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네케.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 및 <국가이성의 이념>
Intellectual History 2015. 9. 1. 03:57프리드리히 마이네케.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 독일 민족국가의 형성에 관한 연구>. 이상신, 최호근 역. 나남, 2007. Trans. of _Weltbürgertum und nationalstaat : studien zur genesis des deutschen nationalstaates_ by Friedrich Meinecke, 5th ed., 1919. [영역제 _Cosmopolitanism and the National State_]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국가권력의 이념사>. 이광주 역. 한길사, 2010. Trans. of _Die Idee der Staatsräson in der neueren Geschichte_ by Friedrich Meinecke, 1924. [과거 민음사 등에서 출간되었다가 한길사에서 내면서 개역한 국역본은 아마 4판을 옮긴 듯 한데 현재 내게 책이 없으므로 확인할 수 없다. 원제에 충실하게 옮긴다면 <근대사에서 국가이성의 이념>이 될 것이다. 영역제는 _Machiavellism : the Doctrine of Raison d'etat and its Place in Mordern History_]
: 마이네케의 이념사 3부작 중 앞의 두 권을 읽었다(다른 한 권은 <역사주의의 성립>_Die Entstehung des Historismus_, 1936으로 유감스럽게도 아직 국역되지 않았다...마이네케의 이념사 3부작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아쉬움을 느낀다). 두 저술 모두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나 방법적 함의에 있어서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많은 노고를 필요로 한다. 사실 1개월 가까이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나질 않아 이제야 아주 간략한 감상을 기록한다. 번역은 둘 다 아쉬운 면이 있지만,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 쪽이 더 성실하고 읽을만 하다(물론 이 책에서도 가끔 주술호응이 안 되는 문장이 튀어나온다). <국가권력의 이념사>는 이광주 선생 스스로가 고쳐서 번역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그렇게 쓰였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올바르다고 하기 힘든 한국어 문장이 너무 잦다. 주술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도 수시로 튀어나오는데, 한길 그레이트북스 편집진들이 지나치게 무성의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직접 독어 또는 영어본과 대조해보지는 못했지만, <국가권력의 이념사>가 원문의 문장들을 종종 누락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역사주의의 성립>과 함께 제대로 다시 번역되기를 기대해 본다.
먼저 마이네케의 이념사ideengeschichte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자. 이념idee/idea이란 어휘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플라톤을 떠올릴 수 있다. 플라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적인 것으로서 세상을 구성하고 또 움직이는 (테일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적 이성"ontic logos과 같은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를 이야기했다면, 주지하다시피 칸트와 헤겔을 포함한 독일 근대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용한다. 그들에게 이념은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단순히 주관적인 관념이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측정방식으로 검출될 수 없을지라도)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인간사에 영향을 끼치는 계기를 가리킨다. 칸트에게서는 예컨대 '규제적 이념'regulative idea처럼 이념이 인간의 의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객관적 존재론을 주장한 헤겔에게서 이념은 훨씬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체로 등장한다--'정신'이나 '이성'과 같은 개념들처럼 말이다. 헤겔을 염두에 둔다면 마이네케의 텍스트가 취하는 방법이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그가 자기실현하는 정신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으나, (그 자신의 비유를 빌리자면) 수백 송이의 장미를 증류하여 몇 방울의 장미유를 얻을 수 있듯, 역사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특정한 개념을 포착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배열할 수 있다.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에서 헤겔을 두고 한 코멘트를 인용한다.
"헤겔은 대립적인 것을 자신 속에 통합했고, 자기시대에 전개되는 모든 이념들을 하나로 통합했던 인물이다. 그 이념들은 그의 강력한 손 안에서는 통일적 형성체로서 유지되었으나, 그의 사후에는 곧 다시금 제각기 분리되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극히 다양한 이념조차도 그가 생존하는 동안에는 하나의 지붕 아래 공존했고, 가정에서와 같이 다른 이념들과 화합해야만 했다는 사실은 미래를 위해서도, 말하자면 현저한 교육적 작용을 했다. 보수파, 자유주의파와 급진파, 역사학파와 교조적 원칙론자, 민족주의파와 세계주의파 등의 사상가들이 그의 체계에서 학습할 수 있었고, 뒷날에는 그의 체계를 자신들의 특수한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본래 연관성을 지닌 몇몇 부분들을 자신들이 방치했던 것과 함께 보유하기도 했다. 그러한 부분들은 뒷날에 가서는 그들이 처음에는 포기했고 아마도 배척까지 했던 것들에 대한 교량으로서 다시금 기여할 수 있었다. 헤겔이 불러일으켰던 자극들은 계속해서 생산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기반 위에서 그것들도 전파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헤겔의 이론 가운데 특히 국가이론은 완전히 극단적으로 각각으로 전개되는 방향들에 영향을 주었으며, 동시에 이 과정에서 국가이론 속에 표명되었던 불변적 진실들의 일정한 부분들을 모든 방향으로 번식시킬 수 있었다. 그는 국가신조, 국가의 필요성과 위대성 및 인륜적 가치에 대한 확신을 전파시켰던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서도 최상급 대열에 서 있는 인물이다"(322).
