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총학생회 임기 종료를 맞이하여

Comment 2021. 3. 1. 02:21

서울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에서 2015년 3월부터 2021년 2월 28일까지 6년 간 활동한 고등교육전문위원직을 드디어 무사히 마쳤습니다. 2월까지 준비했던 보고서 기획도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형태로 마무리되었는데, 자세한 건 적절한 시점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전문위원회에서 공개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문제의식과 '대학원생이 해봐야 뭘 얼마나 하겠냐'는 회의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망하지 않을 만큼만 해보자'는 의무감만을 지니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 6년은 매순간 일개 인문대 대학원생이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풍부한 경험을, 또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계신 여러 뛰어난 분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를 얻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원하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던 적은 많을지언정, 힘들고 괴롭고 절망하는 시간은 딱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매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구상을 떠올려보고, 그중 상당수를 구체화된 형태로까지 만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아마도 이건 어느 분야가 새롭게 만들어질 때 뛰어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겠죠). 제가 마주하는 여러 상황의 희비극적인 면모와 별개로, 순수하게 업무와 활동의 관점에서 볼 때 저는 대학원총학생회에서의 활동을 좋아했고 또 어느 정도는 즐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면서 느끼기 쉬운 무력감과 열패감을 걷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농담처럼 굴러다니는 대학원생 밈이 말해주듯,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한 처지인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자신을 둘러싼 제약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과도하게 드러내고 강조하기 쉽습니다. 대학원총학생회에서의 시간은 저 자신으로부터 이러한 편견을 씻어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원생들은 자기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학문적이고 공식적인 언어로 설명·분석할 수 있고,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합리적인 비/제도적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러한 방법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사회의 다른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원생, 그리고 연구자 집단은 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효율적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기도 합니다. 단지 우리 중 대다수는 그걸 시도해 볼 기회를, 그런 식으로 사고할 경험을 아직까지 마주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대학원총학생회에서 저는 그런 경험을, 다시 말해 자신이 속한 집단과 제도의 향방을 직접 바꾸고 조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겪어볼 수 있었습니다. 각각 따로 떨어져 있을 때 한없이 무력해보이던 대학원생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서로의 역량을 결합했을 때 그전까지 상상하지 못할만큼 커다란 일을 무서울 만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확실히 매우 인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지난 5, 6년간 대학원생 인권/제도개선운동의 믿기 어려울만큼의 확장속도가 말해주듯이요. 자신의 처지를 자신의 손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는 사람을 노예라 부를 수 없다면, 대학원생은 확실히 노예가 아닙니다. 바로 그러한 감각, 자신이 자신의 환경에 부분적으로나마 개입해서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삶의 방식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꾸어놓을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은 단지 저 자신에게만 해당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엔 그런 기회가 무척이나 희미하고 드문, 거의 우연히 마주치는 마술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2020년대엔 더 많은 대학원생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우리의 실제 능력보다도 더 부족한 존재로 만들어 온 텁텁한 안개를 쳐내고, 사회의 지식을 관장하고 생산하는 집단으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대학원생은 강합니다!

(*프로레슬러의 톤을 떠올리며 읽어주세요)

 

지금까지 도움을 주셨던, 또 함께 일할 수 있었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 S. 마지막 프로젝트 설명 및 6년 간의 소회 등 개인적인 코멘트는 시간이 나면 쓰겠습니다^^ 일단은 지금도 새벽까지 자료를 꾸역꾸역 봐야할 판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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