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일기: 20대 국회의원 선거 단상

Comment 2016. 4. 14. 23:51
지역구 253석은 새105-더110-국25-정2-무11로, 비례 47석은 새17-더13-국13-정4로 결정됐다(기독자유당은 안녕...기독당이랑 안 쪼개졌으면 3.2쯤 나왔을텐데 ㅠㅠ). 무소속 중 세종시의 이해찬, 대구의 홍의락과 울산의 구 통진계 2명을 제외한 나머지 7인은 대체로 새누리 탈당파들로, 이들과 이해찬·홍의락이 원 소속정당에 복귀한다고 가정하면 전체 의석수는 약 새129-더125-국38-정6-무2(울산의 두 사람이 정의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없나?) 정도로 배분될 것 같다.

별 근거없이 막연한 인상을 써보면,

0) 사실 이번 선거를 분석하려면 선거구 재획정은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다. 19대와 비교해 경북이 2석, 전남북 및 강원이 각 1석씩 줄고 서울, 충남, 대전, 인천에 1석씩, 경기에 8석이 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국민의당은 단순히 더민주당의 표를 갉아먹었다기보다는--관악을을 포함해 그런 곳이 분명 있지만(두 번 연속 야권분열에 힘입어 승리한 오신환도 참 대단하다)--더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서 양쪽으로부터 표를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당이 직접적으로 승리한 지역구는 거의 대부분이 호남권이지만, 이게 더민주당이 승리한 곳에서 잠재적 새누리 지지자들의 표를 얼마나 가져왔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비례대표의 경우 19대 때 새누리가 42.8%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35%가 될까 말까한 상황이다(민주통합당->더민주의 경우 36.4에서 25 언저리로 축소...단 이번 더민주당 비례는 엄청난 실패작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2) 각 지역의 승부를 떠나 전체적인 결과만 놓고 말해보자면, 더민주가 새누리의 '합리적 보수'층을 노리고 우클릭하는 국면에 국민의당이 끼어들면서 새누리 이탈 희망자들에게 추가적인 선택지를 주고 이탈을 가속화한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가설을 제기해볼 수는 있겠다. 이럴 경우 국민의당이 역설적으로 전체적인 반-새누리 구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의도치않게) 수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튼 안철수의 역량 자체를 논하기 전에 이번 국민당의 선전은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너무 많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설명하기 힘든 게 국민당의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느냐고, 마찬가지로 가장 예측하기 힘든 게 국민당의 행보 및 그 파급력이다. 우리는 국민당의 선전 이유를 수도 없이 들 수 있지만, 그것들 중 반년 뒤에도 지속될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3) 정의당7.23+노동당0.38+녹색당0.76+민중연합당0.61=8.98%. 이게 20대 총선에서 진보진영의 총 득표율이다. 19대 때는 통진당 혼자 10.3을 찍었다. 두 가지 병립가능한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1) 20대 총선의 투표자들은 확실히 전체적으로 보수화했다 2) 지금까지 진보정당이 거대양당체제 속의 '제3의 선택지'로 자임할 수 있었다면, 이번 선거에는 바로 그 위치를 빼앗겼다--국민의당에 말이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고, 만약 두 번째 가설이 옳다면, 간단히 말해 새-민-국의 3당 체제가 유지되는 한 진보정당이 유의미한 의석수를 확보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 이번 녹색당의 구호, "[지역은 필요에 따라 표를 주시고] 비례는 녹색당을 주세요!"가 잘 먹히는 기본조건은 거대양당에 모두 비판적인 유권자가 제3선택지로 녹색당을 지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사실 이건 모든 진보정당이 공유하는 기본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국민의당이 제3선택지로 인식되는 순간 이 전략은 망가진다; 이번 선거처럼 말이다.

4) 충북이 청주에서만 더민주 당선자를 셋을 내면서 8석 중 새누리가 5석 밖에 못 먹는 이변을 일으켰다(충북은, 나도 제천단양에서만 살아봤지만, 진짜로 보수적인 지역이다). 울산, 부산, 대구, 경남에서 모두 더민당 및 진보계열 후보가 당선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에서 보수의 심장은 강원7/8과 경북13/13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물의 신 오세이돈과 불꽃의 피닉제는 나란히 손을 잡고 여의도를 떠나갔다. 그러나 새누리의 막말트리오 김진태+하태경+권성동은 모두 생존 성공.

6) 김부겸이 드디어 대구에서 승리했다--그것도 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군에 속하는 김문수를 압살하면서. 오세훈도 정세균한테 밀려 한동안 아웃.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는 새누리 지도부 역시 자유롭지 않다. 문재인 또한 광주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동안은 칩거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여야 모두 그 자리는 누가 메꿀 수 있을까? 안철수는 야권의 단독주자로 나가고 싶겠지만, 일단 선거 기간 내내 호흡이 안 맞는 걸 억지로 버티며 달려온 국민당 내에서 지도권부터 확립해야 한다(천정배, 박지원, 정동영 모두 생존했고, 이 셋 모두 안철수에게 무언가 진정한 지도력 따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결론적으로 다음 대선까지 누가 치고 나올 수 있을지 쉽게 그릴 수 없게 됐다. 아마도 남은 20개월 가까이의 시간은 한국 정치를 즐겨 소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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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이상 2016.04.15 01:11 신고 Modify/Delete Reply

    제발 더민당이 극우파 새누리당을 밀어내고 제1여당이 돼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 좌표가 왼쪽으로 좀 이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중도우파/합리적 자유주의자들 좀 실컷 두들겨 팰 수 있게요. 이번 총선을 통해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희망을 봤네요.

    그리고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최근에 표창원 교수가 총선 당선을 위해 '동성애 지지->애매모호한 입장'으로 전환을 했잖아요. 당선을 위해서 약자를 향한 입장마저도 필요에 따라서는 번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좀 부정적인 입장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어쩔 수 없다'고 말씀들을 하셔서요.

    • BeGray 2016.04.16 01:04 신고 Modify/Delete

      표창원 당선자 케이스야 뭐 사람마다 의견이 다 다를 문제라...사적 인간으로서는 매우 유감스럽지만,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공적 정치인으로서는 동의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긴 합니다. 번복없이 이겼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어쨌든 지면 끝나는 게 이 게임의 규칙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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