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 <한국 (문단) 문학에 남성 작가가 없는 '진짜' 이유>: 읽고 코멘트

Comment 2026. 1. 30. 01:27

한동안 페이스북에 접속할 틈이 없었는데 다른 매체를 통해 장은수 선생님의 흥미로운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글의 흥미로움과 별개로 워낙 여러 겹의 논의가 층층이 쌓인 글이다보니 사실 단숨에 읽어내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근대소설사 혹은 근대소설을 둘러싼 논쟁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읽으면서 든 생각 몇 가지를 간략하게 써서 남긴다. 코멘트의 순서는 원 포스팅의 항목 구별을 따른다.

 

 

I. 원 포스팅의 (1), (2) 관련

: 사실 서구에서--적어도 영어권에서--18세기 이래의 소설 시장은 전통적으로 여성독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고 여성저자가 진입하기 쉬운 시장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후 300여년 동안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여성의 교육수준 및 사회진출 비중이 높아졌음을 고려하면, 원 포스팅에서 지적한 최근의 변화는 좀 더 긴 호흡에서 볼 때는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II. (3), (4), (5) 관련

: 사실상 여기서부터 본문의 시작이다. 꽤나 복잡한 내용이기 때문에 제대로 읽으려면 필자의 전제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재구성했다:

 

a. 필자는 거시적으로 소설을 분류하는 두 가지 축을 제시한다:

첫째, 소설 시장 내에서의 (어느 정도 위계가 전제된) 세부적인 장르 구분: 주류/고급/순문학 VS. 장르문학/웹소설 등

둘째, 중심 코드, 즉 내용에 따른 구별. 거대 담론 VS. 일상 서사

 

b. 필자는 문학적 취향에는 성차가 발견되며(즉 남성과 여성은 선호하는 문학적 코드에서 차이가 있으며), 지금까지 소설 시장에서 '거대 담론'은 남성 취향, '일상 서사'는 여성 취향에 부합하는 소재였다고 지적한다.

 

소설 시장 내에서 성차에 따른 장르적·내용적 선호가 존재한다는 지적은 사실 문학사에서는 굉장히 전통적인 논의다. 남성이 전쟁 같은 정통적인 역사를 좋아하고 여성이 좀 더 일상적인 주제를 선호한다는 언급은 18세기 데이비드 흄의 시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Of the Study of History”), ‘소설·로맨스에 탐닉하는 여성 독자에 대한 우려는 심지어 그런 독자를 겨냥해 소설을 썼던 새뮤얼 리처드슨의 저작에서도 나타난다.

 

 

II-2.

 

물론 핵심은 필자가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을 오늘날의 현상에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필자의 글에서 일종의 역사적 변화의 서사를 읽을 수 있는데, 이를 도식적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 순문학/본격소설은 거대 담론과 친연성이 있었고 (그래서?) 남성 저자의 비중이 높음

현재: 순문학의 소재는 주로 (여성적인) 일상 서사에 집중, 그와 함께 여성 저자 비중 상승

오늘날 거대 담론과 친연성이 있는 소재는 주로 장르문학(웹소설), 영화, 정치평론 등에서 다뤄지며, 그에 따라 남성 저자들도 해당 영역에 주로 뛰어듦

남성적인 일상 서사(남성피해서사, 먼치킨물, 자기계발서사 등등)도 새로운 문학적인 소재로 부상하고 있으나 이는 순문학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으며 웹소설, 유튜브 등에서 소화

 

이를 다시 요약하면, 한편으로 순문학·본격소설은 여성의 일상 서사를 주 소재로 삼으면서 독자와 저자 모두에서 여성화된 영역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거대 담론 및 남성의 일상 서사와 같은 소재는 장르문학/웹소설, 영화, 유튜브, 정치평론 등 순문학 외의 영역에서 소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남성 독자·저자 역시 그러한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으로 오늘날 문학 저자·독자 사이의 거대한 성별 간 분할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II-3.

 

근대소설사 혹은 비평사에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역사화로부터 무언가 친숙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필자의 기본 도식은 리얼리즘·근대소설 퇴조론의 그것과 같다. 2000년대 중후반 한국의 문학연구자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인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20세기 후반 근대소설이 거대 담론을 담아내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로 요약가능한 테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는 19-20세기를 풍미한 리얼리즘 소설의 퇴조에어쨌든 오늘날의 소설가 중 발자크와 같은 야심을 품는 이는 별종으로 취급될 것이다대한 우려를 표하는, 물론 이쪽에서는 소설의 여성화 혹은 탈남성화를 좀 더 명시적으로 지적하는 편인데, 한국의 비평에서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인식이다.

 

필자의 서술에서 나타나는 유의미한 차이점은 그렇게 본격소설에서 남성적요소들, 혹은 정치-사회적요소들이 사라졌다는 데서 이야기를 마치는 대신, 그것들이 어떠한 매체/장르로 향했는가를 남성 독자·저자의 장르 간 이주와 연결하여 추가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는 데 있다. 물론 여기서 핵심적인 범주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일상적인 것과 거대 담론·정치/사회 등은 모두 그 경계선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명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지니는지는 독자에 따라 갈릴 것이다(예컨대 한강의 소설들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여성 독자의 영역에는 거대 담론이 없는가?). 다만 18세기 후반에 등장해 20세기 중후반까지 유행했던 거대한 소설들이 현대 한국의 본격 소설의 장에서 점차 사라졌으며 그러한 소재들이 영화나 웹소설 등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채택된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직관적인 설득력이 있다.

