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대 정신질환이라는 잘못된 구도에 관하여

Comment 2016.05.28 23:34
*이 글은 약간의 편집을 거쳐 ppss(http://ppss.kr/archives/82102) 및 허핑턴포스트 코리아(http://www.huffingtonpost.kr/woochang-lee/story_b_10216692.html)에 게재되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의 피해자 추모글을 쓴 뒤에 받은 반론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미 경찰에 의해 정신질환범죄로 판명된 사건을 여성혐오와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양성 간 갈등을 조장한다. 이후 지금까지 이 사건을 두고 벌어진 여러 건의 논쟁에서 비슷한 대립구도, 즉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다"와 "강남역 사건은 정실질환으로 인한 범죄다"의 두 입장 사이의 충돌이 나타난다(그리고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 극단적인 이들은 "비합리적인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이 경찰의 합리적인 판단을 거부한다"는 프레임을 유포하고 있는데, 서구 근대 문헌을 읽는 입장에서는 여성과 비합리성을 동일시하는 구도 자체가 아주 오래된 여성혐오적 관점임을 어렵지 않게 지적할 수 있다). 26일 오후에는 정부와 집권여당이 강남역 살인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조현병 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두도록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고(http://www.huffingtonpost.kr/2016/05/26/story_n_10138570.html), 이 사건을 여성혐오와는 무관한 특정 정신질환의 문제로 바라봐야만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기세를 얻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 있다. 즉 강남역 살인사건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는 경찰의 주장과 이 사건이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라는 주장은 양립할 수 없으며, 전자를 신뢰해야 하는 만큼 후자는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러한 주장은 틀렸다. 가해자의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춰 이 사건을 판단하고자 하는 경찰의 '법리적' 해석과 가해자의 행위에 사회적 요인으로서의 여성혐오담론이 끼친 영향에 초점을 두는 (나를 포함한) 여러 이들의 '사회적' 해석은 양립가능하다. 엄밀히 말해 경찰의 해석은 여성혐오담론의 역할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의 타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이 지점에 관해 나는 몇몇 법 관련 종사자에게 문의했으며, 그들의 답변에 감사드린다. 물론 그들의 답변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생긴 모든 실수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경찰의 해석을 단순하게 정리해보자. 가해자가 여성 일반에 대해 일종의 피해망상을 품게 되고 이에 따라 살인을 저지른 일차적인 원인은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한 정신질환이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경찰의 해석이, 가해자의 정신상태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갖추었다는 전제 하에서, 나름의 법적 타당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그가 심지어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인사를 공격한 경우라고 해도 법적으로 정신질환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고려되는 것은 가능하다. 극단적인 예를 떠올려 본다면, 한 여성이 주변 남성들과의 불화로 인해 남성 일반에 대한 극심한 피해망상에 빠져 여러 남성을 무작위로 살해한 경우에도 경찰은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정할 것이고, 우리는 그 판단에 나름의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정신질환의 책임경감범위를 특히 혐오범죄에서 어디까지 인정하는 게 맞는지 등의 논쟁적인 주제는 일단 넘어가자).

반면 사회적 요인으로서 여성혐오를 주목하는 해석은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에게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논리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가해자는 자신이 여성에게 여러 차례 거부당했다는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인식에 근거해 불특정 여성을 살해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가해자의 사고는 자신이 대면하는 사람을 특정한 성별에 따라서만 범주화하고 그 성별에 따라 위해를 가해도 된다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의 한 전형을 따르고 있다. 이 사건에서 여성혐오를 강조하는 입장은 가해자의 사고가 한국사회에 널리 퍼진 여성혐오적 편견을 극단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설령 정신질환에 의해서라고 해도 그가 여성혐오적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극단화하여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 사건의 중요한 사회적 원인으로 한국의 여성혐오를 추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려는 경찰의 해석과 사회적 요인으로서의 여성혐오를 강조하는 해석이 그 자체로는 상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자가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이해한다면, 후자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는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한다(에밀 뒤르켐이 <자살론>을 출간한지 거의 120년이 된 시점에서 사회적 요인이 개별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요컨대 두 입장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이 사건을 해석하고 있으며, 적어도 이 케이스에서는 양립가능하다. 경찰은 사회적 설명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며 그럴 의도를 갖지도 않기에, 경찰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것을 이유로 사회적 설명을 거부하는 것은 서로 다른 분야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든 아니든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정신질환여부를 무시하고 극형에 처하자는 주장에는 (물론 이처럼 격한 감정적 표현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들의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 좀 더 낫다는 합의를 내렸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경찰의 입장을 근거로 어떻게든 여성혐오 문제를 시야 밖으로 추방하려는, 유감스럽게도 여러 남성들이 소리높여 외치는 주장에 대해서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위에 보여주었듯 잘못된 논리에 기초하고 있을 뿐더러,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맹수 앞에서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모른 척하는 새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태를 합리적으로 직시하고 개선해나가려는 태도지 지금 우리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바꿀 것도 없다는 식의 비합리적 망상이 아니다. 경찰의 판단과 여성혐오적 해석을 마치 대립되는 것처럼 배치시키는 지금의 쓸모없고 해롭기만 한 전선에 발이 묶여 실제로 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못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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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장으로 유추한 이유의 선입견 2016.05.31 23:06 Modify/Delete Reply

