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 <의미의 지도>에 대한 코멘트: <12가지 인생의 법칙>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Comment 2018. 11. 3. 15:17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의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_12 Rules for Life: An Antidote to Chaos_, 2018)가 원서 출간 후 10개월만에 국역출판되었다. 한국에선 이전부터 피터슨이 북미의 대표적인 안티페미니즘 셀럽으로 수용되어 왔으며--그의 영상 및 스크린샷을 통한 번역소개는 이미 꽤 널리 퍼져있다--그에 따라 안티페미니즘·남성성·북미지식인(?)에 목말라 있던 일부 독자층과 보수언론에서는 적지 않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3/2018110300106.html 및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72152642). 오세라비가 보여주었듯 안티페미니즘 계열 저자들에 대한 출판시장의 수요는 이미 일정 부분 있는데다가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믿고 사보기 때문에, 비록 한국에서 이러한 '정신 똑바로 차려라!'식의 자기계발서 유행은 몇 년 전에 사그러들긴 했지만, 번역출판사가 손해를 볼 일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의문은 다음과 같다. 광고문구에서 '세계적인 지식인'·'우리 시대의 사상가'처럼 소개되는 조던 피터슨은 실제로 얼마나 진지하게 읽을만한 저자일까? 안티페미니스트의 대표로 불리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매우 괜찮고 지적으로 존중할만한 저자도 있을 수 있고, 페미니스트 독서시장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면 별 내용이 없는 저자도 있을 수 있다. 북미의 대중독자라고 해서 딱히 한국의 대중독자보다 더 신뢰할만한 감식안을 가진다는 증거 따위는 없으며, 어떠한 저자가 한국 시장에서 소개·수용되는 방식과 그 저자가 속한 보다 전문적이고 진지한 지적 세계에서의 실제 위상·평가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걸 특히 나와 같은 외국문학 전공자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수준높은 리뷰문화가 부재한 환경에서, 출판사 광고문구야 말할 것도 없고, 그다지 지적이지 않은 언론리뷰 몇 건, 그보다 결코 더 낫지않은 한국의 이른바 사회지도층·명사들의 평가·추천사를 통해 해외 저자의 사유를 이해하고 평가하기란 무척 어렵다. 특히 피터슨처럼 관련 분야에서 신뢰할만한 전문가를 찾기 힘든 경우라면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책을 직접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조던 피터슨이 1999년에 출간한 좀 더 진지한 저작, 출판사 소개문구에 따르면 "종교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명저"로서 "이제는 고전이 된 책"이라는 <의미의 지도: 믿음의 고고학>(_Maps of Meaning: The Architecture of Belief_)을 간략히 훑어보기로 했다. 조금 두꺼운 이 책의 서언(Preface)의 말미에서 피터슨은 친절하게도 자신이 각 챕터의 앞부분마다 요점을 정리해놓았으니 그것만 읽어도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써놓았고 나는 그를 신뢰하기로 했다. 다음은 서언, 챕터별 요약, 결론, 주석(*주석과 참고문헌을 훑어보는 건 시간이 없을 때 연구서의 성격을 빠르게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다)을 읽고 몇 가지 특징을 주관적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1. 조던 피터슨은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의미의, 그러니까 경험적 과학에 기초해서 연구하는 그런 심리학자가 아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준 저자는 다름아닌 칼 구스타프 융(C. G. Jung)으로, 집단무의식과 신화학적 관점이 <의미의 지도> 전체 사고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텍스트 전체에서 가장 일관되게 인용되는 사람들은 융(및 노이만 같은 그의 제자들), 니체, 미르체아 엘리아데, (20세기 중반 영문학연구에서 신화 비평으로 유명한) 노스롭 프라이 등이다. 나는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이런 책이 심리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짐작하기 힘든데, 내게 익숙한 사상·문학 쪽에서 보자면 피터슨의 1999년 저작은 20세기 초반에서 1960-70년대 정도까지 통용되었을 관점으로 집필되어 있다.

2. Preface를 읽어보면, 청교도/개신교 문헌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이 있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지만, 딱 개신교의 회심(Conversion)·거듭남, 변화(transformation) 내러티브에 입각해 있다. 서언과 결론(Conclusion)에서 저자 스스로 밝히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1962년 생인 저자는 어릴 적부터 핵전쟁에 대한 종말론적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었고(특정 시기에는 멸망에 대한 악몽을 계속 꿀 정도였다), 보수적 개신교 가정에서 자라다가 교회를 버렸다. 청소년기에는 나름 대학에서 정치학 전공하면서 캐나다 신민주당(NDP)을 지지하는 좌파적 운동도 해보지만 조지 오웰을 읽고 하면서 다시 또 그만둔다. 이후 대학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으로 죄수들을 관찰하거나 등을 하면서 인간의 파괴적 본성(?)이야말로 세계의 현실(real)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는데, 정신적 방황 중에 융의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개안(!)을 한다. 결론에서 이야기하듯 이후 (다소 자기식으로 해석한) 예수와 복음은 그의 정신적 토대 중 하나가 되었다. 불신·무의미·좌파적인 삶에서 종교와 신화, 복음으로 되돌아오는 전형적인 개신교 내러티브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별개로 남성다운 삶과 그에 부합하는 상징을 계속해서 제시하고 또 강한 남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저자가 정작 Preface 등에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자신의 취약한 남성성과 육체--마르고, 체구도 작고, 힘도 없는--에 대한 열등감을 곳곳에서 토로하는 건 무척 재미있는 지점이다.

3. 책에서 그가 설명하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세계의 근본에는 '혼돈'(Chaos;=nature, unexplored=the Great Mother) 대 '질서'(Order; =culture, explored=the Great Father)의 긴장어린 공존관계가 있다. 이 두 가지 항과 함께 중요한 제3항이 양자를 오가며 매개하는(mediate) 존재인 원형적 개인(the archetypal individual, =the Divine Son, Jesus)이다. 즉 위대한 아버지=(질서와 확실성을 상징하는)문명과 위대한 어머니=(파괴적이고 창조적이며 불확실한)자연과 양자 사이에 있는 인간 개인의 세 항으로 이루어진 상징적 체계가 곧 세계 원리의 표현으로 제시된다. 피터슨은 여기서 인간·세계이 완전히 혼돈에 장악되어도 망하고, 반대로 질서에 너무 길들여져서 혼돈을 제대로 대면할 수 없게 되어도 망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파시즘과 전체주의, 데카당스는 혼돈을 대면할 수 없는 인간이 질서에 강박적이 되어 다른 걸 용납하지 못한다거나 만사를 포기하거나 할 때 나타나는 유형으로 제시된다. 이런 세계에서 인간이 선택해야 하는 올바른 길은 세계의 도덕적 질서를 존중하되 자신이 알 수 없는 혼란들이 계속 침투한다는 걸 인정하고 대신 개인적인 이해(Personal·Individual Interest; 단 interest가 정확히 어떤 함의까지 담고 있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에 집중해서 사는 길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도 그 부제 "혼돈의 해독제"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 있는듯 보인다.

