화 양식으로서의 욕망의 주체에 대해 행하고 있다. (분명히 말해 나는 푸코와 맑스의 관계는 단순한 적대관계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한다--푸코가 맑스, 맑스주의, 맑스주의자들, 공산당에 보여주었던 많은 경우에 적대적이었지만 근본적으로 모호했던 코멘트들은 역으로 푸코가 맑스적인 사고에 대해 갖고 있던 떨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의심할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다시 말해 우리는 정신분석적 논리의 보편화와 함께, 혹은 그와 융합한 자유주의적 통치의--라캉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슬라보예 지젝의 포지션은 이런 맥락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전면화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아주 깊숙이 자리 잡은 욕망의 주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물론 언제나처럼 푸코는 역사로부터 다른 맥락을 끌어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잠시 푸코의 텍스트를 해설하는 지점을 넘어 욕망의 주체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들을 덧붙이고 싶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가벼운, 그러나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 사회에서 음주 혹은 폭음은 억압인가, 해방인가? 많은 술자리에서 우리는 음주 및 폭음을 사회적 초자아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진실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계기로 설명하는 논리와 마주치게 된다(이러한 논리는 정확히 자신의 성적 욕망과 합일할 때 완전하고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성해방의 논리와 형식적으로 일치하지 않는가?). 그러나 왜 우리는 하필이면 음주라는 실천을 통해 자신의 해방=욕망의 드러냄에 도달해야 하는가? 정확히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포위하고 억압해온 지배사회가 우리 자신을 위해 호의를 베풀어 마련해준퇴로로서 가장 공인된 지정된 선택지가 아닌가? 곧 음주 역시 지젝의 표현을 빌면 즐겨라라고 명령하는 초자아가 아닌가? 삶의 고됨을 잊기 위해 마시는 술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 마비를 초래하는 장치라는 매우 고전적인 비판론을 맞세운다면, 음주=욕망=해방=진실과 같은 논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변론할 수 있는가? 동시에 왜 우리는 음주를 통한 이성의 마비가 우리 자신의 진실의 모습을 이끌어낸다고 믿어야만 하는가? 그것이 그냥 나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면모 중에 하나가 아니라 진실을 담보하는 특권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믿을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왜 그러한 논리가 우리에게 강요되는가? 왜 우리는 우리 내면의 진실이 존재하며 그것을 꺼내야만 한다고 믿는가? 프로이트적인 도식을 끌어온다면, 한국의 음주문화는 다음과 같은 전제들을 함축한다. 곧 초자아는 사회적인 규범, 억압, 거짓된 예의범절이며, 이드는 자아, 욕망, ‘순수한 육체-리비도로서 해방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그러나 애초에 이드가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라는 믿음부터가 턱없이 순진한 것일뿐더러(욕망이 억압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역으로 억압이야말로 욕망을 가장 구체적인 수준에서까지 구성하는 기제이며 그런 점에서 욕망이야말로 억압 혹은 사회적인 지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계기가 아닌가?), 기어코 상대방으로부터 순수한 영역을 끄집어내어 확인해야만 한다는 욕망이야말로 통치자들의 가장 은밀한 욕망을 대리해 실천하는 것에 불과하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는 억압의 반대항이자 억압에 의해 형성된 욕망으로부터 구별되어야만 한다. 푸코의 말년의 작업이 갖는 현재성은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오늘날 이론에서 주체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인 도구로 간주되는 정신분석과 거리를 두었기에 주체화 문제에서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 푸코야말로 주체화의 비판적인 검토를 위한 급진적인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지난 2-3세기를 이어온 자유주의 주체화 양식, 또는 자본주의적 주체화 양식에 대한 비판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푸코의 이름을, 특히 한국의 이론지평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후기 푸코의 이름을 다시 거론하고 싶다. 우리가 그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이는 그가 말년에 이상한 길로 갔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자유주의적/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엇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기비판의 안이함이 그의 올바른 급진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나는 푸코가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공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컨대 통치성 개념은 확실히 유물론적 계기를 포함하고 있지만, 인간의 담론 혹은 자기이해를 넘어선 지평에서 작동되는 물질적인 영역은 여전히 논의의 틀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으며 통치성 간의 이행과 같은 동역학적인 문제를 해명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통치성의 문제에서든 주체화의 문제에서든 푸코는 단 한 번도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이는 그가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가장 강하게 매혹을 느꼈을 고대의 텍스트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주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하나의 대안적인 사례임을 주장하고픈 유혹을 받지만, 어쨌든 그러한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역사가로서의 위치를 지킨다. 단지 저항과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지금과 다른 미래가 불가능하지 않으며 동시에 어디에서 그를 위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가를 조용히 가리킨다는 데 푸코의 현재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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