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호, <안희정 무죄 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에 대한 논평
Comment 2018. 8. 28. 02:25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나는 작년 말 당시 연재되고 있던 최성호 선생의 <교수신문> 기고에 여러 차례 비판적인 평가를 남긴 적이 있다(http://begray.tistory.com/435 ; http://begray.tistory.com/437 ; http://begray.tistory.com/440 ). 나는 그가 '과학철학'을 전유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치이론적 논의가 그 정치적 함의는 둘째치고 지적으로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이어지는 그의 연재 및 (최성호 선생 본인의 요청으로 인해) 그와 주고 받은 메일을 포함하는 일련의 대화에서 처음의 평가를 바꿀 이유를 유감스럽게도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본래의 논리를 고집하면서도 나의 글을 포함한 여러 비판에 대응하고자 했던 그의 연재물이 처음의 것보다도 더욱 엉성한 모양으로 퇴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적인 흥미를 상실했고 더 이상 그의 칼럼을 찾아 읽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를 잊고 살던 중 방금 안희정 성폭행 재판 건에 대한 그의 칼럼을 읽었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2527).
칼럼의 요지는 간단하다. 성적자기결정권이 피해자의 자유의지와 밀접하게 닿아있다고 할 때, 통상의 법논리에 적용하는 자유개념이 아닌 다른 자유개념을 적용하면 피해자 또한 자유롭게, 즉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안희정과의 관계에 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안희정의 무죄를 선고한 1심 판단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안희정과의 성관계를 진심으로 원했다는(!) 전혀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이 기본적으로 논증의 토대로 전제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교수신문>의 역사에서 가장 한심한 글 중 하나로 당당히 뽑힐만한 이 칼럼에서 필자는 물론 다음의 두 가지 필수적인 고민, 즉 1) 도대체 왜 사법적 판단에서 자신의 자유개념이 채택되어야 하는지 2) 자신의 자유개념을 사법적 판단에 일반적으로 적용하게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지--아마 우리는 대부분의 형사사건이 무죄로 끝맺게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법기관이 형해화 되는 '멋진 신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따위는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이전의 칼럼 및 나의 비판을 읽은 분이라면 필자가 종종 지성의 활동에 기초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지(知)의 척도를 구부러트리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걸 알아챌 터인데, 이번 칼럼은 그의 그러한 성향이 가장 동의할 수 없는 형태로 발현된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지은 씨의 피해주장을 지지하며 동시에 이번 재판이 사법부의 인식이나 여론 상의 광범위한 2차 가해를 포함해 우리가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지점들을 적지 않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논리 하에서 안희정의 "위력 행사"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상급심에서도 1심 결과가 바뀌지 않을 수 있기에 안희정의 무죄를 믿고 주장하는 분들을 전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옹호하려는 노력과 왜곡된 '철학적' 논증들을 도구삼아 궤변을 늘어놓는 건 매우 다른 일이며, 후자는 즉각적인 경멸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안타깝지만 최성호 선생의 이번 칼럼은 바로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핵심적인 개념을 멋대로 재정의한 다음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내미는 건 '떼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글은 독자들과 필자 자신의 지성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성폭행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에 대한 그 어떠한 예의와 책임감도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저열한 논리를 장난감을 갖고 놀듯이 내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악취를 내뿜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철학과 사유가 최저급으로 몰락한 형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교수신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신문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 사건에서 어떤 견해를 지녔든, 혹은 어떤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기고란을 제공하든 그건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다(앞서 말했듯 나는 누군가 이 사건에서 안희정을 옹호한다는 사실만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성과 학문을 자신들의 주된 가치로 삼는 언론이 둘 다에서 명백히 실패한 칼럼을 그대로 싣는 건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기본적인 퀄리티 관리조차 하지 못하면서 한국의 대학과 학문활동을 다룬다고 자부하는 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물론 이들은 자신들은 단지 직업상 '교수'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며 여기에 지성, 학문, 도덕과 같은 추상적 가치들은 전혀 곁들여지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는 있을 것이다(바로 그런 식의 조잡한 말장난이 최성호 선생의 이 칼럼이 수행하고 있는 작업이다!). 나는 <교수신문>의 운영에 관여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필진을 선정하는 데 좀 더 큰 책임감을 느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특히나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우리는 이것보다는 나은 지성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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