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춘익 선생님을 추모하며

Comment 2021. 2. 5. 23:06

故 장춘익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https://samga.co.kr/obituary.do?bn=181922)

 

몇 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뵌 것이 전부였지만, 그 좁은 창구로도 선생님의 빛나는 명석함이 전해져 왔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날 것의 표현을 살리자면, "한국인 인문학자가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날카롭고 명료할 수 있구나"란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몇 안 되는 분 중 한 명이셨다. 언젠가 직접 찾아뵙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는데, 스스로의 게으름으로 이제는 영영 이루지 못할 바람이 되어버렸다.

 

한림대학교 철학과에서 수업을 들었던 운좋은 학생, 혹은 한국 사회철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생님의 성함을 접할 경로는 두 권의 매우 중요하고 육중한 번역서를 통해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지하다시피 선생님은 현대 독일 사회철학계의 가장 중요한 저작 두 권,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전2권, 나남출판, 2006)과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의 사회>(전2권, 새물결, 2012) 한국어판을 내셨다. 2014년 말 처음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교환하게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의사소통행위이론> 개역판을 낼 의향이 있음을 말씀하신 바 있다("하버마스 책은 개정이 필요한데 여지껏 작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대한 약간의 분노는 독서의 좋은 에너지원이 되는데, 딱 그 정도의 문제만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2018년 여름에 여전히 개역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주셨는데, 선생님의 생전에 개역본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읽고 여쭤보겠다는 다짐 또한 지켜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나마 2015년 8월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으로 강연하신 자료가 남아있다: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79147&rid=2890)

 

 

개인적인 추억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2016년 논문 <헬조선 담론의 기원>을 출간할 때 선생님의 도움을 무척 많이 받았다. 지금은 특히 청년담론 연구자들에게 제법 읽히는 글이 되었지만, 사실 해당 논문은 2016년 4월에만 해도 원래 투고했던 학술지에서 사실상의 거절을 당한 뒤 적절한 투고처를 찾아 이리저리 유랑해야만 했다. 부분적으로는 글의 도발적인 입장 때문에(<헬조선 담론>은 헬조선 담론에 대한 좌우파 필자들의 기존 논의가 거의 다 틀렸다고 주장했다), 또 부분적으로는 통상적인 인문학 논문 두 편에 해당하는 분량 때문에, 그리고 당시 한국의 문학·담론연구자들에게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언어맥락주의 지성사적 접근법으로 인해 과연 이 글을 제대로 출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조금은 좌절한 채로 새로운 투고처를 찾아주실 수 있을 법한 분들께 논문파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선생님이셨다.

 

바쁜 일을 먼저 처리하고 읽어보겠다고 답변주신 뒤 4일이 지나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셨다(선생님의 메시지를 허락없이 올리는 걸 하늘에서나마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이렇게 글을 잘 쓸 수도 있군요. 온통 흐릿한 토요일 오후, 이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마음은 환해졌습니다. 꼰대짓을 하기 위해 뭔가를 지적하려 해도 도대체 그럴 것이 없네요. 정말 흥미로운 글예요.

이런 글이 어딘가에 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 <사회와 철학>이나 <시대와 철학> 같은 곳에 투고하십시오. 제가 적극 추천하겠습니다."

 

"제 감각으로는, 분량을 줄이고 싶지 않네요. 요즘 거의 모든 학회지가 분량 제한을 과도하게 해서 유감입니다.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었으면 합니다. 밥사주는 대신 제가 회비는 내드릴 수 있습니다^^."

 

"문학 관련 학술지에 내는 것이 이샘에게 유리할테니 가능성을 좀 더 알아보십시오. 하지만 <사회와 철학>에 싣기로 한다면 제가 기쁜 마음으로 적극 추천하겠습니다. 참 좋은 글을 쓰셨어요."

 

돌이켜보면 아직 박사과정에 있는, 그저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뭔가를 계속 쓰고 있을 뿐인 보잘것없는 대학원생의 처지를 고려한 마음씀이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자신의 글이 과연 공적인 학술장의 심사를 통과해 다른 독자들에게 찾아갈 수 있을지, 아니 자신이 지금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있는 방향이 과연 유의미한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격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이후 언제라도 자기회의의 늪에 빠져 가라앉게 될 때, 선생님의 말씀은 딛고 튀어오를 수 있는 단단한 반석처럼 마음의 토대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해 가을 나의 첫 지성사 습작 논문 <헬조선 담론의 기원>은 지금의 형태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사회와 철학>이 한국 사회철학계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학술지라는 건 논문 출간 한참 뒤 다른 선생님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자기 분야에서 정말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하는--누차 말하지만 한국 인문학계에서는 정말 드문 일이다--존경하는 선배가 요약설명을 듣기만 해도 뛰어남이 전해지는 발표를 한 뒤 어느 저명한 원로에게 "건방지고 문제가 많은" 발표였다고 폄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문의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연구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인 적도 없는 사람이 본인이 이해하지 못할만큼 높은 수준의 연구에 모욕적인 평을 붙여도 그저 원로라는 이유로 존경받고 살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이 세계다. 그렇기에 아마도 당신께 익숙한 연구와는 상당히 달랐을, 무시하고 지나가도 아무 문제 없었을 젊은 학생의 거칠고 투박한 글을 정성들여 읽고 큰 힘을 실어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운이 좋았던 일인가 새삼 생각한다. 후회와 감사, 그리고 실제로 뵙지 못한 분을 향한 그리움과 함께.

 

삼가 故 장춘익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전해주셨던 것을 저 또한 다른 분들에게 전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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