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냉전사 연구 입문자들을 위하여: 두 개의 답변

Comment 2025. 12. 16. 12:26

며칠 전 블로그를 통해 영미 학계에서 축적되고 있는 20세기 냉전사 연구를 따라가고 싶다면 무엇을 읽는 게 좋을지 문의를 받았다. 나 자신이 아는 분야가 아닌만큼, 유관 전공자 두 분께 문의하여 받은 답변을 정리해 포스팅으로 올려둔다. 냉전기의 지구적인 정세와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특성상, 최근 한국현대사·한국현대문학 전공자들이 특히 해당 시기 북미의 지적·정치적·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포스팅에 정리된 내용이 그분들께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답변1 [*답변자는 익명 선호]

 

(아래 내용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독자께서는 적절히 거르시며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냉전사 일반**
냉전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소련 붕괴까지의 역사를 포괄함. 보통 post-1945년의 현대사를 의미하고 전통적인 주제(군비 경쟁, 복지 경쟁, 이념 대결, 냉전기 열전, 학살, 민족 만들기 등)부터 새로운 주제(인류세-거대 가속, 탈식민주의, 비동맹운동NAM, 석유 파동 등)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가 있음. 한편 주요 국가들의 문서고 접근 상황은 다 다르고, 가장 공개도가 높은 미국의 경우도 1970년대 이후를 다루는 연구는 제한적임. 1980년대 냉전사를 다루는 연구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냉전사’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집중함.

중국근현대사 연구자인 Odd Westad의 The Global Cold War (2005)가 필드의 가장 영향력있는 책으로 남아있음[*한국어판: 『냉전의 지구사』]. 한편 이 책이 제시하는 미제국 vs. 소련제국이라는 구도가 소련과 사회주의권(동유럽, 중국, 베트남 등)이 자본주의 시장에 참여하려던 노력을 무시한다는 정당한 비판이 있음(Oscar Sanchez-Sibony). 그렇지만 이 비판은 ‘냉전사’보다는 ‘소련사’의 일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음. 따라서 베스타 류의 글로벌 냉전사는 아직까지 강고한 패러다임. 따라서 글로벌 냉전사의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일지 제시할 수 있으면 세계 일류의 학자가 될 수 있음. 관련하여 국제 질서의 사이 공간(interstitial spaces)을 다루는 Lydia Walker의 States-in-Waiting (2024)을 재미있게 읽었음.

 


**냉전사 각론**
동유럽. 글로벌 냉전사라는 시각 안에서 동유럽 사회주의를 다룬 연구는 정말 정말 많음. 크게 ‘우린 단순히 위성국가가 아니었다’를 강조하는 연구들(따라서 각국 및 지역의 주체성 강조)과 포스트 사회주의 시기 ‘우리는 유럽 문명의 적자’로 프레이밍하려는 시도가 눈길을 끔. 전자와 관련해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역사를 파헤치는 연구들과 동유럽 각국의 비극적인(2차대전, 홀로코스트, 포그롬, 나치 부역 등) 역사와 소비에트 시기 어떻게 그런 것들이 살아남았나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있음. Philip E. Muehlenbeck, Natalia Telepneva; James Mark, Artemy M. Kalinovsky and Steffi Marung 등. 

중국. 한편 G2로 부상한 중국의 자본주의 패권으로서의 기원을 찾기 위한 연구가 많이 이뤄짐(Karl Gerth, Christopher Marquis and Kunyuan Qiao, Jason M. Kelly, Isabella Weber, Elizabeth O'Brien Ingleson, Pete Millwood 등). 이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중국 당안 자료를 활용했지만 베스타 류의 글로벌 냉전사의 대안으로 등장했다기보다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 이에 앞서 1960년대 이전 냉전 플레이어로서 중국을 다룬 연구는 더 많음. 베스타 자신도 그렇고, 중소 관계의 변화에 집중한 연구들 부지기수(Jeremy Friedman, Sergey Radchenko, Lorenz M. Luthi, Austin Jersild 등).