2) 위의 3항 구도에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듯 조던 피터슨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변종과 신화학의 기묘한 조합이다(저자는 기독교 철학의 근본적인 뿌리가 그노시스주의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책 후반부에 가면 연금술(...) 이야기가 한참 나오는 부분도 있고, 세계를 파괴하면서도 창조시키는 혼돈의 용("dragon of chaos", 이런 신화학에서 그렇듯 종종 여성, 어머니랑 동일시되는)에 대한 언급도 엄청나게 자주 나온다. 사회의 혼돈과 무질서는 이런 용이 돌아와서 준동을 부리는 걸로 묘사되고, 용을 막아내는 게 인간문명과 도덕적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이때 인간은 자연스럽게 "기사"(Knight)로 표상된다. 피터슨은 이런 상징적 설명틀이 여러 사회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기본적인 논리라고 믿는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가 종종 인용되는 데서 알아차릴 수 있듯) 인간은 예수와 복음을 따라 올바른 개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3) 이런 책에서 흔히 그러하듯 문명의 역사가 중요한데, 피터슨에게 역사는 당연히 신화학적·유사기독교적 구도를 토대로 하는 걸로 설명된다. <의미의 지도>는 종종 전체주의나 각종 학살의 이유를 탐구하여 제시했다는 식으로 소개되곤 한다. 그러한 소개문구에서는 더 설명하지 않는 사실을 지적하자면, 피터슨이 그런 세계의 재앙·학살·사상을 설명할 때 그가 채택하는 논리는 바로 위에서 든 바와 같이 혼돈과 질서의 신화적인 대결인 것이다(...). 피터슨은 생물학적·신경심리학 연구가 바로 그러한 신화적인 역사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주장한다--인간의 생물학적 결정론이 인간과 세계의 운명이 신화적인 틀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예측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이건 내가 멋대로 요약한 게 아니라 결론 장에서 저자 본인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기본 전제를 적어놓은 걸 옮긴 내용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피터슨에게 인간의 역사는 (기독교와 연금술, 각종 신비주의, 전통신화 등이 뒤섞인) 신화고 생물학·심리학은 그걸 보여주는 학문이다!

4) 상당히 자기식대로 변형된, 또 신화학적으로 해석한 버전이긴 하지만 기독교는 피터슨에게 엄청 중요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20세기 후반부터 극우파로 급진화한 미국 복음주의자들·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속화(교회의 쇠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아마 그것이 그의 주장이 현대적 학문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무척 괴상한 시대착오적인 내용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북미의 다양한 우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일 수도 있다.물론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들은 기독교 정통파에서 볼 때 거의 신비주의·이단 급이지만, 어쨌든 반종교 세속주의·리버럴의 융성에 대한 적대감은 공유할 수 있으니까.


4. 요약하자. 조던 피터슨이 20년 전 출간한 <의미의 지도>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인간관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적' 심리학과는 상당히 다른, 신화와 종교적 사유에 기초한 거의 신비주의적 상징질서에 기초해 있다. 사상의 역사에서 보자면, 피터슨 식의 상징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주로 유행한 반공산주의 계열 정치신학과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신화학적 감성이 섞여 만들어진 무척 흥미로운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21세기에 등장했다는 거대한 시대착오만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대략 한 세기 혹은 반 세기 정도 일찍 나왔다면 피터슨의 책은 해당 분야에서 몇십 년 정도는 읽혔을 가능성이 있다. 바꿔 말하면 나는 <의미의 지도>를 들면서 피터슨이 진지한 의미에서의 사상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책을 안 읽었거나 현대 학문·지식의 역사를 통채로 부정하는, 지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피터슨의 신화적·신비적인 세계관을 고려하면, 남성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교육제도, PC나 여성주의를 비난하는 피터슨의 논리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에 광신적인 극우들이 자리잡는 상황보다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보수주의가 주를 점하는 편이 모두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피터슨이 (꼭 신념어린 우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러 독자들에게 진지하고 신뢰할만한 사상가이자 보수의 새로운 지성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진보·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런 비합리적이고 거의 신비주의에 가까운 저자가 젊은 보수의 새로운 우상이 되는 걸 무척 기뻐할 것이다--자신들의 잠재적인 적이 반지성주의의 오물덩어리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게 어찌 기쁘지 않겠나? 그러나 나는 광신과 비합리성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얻는 게 단순히 보수의 파멸이 지속되는 결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위험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전망하기에, 그리고 미국에서 극우 복음주의의 성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가 똑똑히 볼 수 있기에 그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피터슨의 독자·수용자들이 걱정된다. 이미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구매한 독자라면, 어쨌든 자기계발서에서 뭐든 건질 말이 없진 않을테니까, 적절히 걸러서 읽는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설령 피터슨의 안티페미니즘적 언어가 유혹적으로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한국의 페미니즘 비판자·우파를 미신과 광신, 비합리성으로 이끄는 독이 든 사과라는 점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터슨을 사상가이자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조금 세련된 버전의 종말론과 신비주의라는 돼지의 발목에 진주를 채워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 태도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 자신의 사상과 지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까지도 불러온다는 점에서 정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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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선비 2018.11.13 20:54 신고 Modify/Delete Reply

    뭐 애초에 심리학과 저런 작업 자체가 연결이 안 되어 있어서 저런 거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서술된 내용 중 가장 황당한 주장은 생물학과 신화학의 연결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저런 이상한 가교로 심리학과 신화학을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람이 내적 갈등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 그냥 이러저러한 이유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그걸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기엔 인생이 허무해지니 이래저래 정당화하고 싶어하는 거죠. 근데 내적 연결고리는 없다보니 저런 괴랄한 주장까지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BeGray 2018.12.05 15:29 신고 Modify/Delete

      사실 19세기 말 정도부터 개신교 우파 내러티브들을 파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ㅋㅋㅋ

  2. 바보개 2018.11.14 16:20 Modify/Delete Reply


    조던 피터슨의 < 12가지 인생의 규칙 >을 읽었습니다

    굉장히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는 선하다. 사람들은 종교에 따라서 살아야한다.
    1.종교는 절대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교조적인 요소를 가져야한다.(삶에서 목표의 확실성을 주기 위해서)(독선)
    2.전체주의(소련 나치독일)은 자기목표에 의심이 없어서 망했다.(독선적이어서)

    모순입니다.
    그리고 설령 절대적인 진리가 있어도 절대적인 진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종교가 알고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리인가요?
    선함? 그렇다면 무엇이 선입니까?
    정의할 수 없어도 선함을 그냥 알수있나요?
    그렇다면 왜 낙태와 관련해 도덕적인 논쟁이 끝나지 않나요?

