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말 근황 및 올해의 주요 일정

Comment 2025. 2. 1. 00:55

1. <서구지성사입문> 교재 작업이 끝났다. 다음 주 쯤에는 실물을 받아볼 것 같다. 방송대 수업 교재 중에서 400쪽이 넘는 예가 흔하지는 않을 듯한데, 수강생들에게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측이 안 된다. (출판문화원 담당 편집자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고 하셨으나...)

일단 책 받는 순간부터는 홍보의 시간 시작. 그래도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낼 때 경험한 가락이 있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대략 머릿속에 잡혀 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문의 주신 분을 위해 덧붙이자면, 시중 온라인 서점에는 2월 말쯤 풀린다고 합니다.


2. 교재를 마무리하면서 <서구지성사입문> 수업 녹화에 들어갔다. 1월에 조금 달렸고, 이제부터는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3월 하순에 끝나는 일정. 교재도 강의도 결국 내가 얼마나 많이 챙기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지는데, 작년 말부터 여력이 없어서 강의는 교재만큼의 관리를 못 하고 있는 게 아쉽긴 하다. 어차피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100%를 목표로 작업하는 성향은 아니다보니--나는 보통 '80%의 퀄리티를 퍼지지 않고 끝까지 가져가는' 쪽을 선호한다--스트레스까지 받지는 않으나, 아쉬움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3. 2월 말까지 다음 과목 교재 챕터를 써야 한다. <서구지성사입문>에 이어 준비하는 과목은 <인물로 본 근대>. 나의 과거 작업을 읽어보신 분 중 어렴풋이 눈치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나의 가장 오래된 관심사 중 하나는 우리가 '근대(화/성)'과 같이 규범적이면서 동시에 시간적인 것으로서의 세계/역사관을 담고 있는 개념 혹은 용어를 규정하고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역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우선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근대화/성'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규정되는가를, 즉 그것이 실제로는 복수성을 내포한 개념임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를 가장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서로 다른 시공간에 속한 인물들의 행적과 사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것이 <인물로 본 근대>를 처음으로 설계할 때 떠올렸던 구상이었다.

행정적 절차는 예전에 마쳤고, 2월 말까지 (날 포함한) 14명의 필자로부터 좋은 원고를 수확하는 게 다음 일이다. <서구지성사입문>(필자 11명^^)은 그래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된 편이었는데, 이번 교재도 그러기만을 바라고 있다. <서구지성사입문>만큼 주목을 받진 않더라도, 6년, 12년, 18년 뒤에 계속해서 인물을 추가하다보면 나름 규모가 있는 약전 모음집을 따로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4. 이슈트반 혼트Istvan Hont의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번역 원고 감수/교정은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주로 김민철 선생님의 초역 중 뻣뻣한 문장을 잘 두드려서 부드럽게 펼치고, 가끔 운이 좋으면 역자가 놓친 대목을 잡아내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80%만 유지하자!'가 나의 모토지만, 이 책만큼은 90-95% 정도의 노력을 쏟아 내보내고 싶다. 내 목표치에 부합하는 형태로 나온다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루소와 스미스(애덤 스미스) 정치사상 연구, 아니 정치사상(사) 연구서 중에는 최고의 책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역시 올해 중에 출간될 카트리나 포레스터Katrina Forrester의 <정의의 그늘>(In the Shadow of Justice, 후마니타스 출간 예정)과 함께 매우 기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실은 작업에 쏟을 수 있는 절대 시간 자체가 부족해서 ㅠㅠ) 약속한 시간에 비해 일정이 밀리고, 다음 작업 일정까지--예컨대 다른 책 감수라거나, 공역이라거나...--연쇄적으로 밀리고 있다 @.@ 2월 중순까지는 마치고 넘기는 게 목표인데 (이후 해제도 써야한다! 으악!) 뭐, 어떻게든 되겠지.