    이 사건이 여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현재 사회적인 여성차별이나 잘못된 선입견이 없다는 이야기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사건은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부적절 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인권 뿐 아니라 소수자-취약자 인권 문제는 어떻게든 거론 되어야 하며 개선되어야 합니다. 공론화 된건 좋지만, 왜 이 사건이어야 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죠. 매우 예측 불가능한 자극적인 사건이라 불길을 일으키는데에는 좋지만, 남성주체가 심각한 정신질환자인 이상, 다수의 공감을 얻거나 설득하기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소한, 다수의 스키조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저를 설득하지는 못했죠. 양립시키려면 스키조의 특수한 망상적 의도에 사회 보편적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바라본다는게 놀랍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오히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정신취약계층에 대한 치료지원 문제가 거론되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역시, 소수자-취약계층 인권 문제이자, 사회 안전망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이를 잘못된 구도에 따른, 쓸모없고 해롭기만 한 주장이라고 하실 수 있는지 의문이네요. 즉, 같은 주장에 수많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걸 생각해 주심이 좋겠습니다. 남혐을 위장하며 황당한 이유로 여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수자 인권을 걱정하며 합리적으로 여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저로선, 이 사건은 여혐사건이 아니지만, 여자들이 이 사건을 여혐의 굴레로 확대해서 볼 정도로 남성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 책임은 사회에 있을테니까요.

    • BeGray 2016.06.01 00:55 신고 Modify/Delete

      먼저 상세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댓글 달아주신 분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부터 일단 열거해 보겠습니다.

      1.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정신취약계층에 대한 치료지원 문제"가 이 사건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라는 점에 동의하며, 저는 어디서도 이것이 "잘못된 구도에 따른, 쓸모없고 해롭기만 한 주장"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2. "여자들이 이 사건을 여혐의 굴레로 확대해서 볼 정도로 남성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 역시 동의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궤에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 두 가지만으로도 저는 댓글 달아주신 분과 제가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합의점 위에서 제기하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답변을 시도하자면,

      1. "이 사건이 여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현재 사회적인 여성차별이나 잘못된 선입견이 없다는 이야기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합니다만, 제가 이 글의 서두에서 제시했듯 현재 온라인 상에 여러 논쟁의 전선에서 "이 사건은 여혐도 아니고, 한국에 여성혐오라는 것도 없다"는 식의 주장이 여러 이들에 의해 강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 글이 단지 논리적인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논쟁 구도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죠. 댓글에서 표명하신 입장이 엄밀히 말해 제 비판대상에 속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 저는 정신분열증이나 조현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더군다나 지금 케이스처럼 애초에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알 수 있는 상태에서 그의 상태에 대해 무언가 확정적인 내용을 말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이 여혐이 아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훨씬 더 정교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의 인터뷰를 믿을 수 있다면, 가해자의 주관적인 동기가 여성혐오적 논리를 따르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그런 점에서 상세한 유보조건을 달지 않고 "여혐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그것이 정신질환으로 촉발된 것과 여성혐오적 논리를 보여준다는 것은 애초에 배치되는 사실이 아니니까요.

      여기서 유효한 논점은, 댓글에서 언급해주셨듯, 정신질환자인 가해자의 여성혐오적 논리와 한국사회의 '일반적' 현상으로서 여성혐오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어렵다는 것이겠죠--저 자신은 어쨌든 레토릭과 논리에 관심을 갖는 입장에서 후자라는 맥락으로부터 전자가 배태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하나의 가설임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댓글 달아주신 분께서 "이 사건이 여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대신 "이 범죄에 여성혐오적 측면이 있고,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형태의 여성혐오가 존재하지만, 가해자의 정신질환을 고려할 때 후자라는 일반적 현상이 전자라는 특수한 케이스를 필연적으로 촉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을 정정하셔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처럼 생각이 드네요.

      3. "공론화 된건 좋지만, 왜 이 사건이어야 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죠. 매우 예측 불가능한 자극적인 사건이라 불길을 일으키는데에는 좋지만, 남성주체가 심각한 정신질환자인 이상, 다수의 공감을 얻거나 설득하기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라는 말씀에는 분명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이전까지의 여러 맥락을 고려하면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는 게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댓글 말미에서 말씀해주신 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동시에 공론화된 지금 가능한 효과적으로 여성혐오를 비롯한 각종 차별/편견을 교정하고 억제할 수 있는 작업으로 넘어가는 게 가장 합리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는 바로 지금 그렇게 되고 있듯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초 인권적인 행위들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상황일테니까요.