    A.신은 전제조건이다.(어떤 원인이 있어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를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B.종교에서 하는 윤리적 주장은 신으로부터 왔다.(종교에서 말하는 윤리적 주장은 참이기 때문에 검증할 필요가 없고 사람들은 그냥 따라야한다.)
    설령A가 참이라고 해도 그로부터 B가 참임을 추론 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만 보아도 구약성경에 동성애자는 돌로 처 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부도덕한 주장입니다.


    1.당신이 선한행동을 한다면 당신이 "나는 무신론자이다."라고 주장해도 당신은 종교가 있는 것이다.

    신이라서 선한가? 선하기에 신인가? 에우튀프론의 문제입니다. 신과 선은 불가분하다고 주장한다면 제게는 그것은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늘여쓴것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용어의 정의를 명확히하라는 스스로의 지침을 어기고 있습니다
    . 종교에 대한 정의는 나오지 않고 예는 나오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종교라는 개념의 외연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용법과 어긋나게 용어를 사용한다면 단어의 정의를 명시해야합니다.
    저자는 최소한 기독교는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념의 외연을 제한하지 않으면 그 개념은 무의미합니다.
    저자가 거의 종교를 선함 정도로 정의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자는 고통의 감소를 선함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30만년 전 인류도 종교가 이미 있었습니다.
    기독교나 기타 종교가 생기기도 전인데 말입니다.

    저자는 종교가 없으면 사람들은 악행(살인 강도 마약 중독 등)에 빠져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없는 사회라는 책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적은 스웨덴이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 미국보다 비만 학업성취 범죄율 경제적 평등이 더 좋은 수치를 보입니다.

    저자는 스웨덴 사람들이 선행을 하기에 종교가 있다고 주장할 수 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스웨덴에 비해 기독교신자가 많고 스스로 종교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은 미국이 통계수치에서 뒤떨어지는지 설명해야합니다.
    미국인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진정한 신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생각인가요? 아니면 종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도덕적 선함은 별개인가요? 그렇다면 뭐하러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건가요?


    2. 문화와 철학 도덕이 있다면 종교가 이미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다시 종교를 믿으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행을 하세요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훨씬 구체적인데
    위의 1.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3. 위계질서는 생물에게 3억년이상 오래되었다. 위계질서가 억압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따라야한다.

    자연/당위 오류입니다.
    어떤것이 있다고 도덕적으로 정당한것은 아닙니다. 자연에는 죽음이 있으니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주장은 악합니다.
    연구에서 세로토닌 수치로 몸집이 비슷한 가재들은 누가 둥지를 차지할지 결정한다고 합니다
    가재연구에서 둥지를 얻는 싸움에서 패배한 가재에게 세로토닌을 투입했을 때 가재가 더 용맹하게 싸워서 둥지를 차지했다고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둥지를 얻는 싸움에서 패배한 가재와 더 몸집이 작고 약한 가재를 싸움 붙였습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낮은 둥지를 얻는 싸움에서 패배한 가재 약한 가재와 싸워서 이기자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갔습니다.
    1.세로토닌 높은 가재---- ->승리(저자 주장)
    2.승리----->세로토닌 상승
    제3 의 요소가 있거나 인과관계가 저자의 주장보다는 복잡합니다.

    수렵채취민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분배를 하는데 왜 이들은 전통이 될 수 없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4. 겉에서 볼때만 세상이 악하지(살인 전쟁 등) 속에서는 선의 조각이 있다.

    신정론입니다. 악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상에 인간이 저지른 악이 있지만 사람은 세상을 더 선하게 바꿀 수 있다고 (최소한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저자의 주장이 악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로 밖에 안보입니다. 그렇게 종교가 절대적인 진리를 가진다라면 저자가 종교로 생각하는 기독교에서 어떻게 개신교와 카톨릭간에 전쟁이 있을 수 있나요?
    그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할겁니까?

    또 저자는 최상의 가치체계가 내적으로 모순되어도 좋다고 주장합니다. 모순율을 저버린다면 대화상대자는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A이고 그리고 not A야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5.영국 관습법에 알아야할 중요한 규칙들이 모두 있다

    제가 알기로 영국 관습법에는 해수면이 상승해서 살던 곳이 잠긴 사람들의 거처를 누가 어디에서 어느정도로 제공해야하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지구는 전지구적인 빙하기와 해수면 상승을 둘다 겪었기에 영국이나 미국에는 빙하기나 해수면 상승을 겪지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주거와 토지의 이용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까?


  3. 바보개 2018.11.14 17:30 Modify/Delete Reply

    조던 피터슨 책에서문제는
    1. 종교가 절대적인 진리를 가진다고 주장하지만 무엇이 절대적인 진리인지는 명시하지 않음
    2.일상적 용법과 다르게 종교를 쓰면서도 명시하지 않음
    종교=선
    3.모순율의 무시
    4.자연/당위 오류
    물론 도둑이 진짜 훔쳐야 악하고 (돈이든 금고를 가지고가거나 남의 통장에 있는 돈을 자기 통장으로 옮기는 등)범죄소설은 악하다고 부를 수 없다는 점에서 당위가 자연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생물학에서 도덕으로 바로갈 수 있는것은 거의 없습니다.

  4. 반갑습니다 2018.12.11 17:01 Modify/Delete Reply

    댓글과 비평에는 신앙과 무신론의 차이를 두지않는군요.
    저자의 논지는 그게 아닐텐데... 기독적 세계관이 현대 서구사회 도덕의 기초가 되었다는게 주 논지입니다.
    그게 전부라는 것도 아니고 수정해선 안될 사항이라는 것도 아닌데.
    극히 일부를 입맛대로 꺼내와서 내러티브로 규정하고 지적하는군요.

    • BeGray 2018.12.12 00:34 신고 Modify/Delete

      바보개 님의 댓글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건 제가 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본문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피터슨 저작의 주 논지를 그저 "기독적 세계관이 현대 서구사회 도덕의 기초가 되었다"고 요약하는 건 심각하게 문제적일 것 같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서구 사상에서 넘치도록 많은데, 그럼 왜 피터슨이 자신의 논리를 따로 만들어가는가를 전혀 설명할 수 없죠.

      기독교 관련 논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바로 붙잡을 수 있는 감각이지만 애초에 피터슨이 생각하는 기독교가 정확히 뭐인지부터 물어야죠--당연히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단일한 종파인 적이 없었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반갑습니다 님께서 종교와 관련된 논쟁을 과연 충분히 이해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계신지에 다소 의구심이 듭니다. 본인이 디펜스하려는 저자를 지극히 무해한 평범한 논지로 재구성한 다음 그에 대한 비판이 다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건 지적으로 정확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전략입니다.