 

 

III. (6) 관련 코멘트

: 필자는 앞서 제기한 소설의 두 가지 유형에 대한 설명에 계급론적인 필터를 가미한다.

 

A. 장르문학/웹소설: 환금성이 비교적 높은 근면 노동의 영역으로, ‘생계와 연결된 작가들이 많이 뛰어든다(필자는 여성작가의 장르문학 진출을 북유럽과 연결시키는데, 사실 18세기 후반에 고트풍 소설Gothic fiction을 대표하는 앤 래드클리프Anne Radcliffe20세기의 애거사 크리스티나... 이런 여성작가들은 장르소설사에 흔하게 나타나는 존재다)

 

B. 순문학 소설: 대박 터지기 전에는 먹고 살기가 불가능, 그래서 일정 이상 경제적 자원을 갖춘('금수저') 작가들이 활동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분야다.

 

이는 분명 거칠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틀린 분류는 아니다. 여기서 진정으로 논쟁적인 지점은 다음의 서술에 있다. 필자에 따르면 최근 한국 순문학 소설은 그 필자들(=금수저 or 수도권 중상층)의 사회적 경험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소설의 독자층, 동시대 사람들의 공통 경험과 유리되어 있는 면모라 할 수 있다. 공통 경험의 재현에서는 드라마·웹소설 등의 장르가 본격소설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본격소설에 반성이 필요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을 앞서 언급된 전제와 엮으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순문학 소설은 소재의 차원에서는 여성의 일상에 집중하는 쪽으로 변모해 왔는데, 여기에 (문예지 등 문학제도의 붕괴와 함께) 저자층에서 유한계급 혹은 수도권 중상층이 다수를 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전되면서 작품이 재현하는 일상역시 일반 대중의 감각과는 멀어져 가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설의 생명력을 보장해 온 리얼리즘적문제의식이 쇠퇴하는 것은 소설의 사회적 역할에, 또 그 미래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반쯤은 암묵적인, 반쯤은 명시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다.

 

 

III-2.

 

필자의 글이 결국 또 하나의 남성적 리얼리즘 옹호론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그러한 반론 자체는 타당하지만, 장르에 따라 성별화된 독자·코드가 재배치되고 있는 현상이 사실인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무시할 수 없는 물음이다), 여기서는 그보다는 두 가지만 지적하며 코멘트를 마치도록 하자.

 

첫째, ‘순문학 젠트리피케이션테제 자체에는 분명한 약점이 있다. 필자의 전제에 따라 순수문학이 애초에 금수저 친화적인 장르라고 한다면, 문학제도의 변화와 무관하게, 순수문학 저자층에서 금수저가 다수를 차지하기 쉽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돈 벌려고 저속한소설을 쓰던 작가들은 20세기 이전에도 그리 드문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본격소설 저자층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니 애초에 그런 현상이 실재하기는 한 것인가? 본격소설에서 특정한 상류층적인소재가 유행하는 게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그게 정말로 소설저자층의 여성-금수저화로 인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걸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이런 점에서 예술적 코드의 사회과학적 환원론에 대체로 회의적이며예술사에서 경제환원론절 설명은 조금만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수준에 들어가도 대체로 쉽게 반박되고는 한다대부분의 유행은 장르 내적인 논리에 기초해 설명하는 게 더 설득력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둘째, 남성적 코드라 부르든, 리얼리즘적 코드라 부르든, 어쨌든 지난 세기까지 소설 장르의 위상과 역할에 있어 중요했던 요소들의 행방을 숙고하는 것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의 불만은 이러한 주장이 비슷한 불만의 반복에서 그칠 뿐 19-20세기 리얼리즘 전통, 혹은 역사·사회소설 전통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로는 거의 나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물론 이러한 비판은 필자가 아닌 역사적-문학사적 문제의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한국의 문학연구장에 가해지는 게 옳다). 루카치의 중요한, 그러나 지금은 참고 읽기 힘들 정도로 낡은 연구 이래, 한국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정치-사회적 리얼리즘의 전통이 좀 더 긴 전통을 지닌 서구 문학 장르들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혹은 그것이 좀 더 넓은 지식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작업은 우리 곁에 거의 도착하지 않고 있다. 달리 말해, 리얼리즘 퇴조론은 정작 리얼리즘 전통들에 대한 지성사적 이해에서 극도로 빈곤한 면모를 보이며, 이것이 리얼리즘/근대문학 퇴조론이 동일한 구조의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문학사를 문학사 내부에서만 보지 않는다면, 가령 이런 식의 가설도 가능할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정치적·사회적 현상에 대한 지적인 축적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팽창했음을 고려할 때, 과연 근대 소설이라는 형식이, 혹은 그 문법이 그러한 앎을 담아내기에 여전히 적절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근대 소설에서 정치적-사회적 소재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후자가 아직 초기의 형태에 있었기 때문에나 가능한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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