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징병제 요구시위, 혹은 "국가주의 페미니스트들"에 관하여

Critique 2014. 7. 1. 04:07

오늘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여성 징병제를 요구하는 소규모 시위가 있었다고 뒤늦게 들었다. 포털 사이트 게시판은 "개념있는 여성" 류의 댓글이 대다수고, 서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들 입장이 다양한 것 같지만(그 맥락을 다 따라가고픈 생각은 없다) 어쨌든 우호적인 시선이 제법 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세간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와 (굳이 시위자들을 페미니즘 진형에 위치시키려고 발악한다면 '국가주의 페미니스트' 정도라고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다른 국가주의자들과 정확히 똑같은 정도로 위험하다...나는 지금 사회대 여성주의자 모임이 어떤 정치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 그들이 국가주의에 굴복하지 않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수 년 간 한국의 대중담론에서 급증한 남성주체의 여성혐오, 그리고 한국의 여성주체들 중 일부가 남성화된 이데올로기에 무반성적으로 굴복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맥락이 교차한다. 그것들을 다루는 일은 흥미롭겠지만 일단은 여성징병제를 요구하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검토하자.


 이와 같은 주장의 핵심적인 전제는 "국가가 주관하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곧 사회 내에서 동일한 지위=시민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시위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3단 논법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해야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동등하다. 그러므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군대를 가야한다. 첫 번째 당위명제를 반대하는 사람은 일단 없다고 제껴두고, 세 번째 문장은 삼단논법에 따라 자연히 딸려나오므로 이 논리의 타당성은 처음 말했듯 두 번째 문장에 달려있다. 그리고 나는 그와 같은 전제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국가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것들을 전부 개개인이 각자의 신체를 국가에 종속시켜가며 수행할 이유는 없다. 다시 말해 국가가 군사력을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요구하는 것과 시민권을 병역에 종속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2차 대전의 소비에트처럼) 병력이 지나치게 모자라 주권자가 강제로 여성들을 징병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시위자들의 주장에서 전제하는 것처럼 시민적 평등을 병역/국가복무에 종속시키는 것이 그 자체로 논리적 참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병역의 존재는 역사적인 조건 하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덧붙여두자. 냉정하게 말한다면 현재의 남성 다수의 징집은 한국의 특정한 조건의 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자체로는 당위가 아니다. 성차를 잠시 괄호에 넣어두고 말한다면, 여러 가지 '정당한' 사유로 병역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만 말해두자. 뒤집어 말한다면 시위자들의 논리는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 인간은 동등한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배타적인, 주권자의 편의에 입각한 명제를 필연적으로 도출한다('호모 사케르'는 바로 이런 논리들에 입각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그 자체로 참도 아니고 끔찍한 논리적 결과물을 내재한 주장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 자체의 의미심장함을 보아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들의 주장이 그 자체로 얼마나 타당한지를 점검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주장을 이루고 있는 핵심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2000년대부터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드러나는 (상징적) 남성 주체의 변모부터 추적해야 하는 일이기에 여기에서 당장 수행할 생각은 없다(나는 대략의 입장과 분석은 갖고 있다). 단지 이러한 시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이 있다면, 한국의 일부 여성주체들이 국가주의에 입각한 (최초에 남성들에 의해 전유되어 온)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의 논리를 교정할 만한 이데올로기 비판이 한국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위자들, 그리고 시위자들에 동조하는 이들이 성에 기반한 차별을 폐지하길 원하는가는 위장된 쟁점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 자신에게 주관적으로는 참이되 객관적으로는 거짓"이라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모범적인 사례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암묵적으로 병역을, 국가에 인격과 신체를 복속시키는 행위를 절대적인 가치로 수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편으로 이는 성차별 비판을 포함한 그 어떤 정치적인 가치체계도 다른 기준들(예컨대 자본주의 및 국가주의 비판)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체제의 통치작업에 손쉽게 말려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금 뒤로 물러나서 본다면, 여성 주체가 여성 주체를 국가의 노예로 만들어달라고 외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순수하게 형식적으로 본다면 이미 우리의 곁에 도래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폐 및 생산수단을 보유하는 한, 그래서 (심지어 상품화된 성을 구매할 때조차도) 소비자로 존재하는 한 여성/남성/성소수자의 차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그래서 자본주의를 성 차별의 파괴자이자 해방자로서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승인하였던 이들을 보라. 이와 같은 태도는 정확히 국가가 아닌 자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빼고는 지금의 시위대들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논리에 입각해 있지 않은가? 단지 한 때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금은 국가주의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따라서 화폐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만이 고용주의 노예가 되었던 상태가 화폐를 보유하든 보유하지 않든 국가의 노예가 되는 상태로 바뀐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형식은 같다. 단지 착취되는 노동과 소비로 인한 의식의 마비에서 비롯되는 끔찍함에 비해 군 생활의 끔찍함이 조금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나는 현재의 맹아적인 사태가 함축하는 논리적 귀결을 생각할 때 지금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행정부와 국방부에서 이러한 주장을 수용할 확률은 현재로서는 낮은 편이지만). 제도로서의 여성사병복무가 타당한지 아닌가는 엄밀히 말해 행정적/기술적인 문제다--그리고 노동 착취 및 노예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군생활의 물질적/제도적 조건에 대한 개선이 지난 5년 여간 실질적으로 전혀 행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핵심은 모병제냐 징병제냐가 쟁점이었던 것이 불과 수 년 전인데 순식간에 징병대상을 두 배로 확대할 것이냐 아니냐로 쟁점이 옮겨갔다는 데 있다--부디 병역 수행을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나이브한 관점이 아닌 군법의 저촉대상이 되는 것, 곧 병역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신체, 언론, 의사표현, 사고의 자유를 전부 국가의 통제 하에 제약받는 완전한 피지배상태에 돌입하게 된다는 '현실적 관점'에서 보아주길 바란다. 투표에서 우파가 승리하는 결과가 아니라 더 많은 병역대상자를 요구하는 쪽으로 쟁점이 이동 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자유 및 자율성이 갖는 가치가 수 년 간 급속도로 퇴행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한국 사회의 광의의 진보들--페미니스트건, 맑시스트건, 퀴어 운동가들이건, 자유주의자들이건 뭐건 간에--모두의 근본적인 기치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국가와 자본의 지배가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굴복을 통해) 강화될 때 그 어느 스펙트럼에 속해 있는 '진보'도 무사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개인 주체든, (국가에 복속되기를 거부하는) 집단 주체든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의 지배가 더 넒고 공공연한 것이 될 때 자율성을 박탈당하는 것은 같다. 우리는 천박한 민족주의, 소비 및 스포츠, 대중동원과 연관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시선은 이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물론 요즘에는 이러한 시선조차도 다시 힘을 잃는 것 같지만). 지금부터는 더욱 광범위하고 위협적으로 국가주의가 닥쳐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주의는 여성주의, 맑스주의, 공동체주의 등 거의 모든 정치적 입장과 결합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 전부를 의심하고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쇠락 이후에도 진정한 자유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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