  5. 반갑습니다 2018.12.13 07:01 Modify/Delete Reply

    당신이 오펜스하려는 저자를 지극히 유해한 논지로 재구성한 다음 그에 대한 비난을 하고있는건 아니구요?

    • BeGray 2018.12.13 23:36 신고 Modify/Delete

      저는 제가 분석한 저술의 사고방식을 기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너무 한쪽 면만을 썼다고 주장하실 수는 있는데, 그럼 근거를 들어 반론해주시면 됩니다. 저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예의를 갖추었다는 전제 하에, 환영하는 사람이고요.

  6. 반갑습니다 2018.12.13 07:44 Modify/Delete Reply

    본인의 논리로 같은 형태로 답변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반세속주의 노선 또한 서구 사상에서 넘치도록 많이 관찰되는데, 그럼 왜 피터슨이 자신의 논리를 따로 만들어가는가를 전혀 설명할 수 없던가요? 본인의 비평 내용이 딱 위 내용이 아니던가요?

    제가 종교와 관련된 논쟁을 시작한 적은 없는데.. 무신앙과 무신론의 차이를 언급하고 시작하자는 것, 세부를 맥락으로 치환하지 말자는 것(심지어 인용과 해석이 아니라 주관이라고 스스로 밝힌 해석뿐인 글)에서.

    갑자기 피터슨에게 정확히 기독교는 무엇이냐... 당신에게 기독교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10년된 라디오 방송에나 들릴 법한 당신에게 별밤이란? 같은 질문이 튀어나오고, 한술 더 떠 기독교는 단일 종파였던적이 없다? 난데없이 종교 논쟁으로 우회하시네요.

    대체 뭘 말하고 싶으신건지.. 꼬릿말에 드러나는겁니까? 저자를 반지성주의의 오물덩어리로 표현하고 싶은 속내?

    • BeGray 2018.12.13 23:47 신고 Modify/Delete

      답변해드리죠.

      1) 무슨 헛소립니까. 피터슨이 자신의 논리를 어떻게 따로 만드는지를 설명한 게 이 포스팅에서 하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댓글에서 제기한 반론의 요점은 반갑습니다 님의 식으로 뭉뚱그려서 기독교=서구도덕의 기초 라고 해버리면 다른 반세속주의 혹은 기독교 도덕 기원론이랑 전혀 변별력이 안 생긴다는 거고요.

      제 문장이 반갑습니다 님께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본인께서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다른 필자들에게 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제 블로그는 어쩔 수 없이 비교적 좁은 범위의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고, 반갑습니다 님께서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2) 제 생각에 반갑습니다 님께서는 본인이 위에서 던진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만약 말씀하신 대로 피터슨의 주 논지가 "기독적 세계관이 현대 서구사회 도덕의 기초가 되었다"는 거라면, 그때 기독교적 세계관이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의미의 지도>의 경우엔 대놓고 그노시스적인, 그러니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기독교와는 매우 다른 의미에서의 '기독교'와 '예수'를 꺼내는데--짚어야 그 진술이 무슨 의미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그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짚고 평가하는 게 가능해지니까요.

      제 생각에 제가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반갑습니다 님의 언어구사력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높이 평가하고 반문을 드린 데 있는 거 같습니다. 가령 "기독교란 무엇인가"의 경우 "반갑습니다 님께 기독교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피터슨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반갑습니다 님께서 어떻게 해석하시는지"를 질문한 건데, 그냥 애초에 문장을 못 읽으니까 10년 된 라디오니 뭐니 하는 헛소리가 나오는 거잖아요. 제가 무슨 엄청나게 전문적인 용어를 쓰거나 한 것도 아니고...;;

      저는 비판자들을 포함해서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을 나름대로 성의있게 맞아드리는 편인데, 의지의 문제에서든 노력의 문제에서든 의사소통 자체가 조금 힘든 분을 만나면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큰 노력을 기울이게 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반갑습니다 님의 다음 댓글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제가 "아 이 분과 대화를 해봐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니 지나가시면 되겠습니다.

  7. 반갑습니다 2018.12.15 18:27 Modify/Delete Reply

    1) 저는 그 반박을 이해했습니다. 지금 제 반박을 전혀 이해를 못하시네요.
    당신은 피터슨이 자신의 논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기독교에 대한 그노시스적 해석 등을 기초로 설명하고있죠.
    '기독교가 서구 도덕가치를 어떻게 이루는가' 의 출발점으로도 자신의 논리를 따로 충분히 만들어가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2) 피터슨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그 영향이 어떤 것인지 제가 이해한 바를 단적으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구절이 있죠? 또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다는 구절도 있죠. 서구사회의 '평등과 자유'라는 가치는 저 성경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평등과 자유'가 단순히 성경구절의 평등'이란 단어에서 비롯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봅시다.

    당신이 위의 개념을 전혀 모르는 오지의 원주민에게 학습적으로 사람은 다 '평등'하고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거야. 라고 가르치고 싶을 때, 어떻게 가르칠 건가요? 가르칠 수 있고 합의할 수 있어야 '평등'이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필요한 해석이 '신성'의 개념입니다. 절대적 '신성'을 필두로 모든 개인에게 침범해선 안될 '신성'을 부여하는겁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리며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 모든 개인에게 '신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기독교적 개념인겁니다.

    이런 식으로 아주 기초적인 입장이 생기는 겁니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자신의 논리가 생겨나는 것이죠.

    3) 당신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같은 소리를 한 이유는 포괄적 질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정리하려들며 되려 관점이 좁혀지게끔 하는 질문을 던진다는 겁니다.
    관점과 분류에 따라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도 다른 답변을 할 수 있는 질문이죠.

    • BeGray 2018.12.17 21:32 신고 Modify/Delete

      죄송하지만 좀 웃어도 됩니까?ㅎㅎㅎㅎ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반갑습니다 님께서는 저와의 대화보다는 그냥 기본적인 논리적 대화 훈련을 시키는 교육기관에서 적절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좀 더 유익해보입니다(그리고 그쪽이 저도 시간을 덜 낭비할 거 같습니다). 이게 무슨 멍청하고 쓸데없는 대화입니까?

      1과 3은 그냥 가치가 없는 궁색한 답변이고, 2는 피터슨에 대한 (적어도 <의미의 지도>에 대한) 해석이라면 그냥 오독이죠-_-; 피터슨의 기독교 해석의 중점에는 그런 평등관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기독교의 특정한 분파의 역사에서 무척 넓게 공유되는 내용인데, 당연히 피터슨은 그 루트가 아닙니다.

