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포레스터,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 북콘서트 토론자료_20251211

Intellectual History 2025. 12. 16. 11:49

아래는 2025년 12월 11일 경남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주관 하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진행된 북콘서트 "롤즈의 『정의론』 이후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전개와 방향: 카트리나 포레스터,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함께 톺아보기"의 토론 개요문이다. 나는 지성사 방법론 및 지성사 연구의 맥락에 초점을 두고 15분 정도 논평하는 역할을 맡았다. 압축적인 개요문이지만, 전체적인 요지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여겨 약간의 문구만 수정하여 올려둔다.

 

행사 자체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홍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5석의 작은 연구소 공간이 꽉 차서 앉을 자리가 부족할만큼 성황이었다. 주로 철학과·정치학과 전공자들이 많았고,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롤스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큰 인상이었다. 논평회 자체는 롤스 및 포레스터의 저작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를 논의하거나 한국의 (적어도 서울대 철학과를 통한) 롤스 수용사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였다. 이 날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 한국어판 출판을 맡아주신 후마니타스 안중철 대표님과도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국역본은 5월에 출간된 후 반년 동안 1200부라는 매우 놀라운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고, 내년에 2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 저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존 롤스의 초기·중기 저작을 중핵으로 전후(戰後) 미국 정치철학 형성 과정·맥락을 지성사적으로 연구(케임브리지학파의 언어맥락주의적 접근)

이를 활용,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를 중심으로 한 북미 정치철학 분야의 한계를 드러내는 비판의 시도

 

왜 이런 작업을 한 것일까?

a. 케임브리지 지성사학파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오랜 관계

b. 2010년대 이후 미국 대학 내 인문학계의 급진화 경향
& 새로운 세대 지성사가들의 현재주의적전환?

 

 

2. 케임브리지 지성사학파와 정치철학

1) 학술사적 맥락

-서구 사학사의 맥락
19세기: 역사학; 역사학의 근대학문화: 문서고, 세미나, 역사학술지
+ 사회과학들의 분화와 도전 역사학의 과학적 지위 문제
20세기: 사회과학 성과 흡수. 역사학은 주제·방법론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업&전문화 (정치사 중심 사회경제사의 도전과 부상 문화사 등등등...으로의 분화)
1960년대 이후: 유럽 각국에서 경제환원론·사회경제사에 맞서 문화·사상·무의식 등 비물질적인층위를 탐구하려는 학문적 경향 등장. 역사학의 경우 문화사, 정치사상사(케임브리지학파 언어맥락주의), 개념사, 미셸 푸코 등등

 

-케임브리지학파의 부상
방법론/접근법: 언어철학·과학철학사 등의 성과를 섭취, 문헌학적 탐구를 활용하여 개별 문헌의 독해나 서지학적 정보 파악을 넘어 유의미한 역사적 해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새로운 연구모델의 체계화
특히 과거 논쟁의 재구성에서 출발, 사상가 및 텍스트가 수행하는 전략·전술적 의도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텍스트와 논쟁의 해석을 (더욱 타당한 문헌 근거에 기초하여) 정교화하는 수정주의적 시도에 특화

케임브리지학파의 핵심 영토: 정치사상사
역사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사회경제사와의 투쟁, ‘정치사상의 연구에서는 당시 정치철학계에서 전제하던 거대서사 및 그에 기초한 독해를 비판하는 양면 전선
학파 초기의 주도적인 연구자들(J. G. A. 포콕, 퀜틴 스키너, 존 던, 리처드 턱, 제임스 털리 등등)은 스스로를 정치사상사연구자로 규정, 당대 미국에서 전개되던 정치이론적 논의(롤스, 노직 등)도 깊은 관심을 갖고 바라봄
21세기에 오면 역사학과 정치이론(political theory)을 오가는 후속세대도 등장

 

 

2) 지성사 VS. 철학?

: 초기 퀜틴 스키너의 학계에 대한 광범위한 저격(“Meaning and Understanding in the History of Ideas” [1969]) &
케임브리지학파 VS. 스트라우스주의지성사와 철학은 대립관계?

지성사 연구와 철학 연구의 실제 관계는 좀 더 복잡. 철학사 연구를 갱신하고자 하는 학자들에게도 (수정주의에 강점이 있는) 지성사적 접근법이 유용하게 활용


몇 가지 사례:
a. 근대 초 유럽철학사 연구: 자연법·공화주의·도덕감정론 등 1980년대 이후 지성사 연구의 성과&접근법이 상당히 수용, 특히 정치철학·도덕철학 등의 분야는 케임브리지학파의 작업이 필드를 재편
ex: 제롬 슈니윈드(자율성의 발명), 크누드 하콘센(Knud Haakonsen; 케임브리지 18세기 철학사편집자), 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s; 데이비드 흄: 지성사적 전기저자, 옥스퍼드 18세기 영국철학 핸드북편집자)
b. Peter Anstey17-18세기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 연구와 경험론 대 합리론도식 비판 철학 전공자가 철학사 연구에서 지성사적 접근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례
c. Christia Mercer, "The Contextual Revolution in Early Modern Philosophy", Journal of the History of Philosophy 57.3 (2019): 529-48; 철학사 연구에서의 맥락주의 혁명’?
d. 20세기 이후의 철학() 연구에도 지성사적 접근법을 사용하는 예들이 나타나고 있음