5. 2024년 2학기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진행한 <서양사학사> 수업은 2월 중순 경 두 번째이자 마지막 보충수업으로 '진짜 종강'을 맞게 된다. 보충수업 계획을 올리면서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그대로 학기를 마치는 해피엔딩도 잠깐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것까지 마치고 간단한 소회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가능할까?). 공동 설계한 수업을 포함해 대학원 수업은 세 번째인데, 이번에도 역시 학생들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생각한다.


6. 11-12월은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논문 한 편을 겨우 뽑아냈는데 (조만간 별도의 포스팅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3-4월 중에 쓰고 싶고 또 써야만 하는 이유도 있는 논문이 한 편 있다. 사실 4년 정도 전에 각을 잡아놓고 묵혀놨던 작업인데,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옮겨볼 수 있겠다: '인간들은 AI를 어떻게 오해/오용하는가?'


7. 아마 이 포스팅에서 처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제프리 윅스Jeffrey Weeks의 <성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Sexual History?, 2016)를 공역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한참 전에 출판사로 넘겼어야 했는데 내 일정이 밀려서 (...) 거북이처럼 진도가 나가고 있다. (공역자는 이미 초역을 끝냈으나 내가 다시 보는 속도가 ㅠㅠ)

한국의 젠더/페미니즘 계열 도서를 쭉 훑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특히 번역서의 경우 비교적 가벼운 에세이 아니면 반대로 이론서·연구서가 주로 소개되며, 정작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인식의 지도, 논쟁의 맥락을 그려주는 책은 거의 없다(퀴어 쪽은 애너매리 야고스의 <퀴어 이론 입문>을 포함해 몇 권 정도가 있긴 하다). 특히 여성사/젠더사 쪽은 개별 연구문헌에 비해 지금 교과서로 쓸 수 있는 책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작년에 조앤 스콧의 <젠더의 역사와 정치>가 매우 공들인 번역으로 나왔는데(학계나 출판계의 반응은 잘 보이지 않는다), 수업 커리큘럼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교과서로 쓰기는 충분하지 않다(이 책에 실린 "젠더: 역사 분석의 유용한 범주"는 젠더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 중 하나이지만, 나는 이 글이 기본적으로 80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재작년 성대 사학과에서 '역사 속의 섹슈얼리티'로 대학원 수업을 할 때 이 문제로 조금 고민을 했다--결과적으로 학생들은 고대부터 20세기까지 매주 수백 쪽을 토나오게 읽었고, 나는 학기 말 강의평가 설문응답에서 '제발 분량 좀 줄여주세요' '분량이 너무 많아 힘들었습니다'란 코멘트만 몇 개를 받아야 했다. 이후 윅스의 책이 좁게는 젠더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넓게는 젠더/여성주의/퀴어 연구 전반의 지적 토대를 쌓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출발점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출판사에 판권이 살아있는가 문의했고...

나만 내 몫을 하면 된다, 나만ㅠㅠ.

(올해 2학기에 다시 <젠더의 역사>로 대학원 수업을 개설할 예정이라, 그때까지 적어도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까지는 마무리하는 게 목표인데 과연...)


8. 여름방학에는 학과 공동수업 교재 챕터 3개를 써야하고 (2개만 써도 됐는데 왜 그때 나는 참지 못한 것인가...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ㅠㅠ) 추가로 논문 한 편을 준비해야 한다. 위 5번의 <서양사학사> 수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J. G. A. 포콕과 아르날도 모밀리아노의 관계를 다룰 생각이다(내가 알기로는 아직 영어권에도 둘의 지적인 관계를 조명한 연구는 없다). 사실 이 글을 쓸 시간이 가장 기대된다.

아, <인물로 본 근대> 녹화도 진행해야 하는구나 @.@


9. 올해 2학기부터 1년 간은 학과 일로 다른 일은 거의 손을 대지 못할 게 분명해졌다. 별 수 없이 기존에 계약한 출판사들에 도게자 메일을 보내면서 (...) 일정을 꾸역꾸역 조정하고 있다.


10. 이 모든 일은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또 늘 새롭게 닥쳐오는 과업에 맞서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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