      이쯤되면 반갑습니다 님의 피터슨 이해가 실제 피터슨과 얼마나 합치하는 것일지부터 의심이 되기 시작합니다 ㅋ 확실한 건 동일한 텍스트를 읽어도 저와 반갑습니다 님의 해석은 매우 다를 거고, 그래서 두 사람은 대화하기 상당히 어려울 거라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반갑습니다 님과 합리적으로 학적인 주제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은데요, 그러한 영광은 저 말고 다른 분께 나눠주시면 무척 보람찰 것 같습니다 :)

    • 궁금한점 2019.01.01 03:22 Modify/Delete

      두 분 말씀에서 다른걸 다 떠나서 반갑습니다님 이 댓글의 2)는 피터슨이 스스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워딩 자체가 거의 그대로거나 아니면, 피터슨의 평소 주장과 동일하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의미의 지도'에서는 그런 내용이 읽히기 어렵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비그레이님 댓글에 따르면 의미의 지도를 쓸 때의 피터슨에게서는 2)와 같은 해석이 '오독'일 뿐이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피터슨 자신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 BeGray 2019.01.06 14:23 신고 Modify/Delete

      궁금한점 님//

      2번의 문구는 사실 그 자체로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여러 텍스트에서는) 상투어에 가까운 말이다보니 그게 피터슨의 핵심적인 논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신성에서 출발해서 피터슨과 상당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그걸 확인하려면 저도 피터슨의 다른 논문들부터 뒤져보면서 정리를 해야할텐데 이 사람이 제 관심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저자가 아니다보니 그런 작업을 하게 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네요^^;;

  8. hhk 2018.12.18 04:54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던 피터슨의 최근 저서는 읽은 적이 없어서 그의 책에 대해서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조던 피터슨은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의미의, 그러니까 경험적 과학에 기초해서 연구하는 그런 심리학자가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를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일단 조던 피터슨은 최근까지 심리학 톱 저널에 지속적으로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작년 (2017)에도 political psychology라는 저널 (정치심리학 관련 톱 저널)에 논문을 싣기도 했고요. 지난 20년간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Journal of personality, Psychological review와 같은 저명한 저널에 지속적으로 논문을 실어온, '경험적 과학에 기초하여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맞습니다. 이런 저널에서 비과학적인 논문을 싣지도 않고요. 연구 실적이 좋았기에 하버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하기도 했구요. (물론 테뉴어까지 가진 못했지만, 하버드 대학교는 테뉴어를 잘 안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피터슨의 이론에 대해 비판하신 부분에 대해 저도 상당 부분 동의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접근 들이 아에 경험적인 심리학 혹은 넓게 말해서 사회과학에서 아에 거부되는 방식은 또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Jeff Goodwin 같은 사회심리학자도 Freud의 이론을 가져와서 톱저널에 논문을 낸 적도 있구요.

    • BeGray 2018.12.18 21:57 신고 Modify/Delete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1. 그의 심리학적 연구의 학술적 가치에 대해선 지적하신 바와 함께 그에 대한 반박--그러니까 그가 최근에 내놓은 연구가 과연 괜찮은 연구인가--을 동시에 접했는데, 저는 해당 필드를 판단할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은 그의 심리학적 연구의 퀄리티와 별개로, <의미의 지도>는 경험적 과학자로서 쓴 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피터슨이 심리학 학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수행하는 작업이 그의 전체적인 세계관, 그러니까 비의적인 세계관의 일부 정도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교수직도 갖고 있지만 그걸 베이스로 창조과학적 주장을 하는 사람이랑 비슷한?).

      2. 융이 피터슨의 이론에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제가 사회심리학 필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다만 학술적 작업에 프로이트나 융을 가져다가 쓴다는 것과 융의 신화학적 세계구상을 가져다 쓰는 건 매우 다른 것 같은데요--저는 당연히 후자의 측면에서 피터슨을 비판합니다--말씀하신 사회과학/사회심리학의 정신분석 차용은 한 가지 확인을 해봐야할 게, 설마 신화적 구상 자체를 틀로 '세계의 원리'에 대한 이론을 설정하는 게 허용된다는 뜻인가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거라면 사회심리학 필드가 제게는 매우 놀라운 영역일 듯 싶고, 그게 아니라면 비판하신 지점이 애초에 제 글이 말하는 바와는 다를 듯 합니다.

    • hkk 2018.12.19 02:15 Modify/Delete

      음..사실 제가 의미의 지도를 읽지 않아서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사회학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라 융이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모르구요. 다만 이 글에서 보이는 '신화학적' 세계 구상이 과연 경험적 사회과학과 compatible할수 있는가 라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것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 올리신 요약본을 보면 조던 피터슨의 사회 이론이 그다지 발전된 혹은 유니크한 무언가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중에 유행하던 사회학적 사조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구요 (예를 들어 에드워드 쉴즈). 본인이 anthropology나 sociology를 공부하지 않은 비전공자라서 그런 이유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접근이 사회세계의 패턴들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이러한 접근도 괜찮은 사회학 이론이 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좀 결이나 질이 많이 다르지만, 매리 더글러스나 제프리 알렉산더 같은 문화인류학/문화사회학자들의 이야기랑 비슷하게 들리는 부분들도 꽤 있는거 같구요.

      그러니까 피터슨의 이론(? 혹은 세계관?)의 효용은 이 이론으로부터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 중범위의 이론들을 도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이론을 생산함에 있어서 얼마나 original한 insights를 제공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습니다. 뭐 둘 다 별로 없을거 같긴 하지만...

      미국 사회과학계가 생각보다 되게 합리적인 곳이라서, 좋은 저널에 논문을 쓰는 학자는 좋은 학자일 확률이 높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렇게 나쁜 가정은 아닌거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낀 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던 피터슨을 잘 모르지만 그가 톱저널에 지속적으로 논문을 썻다는 것이,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점이 그가 경험적 심리학자로써 역량이 있다는 추정을 해도 그것이 그렇게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 책 또한 '좋은 심리학자가 쓴 좋은 심리학 저서'라고 추정하기에는 말씀하신 대로 여러 무리가 따르는거 같아요. 뭐, 좋은 책이었으면 루틀리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지 않았겠죠.

    • BeGray 2018.12.20 16:37 신고 Modify/Delete

      아,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저런 논의가 많이 유행한 건 사실이니 그 시기 사회학에서 저런 틀을 가져온다는 것 자체는 저도 딱히 의아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사회(과)학에서 저런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가 조금 궁금했습니다. 상세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9. 맨슨의 법칙 2019.01.08 22:29 Modify/Delete Reply

    저는 조던 선생님의 12가지 인생의 규칙에서 큰 감동을 느끼며 그의 저서를 좀더 탐구하고자 하던와중에 대한민국에도 이렇게 분석력 뛰어난 포스트를 먼저 볼수있게 됨에 감탄하며 (사실 한국분중에 이렇게 깊게 탐구하고 글을 정리해주실분은 없을줄알았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써봅니다.

