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윤, <하버마스 스캔들: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 출간에 부쳐

Comment 2022. 11. 5. 00:51

며칠 전 <하버마스 스캔들: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이 출간되었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4080812). 나는 다음과 같이 추천사를 썼다.

 

"『하버마스 스캔들』은 한국 인문사회학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정으로 도발적인 작업이다. 저자는 1990년대 한국의 하버마스 수용과정을 “실패”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 인문사회과학장이 전문학술장으로 진화하지 못한 이유를 따져물을 때 드러나는 냉철한 분석 아래에는 지금도 우리를 구속하는 어떤 한계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급한 요청이 있다. 하버마스와 부르디외의 이론에 대한 간결명료한 설명을 제외하더라도, 『하버마스 스캔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입장을 떠나 진지하게 대면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추천사를 부탁받은 시점까지 나는 저자와 만난 적도 (다른 용건으로 한번 짧게 통화한 적을 제외하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요청을 수락한 까닭은 책의 바탕이 되는 글, 즉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90년대 하버마스 네트워크의 형성과 해체: 딜레탕티즘과 학술적 도구주의는 어떻게 하버마스 수용을 실패하게 만들었는가>를 매우 재미있게 또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한국 인문사회학, 특히 정치·사회적 쟁점을 논의하는 학적인 도구를 이해할 때, 1980-90년대 이래의 서구 학술수용 문제를 건너뛸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주제는 진지한 학술적인 검토라기보다는, 관련 인물의 회고나 스케치의 형태에 가깝게만 다루어져 왔다(몇 가지 예로는 윤건차 선생의 저작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천정환 선생의 논문 「탈근대론과 한국 지식문화 1987∼2016: 전개 과정과 계기들」 등이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하버마스 스캔들』은 매우 주목할만한 저작인데, 1980-90년대 한국 사회철학/이론 분야의 하버마스 수용과정을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고유한 학문적 해석을 끌어내는 과제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식사회학, 특히 전문학술장의 탄생과정에 대한 부르디외의 모델을 참고하여, 한국의 하버마스 연구자 네트워크가 왜 전문학술장으로 발전하는 데 '실패'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부르디외·하버마스 이론에 대한 간명한 정리와, 1980-90년대 사회이론 학술장의 분위기를 되살려내는 촘촘한 문헌조사 외에도, 이 저작이 암묵적으로 겨냥하는 현실, 즉 한국의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인생의 특정 시점에서 전문적인 연구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암묵적으로 내려놓는 상황에 대한 강렬한 문제의식은 귀중하다. 물론 이것이 곧 <하버마스 스캔들>이 제시하는 해석적 서사에 어떠한 논쟁거리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예컨대 지성사 연구자로서 나는 저자가 부르디외의 모델에 지나치게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애초에 전문적인 하버마스 연구집단의 성립 여부를 통해 학술장의 전문화 여부를 평가하는 게 적절한지 등을 비판적으로 묻게 된다. 어쨌든 90년대 이후 하버마스가 서구에서조차 공적 지식인/논평자로서 명망을 이어갔음을 고려하면, 하버마스 연구집단이 지속되지 않은 게 특별히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어떤 전문학술장이든 지적 '유행'의 변천은 아주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버마스 연구집단 생성의 '실패'는 그저 유행의 변화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책이 오히려 그러한 물음을 던지도록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위와 같은 물음은 결국 학문의 길로 들어선, 혹은 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건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가 <하버마스 스캔들>에 설득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이를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유의미한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는 것, 그래서 1980년대 이래 한국 인문사회학술장이 과연 무엇을 겪었는지, 또 우리가 어떤 조건 위에 처해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시도가 좀 더 빈번해지는 것이다. 그런 질문거리를 곳곳에 포함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러한 재검토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버마스 스캔들>의 주독자가 될 사람들, 즉 사회철학·사회이론 연구자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그러한 과제는 겉보기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이 책이 단순히 이론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대신, 이론을 다루는 인간들의 집단적 행위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서사를 도출하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말해, 한국의 사회이론·사회철학 전공자들에게 역사적 변화의 해석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지적인 도구가 있는가? 정치사상사·철학사 연구로부터 정치철학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지적 자원을 끌어올 수 있었던 롤스(<정치철학 강의>)나 호네트(<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와 달리, 한국의 사회이론·철학 전공자들에게는 1980-90년대의 사상사/지식사회학 논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전문적인 정치사상사/지성사 연구자, 혹은 지식사회학 연구자는 이제야 조금씩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과 사회/정치철학 사이에는 여전히 까마득한 거리가 놓여있다.

 

 

<하버마스 스캔들>에서 비판적으로 성찰된 대상들이 이러한 난점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혹은 사회학자들이 (저자의 지도교수인) 김경만 선생의 저작에 보냈던 바와 같이 표적에 맞지 않는 화살만을 쏘아댈 것인지, 그것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물론 이 책에 어떠한 응답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러한 전개를 바라지 않는데, 이는 그로부터 우리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이론·철학에는 과연 자기 자신을 성찰할 능력이 있는가?"

 

P. S. 영문학 연구자로서의 나는 솔직히 <하버마스 스캔들>의 문제의식이 한국의 외국문학 학술장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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