  2. 주장으로 유... 2016.06.01 05:27 Modify/Delete Reply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도 제가 님과 소수자-여성인권에 대한 태도가 엄청 다르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는, 저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만으로 편가르기가 발생하니까요.

    맞아요. 현재 정신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아닌- 격리강화라는 방향으로 논의가 흐르고 있죠. 이는 이 사건에서 그 공포를 유발한 주체가 소수자-정신취약자가 아닌 사회 보편적 여성혐오의 주체-남성주체의 일부로서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태 발생했던 수많은-당연히 남성과 사회 전체의 반성을 요구하는 사건들에서 이런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이런 폐혜는 없었겠죠.

    일단, 제 의견은 님께서 제안하신 것보다는 좀더 연관성을 두지 않는 쪽이지만, 필연적이지 않다고 수정해도 제 이야기는 무방할듯 싶군요. 이 사건이 가진 '필연적이지 않을수 있다는' 취약성 때문에라도, 이사건에 초점을 둬서 사회 보편적인 여성혐오를 이야기 한다면 자극적이기만 할 뿐-많은 남자들의 설득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며, 자극적인 만큼 이번 운동에서 보여진 과도한 상호간의 충돌 때문에 서로간의 반목과 상호 일반화에 따른 공포심이 강화되고 그에 따라 상호간의 혐오 역시 더욱 강해질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미 이사건을 통해 정신취약계층에 대한 혐오를 엿볼수도 있습니다. 여성끼리의 충돌도, 남성끼리의 충돌도 있었죠. 또, 올바르게 차분히 이야기 하고 계신분들도 있지만, 극단적 여혐과 극단적 남혐..수많은 일반화에 따른 편가르기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는 면도 있습니다. 사방에 퍼진 공포와 그것에 따른 혐오의 교환이 차별과 편견을 교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진 않습니다.

    불안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옵니다. 공포의 정체를 직시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예측할수 있다면 예측하고 할 수 없다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공포 유발대상이 반성할게 있다면 반성을 요구해야 하고요. 하지만, 그런 접근의 결론이- 강제 입원 강화 논의라는게 매우 허망합니다. 문제가 많던 정신보건법 개정논의가 제대로 방향을 잡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여성들이 보이는 불안은 단지 이 사건 하나에서의 불안이 아닐겁니다. 그동안 수많은 여혐과 관련된 사건으로 쌓인 불안이 이 사건을 방아쇠 삼아 터진셈이죠. 따라서 이 사건의 규정이 중요한게 아닌데...이 사건으로 사회적 여성혐오의 불안을 이야기 하자면 헛점이 너무 많아지고 맙니다.

    공론화 된 김에 제대로 된 주장을 하자는 의견에는 당연히 동의하는게, 저도 그런식으로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원치 않음에도) 이 사건 자체의 규정방향에 포인트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건, 수 많은 언론이나 여론이 이 사건의 규정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 사건이 보편적 여혐과 무관하다 주장하는 데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론화의 포인트를 사건 자체에 두면 이 사건은 상호간 혐오와 편견을 나누는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그렇게 흐르고 있죠.. 저는 이 사건 자체가 여혐이냐 아니냐의 포인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이정도의 사회적 공포심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 자체에 초점을 둬야 제대로 된 공론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만, 이미 틀어질대로 틀어진 모양새입니다. 그동안 일베와 메갈 등에서 남녀간 혐오를 나눈다는 자료를 많이 접해 왔는데, 혐오에 기반을 둬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사건의 의미 규정- 에 초점을 맞춰서 소모적인 이야기로만 흐르고, 결국 논의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 자극적인 그들의 행동이 두드러져 상호간 반목은 강화되고 맙니다. 저는 결국 소수자-여성인권에 개선의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편가르기에 몰려서, 황당하게 일베충-여혐-보수로 취급되고 마는 것이죠.

    여러 맥락을 고려하면 아주 놀랍지 않다고 하신것에 동의합니다. (조금 다른의미로 말씀하신 것이겠지만)
    저도 놀랍지 않아요. 상황이 제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사실, 제 예상보다 조금 더 심각하게 흐르고 있는듯 보이네요.