    저는 무신론자로써 살아왔지만 그의 강의와 철학, 깊은 사고에 무척이나 감동을 받고 실제로도 현제의 결정과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끼치고 의미를 찾아가는 인생을 사려 노력하고있으나,
    그의 책에 전반적으로 나와있던 기독교철학의 비유, 비과학적 설명에 대해 조금 실망을 느꼈던것이 사실입니다. 무신론자인 샘헤리슨과의 토론에서도 알쏭달쏭한 미스테리하게 '서구사회의 근본을 이해하려면 기독교적 텍스트의 의미를 좀더 깊게 찾아보아야한다' 라는 논리의 답정너식의 계속되는 답변과 논리에... 다른 90%의 강연, 연구와 의미에 대한 해석등등 모두 동감하고 존경하고 뛰어나다고 느꼈으나 그 뿌리를둔 근본에 대해 의구심이 들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말에의해 어느정도 설득..되었다...라기보다는 실험적인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평생 다니지도 않던 교회를 다녀보고 미국인 선교사들과의 깊은 토론으로 신앙심의 모티브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이해해보려 노력하고있는.. 중이었습니다.

    다만 비그레이 선생님의 텍스트 내용에서 궁금한게 생겼습니다만,
    PC나 여성주의를 비난하는 피터슨의 논리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라는 문장에서

    혹시 그 논리라는것이 기독교나 신화적 고대에 뿌리를둔 오래된 이야기, 현대의 관점에서 이해하기힘든 고대의 논리들(첩을두고, 자기의 아들을 죽이는 신화 이야기, 예수가 3일만에 부활하거나 허무맹랑한 비과학적 신화들) 의 연장선상에 확대되어서 이어진다.. 라고 해석해도 되는부분일런지요? 그러니까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를 토대로 아직까지도 그 구식의 논리로 현시대를 관찰하고 적용하여야한다는 고집처럼요.

    혹시나 틀렸다면 그부분에서 자세하게 알려주시는걸 부탁드려도 될까요?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선생님처럼 만큼이 아니고 필력이 부족하여 내용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이처럼 양질의 좋은글들 들이 저의 견문을 넓혀주는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느끼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BeGray 2019.01.12 15:28 신고 Modify/Delete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고대의 논리로부터 곧 PC나 여성주의 비판이 이어진다기보다는, 복잡한 이야기를 무리하게 간추려 말씀드린다면,

      1)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고대 신화 / (매우 보수적인 버전의) 기독교 등을 가져오면서 자유주의/세속화를 비판하는 보수적이고 비의적인 지적 흐름이 있었고

      2) 적어도 <의미의 지도>에서 피터슨은 그 전통에 입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제가 피터슨의 다른 텍스트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봐서 그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 전통에서 보면 PC나 여성주의도 과거의 전통적인 우주적 질서를 뒤흔드는 자유주의/세속화의 산물로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니

      3) 피터슨의 PC/여성주의 비판의 지적 기원은 결국 그러한 신비주의적 보수주의의 맥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겠냐,

      하는 게 저의 가정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지를 엄밀하게 보려면 엄청나게 많은 문헌을 봐야하는데 (당연하지만 이건 외국어 학술문헌을 폭넓게 읽을 수 있는 연구자를 전제로 합니다) 그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제 프로젝트는 아니다보니...ㅠㅠ;;

      부족하지만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 ㅇㅇㅇ 2019.01.12 14:49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이십니다 하지만 너무 조던피터슨교수의 말을 이분법적으로 좌파 우파 나눠서 생각하시는군요 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한다고 경고하는게 조던 피터슨교수인데요. 개인의 삶에 대해서 말하죠

    • BeGray 2019.01.12 15:30 신고 Modify/Delete

      일단 저는 좌우파 스탠스 구별이 시대마다 다를 뿐더러 그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게 많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피터슨의 경우는... ㅎㅎ 사실 애초에 좌우파 상당수가 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서 그 말만 갖고 그를 평가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데올로기"란 말의 주요한 용법 중 하나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허위의식"을 비판하면서 쓴 거니까, 좌파들조차도 "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한다"라고 말해온 셈입니다(...).

  11. 123 2019.02.23 21:06 Modify/Delete Reply

    책을 읽으며 제가 느꼈던 절망적인 당혹감과 정확히 일치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BeGray 2019.03.03 21:22 신고 Modify/Delete

      저는 피터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의 지적 토대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와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분이 있으시다는 건 다행인 일입니다^^;;

  12. 의미는 아냐 2019.03.09 11:43 Modify/Delete Reply

    -바꿔 말하면 나는 <의미의 지도>를 들면서 피터슨이 진지한 의미에서의 사상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책을 안 읽었거나 현대 학문·지식의 역사를 통채로 부정하는, 지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게 이글의 핵심이네요 ㅎㅎ
    재밌는게...댓글에 '조던피터슨을 좋아하는사람이 나름의 이유가있다고 생각하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고 하셨는데 너무 비난 하시는데요?
    ㅎㅎ본인이 전공자도 아니시라면서, 하버드와 토론토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시는(가르치셨던)분을 그럴듯하게 분석하고 비평해보실려고 한것 같은데..뭐 용기는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요.
    이미 까기로 결론 내리고 그 위에 나름의 논지를 세우신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의미의 지도'를 조던 피터슨이 어느 기간에 걸쳐 어떻게 쓰신 책인지 좀 알아보시고 , 덧붙여 학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시고 비평하시길 바랍니다.
    아는 지식을 그럴듯하게 글로 엮는다고 다 좋은 글은 아닙니다. 아마추어적으로 비평을 하시려면 '나는 그의 글에 감동받지 못했다'정도로 끝내시는게 맞는것 같고요. 읽는 이에게 좀 더 전문적인 대접을 바라신다면 적어도 비평하려는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셔야 될것 같습니다. 잘 모르면서 허세만 가득한 글로 보입니다.