한층 더 자신만만하고 패기넘치는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는 표제에 드러나듯 두 개의 이념이 존재한다. 그것은 18세기 말 독일 낭만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세계시민주의와, 19세기 후반 비스마르크를 거쳐 프로이센과 다른 독일의 합병을 통해 진정한 국가민족으로 완성된 독일민족이다. 젊은 마이네케에게 근대 독일의 역사는 세계시민주의 혹은 '문화민족'의 추상적인 형태 속에서 민족국가의 이념이 점차 짙어져 끝내 스스로를 완성된 존재자로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는 첫 장에서 민족의 두 개념을 각각 문화민족과 (정부제도 및 통일된 물리적 힘을 갖춘) 국가민족으로 놓으면서 암암리에 전자를 미숙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후자를 보다 완성된 형태로 제시할 떄서부터 드러나 있다(물론 개체성을 강조하는 전자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자체로도 개체적인 것으로서의 민족이 가능해진다...하나의 개체적 실체로서의 민족이 빚어지는 과정, 이것이 텍스트의 핵심이다). 빌헬름 폰 훔볼트,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의 낭만주의는 피히테를 거쳐 아담 뮐러 및 슈타인, 할러와 같은 정치가/정치사상가들의 활약을 통과해 헤겔로, 마침내 비스마르크에 이르며 이러한 사유의 역사는 곧 여러 영방국가들로 쪼개져 있던 독일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독일국가로 탄생하는 과정과 병렬된다. 나와 같이 19세기 독일국가 형성과정에서의 복잡한 투쟁과정을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방대한 책의 서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겠으나, 민족국가 혹은 국가민족의 자기실현과정이라는 근본서사만 붙잡고 있다면 실제로는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때때로 역사의, 이념의 진행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일지라도 실제로는 여전히 그 흐름 안에 있다.
"인간이 자신을 세울 수 있는 보다 더 큰 모든 생활권들 중에 민족처럼 그렇게 모든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발언하고, 그렇게 강하게 자신을 지탱해주며, 그렇게 충실하게 자신의 모든 자연적, 정신적 본질을 보여주는, 그렇게도 위대하고 유능한,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는 개체란 없다"(1장, 32).
"오히려 그들[민족]의 본질은 개별 인물의 본질처럼 이웃 존재들과의 마찰과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민족들과 민족국가들 사이의 상호접촉은 그들의 개별적 발전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38).
"그[에드먼드 버크]는 국가생활의 비합리적 구성부분들을, 전통과 풍습과 본능과 충동적 감성 등이 지닌 힘의 가치를 보다 깊이 인정하고 이해하도록 교훈을 주었다. [...] 근세의 모든 현실정치가들은 마키아벨리 이래로 이 힘들을 인식해서 활용했기 때문이다. [...] 사상가가 이 힘들을 인정할 때에는, 그는 이성의 본래 이상을 단념하면서 이 힘들을 인정하게 된다."(7장, 170-71).
"민족사상은 자유주의를 위해서도 역시 힘의 원천이 아니었던가? [...] 그러나 자유주의 속의 고귀한 본성들은 공허함을 느끼고, 적극적인 삶의 원천을 갈망하며, 민족적인 것을 확보하고자 한다."(10장 291-92).
1차 대전의 패배 이후 집필된 <국가이성의 이념>에서 마이네케는 어떻게 국가가 자립적인 주체로 설 수 있었는지를 추적하며, 그것을 르네상스기 이후부터의 국가이성 개념의 역사를 쓰는 작업으로 실행한다. 국가이성의 개념은 국가가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처럼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고 그에 따라 내/외부의 구성원 및 반대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주체성의 심급을 가리킨다. 즉 국가이성 개념의 등장 및 확산과 함께 점차 국가가 특별히 왕이나 귀족과 같은 개인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고유의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사고가 점차 퍼진다. 마이네케는 이러한 사유의 기원을 니콜로 마키아벨리에서 찾으며, 절대주의 시대의 프리드리히 대왕, 그리고 이후의 헤겔까지 세 사람을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꼽는다(총 3부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세 사람은 각각의 부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마키아벨리가 국가의 이해관계 및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군주가 모든 윤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행동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소리높여 이야기했다면, 계몽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이 따르고자 했던 계몽주의적 이상과 국가이성 사이의 간극을 목도하고 점차 후자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마침내 헤겔에게서 국가이성의 이념은 그 자체로 자기실현하는 정신으로서 등장한다. 근대 독일에서 민족국가가 등장하는 과정과 같이 국가이성은 보다 긴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실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대전의 어리석음을 겪은 마이네케는 자신의 이전 저술에서 민족국가가 수행한 바와 같은 진리의 최종적인 심급으로서의 위치를 국가이성에게는 부여하지 않는다. 물론 국가이성은 자율적이고 상황에 따라서 아주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게 될 때, 공공의 행복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사실상 자의적인 힘을 행사하는 초법적인 집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은 윤리와 힘("ethos and Kratos")의, 자연법과 국가이성 사이의 해결불가능한 갈등으로 나타난다. 칼 슈미트가 옳게 지적했듯(<입장과 개념들>에 실린 서평 참조) 마이네케는 양자 사이에서 무한히 왕복운동을 할 수 있을 뿐 최종적인 도달점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국가이성의 폭력성이 분출될 때 우리는 자연법을 바라보지만, 자연법 곁에 서면 그것의 추상적이고 무력한 면모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양자 중 어느 한 쪽도 자신의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 힘과 자연법을 묶어줄 매개가 사라지면서 남는 것은 해결될 수 없는 갈등일 따름이다. <국가이성의 이념>은 그리하여 사실상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끝난다.