신자유주의 혁명. 글로벌 냉전사의 후반부로 가서 지구적 신자유주의 혁명을 다루는 연구들도 부지기수. 가장 대표적인 것인 Fritz Bartel의 책(2022). 다른 저작들도 있지만 바텔 책이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소련 중심의 동유럽 진영을 모두 다뤄서 꼭 읽어볼 만함.

제3세계. 베스타 류의 글로벌 냉전사가 가장 비판을 받으면서도 쉽게 극복되지 않는 문제가 바로 제3세계의 위치. 제3세계가 ‘주체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미소의 마냥 대리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계의 질서에 딱히 균열을 낸 것도 아니어서 뭔가 미적지근한 위치. 이런 흐름 속에 제3세계 각국 내지 지역(남아시아, 동남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장기 20세기를 다룬 책들이 많음. 한편 각국 내지 지역에 대한 높은 해상도를 가진 연구들은 글로벌 냉전사 같은 지구적 시각과는 모호한 관계를 유지.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사우디, 이란,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의 냉전사 연구도 적지 않음. 석유사의 대가인 David Painter(최근 국내 다큐멘터리에도 나옴), Toby C. Jones (사우디), Gregory Brew (이란), David Engerman (미국-소련-인도), Artemy Kalinovsky (소련 내부 식민지로서의 중앙아), Timothy Nunan (아프간), Elisabeth Leake (아프간), Mattias E. Fibiger (인도네시아), Wen-Qing Ngoei (반공 동남아) 등이 떠오르고, 인도와 베트남은 연구자가 너무 많아서 읽을 책이 부지기수임. 인도 냉전의 총론격에 관한 책은 모르겠음. 각론으로는 인도 컴퓨터(MIT 출판부)나 에너지 관련해서 Elizabeth Chatterjee, Matthew Shutzer 등. 베트남에 관해선 Lien-Hang T. Nguyen (베트남 군사문서고 활용), Michitake Aso (환경사), David Biggs (환경사), Shawn F. McHale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등이 떠오르고 총론은 Tuong Vu의 2016년 책이 적당. 좀 더 긴 시각으로는 Christopher Goscha.

아프리카. 냉전 관련해서 중요한 지역이지만 읽은 게 거의 없음. Radoslav A. Yordanov, Natalia Telepneva, Alessandro Iandolo 등 아프리카에서 소련의 개입을 다룬 책들이 있는데 이것보단 20세기 전반 식민주의자들의 착취와 공학적 개입 등을 다룬 저서들이 더 재미있었음.

한반도. 한편 냉전사의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지역인 한반도는 냉전사 연구보다는 대한민국사 연구 또는 남북 비교사 연구로 많이 진행되고, 한국에서 생산된 지식은 영어 학술장에 거의 유통되지 않음. 영어권에서 냉전기 대한민국 관련해서 떠오르는 저자들: Kornel Chang, Patrick Chung, Charles Kim, Gregg Brazinsky 등. 흥미로운 남북 비교로는 Shinyoung Kwon, Derek Kramer (에너지). 북한사 연구는 냉전사 연구의 성과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흐름이 보여 재미있음. 자료의 문제가 클 텐데, 러시아 자료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듯.

 


**냉전사는 거들 뿐**
이밖에 냉전기 환경사, 과학기술사, 의학사 등을 다루는 많은 연구가 있지만 ‘냉전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 

요새 드는 생각은 ‘냉전사’를 보기보다는 미제국사(A. G. Hopkins, Daniel Immerwahr, Paul Kramer, Mark A. Lawrence 등)의 일부로 지구사를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인 냉전사 연구가 아닌가 싶음. 무엇보다 그러한 접근이 독자 확보에 유효함. 독자 확보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에디터 선에서 걸러질 확률이 높고, 리뷰어들도 더 편향적인 사람들이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짐. 그리고 미제국사의 일부가 아닌 냉전사 주제가 희소함을 고려할 때 그게 더 맞는 것 같음.