    • BeGray 2019.03.10 20:21 신고 Modify/Delete

      죄송하지만 직접 인용하신 문장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 듯 싶습니다. 저는 피터슨의 심리학적 주장을 신뢰하는 사람들 자체를 비난하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저 <의미의 지도> 텍스트를 놓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해당 텍스트가 어떤 점에서 문제적인지 본 포스팅에서 이야기를 한 거고요. 피터슨을 옹호하고 좋아하는 마음이야 이해합니다만, 본인이 하는 주장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하고 댓글을 쓰시면 이처럼 한번에 면박당할 댓글을 쓰실 위험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의미는 아냐" 님보다는 좀 더 예의를 갖춘 사람이기 때문에, 안녕히 가시라는 말씀도 덧붙여 드리지요 ㅎㅎ

  13. 안녕하세요 2019.04.09 05:00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종교학을 공부하는 학부생인데 우연히 피터슨과 관련된 글로 이 블로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블로글에 좋은 글이 참 많아서 각잡고 정독하며 긴김 밤을 달래고 있습니다. 피터슨과 관련된 글이 가장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최근까지 댓글도 달린 것 같은데, 저도 편승해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부분에 제 의견을 얹어봅니다...^^

    1. 사실 선생님께서도 잘 알고 계신 부분 같지만 저는 피터슨의 논지는 기존의 학계에서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주장이 아니며, 그것이 2018년에 인기를 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의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신화학의 계보에 서 있는데, 그가 주요하게 인용하는 엘리아데와 노스롭 프라이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저작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 60-80년대 후반까지 조지프 캠벨이 누린 대중적 인기를 고려한다면 이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캠브리지의 신화-의례 학파에서 시작되어서 융을 경유한 정신분석학에, 그 정점에 있는 엘리아데의 신화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캠벨과 피터슨이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이며 대중들을 사로잡는 지점입니다. 피터슨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은 분명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이런식의 신화학이 하나의 장르로서 북미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버트 와이징어는 프레이저와 신화-의례 학파가 또 하나의 현대의 ‘신화’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의 지적 유산은 지금의 대중들의 (지적)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2. 신비주의(mysticism)는 놀랍게도 종교학에서 학술적 분석도구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부 강의에 신비주의라는 수업도 있지요. 물론 선생님이 신비주의를 일종의 비난적 수사로 사용하신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진지하고 보수적인 신비주의자들도 학계에 남아있습니다만, 신비주의와 영성과 같은 개념은 특정 인물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개념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언급하신 피터슨에 대한 많은 부분들은 전형적인 신비주의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언술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비의 전통 - 영지주의 - 카발라 - 연금술 - ... -’으로 이어지는 신비주의적 계보에 대한 피터슨의 애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서 기독교 철학의 근본적인 뿌리를 영지주의로 보는 것은 전혀 낯선 관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이를 낯설게 보는 선생님의 관점이 더 낯설어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신비주의자들이 기독교를 이해해온 전형적인 관점입니다. 도마 복음과 유대 신비가로서 예수의 해석에 대한 대중적 인기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요. 따라서 피터슨을 ‘유사기독교’ 혹은 ‘기독교 변종’으로 칭하신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연히 선생님께서 특정 기독교 종파를 ‘정통 기독교’ 혹은 ‘기독교 원형’으로 규정하시는 편견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설사 피터슨의 기독교 이해가 다소 예외적이더라도 유사기독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그의 주장은 매우 전형적이기에 변종이라는 말은 상당히 부적절해보이네요.
    신비주의가 기본적으로 19세기의 보편주의적 욕망 속에서 탄생된 개념이기에 피터슨이 기독교와 신화학, 연금술 등을 결합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피터슨이 어디까지 참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엘리아데만 보더라도 매우 친숙한 주제들이죠.

    3. 다음으로는 제가 궁금한 점인데, 저는 피터슨이 종교심리학자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종교심리학 과목은 놀랍게도 심리학과가 아니라 종교학과에 개설되어 있는데, 실러버스를 보면 선생님께서 탐탁치 않아하실 프로이트, 융, 그리고 정신분석학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한편으로는 뇌과학으로 향해 신 헬멧과 같은 혼종을 만들어냈다면,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융과 프로이트에 영감을 받은 정신분석학적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여기서 역시 융의 이론을 진지하게 인용한다기보다는 일종에 방법론적 영감으로서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요. 물론 더 이상 종교학 자체에서 종교심리학 이론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저 역시 종교심리학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인상 이상의 주장은 할 수는 없겠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글에서 약간 놀란 부분은 일련의 정신분석학적 주장들을 모두 ‘유사과학’ 취급하며, 이들을 인용하는 것 자체로 학술적 자격이 박탈된다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학부생활을 하며 정신분석학을 진지하게 인용하거나, 연구에 활용하는 교수님과 저작을 많이 보았는데, 이분들은 모두 학계의 경향에 뒤쳐져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저는 사실 정신분석학이 문학 연구에서 정도는 의의가 있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문학 전공자인 선생님마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신분석학적 논의 전체를 이제 철지난 논의로 봐도 되는가 하는 판단기준에서 의문이 듭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혹여 시간이 되신다면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저는 선생님이 피터슨을 ‘흥미로운 변종’으로 규정하신 데는 반대하지만, 피터슨을 진지하게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에는 당연히 동의합니다. 저 역시 이런 신비주의적 주장에 질릴만큼 질렸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지 변종 혹은 낯선 것으로 피터슨을 규정하는 것은 피터슨과 그 대중적 인기로 인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써놓고 보니 선생님의 의견과 큰 차이가 없네요. 선생님의 다른 글을 보니 공부를 처음 하는 학부생들이 여러 실수에 빠진다고 하셨던데, 지적으로 탁월한 성취에 계신 분께 하나라도 아는 척을 해보고 싶은 것도 그 현상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아직 부족한 학부생의 모자란 글이라 생각하시고, 짧게나마 냉철한 코멘트 남겨주시며 감사하겠습니다.

    • BeGray 2019.04.26 16:35 신고 Modify/Delete

      답변 너무 늦어져서 죄송하고, 상세한 코멘트 감사합니다! :)

      2. 아, 물론 특정한 인물&사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신비주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피터슨처럼 그것이 곧바로 '세계/사회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철저히 비판적인 스탠스고, 그 지점에서는 안녕하세요 님과 제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터슨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종교학은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전혀 아니므로!) 설명해주신 내용이 더 타당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통과 이단의 문제는 저는 그것들이 역사적인 대상으로서 좀 더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여기서 더 꺼낼 필요는 없겠지요.

      3. 제가 '경험적 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에 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일련의 정신분석학적 주장들을 모두 ‘유사과학’ 취급하며, 이들을 인용하는 것 자체로 학술적 자격이 박탈된다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해석될만큼 강한 주장은 적어도 이 포스팅에서는 개진한 바가 없는 것 같은데요, 혹시 어떤 대목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학연구 혹은 문학연구자들이 많이 참조하는 특정한 '이론' 필드에서 정신분석학을 참조하는 글들이 여전히 종종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만, 아주 과감한 저자들을 제외하면 정신분석학을 '과학'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당연하지만 저는 모든 학문이 곧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 자신도 '과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 인문사회분과의 '과학화' 자체가 19-20세기에 나타난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게 제 시각이니까요). 다만 문학분과는 서로 다른 외국어문학들을 포함해 너무 크기 때문에 제가 인접하지 않은 다른 분과들의 연구경향까지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4. 이런 코멘트는 언제든 감사한 마음으로 환영입니다! 제가 너무 늦게 답변드리는 게 죄송할 따름이네요 ㅠㅠ

  14. 아가베 2019.05.14 13:42 Modify/Delete Reply

    모든 학문이 과학이 아니라는 코멘트가 인상 깊네요.