마이네케 자신도 이를 의식한 듯, 우리는 이 책과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를 비교할 때 시대설정 및 주요인물의 배분 자체가 달라져있음을 알 수 있다. 첫 책에서 근대 독일민족국가의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비스마르크가 사실상 후반부의 해결사였다면, <국가이성의 이념>은 근세유럽부터 19세기까지,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영국-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제반국가로 서술의 시공간적 범위를 넓혔을 뿐더러 '민족'이라는 개념이 무대에서 퇴장하며 19세기와 비스마르크의 비중 또한 급격히 하락한다. 1부의 등장인물은 마키아벨리, 장티에와 보댕, 보테로와 보칼리니, 캄파넬라, 리슐리외, 가브리엘 노데이며, 2부는 그로티우스, 홉스 및 스피노자, 푸펜도르프, 쿠르틸 드 산드라, 루세, 프리드리히 대왕, 3부는 헤겔, 피히테, 랑케, 트라이치케, 비스마르크이다.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가 19세기로 갈수록 무게가 실려지는 텍스트라면, <국가이성의 이념>은 17세기와 18세기에 더 큰 힘이 들어가 있고 전체 텍스트의 절정은 프리드리히 대왕이며 19세기를 다루는 3부의 비중은 미미하다--국역본 본문 600쪽 중에서 3부는 130쪽에 불과한데, 2부에서 프리드리히 대왕만을 다루는 분량이 100쪽이다. 추측컨대 우리는 마이네케가 의식적으로 당시의 (패망한) 독일민족국가를 낳은 19세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대신 보다 과거의 시점에서 포괄적인 자세를 취하고자 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전후 일본의 대중적 역사기술이 아시아주의의 희망이 남아있던 메이지와 막말로 거슬러 올라갔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율배반의 존재가 <국가이성의 이념>을 더 열등한 저작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 이후 이념사 전통이 묻혀버린 오늘날에도 우리는 근대의 국가이론을 다루는 저자들이 여전히 <국가이성의 이념>을 인용하고 언급하는 것을 본다(대표적으로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와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를 꼽고 싶다)--나 자신도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 이전에 국가이성에 대한 텍스트를 먼저 읽었다.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가 독일민족의 상승에 대한 희망찬 전망을 담아 어떤 통일된 비전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내적으로 보다 완결된 텍스트라면, <국가이성의 이념>은 그러한 희망과 통일성이 포기된 대신 보다 넓은 시야와 서술의 깊이를 획득했다. 확고한 입장의 전자와 달리 후자의 저자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으며 마치 벤야민이 묘사한 염세가와 같은 고뇌를 품고 우주의 운행을, 그리고 그 안에서 (역시 마이네케 본인의 표현을 빌어) 국가라는 마신(魔神)의 탄생과 격동을 바라본다. 문학전공자들이 감지할 수 있는 정념의 측면에서 양차 대전 사이에 있는 마이네케는 확실히 보다 '성숙한' 정신의 소유자다(그런 점에서 마이네케의 불명료함을 가차없이 지적하는 1926년의 슈미트는 아직 미성숙하고 맹목적이다). 개념적 구성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슈미트의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대신 <국가이성의 이념>은 보다 다양한 형태의 역사적 기록들로부터 국가이성의 씨앗들을 섬세한 손길로 거둬들이며, 그것을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게 된 자가 가질 수 있는 관조의 시선을 보여준다.
마이네케의 저술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던지고 싶은 것은 역시 그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특히나 정신의, 관념의 역사를 쓰려는 이들에게 마이네케는 여전히 하나의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념을 기초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법이 가질 수 있는 함의는 여전히 있다고 믿는다. 그 어떠한 역사가도, 비평가도 산포된 텍스트들의 양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유의미한 결론을 끌어낼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해석과 서사를 필요로 한다(역사학의 본질이 이야기하기라는 폴 벤느의 주장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이념은 해석적 서사의 골조를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인간들은 마치 무언가를 머리에 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러한 방법에의 추구, 그게 내가 마이네케의 아직 번역되지 않은 저술들이 빨리 번역되기를 바라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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