    그리고...첨언하자면, 스키조의 다양한 망상과 그에 따른 폭력은, 여러명 관찰해본 바 있으며 제가 직접 맞아본적도 있습니다. (갑자기 날아오는 주먹은 예측이 불가능하죠.) 거기에는 얼토당토 않은 환각과 환청이 작용합니다. 이는 당연히 '망상'의 주요 재료가 되죠. 망상이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례 하나만 들자면, 저는 그 대상을 진심으로 대했지만, 하지 않은 욕을 이유로 맞았던 것이거든요. (제가 무시했다고 망상한거죠. 사회적으로 욕이 만연하다는걸 반성해야 하는걸까요.) 그 외 이해하기 쉬운 유명하고 고전적인 이야기를 예로들자면-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에서 논리를 찾고 사회 보편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되버립니다. 특히, 치료를 중단하면 환각과 환청의 내용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키조의 치료는 치료라기보다 증세를 경감시켜서 사고장애..사고의 분열성을 최소한으로 관리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죠. 지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진술에 논리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도 일단은 좋습니다.(분열증이 심해질경우 논리성이 유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근거가 환각과 환청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걸 감안해야만 합니다. 남성의 목소리로 계속 욕을 듣는 여성 환자도 있었는데, 그 환자에게서 남성혐오를 이야기 할 수는 없듯이 말이죠.

    많은이들이 스키조를 단지 미친놈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편견이 되고 저 역시 그런태도를 경계하지만, 때문에 남자들에게 '반성하자'라고 한들, 많은 남자들은 그래, 내가 이 사건에서 뭘 반성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라고 되묻게 되고 마는겁니다. 여자들이 무섭다고 하면 그래서 내가 뭘했는데 같은 태도를 보일 수도 있는겁니다. 여혐을 주장하는 입장에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게 아닐텐데, 첫단추- 계기가 된 사건이 잘못되어 있어서 꼬이는 셈이죠.

    주토피아가 시끄럽죠. 편견과 차별을 반대하는 이야기라는 면에서, 소수자-약자의 인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하필 일베가 주토피아를 그렇게 그런 포인트로 써먹었다는게 상당히 맘에 들지 않지만, 현재 벌어지는 난장판에 비추어서 다각도로 생각해 볼 부분은 있으리라고 봅니다.

    제가 님과 공유하는 가치가 엄청나게 다르지 않음에도 이 글을 남긴 것은, 여혐과 정신질환이라는 그 구도 자체에 매몰되는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면에서 동의하지만, 그 구도 자체는 사건에 초점을 두는 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 내용에서 차이가 있었기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음..뭔가 같은 말을 몇번 반복한 것도 같은데, 새벽이라 수정할 엄두가 나질 않네요. 보기 불편하시더라도 너그러이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친절히 대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추가 덧글은, 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잘못되었다거나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기는 글은 결코 아닙니다. 저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한들, 님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혹 첫번째 댓글에 실례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뭔가 답답했던 나머지 흥분했던 모양이에요.

    이래저래 상황이 걱정되고 아쉬울 뿐입니다.

    건강하세요.

    • BeGray 2016.06.03 03:20 신고 Modify/Delete

      한국에서는 여성혐오만이 아니라 여러 중요한 주제가 이제야 겨우 제기되는 단계까지 이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시민사회 내의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규범/대책을 도출한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요. 현재의 논쟁국면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쉬운 면이 적지 않게 있지만, 이걸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어떻게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현재의 단계에 맞는 문제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드네요.

      모쪼록 두 번에 걸쳐 유의미한 말씀을 주셔서 저도 새롭게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습니다. 긴 댓글 주저함 없이 적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이후에도 대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또 찾아오기를 희망해요^^.

      마찬가지로 건강하시길!

  3. 이런 장문의 글을 볼때마다 2016.06.01 18:47 Modify/Delete Reply

    어떻게하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게 가능한가 궁금해집니다. 좋은 의미로요. 언제나 쓰여진 글(뉴스나 신문이나)을 읽고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뿐이지 어떻게하면 사건에 대하여 고찰하고 길게 글로 풀어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능력도 학습으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 BeGray 2016.06.03 03:23 신고 Modify/Delete

      저는 아무래도 글을 읽고 분석하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이긴 하니까요 ㅎㅎㅎ 일단 주어진 글을 그냥 뭉뚱그려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이 모였을 때 어떤 논리를 형성하는지, 그 논리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따져보는 연습을 하고, 무엇보다도 그 결과물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연습이 축적되다보면 조금씩 이런 작업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늘 비판적인 대화상대/조언자를 두는 편이 좋겠죠^^.

  4. 감사합니다 2016.06.04 14:27 Modify/Delete Reply

    지금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말로 설명못할 답답함이 작성자분의 글을 보면서 싹 사라졌습니다.
    최근에 이런 비슷한 주장을 시청역에서 열린 강남역 살인사건 집담회에서 법학자이신 홍성수님께서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심도있는 토론과 논의가 아니라 극단주의적 태도와 무조건적 혐오라는 생각에 암울해지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BeGray 2016.06.05 03:30 신고 Modify/Delete

      홍성수 선생님은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드문) 분이시죠^^. 의미있게 읽어주셨다니 제가 더 기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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