    앎의 JTB에서 결국 마지막은 Believe니까요

    • BeGray 2019.05.22 02:47 신고 Modify/Delete

      ㅎㅎ (자연과학에 가까운) '과학'도 있고, 문헌학이나 역사적 접근처럼 완전한 과학화가 되기 힘든 영역들도 있고, '믿음'의 영역도 있다고 할 때, 여러 인문사회 분과는 '과학'과 '믿음'(혹은 '비학문') 사이의 가운뎃길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을 쳐왔다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15. 공대생 2019.05.30 00:18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조던 피터슨의 영상을 찾아보며 감명깊게 읽고, 이후 의미의 지도 책을 검색해 보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쓰신 글을 읽고 다소 반감이 든 것은 사실이나 이렇게 사고하는 방식이 제 전공이 아니기에 우선 댓글들까지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인이지만 과학을 전공하는 입장이다보니 기존의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사고방식보다는 보다 열린 기준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쉽지 않은 내용이 많네요 :)

    하하 그래도 많은 분들이 사고하고 또 뜻하는 바를 서술해주시는 것 같아서 우선 경청하였습니다.

    블로그는 처음 들어와서 아직 잘 모르지만 좀 더 둘러보고 생각하는 바가 명확해지면 그때 개인적인 의견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많이 배웠고 좀 더 배우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eGray 2019.06.01 01:22 신고 Modify/Delete

      ㅎㅎ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저와 의견이 달라도 물론 괜찮으니, 혹시 대화하고 싶으신 바 있으시면--물론 제가 답변이 꽤 늦는 편이지만--언제든 코멘트 남겨주세요!

  16. ㅇㄹㅇ 2019.06.22 05:56 Modify/Delete Reply

    이것보다 더끔찍해질수 있습니다.히틀러는 반지성주의자였지만 과학의 탈을 쓰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켰습니다.그는 지성인들을 혐오하고 음모론을 펴트렸지만 단하나 그가 그시절 과학한테\
    신세진게 있다면 우생학뿐이었죠< 스웨덴에서 지적장애인 거세를 의무화 시킨것처럼 그 시절 우생학은 싸이언스였습니다>피터슨을 추종하는게 피쇼를 추종하는것보단 나은것처럼 그도 꽤나 쓸만한
    사람입니다.제가 왜이런 말을 하냐면 전 개인적으로 그런 충동을 많이 느꼈습니다. 히틀러같은
    절대적 지도자한테 제무든걸 넘기고 자유의지조차 반납하고 수많은 군중속에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망상을 할때면 제가슴이 뛰고 제가 살아난는 느낌을 얻었습니다.하지만 피터슨이 저의 이런 광증을 약간이나마 해소 시켜주었다는점에서 전 그한테 꽤나 큰 빛을 지은 셈있니다. 피터슨을 추종하는
    자들이 다른 극우보다는 온건한게 그나마 안도감이 드는 점일것입니다.

    • BeGray 2019.06.25 23:43 신고 Modify/Delete

      ㅇㄹㅇ 님께 피터슨이 그런 용도로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용도는 기꺼이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17. ㅇㅇ 2019.07.10 12:06 Modify/Delete Reply

    <의미의 지도>는 말하자면 썰 푸는 책에 가까운 느낌인데, 당연히 그 책 자체가 학문적으로 진지한 책이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진지한 대중서'라고 하기도 민망한, 말 그대로 썰 푸는 수준의 책일 뿐이고요. 전체적으로 BeGray님의 의견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의미의 지도> 내용만으로 피터슨을 사이비 심리학자라고 매도하는 건 하버드 테뉴어도 떨어진 어쩌고 하는 인신공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런 류의 인신공격은 공격자에게도 별로 득이 될 게 없죠. 피터슨이 학자로서 성실하다고 하기 어려운 사람인 건 맞지만, 그건 음모론 수준의 썰풀이를 무비판적으로 늘어놓는 태도 탓이지 심리학자로서의 능력 부족 탓은 아닙니다. 그가 계량적인 심리학자로서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그냥 억측일 뿐이죠.

    쓰고보니 이 포스트 자체가 꽤 오래된 거라, 상당히 뒷북이긴 하네요.

    • BeGray 2019.07.12 16:56 신고 Modify/Delete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는 신비주의적인 심리이론(?)을 채택한 책을 공공연하게 출판했다는 시점에서 그는 authentic 한 심리학자, 즉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그가 계량연구를 포함한 생리학적/심리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창조과학의 신봉자도 대학에 취직해서 좋은 과학논문 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 포스팅이 딱히 "매도하는 인신공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 포스팅의 의도는 그를 북미 명문대 심리학 교수라는 자리를 바탕으로 '과학적 논의에 입각한 현대의 지성'으로 묘사하는 오류를 시정하는 것입니다.

  18. 적는사람 2019.10.17 06:47 신고 Modify/Delete Reply

    조던피터슨을 어떻게 읽어내야할지 몰라서 이곳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그의 유튜브나 책'12가지 인생의 법칙'을 보다보면 받아드려도 좋을 유익한 말들도 많지만, 일종의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있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이 시원해졌어요!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BeGray 2019.11.05 17:52 신고 Modify/Delete

      제 글이 아주 약간이라도 그러한 기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쁩니다 :)

  19. ㅇㅇ 2019.10.18 13:23 Modify/Delete Reply

    조던 피터슨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한참 여기 저기 구글링했었는데, 이걸 읽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확 정리되는 기분이네요. 피터슨의 논리가 어떤 구조로 진행되는지 큰 틀을 보게 되었어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 루스리 2019.11.27 23:12 신고 Modify/Delete Reply

    조던 피터슨은 자신을 임상심리학자로써 소개하고 있고, 분야가 분야다보니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수준을 넘어, 그 방법론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본인이 일을 하면서 여러 클라이언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문제점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거라고 보는데, 말씀대로 그 방법론의 본질적인 한계로 그의 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과학적이지 못합니다. 아마 엄밀하게 이론을 정립한다기보단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거나, 실제 현장에서 상담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가져와서 그럴싸하게만 합쳐놓은 모양새가 되지 않았나합니다. 그의 주장은 극우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진 모르겠으나 분명 반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피터슨은 일관적으로 좌우를 막론한 정체성 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대안우파 세력에 비해 피터슨의 팬층은 덜 극성인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극성인 사람들은 극성이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BeGray 2019.12.06 18:40 신고 Modify/Delete

      후, 이미 피터슨의 팬층에서 충분히 극성인 사람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대안 우파 중에서 더 심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군요 :(

      차분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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