 

[c, d 관련해서는 다음의 포스팅을 참조: https://begray.tistory.com/605 ]

 

그럼 처음에 뭐 때문에 논쟁한 거야?’: 20세기 중후반 지성사가들이 철학()비역사적연구를 비판한 두 가지 지점:
관습적인 거대서사(ex: 자유주의-세속화적 목적론) + 그러한 거대서사에 입각한 (충분한 문헌근거 없는) 텍스트 독해
포콕(마키아벨리언 모멘트), 스키너(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이슈트반 혼트(무역의 질투,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모두 기존에 통용되던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근대 초의 사상적 흐름을 설명하는 새로운 도식들을 구축·제시

 

3) 지성사 VS. 자유주의 정치철학?

초기 케임브리지학파 지성사가들의 자유주의 비판
: 주로 역사적 해석에 초점(ex: ‘존 로크에게서 근대 자유주의의 기원을 찾는 일은 헛수고다’; ‘18세기 이전에 자유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건 역사적 근거가 없다’),
현대의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유의미한 충돌은 X
애초에 마르크스주의·스트라우스주의와의 경합이 더 중요한 과제였음

 

오늘날 지성사가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접근
1) 아무 시대, 아무것에나 자유주의 딱지를 붙이려는 만물 자유주의 귀속론비판
2) 19세기 이후의 다양한 자유주의 전통들 자체를 역사화
(ex: 헬레나 로젠블랫,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2000년대 이후 계속 축적되어 온 신자유주의 지성사 연구 등등)

 

1990년대 이후: 퀜틴 스키너의 공화주의적 자유
: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논쟁 이후 자유주의 비판자들이 참조할 수 있는 선택지로 주목
But 스키너의 직접적인 개입 대상은 이사야 벌린 등이 대표하는 소극적 자유 대 적극적 자유논쟁
자유주의 전통 혹은 자유주의 정치철학 전체와의 투쟁이라 볼 수 있는가? +
케임브리지학파 역사가들 내에서도 정치적 성향은 다양, 진보 진영에 속하는 스키너가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려움

 

 

3. 2010년대 이후: 북미 인문학계의 급진화

2000년대 후반의 지구적 금융위기, 월가 점령시위 등등의 여러 계기
북미 대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진보적흐름을 가속,
새로운 세대 지성사가들의 작업·활동에도 영향; 20세기 이후 지성사·정치사상사에 대한 관심의 증가 &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지성사 접근법을 활용 but 자신을 전문 지성사가로 정체화하지 않는 경우도 흔해짐)

 

새뮤얼 모인(Samuel Moyn, 1972-)의 인권사 3부작
The Last Utopia: Human Rights in History (2010); Christian Human Rights (2015);
Not Enough: Human Rights in an Unequal World (2018) [국역제충분하지 않다: 불평등한 세계를 넘어서는 인권]

인권사 연구의 기본 구도 자체를 새로 짜는 데 성공(전간기·냉전기 중심)

인권개념에 의존하는 자유주의적 사회변혁 운동의 한계에 대한 중도 좌파적 비판
인권사 연구의 지각변동을 초래함과 함께, 지성사적 접근법을 활용해 현실 정치·운동에 유의미한 개입을 할 수 있는 모델로 후속세대에 영향
(현재는 냉전자유주의Cold War Liberalism 정치사상에 대한 비판적 지성사 연구로 이동)

 

 

4. 카트리나 포레스터,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

2004년 이후 존 롤스 문서고의 공개: 젊은 박사급 지성사 연구자들의 관심 주제로 부상
(cf. Sophie Smith, “Historicizing Rawls”, Modern Intellectual History 18 (2021): 906-39.)
→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 해당 연구성과의 중간결산 면모(2013년 박사논문 기반).

 

이후 각종 토론회/심포지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자도 롤스·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지성사 연구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음을 알고 있음 (애초에 한 권의 책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비현실적?)

 

포레스터의 지향: 2010년대 이후 (케임브리지학파를 포함한) 지성사 후속세대들의 정치적·참여적 경향 + 모인의 명시적인 영향 +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

 

20세기 북미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지성사적 연구로서의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 저작 자체의 성과 못지않게 2000년대 후반 이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대사’·냉전사 연구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읽을 수 있으면 좋음. 롤스에서 시작해서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전통을 포괄적으로 겨냥

 

정의의 그늘 아래에서의 자유주의 정치철학 비판
(조금 더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 후속논문: Katrina Forrester, “Liberalism and Social Theory after John Rawls”, Analyse & Kritik 44.1 (2022): 1-22.)
시대착오를 드러내는 전략 (cf. 포콕,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모인의 인권사)
실제로 논증이 얼마나 되고 있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가 포괄하지 못하는 정치적 의제들의 제시
지적 자체는 유의미하지만, 논거를 철저히 댄다기보다는 2010년대 후반의 분위기에 좀 기대서 넘어가는 측면이 있는 게 아닌가?

 

 

총평: 철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있겠으나 but ‘철학을 통해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고대상으로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는 책

 


이날 행사를 위해 경남대 교육연구소 및 후마니타스에서 제작한 포스터 2종도 첨부해둔다.

 

홍보는 역시 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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