더 넓은 독자층을 고민하려면 한국사의 특정한 시기나 주제를 먼저 정하기보다는, 그러한 고려 대상이 영어권 냉전사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중요성을 가질지 먼저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 쉽게 말해, 내가 탐구한 내용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임팩트를 가질까? 대부분의 주제는 그러한 임팩트가 적음. 안 읽히는 글은 저널에 실릴 가능성 낮음. 한편 문학 쪽은 역사 쪽과 거의 소통하지 않음. 역사학 쪽에서 (냉전기) 문학사 work를 인용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 따라서 냉전기 문학 연구를 문학계 안에서 수행하게 된다면 역사학의 성과를 참조하기보다는 문학계 안에서 (냉전기) 문학사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 그 convention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서 거기에 자신의 연구를 조응시켜야 함.

 


**나가며**
최신 냉전사 관련해서는 아래 저널들이 유용함.

- Diplomatic History (미국 외교 중심)
- Cold War History (잡다한 주제들)
- Journal of Cold War Studies (잡다한 주제들)
- Journal of American History (미국사 중심)
- 기타 역사학의 유명 저널들(The Historical Journal, Past & Present, AHR, CSSH, 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등등)에 실린 냉전 관련 논문 참조.

 


답변2: 오석주(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과 박사과정)

<입문서>
케임브리지 냉전사 (총 3권)
https://www.cambridge.org/core/series/cambridge-history-of-the-cold-war/DEFB061DD8FD3DA500549912A13F03CE

출간된지 시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유용한 편집서. 책임 편집자는 최근에 은퇴한 미국 대외관계사가 멜 레플러(Melvlyn Leffler)와 글로벌 냉전사 및 현대중국사학자 아르네 웨스타드(Arne Westad). 참여한 저자들 대부분 이제 나이가 지긋한 대가들이므로, 저자들이 소속되어있는 기관들의 동료 학자들이나 제자들의 연구를 추적해서 본인의 관심사에 맞게 골라읽는게 도움이 될 것임.


Uncertain Empire: American History and the Idea of the Cold War.
https://global.oup.com/academic/product/uncertain-empire-9780199826124

훌륭한 지성사가 두 명이 편집한 연구서. 역사학, 영문학/비교문학, 정책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학자들이 냉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음. 특히 “냉전기=1945-1991”라는 매우 당연한 듯한 시기구분에 문제를 제기하는 앤더스 스티븐슨(Anders Stephanson)의 에세이, Cold War Degree Zero는 반드시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걸작임.


Red Love Across the Pacific: Political and Sexual Revolutions of the Twentieth Century
https://link.springer.com/book/10.1057/9781137507037

(문학/문화사/젠더사 등에 관심이 있다면) 좀 이른 시기지만 이런 책도 있음


<학술지>
Journal of Cold War Studies [JCS]
https://direct.mit.edu/jcws
: 하버드대학교 냉전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저널. 글로벌냉전사 최근 연구들을 팔로우업하기에 좋음. 외교사/국제정치사 위주. 해당 연구소는 이제 더 이상 운영되고 있지는 않는 걸로 파악됨.

Journal of American Studies [JAS]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journal-of-american-studies
: 영국 미국학학회에서 발행하는 저널. 미국학/미국사 연구, 특히 문화사/미국과세계 연구를 많이 볼 수 있음. 학제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는 포럼.

Cold War History [CWH]
https://www.tandfonline.com/journals/fcwh20
: 런던정경대 국제사학부에서 발행하는 저널. 유럽학계의 냉전사 연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됨.
글로벌 냉전사 중심.


<총서>
New Cold War History [NCH]
https://uncpress.org/series/new-cold-war-history/
: 냉전사 연구단행본 시리즈. 더 이상 발행되지 않음.

InterConnections [IC]
https://uncpress.org/series/interconnections-the-global-twentieth-century/ 
: NCH의 후속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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