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벨.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

Intellectual History 2015. 9. 25. 04:36

콜린 캠벨.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 박형신, 정헌주 역. 나남, 2010. Trans. of _The Romantic Ethic and the Spirit of Modern Consumerism_ by Colin Campbell, 1987.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을 읽었다. 번역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시리즈 답게 각종 각주에는 공을 들였다. 이 책이 종교, 문학을 포함한 17-19세기 영국문화사 및 관념사history of ideas, 베버 및 소비주의 관련 사회학/경제학 이론분야와 같이 한국에서는 통상적으로 함께 다루지 않는 분야들을 망라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자들의 노고가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어 문장이 잘 읽히는 편은 아닌데, 6장을 원문으로 읽어보니 원 저자의 문장 자체가 길고 삽입절이 많다. 차분히 읽어보면 충분히 읽을 수 있긴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한국어 가독성을 조금 더 고려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텍스트는 총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이론적 논의를 다루는 1부에서는 자본주의 내의 생산메커니즘과 청교도 윤리에서 파생된 특정한 인성/행위규범의 연관성을 다루었던 베버를 비판적으로 보완하는 방향에서 근대적 소비주의를 뒷받침하는 인성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즉 베버가 청교주의적 인성의 이념형ideal type[한국어판에서는 "이상형"]으로부터 근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적합한 '정신'을 포착했다면, 캠벨은 베버가 보지 못했던 근대 자본주의 성장기의 중요한 면모, 즉 소비주의의 출현에서부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곧 서구 근대사회의 경제적 발전과정에 생산만큼이나 소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고 한다면, 그러한 소비를 뒷받침하는 근대적 소비주의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출현하는가?


 캠벨은 베블런이나 경제학의 효용주의적 모델을 포함해 사치, 쾌락 및 소비주의를 정의한 기존의 이론적 모델이 부적절함을 지적한다. 요점이 근대 소비주의 자체의 특성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그는 무엇보다 근대 소비주의 정신은 감각에 기초한 전통적 쾌락주의와 달리 감정에 기초하여 자율적인 상상으로부터 쾌락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이를 캠벨은 "고도로 합리화된 형태의 자기환상적 쾌락주의"self-illusory hedonism라고 부른다; 4장 마지막 참고/ 쾌락과 효용utility, 안락comfort을 동일시한 벤담의 공리주의 모델을 비판하면서 양자의 구별을 요구하고 전자에 근대 소비주의를 연결시키는 발상 또한 특기할 점이 있다). 즉 전통적 소비자처럼 단순히 욕구/감각의 충족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구매를 통해 일시적으로 충족되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곧바로 부족함을 느끼도록 끊임없이 "환상"을 욕망하는 주체, 고립된 공간으로서의 내면을 갖는 주체의 메커니즘을 모델화하는 것이 1부의 요점이다.


2부에서는 18세기 영국의 소비혁명을 모델정립을 위한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두 가지 방향으로 역사적/개념사적 분석을 진행한다. 근대 영국 문화 관련 전공자라면 6장부터 이어지는 이 대목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캠벨은 17세기 이후 근대 영국의 소비주의가 귀족 대 중간계급의 신분 간 경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전래의 가설을 비판하면서, 대신 대중문화에서 어떤 '윤리'가 출현했는가를 보기를 요구한다. 베버와 캠벨과의 관계는 무척 흥미로운데, 먼저 베버는 특히 칼뱅주의 전통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예정설에 따라 구원의 징표를 확인할 수 없던 청교도들이 어떻게 금욕적으로 부의 창출 및 축적에 최적화된 인성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다. 캠벨은 베버의 설명이 다른 무엇보다도 1700년 정도까지만의 청교도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금욕주의적" 모델과는 다른 흐름이 어떻게 출현하고 발전했는가를 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즉 예정설에 따른 구원의 불확실성은 부의 축적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징표를 찾고자 하는 흐름을 불러일으켰는데, (칼뱅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anism 및 플라톤주의(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Cambridge Platonists)와 같은 흐름에 기초해서 신의 선함을 믿고 이를 진정한 감정의 인식/표현을 통해 확신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즉 이때 감정은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니라 신의 거룩함 및 구원의 확신에 근접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가 된다. 칼뱅주의 자체가 18세기에 급격히 쇠퇴한 것에 비해 감상주의sentimentalism적 경향은 17세기부터의 계몽적 낙관론, 즉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변신론theodicy으로부터 시작해 (칼뱅주의 및 홉스적 비관론 양자를 비판한)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 이신론Deism, 18세기 중반의 감리교Methodism에 이르기까지의 신학적 흐름과 잘 접속할 수 있었으며, 샤프츠베리Shaftesbury 이래의 (감정으로부터 세계의 조화와 아름다움, 선함을 인식하고 이를 쾌와도 연결하는) 도덕감정론의 계열과도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의 끝에서 청교주의의 가장 대중적인 버전은 사실상 감상주의에 도달한다--주관적인 내면으로부터 이끌어낸(최종적으로 내면의 감옥에 갇힌다는 점에서 청교도 윤리-군사주의와 감상주의는 아주 근본적인 동일성을 포현했다). 정념의 표현을 정당화하고 그 정념으로부터 쾌락을 이끌어내는, 감정주의적 쾌락주의 '윤리'말이다. 이것이 우울감melancholia 자체를 향유하는 문학이나 정념을 강조하는 고딕 소설Gothic Novel의 유행과 맞닿아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7장부터 9장까지에서는 도덕감정 및 감성의 문화에서 시작한다(특히 제인 오스틴의 _Sense and Sensibility_가 중요한 사례로 등장한다). 중간계급의 미학, 낭만주의 윤리가 어떻게 탄생하는가, 계급 및 미학의 문제에서 취향이 어떤 역할로 나타나는가 등이 설명된다. 캠벨은  이러한 흐름이 부르주아의 지배에 대한 비판적인 항으로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감정과 쾌락주의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근대 소비주의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론적 모델링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1부에, 영국 문화사/정신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2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캠벨의 논의를 중요하게 수용하는) 바커-벤필드Barker-Benfield의 <감수성의 문화>_Culture of Sensibility_ 및 테일러의 <자아의 근원들>과 비교하면서 읽게 된다. 바커-벤필드의 저술이 18세기의 문화사/문학사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면서 여성주의적 쟁점을 가져온다면, 캠벨의 텍스트는 종교와 문화에서 소비주의-쾌락주의-감정이라는 연결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다룬다. 캠벨의 텍스트가 '생산적 정신'으로서의 청교주의-부르주아 인성과 '소비적 정신'으로서의 낭만주의-감정의 인성이 어떻게 상호보완적인 대립항으로서 일체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모델링에 관심을 둔다면, 테일러는 보다 넓은 시간적 배경에서 작업하면서 근대세계에서 내향성, 자연, 표현, 근대와 같은 개념들이 어떻게 인성들을 형성해나가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좀 더 크고 근본적인 개념들을 다루되 캠벨의 모델링처럼 타이트해보이진 않는다.


18세기를 다시 읽는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나온 여러 가지 흐름이 있는데, 재정혁명, 공화주의 혁명 등등...이 책에서 다루는 감성의 혁명 또한 그중 하나인 셈이다. 이것이 특히 이후의 시대에 어떤 파급력을 가질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지만, 어쨌든 이 책이 매우 여러 지점에서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해둘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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