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9일 근황: 올해 중반을 되돌아보며

Comment 2022. 9. 19. 20:41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도 2학기가, 또 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조금 생각없이 학술대회발표 제안을 오는 대로 다 받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고 있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준비했는데, 절묘할 정도로 무언가 하나씩 걸려넘어져서 8월엔 일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차피 답이 없는 고민을 계속할 이유는 없으니, 일단은 밀린 일들을 해치우고 다음 단계를 위한 공부를 하나씩 쌓기로 했다. 지금은 초기 근대의 "우정" 관련 논의, 그리고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관련 연구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온, 곧 나올 작업물 목록만 언급하고, 상세한 건 차차 개별 포스팅으로 이야기하도록 하자.

 
1. 8월 초 제출마감 10분 전 최종 박사논문 파일을 제출했다(제출 후에 황당한 실수를 발견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학교도서관/Riss 등에 공개되는 건 10월 쯤 예정인데, 그 전에 따로 간단한 소개 포스팅을 쓸 예정. 책으로 만들고 나니 정말로 사람을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흉기가 되었다.
 
2. 6월부터 8월 말까지 학술지 논문 세 편이 나왔다. 하나는 박사논문 챕터의 일부, 다른 둘은 박사논문을 쓰면서 인접 주제를 따로 쓴 글이다. 그중 리처드슨의 <파멜라>와 메리 아스텔의 초기 여성주의를 다룬 글은 아무래도 한정된 독자층만을 지니겠지만, "잉글랜드 계몽주의" 연구사를 정리한 글은 그래도 좀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설명.
 
3. 2년 전 강원도 홍천의 행복공장 독방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글을 쓰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는데, 이제 결과물이 출판되어 북토크도 가졌다.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예술/전시 쪽 작업하시는 분들 사이에 혼자 먹물이 어색하게 앉아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고전기 철학에서부터 한국의 '옥중편지' 전통까지 감옥과 고독, 자기수양의 장치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간단하게 그려보는 철학사적 에세이를 썼다. 사실 8월 말 미친듯이 바쁠 때는 다시 하루 정도 독방에 들어가서 멍때리다 잠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출간된 책 링크(한국어/영어번역 텍스트가 함께 수록, 해외에서는 Sternberg Press, 국내에서는 아트선재에서 출간):
 
4. 5월에 출간된 『문학/사상』 5호에 홍정완 선생님의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 체계』 (역사비평사, 2021)에 관해 쓴 서평이 실렸다. 내 초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이 책을 어떤 의미에서 "사상사" 혹은 "지성사" 연구로서 읽을 수 있을지를 짚어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비전공자 (그런데 사실 나도 비전공자...) 독자들에게 영어권 냉전기 사회과학사 연구의 맥락을 의식하고 이 책과 연결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저자를 포함한 다른 분들이 어떻게 읽어주셨을지는 모르겠다.
 
5. 서평전문지 <교차> 3호에 James A. Harris의 Hume: An Intellectual Biography (CUP, 2015)에 관해 원고지 140매 짜리 서평을 기고했다. 서평 구상 자체는 청탁을 받은 연초에 마쳤지만, 정신차리고 보니 학위논문 제출 후에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하게 되어 (...) 박사뽕에 차올라 가장 행복하게 보냈어야 할 시기를 마감에 쫓기며 가장 불행하게 보냈다 ㅠㅠ. 놀랍지 않게도 서평 도서 이야기가 반, 그 지적인 맥락에 대한 이야기가 반이다(인용문헌 수가 대략 40여개?). 10-11월에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위의 "잉글랜드 계몽주의" 논문의 자매편으로서의 성격도 있는만큼 같이 읽히기를 바란다.
 
6. 일전 <교수신문> 천하제일연구자대회 코너의 30대 신진연구자 좌담회를 출간하는 작업도 반환점을 돌아 어제 부로 서언까지 썼다. 문제는 수정편집과정에서 분량이 엄청나게 불어났다는 건데... 곧 전체 필진 및 편집자와 미팅하고 분량감축 방안을 논의할 예정. 뭐가 됐든 인문사회 대학원에 관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7. 뉴미디어(?) PPSS에서 2022년 대선 관련 서면 인터뷰를 제안해서 응한 결과물이 8월 말 네이버 프리미엄에 "2022 대선, 조국을 묻다" 라는 제목의 게시물로 공개되었다. 정작 나는 네이버 프리미엄 구독자가 아니라서 무료 구독 회차만큼만 볼 수 있고 댓글에 답도 못 한다는 게 함정. 제 답을 듣고 싶으시면 그냥 제게 말해주세요ㅠㅠ. "2022 대선과 조국사태"라는 솔직히 논평하기 까다로운 주제였는데... 나는 다만 현실주의자의 입장에서 주어진 질문에 답변하고자 했다.
 
1편
 
2편
 
3편
 
4편
 
8. 그 외에 어둠 속에 묻힐 지원서/계획서를 여기저기 썼고 또 쓸 예정이다.
 
 
써놓고 보니 내가 봐도 참 황당한 일정이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쏟아낸 대가로 번아웃...이 왔어야 했으나 딱 일자리만 빼고 다른 일들이 계속 밀려와 번아웃을 향유할 시간조차 없었다. 지금도 그냥 조금 정신을 차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상황은 같다.
 

어느 존경하는, 또 앞으로의 작업이 기대되는 지인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박사를 받고 5년 정도 지나고 나면 지적으로 더 이상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떠올리지도 못하는 맹탕이 되기 십상이니, 그리 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기나긴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갑자기 무수한 자동차들이 빠르게 오가는 찻길에 들어선 느낌이니, 저 경고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 불안정한 미래보다 더 무서운 일이 하나 있다면, 더는 지적으로 즐거운 작업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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